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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 Jun 25. 2024

아시아인 혐오에 대한 아시아계 미국인의 올바른 자세

By John Cho (Apr, 2020)

[저자 소개] ; 지난 2016년 < #StarringJohnCho >라는 온라인 해시태그 운동이 있었습니다. 이는 여전히 할리우드에서 주연 역할의 1%만 아시아계 배우들이 맡고 있는 현실을 규탄하며, 한국계 미국인 배우 존 조 (John Cho)를 할리우드 작품의 주연으로 캐스팅하라는 표면적인 의미와 함께, 존 조를 포함한 수많은 아시아계 배우들이 할리우드에서 더 유의미한 기회를 얻기를 소망하는 소셜미디어 캠페인이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배우 존 조에 대해서 잘 몰랐습니다. 배우 스티븐 연 (Steven Yeun)은 알고 있었지만, 오히려 그보다도 더 일찍 할리우드에서 활동해 온 한국계 미국인 배우였음에도 불구하고, 존 조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존 조에 대해서 다루고 싶었습니다.


정식으로 소개하자면, 존 조 (John Cho)는 한국계 미국인 배우입니다. 1972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6살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1997년부터 현재까지 약 30년 간 수많은 작품에 출연하였고, 그중 일부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


이름 없는 단역이었다가, 점점 더 주목을 받게 되어 나중에는 본인 이름 존 (John)으로 출연하게 된 영화 아메리칸 파이 시리즈 (American Pie, 1999; 2001; 2003; 2012)

주인공으로서 큰 상업적인 성공을 이룬 코미디 영화 해롤드와 쿠마 시리즈 (Harold & Kumar, 2004; 2008; 2011)

J.J. 에이브럼스 (J.J. Abrams)의 영화 스타트렉 시리즈 (Star Trek, 2009; 2013; 2016)

드라마 파친코 (Pachinko, 2022)와 애콜라이트 (The Acolyte, 2024)의 감독으로 유명한 코고나다 (Kogonada) 감독의 장편 영화 데뷔작 콜럼버스 (Columbus, 2017)

아시아계 주연의 최초 할리우드 스릴러 영화로서 흥행에도 성공한 서치 (Searching, 2018)

아시아계 남자 배우로는 최초로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의 주연을 맡아 화제가 된 셀피 (Selfie, 2014)


존 조는 1992년 로스앤젤레스 (LA) 폭동을 직접 목격한 세대로서, 할리우드에 아시아계 배우가 지금보다도 더 적었을 시점부터 배우 활동을 해 왔습니다. 그는 연기를 시작할 때부터 캐스팅된 역할에 대한 소신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12살의 자신이 봐도 부끄럽지 않을 만한 역할을 선택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컨대, 아시아계 사람들을 조롱하거나 차별하는 역할은 절대 맡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소신이 보다 공고해진 사건이 있었습니다.


한 번은 미국 텍사스주 악센트를 사용하는 중국인 배달부 역할을 맡았다고 합니다. 당시 존 조의 생각으로는 아시아계 특유의 악센트 (예: 콩글리시, 칭글리시)를 연기하는 게 아니라, 미국식 악센트를 연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특별한 조롱이나 차별이 없을 것으로 보고 해당 역할을 맡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그가 연기를 시작하자 촬영장에 있던 다수의 백인 중년 남성들이 깔깔대며 웃었고, 이는 약 3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존 조의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 당시 90년대 후반 시절에는 아시아계 배우가 단지 영어를 쓰는 것 자체만으로도 무례함을 겪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때 존 조는 다시는 이런 기분을 느끼지 않으리라 더 굳게 다짐했다고 합니다.


할리우드에서 느리지만 아주 조금씩 아시아계 배우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고, 모든 것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느끼고 있을 즈음에, 존 조는 코로나 시기를 경험하게 됩니다. 코로나 시기에 아시아인을 향한 무비판적 분노와 증오가 치솟자, 그는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Los Angeles Times)>에 한 글을 기고하게 됩니다. 아시아계 배우로서 평생 그 존엄과 가치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해 온 존 조의 입장에서는 그동안 일궈 온 모든 게 사라지는 느낌을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다음은 존 조의 글을 의역한 것으로서, 코로나 시기에 그가 무엇을 생각하고 느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원문: https://www.latimes.com/opinion/story/2020-04-22/asian-american-discrimination-john-cho-coronavirus



저는 며칠 전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습니다. 언어적, 신체적 폭력의 타깃이 될 수 있으니 집 밖에 나올 때 조심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저는 부모와 자식 간의 역할이 뒤바뀐 것 같아서 꽤 어색함을 느꼈습니다. 바깥에 돌아다닐 때 조심하라는 말은, 어렸을 때 부모님께서 제게 강조하시던 규율 중 하나였는데, 이를 제가 부모님께 강조하게 될 줄은 몰랐던 것이지요.


