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최신작 티켓 투 파라다이스(Ticket to paradise, 2022)를 보고 있자니 왕년에 애정했던 그녀의 패션이 새록새록 기억나 몇 자 적어 보려고 한다.
메인 포스터의 착장은 에스닉 드레스와 땋아 올린 머리, 터콰즈 컬러의 쥬얼리까지 발리에서 열리는 딸 결혼식 룩으로 완벽하지만, 역시 내 픽들을 모아보니 그 키워드는 다름 아닌 '자켓' 이었다.
90년대에 학생이었던 세대에게 레전드 영화 중 하나인 프리티 우먼(Pretty Woman, 1990). 리처드 기어와 헤어지고 길거리 생활도 청산하고 새 삶을 시작하려 하는 비비안은 청바지, 블랙 자켓에 흰 티를 받쳐 입었다. 헐벗었던 지난 날 대비 이제부턴 모범적이고 평범할 거라는 의지를 나타내기 딱 좋은 스타일.
프리티 우먼 패션 하면 땡땡이 민소매 원피스에 모자를 쓴 그녀의 모습이 시그니쳐지만, 나는 이 룩에 꽂혀 실제로 대학 시절 내내 이러고 다녔었다.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My best friend's wedding, 1997)에서는 그레이 수트를 멋지게 소화한다(아마도 아르마니).
이효리도 심심찮게 언급할 정도로 90년대를 주름 잡았던 길게 촤르르 떨어지는 알마니 수트는 그녀의 롱다리에 착붙이었다. 여기에 그녀는 프리티 우먼 때와 마찬가지로 크루넥 티를 매치해 드레스다운에 성공한다.
스토리, 배우, 배경 모두 스타일리쉬 그 자체여서 눈이 즐거웠던 클로저(Closer, 2004). 내성적인 포토그래퍼로 분한 그녀는 나탈리 포트만을 촬영하는 장면에서 화이트 셔츠에 카고를 입고 벨트와 시계를 다크 브라운 가죽으로 맞춰서 꾸안꾸의 정석을 보여준다.
편안하지만 흐트러짐 없는 단정한 예술가 스타일, 튀지 않고 멋스럽고 싶을 때 참고할 만한 시대 초월 룩이다.
최신작 티켓 투 파라다이스에서는 성공한 미술품 컬렉터 역할을 맡아 절제되고 세련된 스타일을 선보인다. 거기에 자켓이 빠질 수 없겠지. 똑 떨어지는 그레이 자켓과 네이비 셔츠의 자칫 뻔해질 코디는 셔츠를 풀어헤침으로써 전혀 그렇지 않다.
딸의 졸업식에서는 모든 엄마들이 입을법한 원피스는 피하고, 톤다운된 핑크 벨벳 셋업을 입어 여성스러움과 세련됨을 동시에 얻었다.
딸을 배웅하러 공항에 갈 때는 블랙 앤 화이트를 선택해 매우 심플하게 편안하면서도 단정한 스타일을 연출했다. 짧게 크로스로 맨 구찌백은 계산된 캐주얼 한 스푼.
분명 긴 여정이었을 발리 행에도 흐트러짐 없는 화이트 셔츠와 베스트까지 갖춘 셋업은 포기하지 않았지만, 버뮤다팬츠(사진엔 잘렸다)에 (구찌 내지는 에르메스인 듯한) 비비드 스카프로 따뜻한 나라 휴양지 기분을 냈다.
결혼식 드레스를 제외하고 가장 여성스러웠던 차림이 허리와 어깨에 살짝 주름잡힌 코튼 원피스(또는 셔츠?)였을 정도로 시종 시크함을 포기하지 않았다.
67년생이니 프리티 우먼이 개봉했던 1990년에 그녀의 나이 스물셋. 20대에 그녀의 20대 패션을 따라했던 것 처럼 50대 그녀의 패션도 따라해 보고 싶어졌다. 신체 사이즈와는 전혀 상관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