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Lupita Nyong’o (Oct, 2017)
[저자 소개] ; 배우 루피타 뇽오 (Lupita Nyong'o)는 1983년 멕시코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부모님은 케냐인입니다.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그녀는 스스로를 멕시코계 케냐인, 혹은 케냐계 멕시코인으로 규정합니다. 지난 2014년, 영화 노예 12년 (12 Years a Slave, 2013)으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았습니다. 이 영화는 그녀가 데뷔 후 찍은 첫 번째 장편 영화였습니다. 이후, 영화 스타워즈 (Star Wars), 블랙 팬서 (Black Panther) 시리즈로 대중의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최근에는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 첫째 날 (A Quiet Place: Day One, 2024)로 관객을 찾았습니다.
[본 글에 대하여] ; 지난 2017년, 할리우드의 거물 영화 제작자 하비 와인스틴 (Harvey Weinstein)에 대한 광범위한 미투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소셜미디어에 해시태그 #MeToo를 표시함으로써, 하비 와인스틴이 1980년대부터 자행해 온 성폭력을 폭로하기 위한 운동이었습니다.
무려 80명이 넘는 여성들이 피해를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그중에서 뉴욕주에 기소될 수 있는 사건은 극히 소수였습니다. 대부분 뉴욕주에서 발생되지 않았거나, 공소시효가 만료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비 와인스틴은 2020년 뉴욕주 1심 재판에서 징역 23년형을 선고받았고, 이후 항소했으나, 뉴욕주 항소법원은 2022년 진행된 재판에서 1심 판결을 유지하였습니다. 그는 별개의 성폭력 혐의로 2023년 캘리포니아주 법정에서 16년 징역형을 추가로 선고받았습니다. 이로써 그는 뉴욕주에서 징역 23년형의 형기를 마친 뒤, 캘리포니아주에서 징역 16년형의 형기를 채워야 했습니다. 1952년생인 그의 나이를 감안하면, 그는 남은 인생을 감옥에서 보낼 운명인 듯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2024년 4월 뉴욕주 대법원은 하비 와인스틴의 성폭력 유죄 판결을 파기하고, 새로운 재판이 진행되어야 한다고 판결했습니다. 이는 검찰이 기소에 포함되지 않은 여성들을 증인석에 세워 부당한 피해를 입었다는 하비 와인스틴의 항소를 받아들인 결과입니다. 검찰은 기소에 포함되지 않은 여성들의 피해 사례를 통해 하비 와인스틴의 범죄 성향을 입증하려고 했던 것인데, 뉴욕주 대법원은 이를 기존 판결을 번복할 만한 중대한 오류 (reversible error)라고 판단했습니다. 뉴욕주 대법원은 피고인이 기소된 범죄에 대해서만 재판을 받아야 할 권리가 있음을 명백히 한 것입니다.
이로써 하비 와인스틴은 뉴욕주에서 징역 23년형의 형기를 채울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다만, 캘리포니아주로 이동해서 징역 16년형의 형기를 시작해야 합니다. 그는 캘리포니아주 유죄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 중에 있습니다. 한편, 뉴욕주에서는 다시 처음부터 재판을 진행해야 함에 따라, 피해 여성들은 다시 법정에 출두하여, 다시 증언하고, 다시 결과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절대 타협할 수 없는 법리적인 허점이 있었다면 바로잡아야 함이 분명하겠지만, 이렇게 또다시 피해 여성들은 자신의 인생을 “허비”하며, 거대 권력과 기약 없는 싸움을 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뉴욕주 대법원은 법리적인 허점을 중대하게 고려한 것만큼이나, 피해 여성들의 인생이 “허비”되는 상황을 중대하게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 증인석에 세워졌던 아니던 간에, “기소에 포함되지 않은 여성들”의 목소리를 그저 공허한 울림처럼 취급하면 안 될 것입니다.
이처럼 “기소에 포함되지 않은 여성들”의 목소리 중에는 배우 루피타 뇽오의 사건도 포함됩니다. 미투 운동이 촉발된 당시, 그녀는 뉴욕 타임스 (The New York Times)에 하비 와인스틴의 만행을 폭로했습니다. 그녀는 80명이 넘는 피해 여성 중 한 명이었습니다. 재판에서 다뤄지지 않더라도, 그녀의 목소리는 중요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이 세상 모든 <그녀>, 혹은 <그>의 목소리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뉴욕 타임즈 댓글 중에는 자신은 남성이지만, 루피타 뇽오가 겪은 방식과 유사하게 당했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비 와인스틴의 방식은 매우 교묘하고 치밀했으며, 완급 조절이 뛰어났습니다. 더불어, 이는 명백한 권력관계 속에서, 개인의 꿈과 생계를 뒤흔들며 자행되었습니다. 그래서 루피타 뇽오는 더 혼란스러웠다고 증언합니다.
