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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로 Jan 31. 2022

<드라이브 마이 카>(2021)

- 쇼펜하우어도 도스토예프스키도 아닌

쓰잘데기 없는 의문이 남는다. 영화의 에필로그에는 영화의 주인공과 드라이버 그리고 연극을 하는 한국인 부부, 그리고 그들의 애견 모두 한국으로 거처를 옮겨 살게 된다는 짤막한 장면이 사족처럼 붙어 있다. 류스케 감독에게 한국이란 나라는 어떤 모습이었길래 이들은 모두 한국에 와서 살게 된 것일까? (이건 그냥 잡념이다.)


나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이 남는다. 체홉의 <바냐 아저씨>라는 희곡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는 통에 이 영화의 중요한 모티브인 '바냐'를 둘러싼 인물들의 감정적인 흐름을 쫓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뒤늦게라도 한번 읽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약간의 실망감이 있다. 카메라는 오롯이 관찰자 역할만 하는 다큐멘터리 같은 느슨한 흐름이지만 강력한 인상을 남기는 5시간짜리 영화 <해피 아워>와 탄탄한 구성과 짜임새를 드러내는 <아사코>와 <스파이의 아내>(이 영화는 류스케가 감독한 것이 아니라 각본을 썼다), 이 두 가지 유형의 작품이 어떤 놀라운 화학작용을 일으켜 <드라이브 마이 카>가 탄생했을 것이란 기대감에는 조금 못 미친다. (아마도 하루키의 단편 소설 3편을 짜집기하는 과정에서 파생된 결과일런지도 모른다.)


그래도 인물의 심리와 내면으로 파고들려는 감독의 집요함이 배우들의 연기력에 꼼꼼히 박혀 있다. 아마도 웬만한 감독이라면 죽은 아내가 오르가슴의 산물로 만들어내는 그 괴이한 스토리를 '말'이 아니라 '영상'으로 만들어 꽤나 다이내믹하고 서스펜스하고 짜릿한 영화 속 스토리로 구성했을 성싶다. 하지만 류스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스토리는 아주 예리하게 영화 전편을 관통한다.


영화는 우리에게 말한다. 소냐가 바냐 아저씨에게 들려주는 그런 삶. 쇼펜하우어도 도스토예프스키도 되지 못하고 아픔과 절망 속으로 곤두박질치는 삶일지라도 그냥 그렇게 살아나가야 하는 삶. 기껏해야 죽은 후에 하느님에게 하소연이나 할만한 그런 삶. 그렇기에 웅쿠리고 있지 말고 자신을 드러내고 때론 까발리면서 세상에 마주하라는 충고. 영화 속 연극 <바냐 아저씨>의 마지막 장면이 그것이다. 아마도 류스케 감독이 가장 공력을 들였을 그 장면, 소냐가 바냐를 뒤에서 안으며 수화로 전달하는 그 대사.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나에게는 큰 감흥을 일으키지 못했다는 것이 정직한 소회다. (아마도 그것은 영화관이 너무 추워서 영화에 집중하는데 방해가 되는, 그래서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북수원CGV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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