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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 Aug 23. 2023

공부는 7월에

오늘은 조금 피곤해서요




은우는 공부를 싫어한다. 은우에게 공부란 읽고 쓰고 문제를 푸는 등 머리를 많이 써야 하는 일인데 만들기나 달리기처럼 본인이 좋아하는 것은 공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재밌으면 공부가 아니고 재미가 없으면 공부다! 명쾌한 정의이지 않는가. 만들기도 공부라고 이야기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정말이지 단단한 신념이다. 3학년이 된 은우는 공부하기 싫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초등학교는 ‘학년군’으로 이루어져있다. 1~2학년군, 3~4학년군, 5~6학년군. 이 학년군이 교과나 수업시수 등의 기준이 되는 큰 틀이라고 볼 수 있다. 1학년과 2학년의 과목은 국어, 수학, 통합교과(봄, 여름, 가을, 겨울)로 동일하지만 3학년이 되면 국어, 수학, 영어, 사회, 과학, 음악, 미술, 체육으로 그 수가 많아지고 5학년이 되면 여기에 도덕과 실과가 추가된다. 개수만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학습 수준도 올라가기 때문에 1학년과 2학년보다 2학년과 3학년의 난이도 차이가 더 크다. 그래서 2학년에서 3학년으로, 4학년에서 5학년으로 학년군이 바뀌면 아이들이 많이 힘들어한다. 비단 특수학생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3월이면 학생들의 힘들다는 소리가 학교 여기저기서 울려퍼진다. 은우도 예외가 아니었다.  



   2교시에 국어 할 거야. 아까 보여준 글 읽고 문제 풀거에요.


   공부하기 싫은데요.


   해야 돼.


   공부 안 할래요. 오늘은 조금 피곤해서요.


   그럼 언제 안 피곤해지는데?


   7월..


   지금 6월인데? (오늘은 6월 15일이다.) 2교시에 공부 해야 돼.


   …




지금은 피곤하니 보름이나 지나서야(은우에게는 7월이 먼 것처럼 느껴졌겠지.) 공부를 하겠다는 기적의 논리를 앞세우는 은우. 그래도 해야 된다고 분명히 말하면 결국 받아들인다. 투정 부리는 ‘이이잉’ 소리는 꼭 붙지만.


특수학생이라고 해서 글을 읽고 쓰는 것을 완전히 제쳐둘 수 없다. 공부는 해야 한다. 글자를 읽을 수 있으면 단어에서 문장으로 길이를 늘려야 하고 짧은 글을 읽을 수 있으면 그 안의 단어와 내용을 이해해야 하며 등장인물의 감정이나 일이 일어난 순서 등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학습의 속도는 아이마다 천차만별이고 느린 경우가 많지만 꾸준함의 결과는 빛이 나기에 뒷걸음질 칠 수는 없다. 


3학년인 은우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가. 1학년 초에는 그림책 ‘감기 걸린 물고기’ 외에 다른 책은 무조건 거부하던 은우였다.‘감기 걸린 물고기’를 읽고, 따라 쓰고, 색칠하고, 만들기를 하며 다른 책에 거부감을 덜 느끼고 학교 수업에 흥미를 가지도록 반복하고 또 반복하며 몇 달의 시간을 보내지 않았나. 시작은 감기 걸린 물고기였지만 다른 책과 글에도 관심을 전이시키고 단어에서 문장으로 쓰기를 확장시키며 읽기와 쓰기 유창성을 발전시켜왔다.


공부하기 싫다는 학생의 말을 전부 받아들이면 정작 중요한 것을 놓쳐버리고 만다. 뭐가 어렵고 힘든지, 지금은 뭘 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명료하게 전달해야 한다. 그리고 이끌어야 한다. 힘듦과 어려움에 몸부림치는 아이를 그대로 두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길로 안내하고 옆에서 지켜보고 독려하며 함께 가야 한다. 교육은 1년 그 너머를 바라본다. 공부를 해야 한다는 의식, 싫어도 해내는 태도, 어렵지만 스스로 해보려는 의지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자산을 차곡차곡 쌓아나가는 길이다. 


나는 지난 3년의 시간 동안 변화해온 은우를 믿는다. 지금은 싫다 할지라도 결국 받아들일 것이란 걸. 마침내 익숙해져 아무렇지 않게 글을 읽고 문제를 푸는 미래를 기다리며 오늘도 하루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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