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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속으로만 Dec 22. 2020

궁즉통, 절박해지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

20년 넘는 직장 생활 동안,
회사 밖에 몰랐던 사람이
창업을 하고 투잡이란 것을 하게 되면서
마흔여섯 나이에 비로소 알게 된 것들, 하게 된 생각들을
스스로 기억하기 위해 기록합니다

몹쓸 기억력의 소유자이기에,
이렇게라도 기록해 두지 않으면
지금의 떨림과 설렘과 두려움을
언제 그랬냐는 듯
잊어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돌아보면, 팀장이 되기 전엔 팀장이 달고 싶어 안달 했었지만, 팀장이 된 후 편한 날은 결단코 없었다.


여기는 실무자형 팀장을 지향해서, 팀원들이 하는 소위 오퍼레이션을 직접 하지 않고도 직접 한 것 처럼 속속들이 알아야 하고 그걸 실장 이상 직책자들이 이해하게끔 그들의 언어로 풀어

내는 역할을 팀장급이 한다. 그들의 언어로 푼다 함은 우리 팀원들이 (다른 팀원들에 비해) 얼마나 뛰어나게 잘 하고 있는가 하는 메시지를 암암리에 녹여내는 것도 포함된다.


쉽지 않은 팀장직을 수행하기 위해 고군분투 했지만 특히 팀장 초기에는 팀원들에게 지지를 받는 팀장은 아니었다. 내가 너무 여유가 없어서 그들의 어려움을 충분히 공감 해 주지 던 것 같다. 그래도 부당하게 승진이 늦어지는 등 명시적으로 불리한 처우는 내가 팀장인 동안 다 바로잡아 놓았었고 그러기 위해 위로 어필도 많이 했다. 매니저라면 그런 것은 꼭 해야 한다고 믿었기에 열과 성을 다 했고 성과도 있었다.


이렇게 적어 놓고 보니 말 그대로 위아래로 치이면서 살았다. 하루하루 내 앞가림과 팀원들의 승진을 쟁취하느라 한치 앞을 내다보는 건 사뭇 사치였을지도 모른다. 그런 나날들 속에 현타가 찾아왔고, 회사만 바라보던 나의 멘탈은 활자 그대로 붕.괴. 되었다.


직원들에게 뼈 때리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기로 유명한 우리 사장이 전 직원들 앞에 자기 명함을 띄운 후 회사 주소, 전화번호, 로고 등등을 차례로 지우고 자기 이름 석자만 남기는 퍼포먼스를 한 적이 있다. 결국 마지막에 남는 건 자기 자신. 제 아무리 좋은 회사, 좋은 건물에서 근무하는 게 다 무슨 소용이냐는 클리셰.


바로 그 퍼포먼스가 내 현실이 되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끈 다 떨어진 후에 나를 지탱할 건 뭐고, 내가 진심 좋아하고 잘하는 건 무엇인지 나는 알지 못했다.


불현듯, '지금 나 다운 모습으로 회사 생활을 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이 또아리를 틀었다. 진짜 나와 회사에서의 나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걸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좀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내 본 모습으로 회사 생활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즉, 나의 본성은 회사 생활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자각.


누구보다 회사원이 되고 싶었고, 회사 생활을 하면서 보람을 느꼈던 내게 이런 자각은 치명적이었다. 잘 하는 줄 알고,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니! 게다가 그 생활을 벌써 20년 넘게 했는데? 이젠 뭘 어떻게 해?!


자연스럽게 나 다우면서 할 수 있는 일이 뭘까에 생각이 미쳤다. 소심하게, 10년 가까이 방치했던 블로그를 다시 열고 글을 썼다. 당시 직구로 쇼핑했던 것들과 몇 가지 만족했던 아이템에 대한 리뷰를 썼더니 금새 트래픽이 움직였다. 매일 아침 블로그 통계를 보는 게 새로운 루틴이 되었다.


회사에서 입지가 약해지고 한 치 앞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게 현실이 되자 비로소 나 다움과 내 취향이 중요해졌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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