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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속으로만 Dec 22. 2020

커리어우먼이 꿈?

20년 넘는 직장 생활 동안,
회사 밖에 몰랐던 사람이
창업을 하고 투잡이란 것을 하게 되면서 
마흔여섯 나이에 
비로소 알게 된 것들, 하게 된 생각들을 
스스로 기억하기 위해 기록합니다

몹쓸 기억력의 소유자이기에, 
이렇게라도 기록해 두지 않으면
지금의 떨림과 설렘과 두려움을
언제 그랬냐는 듯
잊어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나는 예체능 전공이다. 그런데 대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전공은 뒷전이고 회사에 들어가고 싶었다. 그래서 토플 공부를 열심히 했다. 몇 차례 응시 끝에 커트라인을 겨우 넘긴 점수를 만들어 미국 교환 학생도 갔다왔다.



대학교 다니면서 열심히 한 거라곤 토플 공부 하나였지만 그거라도 해 놓은 덕에, 해외 아티스트 공연을 위해 영어 쓸 일이 많았던 작은 공연 기획사에 취직했고, 짧은 경력을 잇고 엮어 지금 다니는 회사에 입성했다.



굳이 '입성'이라는 말을 쓰는 이유는 때로는 월급이 안 나올 수도 있다는 소문이 흉흉해지는 작은 회사들을 5년 다니면서 동경했던 회사다운 회사였기 때문이다.



홍보팀으로 입사해 줄곧 마케팅 부서에서 근무하면서 팀장도 되고 인정도 받았(던 것 같)다. 항상 즐거운 건 아니었지만 대체로 재미있었고 사람들도 잘 맞았다. 중간중간 찾아오는 어려움도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들과 함께 헤쳐나가(지)고 있었다(고 그때는 생각했다).



속 썪이는 팀원 때문에 내가 힘든 걸 아는 선배가 요즘 어떠냐고 물으면 거기다 대고 '안 좋은 환경도 환경이죠'라고 건방을 떨 정도로 긍정적이었던 때도 있었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입사해 동고동락했던 동료들이 한꺼번에 퇴사했을 때에도 별다른 동요 없이 내 자리를 지켰었다. 속으로, 대학교 때부터 세웠던 커리어우먼의 꿈을 이루는 중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러던 어느 날, 대대적인 조직 개편이 감행되었다. 마케팅 팀장 중 한 명이 실장이 되는 계획이 진행 중이었고 그는 나와 동갑이었다. 그가 실장이 되는 계획 중에 내가 어떤 요소로 거론되었는지 나는 알 도리 없지만 결과로 미루어 보나 상식적으로나 걸림돌이었을 게 뻔하다.



나는 곧장 신규 사업 부서로 발령이 났고 TF를 하게 되었다. 이렇게 되려고 그랬는지 나는 주구장창 마케팅 말고 다른 일 해 보고 싶다고 떠들고 다녔었기에 그들은 큰 고민 없이 '아무개는 새로운 거 해 보고 싶다고 했으니 TF 보내면 되겠네'라고 내 말을 옮겼을 것이다.



따지고 들자면 그리 유쾌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나는 따지지 않았고,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일을 한다는 사실에 오히려 설레고 철없이 들떴다. TF 초기엔 실제로도 그랬다. 분위기 좋았다. 하지만 오래 가지 않았고, 신규 사업 부서에 있는 동안 내 괴로움은 증폭되어 갔다.



신규 사업은 결과가 바로 눈에 보이지 않기에 호흡을 길게 하고 시각도 멀리 가져야 한다고 조언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즉각적인 결과가 없음에 적응하지 못 하고 떠난 동료들도 있었지만 사실 핵심은 그게 아니다. 역시 가장 힘든 건 사람.



불확실하고 열악한 환경이라도 격려하고 인정하는 분위기라면 구성원들은 스스로 독려된다. 내가 느꼈던 건 독려보다는 채근, 거기다 결과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내부 경쟁까지.



같이 있던 후배들이 나보다 먼저 다른 부서, 다른 회사로 떠났지만 난 한번 버텨보려 했다. 조금 더, 조금만 더 있다 보면 자연히 해결될 줄 알았고 그러기를 바랐다. 여태까지 그래왔음을 근거 삼아, 어떤 일이든 적응할 수 있다고 나 자신을 과신했다. '미쳤다고 내가 먼저 떠나? 쟤들이 떠나야지' 라는 흔한 생각도 했다.



이런 나의 고민은 일을 바꾸고 만 2년이 됐을 때 부터 고조되기 시작하여 2년반으로 접어드는 중간에 정점에 이르렀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피해의식과 비관으로 집중이 되지 않았다. 중요한 회의에 들어가도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의 심정이 되어 방관자처럼 앉아 있었다.



나도 나지만 우리 팀에 할 짓이 아니었다. 앞길이 창창하고 의욕이 넘치는 팀원들, 눈을 깜빡이며 나만 쳐다보고 있는 그들에게 방관자 팀장은 필요 없는데...



남편과 몇날 몇일을 얘기해 봤지만 돌파구가 없다는 결론만 더욱 확실해졌다. 아마도 월급쟁이 생활은 여기까지가 끝인가보오. 퇴사. 결국 그만두는 것 밖에 방법이 없었다. 절이 싫은 중이 떠날 밖에. 그 동안 숱한 이직 시도는 모두 불발되었으니 퇴사하면 뭘 할 지가 고민이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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