코로나 바이러스가 중국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는 사실은 아시아인을 향한 많은 증오 범죄를 낳았습니다. 미국 전역에서 아시아계 미국인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바깥에 돌아다닐 때 조심하라는 말을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제가 부모님께 강조했던 것처럼 말이죠. 친구들은 모바일 메신저에 직접 목격한 폭력에 대해서 공유하거나, 페이스북을 통해서 관련 기사들을 퍼뜨리고 있습니다. 이들의 대화는 언제나 우려 가득히 서로의 안녕을 기원하며 <안전하게 보내세요 (stay safe)>로 마무리됩니다.


어렸을 때는 우리가 충분히 미국인처럼 된다면 (became American enough), 바깥에서도 인종차별 범죄에 노출됨 없이 자유롭고 안전할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제 부모님은 저와 제 남동생이 최대한 많이 텔레비전을 보고, 실제 미국 원어민처럼 말하고 행동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부모님은 우리가 아시아계 인종이라는 사실이 우리에게 불이익을 주지 않았으면 했습니다.


제가 배우가 되었을 때 (아마도 어렸을 적 숱하게 TV를 본 결과로 배우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리고 어느 정도 인지도가 생겼을 때, 저는 부모님의 오랜 소망이 마침내 조금이나마 실현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시아계 인종에게도 성공의 길이 열리고, 낯선 사람들이 친절하게 대해주기 시작한 것이죠. 어떤 면에서는, 저는 제 인종과 무관하게 제가 살고 싶은 대로의 삶을 살아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나의 인종이 나를 정의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깨닫게 하는 순간들이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찾아왔던 것 같습니다.


이는 아주 사소한 순간일 수 있습니다. 예컨대, 영업사원이 당신에게 일본어 인사말을 건넬 때처럼요. 혹은, 어떤 일련의 순간들일 수 있습니다. 2001년 9/11 테러 발생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해롤드와 쿠마, 화이트 캐슬에 가다 (Harold & Kumar Go to White Castle, 2004)>를 홍보하기 위해 공동 주연이었던 칼 펜 (Kal Penn)과 제가 프로모션 투어를 했을 때처럼요.


우리는 영화 홍보를 위해 뉴욕, 시카고, 애틀랜타, 시애틀을 돌았는데, 이는 곧 암울한 루틴이 되었습니다. 매 비행마다 <인도계 미국인>이었던 칼 펜은 무작위 수색 대상자로서 한쪽으로 분류되어야 했습니다. 한 번은 칼 펜의 친구 게이브가 동행했는데, 우리가 공항 보안 검색대에 이르렀을 때, 칼 펜만 수색 대상자로 걸리기도 했습니다. 당시 게이브와 저는 짐을 챙긴 후 벤치에 앉아 칼 펜이 수색을 마치고 풀릴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게이브는 자신의 배낭을 뒤지더니, 갑자기 칼 펜이 엄청 짜증 날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때 그의 배낭 안쪽을 보았을 때, 저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백인>이었던 게이브는 최근에 캠핑을 다녀왔었고, 그때 당시 챙겼던 캠핑용 칼을 미처 빼내지 못하고 계속 본인 배낭에 보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놀라서 헉 소리를 냈고, 뒤돌아서 칼 펜을 봤습니다. 그는 미국 교통보안청 (TSA, Transportation Security Administration) 직원이 그의 가방을 비우고 내용물을 확인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 현장은, 칼 펜으로서는 소위 현타 (현실 자각 타임)의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지금 코로나 시기에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바로 그런 순간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9/11 테러의 여파로 칼 펜이 겪어야만 했던 그런 순간들을 말이죠. 작금의 코로나 팬데믹은 우리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소속이 조건부임을 상기하게 합니다. 한 순간에 우리는 진정한 미국인이 되었다가, 다음 순간에 보니 우리는 모두 코로나 바이러스를 가져온 파렴치한 외국인이 되어버렸습니다.


흔히 아시아계 미국인을 <모델로 삼을 만큼 성공적인 소수 인종>이라는 미명 하에 <모범적 소수인종 (모델 마이너리티, model minority)>라고 하는데, 이는 아시아인들 스스로 인종적 편견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다는 환상에 빠지게 합니다. 성공한 아시아인들의 동상을 세워두고, 다른 한편에서 체제내적 불평등 (systemic injustice)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아시아인들을 침묵시킵니다. 우리가 그렇게 달성하고자 했던 사회적 성공은, 달성 즉시 미국 사회의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입증하는 사례로 활용됩니다. 그리고 만약 그 시스템이 당신에게 맞지 않다면, 그건 당신의 잘못일 뿐, 그 누구의 탓도 할 수 없도록 합니다.