아주 사적인 긴 글이지만, 함께 읽어보면 좋겠습니다. 읽으면서 저 또한 많이 공감하였고, 슬프지만 기시감마저 들었는데, 당장의 해법을 찾는 것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이와 별개로 저 스스로부터 피해자의 목소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전심으로 듣는 노력을 한 적이 있었는가 물었을 때 부끄러움을 피할 길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읽어 주시는 분들께, 미리 감사드립니다.
원문: https://www.nytimes.com/2017/10/19/opinion/lupita-nyongo-harvey-weinstein.html
저는 그동안 뉴스 내용을 따라잡고, 하비 와인스틴 (Harvey Weinstein)과 다른 사람들에 의해 피해를 당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읽어 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꽤 오랫동안 하비 와인스틴에 대한 경험을 제 마음 구석 깊은 곳에 처박아 두고 있었습니다. 이는 필히 세상에 알려야 할 것을 덮어 두자는 모의에 가담하는 꼴이었고, 이로써 하비 와인스틴이라는 포식자는 수많은 세월 동안 먹잇감을 찾아 돌아다닐 수 있었습니다. 다른 많은 여성들이 공유한 것처럼, 저는 하비 와인스틴의 만행을 겪었을 때 저 혼자만 남겨진 것 같아 두려움을 느꼈고, 스스로 자책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하비 와인스틴의 만행이 공개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지금, 저는 자꾸만 떠오르는 기억들을 더 이상 회피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속이 메스꺼웠습니다. 제가 겪은 일이 저만의 일이 아니라, 여성 전체에 대한 사악한 행동 패턴의 일부였다는 점에서 내면의 화가 폭발함을 느꼈습니다.
지난 2011년, 예일 드라마 스쿨 (Yale School of Drama) 재학 시절, 저는 베를린에서 개최된 한 시상식에서 하비 와인스틴을 처음 만났습니다. 중간에서 소개해 주는 분은 그가 “할리우드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제작자 (the most powerful producer in Hollywood)”라고 했습니다. 당시 야심에 차 있던 여배우로서, 저는 업계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 열망이 컸고, 한편으로는 낯선 사람들에 대한 경계심도 갖고 있었습니다. 특히, 남자들이 어떤 의도를 갖고 접근해 오는 경우를 조심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녁 식사 자리에 모인 지인들에게 하비 와인스틴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지 자세히 물었습니다. 한 여성 제작자는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그는 업계에서 알고 있으면 좋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조심하세요. 돌변할 수 있습니다.” 이후 저는 하비 와인스틴과 연락처를 교환했습니다. 그의 프로젝트 중 하나에 참여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던 것이죠. 저는 프로답게 행동하고 싶은 마음에 애써 하비 와인스틴을 “Mr. 와인스틴”이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하비”라고 부르라며 고집을 부렸습니다. 첫 만남에서부터 그는 매우 단도직입적이고 권위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렇지만 매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함께 있을 때, 그는 저를 딱히 편안하게 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주 불안하게 하지도 않았습니다.
베를린에서 만난 후 얼마 안 된 시점에 하비 와인스틴은 한 영화 상영회에 저를 초대했습니다. 경쟁사의 영화였는데, 그것은 그가 과거에 제작했던 영화와 비슷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코네티컷주 웨스트포트에 있는 그의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그 영화를 볼 것이라고 했습니다. 당시 저는 코네티컷주 뉴헤이븐에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집과 가까웠습니다. 그는 제 앞으로 저를 픽업할 수 있는 자동차를 보냈습니다. 저는 그 초대를 수락했습니다.
저는 코네티컷주 웨스트포트에 있는 한 레스토랑에서 하비 와인스틴을 만났습니다. 일전에 그가 그의 집에 가기 전에 함께 점심을 먹자고 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제안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아주 바쁜 레스토랑이었고, 하비 와인스틴은 앉자마자 보드카와 다이어트 탄산음료를 주문했습니다. 저는 주스를 시켰습니다. 그는 제 선택에 실망했고, 종업원에게 주스 대신에 보드카와 다이어트 탄산음료를 갖다주라고 지시했습니다. 저는 거절했고, 주스를 마시고 싶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계속 주스냐 아니냐로 실랑이를 벌이다가, 결국 그가 종업원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을 때 상황이 종료되었습니다: “제가 말한 대로 보드카와 다이어트 탄산음료를 그녀에게 갖다주세요. 계산하는 사람은 바로 저입니다.” 저는 아무 말없이 미소를 지었습니다. 종업원은 자리를 떴고, 곧 저를 위한 보드카와 다이어트 탄산음료를 들고 돌아와서 제 물 옆에 두었습니다. 저는 물을 마셨습니다. 하비 와인스틴은 제가 보드카와 다이어트 탄산음료를 마셔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것들은 마시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왜 안 마시는 거죠?” 하비 와인스틴이 이렇게 물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답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보드카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가 다이어트 탄산음료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둘을 함께 마시는 것 역시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에 하비 와인스틴은 말했습니다: “곧 마시게 될 겁니다.” 저는 또다시 미소를 지었고, 마시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제 반응에 그는 결국 포기했고, 제가 참 고집불통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답했습니다: “알고 있어요.” 이후 별 탈 없이 식사가 나왔습니다. 두 번째 만남에서 저는 하비 와인스틴이 지나치게 밀어붙이는 성격인 데다가, 참 특이하다고 느꼈습니다.
