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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로 Dec 07. 2022

<삼국지> 독파의 끝

- 어떤 깨달음

중고등학교 시절 닥치는 대로 독서를 하던 때, 어머니께서 "남자들은 <삼국지>를 한 번은 꼭 읽어야 한다는데 읽어봤냐?" 하셨다. 아마도 이것이 어머니가 나에게 독서하는 책에 대해 언급한 유일한 말씀이었던 것 같다. 그 후 서점에 갈 때마다 '나관중 지음'으로 되어 있고 번역자는 누구인지 모르는 두 권으로 된 문고본 <삼국지>를 만지작 거렸으나, 늘 다른 선택에 밀려 결국 읽지 못했다.


그 후 고우영의 만화 삼국지에 만족하고 살아오다가 60줄이 넘어서야 윌라 오디오북을 통해 이문열 편역의 10권짜리 삼국지를 독파하였다. 운전할 때와 운동할 때 들으며 근 반년이 걸렸다. 마침내 삼국지를 독파한 후에 중요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그 깨달음이란 <삼국지>는 굳이 읽을 필요가 없는 책이란 결론이었다.


보통 책을 읽고 나면 4가지의 판결을 내리게 된다. 1. 이 책을 읽지 못하고 죽었다면 참 억울했겠구나 하는 책. 2. 무엇이든 건질 것은 있구나 하는 책. 3. 굳이 읽을 필요가 없는 책이었구나 하는 책. 4. 읽은 것 자체가 너무 억울하다고 느껴지는 책(물론 이런 책은 끝까지 읽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이렇게 구분이 된다. 삼국지는 3번에 해당한다. 읽은(들은) 것이 억울하지는 않지만 굳이 읽을 필요가 없었다고 생각되는 책이다.


<삼국지>의 내용 중 제법 흥미로운 부분들은 이미 다른 매체나 영화로 알고 있었고, 그 나머지 부분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비슷한 사건의 반복으로 점철된다. 문학적인 관점에서도, 역사적인 관점에서도 그 많은 시간을 들여서 접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이문열의 해설적 사족은 도움이 되는 부분도 꽤 되지만 종종 심사를 뒤틀리게 만드는 부분도 있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는 꾸며낸 이야기이고 진수의 <삼국지>가 '실증 사학'에 바탕을 둔 정사라고 단언하듯이 취급하는 부분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오늘날의 '실증 사학'으로 진수의 <삼국지>를 해부하면 그 또한 만신창이가 될 것이 분명한데도 두 책에 차이가 있는 부분은 무조건 진수의 <삼국지>가 정사라고 말하는 데에는 혀를 내두르게 된다.


한 가지 <삼국지>를 읽으며 이 책에 대한 나름의 애정을 가지게 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수 없이 반복되는 전쟁에 대한 이야기에서 늘 병사들을 먹일 식량과 말먹이 풀을 강조하는 부분이다. 어떻게 군량과 마초의 보급을 유지하는가가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체의 하나로 늘 등장한다. 군량과 마초의 확보, 그 운송 경로를 끊으려는 책략, 이를 두고 벌어지는 사건들이 계속 반복된다. 이는 삼국지의 화려한 영웅 담론에 민중의 삶을 착색시키게 되는 부분이라고 할 수가 있다. 진수의 <삼국지>에도 이처럼 군량과 마초에 대한 강조가 있는지를 잘 모르겠다. 고대에 쓰인 서양의 역사서인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나 리비우스의 <로마사>에도 간혹 전쟁에서 식량 확보의 문제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삼국지>처럼 시종일관되게 그 중요성이 강조되어 있지는 않다.


이 한 가지 장점을 제외하면 다른 어떤 점에서도 <삼국지>를 읽어야 할 책이라고 강변할 어떤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 동양에서 <삼국지>가 여전히 영화나 게임의 콘텐츠로 사용되고 있는 점을 생각하면 솔직히 착잡한 마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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