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티 라이트>

1931, 찰리 채플린 감독

by 로로

아무리 냉담한 사람이라도 눈물을 흘리고 싶으면 이 영화를 보면 된다.


세 번째 감상할 때는 그러지 않을 줄 알았는데,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여지없이 볼을 타고 소금물이 떨어졌다.


누구도 부정하기 못할 사랑의 힘, 그 뒤에 숨은 노숙자 채플린의 자존감이 영화의 메인 스토리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1931년 대공황 한복판에서의 미국 사회에 대한 적나라한 고발이다. 상류층 군상들의 허위의식과 기만을 유머와 해학으로 뒤집어엎는 영화의 첫 장면 동상 제막식부터 채플린의 날카로운 메스가 작동한다.


이 영화에서는 노숙자 채플린, 어렵사리 꽃을 팔면서 생활고에 시달리는 눈먼 소녀, 그리고 거리의 신문팔이 소년 이외에는 모두가 풍족한 모습이다. 말쑥한 차림의 거리 시민들은 바쁘게 자기들의 발길을 옮기며, 타인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밤마다 파티가 열리고, 미국은 전대미문의 금주법 시대지만 술은 어디서든 넘쳐흐른다.


대부분의 미국 국민들이 대황공의 여파로 경제난에 시달릴 때 이 영화가 개봉된 것이다. 우리가 100년 가까이 지난 지금 까르르 웃음으로 넘길 수 있는 장면들이 그 당시의 미국민들에게는 어떻게 다가갔을까?


아주 노골적인 설정이고 어떤 의미에서는 신파적인 내용이지만 볼 때마다 깊은 감동을 주는 이유는 이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사람(채플린)이 경제적으로는 도리어 자기보다는 좀 낫지만 눈먼 장애를 가진 소녀를 온 힘을 다해 돕는다는 점이다. 자기를 위해서는 단 한 푼도 남기지 않고 범죄의 누명을 쓰면서.


감동을 위한 인위적인 스토리텔링이지만 나의 가슴을 아프게 찌르고 뇌를 쥐어짠다. 나는 사회생활을 시작한 20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을 때가 없었다. 마흔이 넘어서면서는 몇 차례 불행과 타인의 악의가 겹쳐지면서 늘 빚에 짓눌려서 힘겹게 삶을 끌어왔다. 그런 삶 속에서 누군가를 경제적으로 도와주는 일은 생각하기가 힘들었다. 딱 한 번 어려운 생활에 어느 진보 정당에서 활동하면서 도움을 청한 지인을 1년 정도 후원한 것이 전부이다. 기억으로는 그렇다. 그리고는 늘 나 자신의 형편을 '마음속으로' 내세워 마땅히 도움의 손길을 줘야 할 상황에서도 비루하게 눈을 감았다. 이러한 나의 태도에 대해 이 영화는 다시금 묻는다.


"당신은 지금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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