성공한 아시아인 집단 이면에 12%의 아시아계 사람들이 빈곤선 이하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무시됩니다. 아시아인으로 대표되는 <모범적 소수인종> 신화는 모든 유색인종에게 불리한 미국 사회의 시스템을 현상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그리고 그 신화의 가장 큰 폐단은, 우리 아시아인 스스로를 침묵시키는 데 있습니다. 우리 아시아계 미국인들을 유혹해서 그 신화의 추종자로서 앞장서도록 설득하고 있습니다. 마치 종교처럼 우리 부모들을 개종시키고, 결국 우리까지 그 신화를 수용하도록 부추깁니다. 그 신화는 우리가 보호받고 있고, 꽤 괜찮은 사람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믿게끔 합니다.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고정관념은 사실 칭찬에 가까울 때가 많습니다. 예컨대, 뭐든지 열심히 한다는 것이나 수학을 잘한다는 것이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아시아계 미국인의 능력을 상향 평가하는 경향은 아시아인에 대한 반감을 덜 심각한 것으로 오인하도록 하고, 인종차별의 아류쯤으로 치부하도록 합니다. 어떤 사안에 있어서도 <어차피 아시아계 미국인은 똑똑하니까 알아서 잘하겠지>라고 생각하고, 문제를 축소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아시아인 스스로도 이런 식으로 생각합니다. 이로써 현재 코로나 시기에 발생하고 있는 아시아인 대상 증오 범죄조차 아시아인 스스로 사소하고, 나와는 관련 없는 단일 사건일 뿐이며,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고 일축하게끔 합니다.


물론,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도 있습니다. 일 처리를 은밀하게 하고 오픈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든지, 미국 일자리를 빼앗는 존재라든지, 부정직한 면모가 있다든지 등이 그 사례입니다.


일례로, 제가 고등학생 때 라틴어 퀴즈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해서 걸렸을 때,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한국인들은 왜 다 사기꾼이니? (Why are Koreans such cheaters?)>


현재 코로나 시기처럼 전국적인 스트레스가 팽배할 때 우세한 건 이러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입니다. 제 아내는 일본계 미국인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제 아내의 가족들은 포로수용소에 감금되었습니다. 아내의 가족 중에 미국 육군의 일본계 미국인 부대 소속으로 복무 중인 분들이 계셨는데도 감금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디트로이트 (Detroit)에 살던 중국계 미국인 빈센트 친 (Vincent Chin)은 자동차 공장 노동자였는데, 1982년 백인 남성 두 명의 무차별적 야구 방망이 공격을 받아 숨을 거두었습니다. 사망 당시 그의 나이는 27세였습니다. 미국 자동차 시장에 일본 자동차의 침투가 본격화되자 반일 감정이 불붙었고, 빈센트 친은 일본계로 오인받아 살해된 것이었습니다. 극히 최근에는 뉴욕 브루클린 (Brooklyn)에 거주하는 아시아계 여성이 쓰레기를 버리러 나왔을 때 갑자기 염산 테러를 당하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이는 아시아인을 향한 치솟는 공격성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입니다.


저는 지난 1978년, 제가 6살이었을 때 미국에 왔습니다. 이후 1990년 11월 21일, 미국에 귀화했습니다. 걸프전 (Gulf War) 시작 전에 군사력 증강을 도모하던 때였습니다. 시민권 선서식 때 판사가 한 질문에 놀랐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는 제가 국가의 부름을 받으면 군복을 입고 국가를 위해 싸울 수 있겠느냐고 물었습니다. 물론, 제 친구들과 저는 징집의 가능성에 대해 궁금해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직접적인 질문을 받을 줄은 몰랐기에 저는 진지하게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결국 저는 <yes>라고 답했고, 그것은 진심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부모님이 제가 취득하기를 원했던 시민권을 신청했고, 저는 제 평생을 바쳐 시민권을 얻기 위해 노력했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저는, 그 누구도 저나 저와 같은 아시아계 미국인에게, <우리는 진정한 미국인이 아니야 (we are not really American)>라고 말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리에게 알려준 게 있다면, 그것은 바로 현재 미국 전역에 퍼진 아시아인을 향한 반감과 혐오 범죄를 해결하는 데 있어 결코 임시방편에 만족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시아계 미국인들 사이의 상호연결성과 의존성은 그 어느 때보다도 분명한 시점입니다.


아시아계 미국인들에게 고합니다. 우리는 그저 선택적으로 누군가를 위해 일어서고, 또 누군가를 위해 침묵할 수는 없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공격성은 널리 퍼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시아인을 향한 증오를 축소 해석하지 마세요. 또한, 그 증오가 나와는 무관한 먼 곳에 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증오는 당신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길거리에서 그 증오를 목격하게 된다면, 가만히 있지 말고 한마디 하세요. 일터에서 그 증오를 듣게 된다면, 가만히 있지 말고 한마디 하세요. 가족 내부에서 그 증오를 느끼게 된다면, 가만히 있지 말고 한마디 하세요. 당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미국인들을 위해서 꼭 액션을 취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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