점심 식사 후 하비 와인스틴과 저는 그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입주 가정부와 그의 어린 자녀들을 만났습니다. 다 같이 영화를 보기 전, 그는 간단히 집을 구경시켜 주었습니다. 하비 와인스틴 버전의 비슷한 영화가 얼마 전에 제작되었는데도, 모두 이 경쟁사의 작품을 보고 싶어 했습니다.
저는 영화를 보기 위해 착석했습니다. 한 15분쯤 지난 뒤, 하비 와인스틴은 제게 뭔가 보여줄 것이 있다면서 다가왔습니다. 저는 일단 영화를 끝까지 보고 싶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마치 제가 그의 자녀 중 한 명인 것처럼 강압적으로 말하면서 제가 그와 함께 가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저는 아까 레스토랑에서 주스를 갖고 그와 실랑이를 벌였던 모습을 굳이 그의 자녀 앞에서 반복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의 요구에 동의했고, 그와 함께 방을 나갔습니다. 저는 영화를 꼭 보고 싶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곧 돌아갈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비 와인스틴은 저를 <그의 침실>로 데려갔습니다. 그리고 제게 마사지를 해주고 싶다고 선언했습니다. 저는 처음에 그가 농담을 하는 줄 알았습니다. 농담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진지했습니다.
그와 만난 후 처음으로 저는 안전하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살짝 겁에 질려 어쩔 줄 모르다가, 제가 대신 그에게 마사지를 해주겠다고 했습니다. 당시 제가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임기응변이었습니다. 제가 마사지를 해주는 입장이면, 적어도 제 몸은 제가 통제할 수 있을 것이고, 그의 손이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감시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일 드라마 스쿨의 커리큘럼 중에는 몸을 활용하는 수업 (body work)이 있었고, 이는 서로에게 마사지 기법들을 사용해서 몸, 마음, 그리고 감정 간의 연결을 이해하도록 하는 교육 과정이었습니다. 따라서, 저는 이러한 맥락에서 그에게 마사지를 해주는 것을 나름대로 합리화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이상한 상황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외관상으로나마 모종의 프로페셔널리즘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는 제가 대신 마사지를 해주는 데 동의했고, 침대에 누웠습니다. 저는 이 불쾌한 상황에서 어떻게 안전하게 탈출할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그의 등을 마사지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후 그는 바지를 벗고 싶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그러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가 바지를 벗으면, 제가 극도로 불편함을 느낄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막무가내로 일어나서 바지를 벗었고, 저는 이 상황이 전혀 편하지 않다고 말하며 곧장 문 앞으로 갔습니다. 더 이상 영화를 보지 않는다면, 저는 이만 학교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고 했습니다.
저는 문을 열었고, 옆에 서 있었습니다. 그는 옷을 챙겨 입더니, 다시금 제가 너무 고집불통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어떻게든 그 상황에서 안전하게 빠져나오기 위해 가볍게 웃으며 동의를 표했습니다. 당시 제 신변은 위태로워 보였습니다. 저는 어쨌든 그의 공간에 있었고, 사건의 목격자가 될 수도 있는 다른 가족 구성원들은 모두 방음 장치가 되어 있는 실내 영화관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러한 상황 설정조차 어쩌면 그의 전략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서 하비 와인스틴은 운전기사에게 HBO 드라마 <넘버원 여탐정 에이전시 (The No. 1 Ladies’ Detective Agency)>의 DVD를 사 오라고 했습니다. 그가 제작한 드라마였습니다. 그는 이 프로젝트에 제가 적합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드라마는 한동안 방영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의 집을 떠나려고 할 때, 그는 그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는 한번 생각해 보고 자신에게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는 다시 연락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올 때와 같은 픽업 자동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저는 그 <마사지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서 혼란스러웠습니다. 분명 그 사건은 부적절했고, 또 부당했다고 생각했지만, 아주 명백한 성적인 위법행위는 아니었습니다. 저는 때때로 성적인 부분도 프로답게 연기해야 하는 업계로 들어서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더 혼란스러웠습니다. 저는 매일매일 같은 수업을 듣는 학생들과 동료들에게 마사지를 해주는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고 과정으로 인해, 하비 와인스틴이 초래한 <마사지 사건>은 저를 불편하게 만들기는 했어도, 저는 그 경험을 설명할 수 있었고, 스스로 정당화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저 이상한 순간일 뿐이었다고 치부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 해 졸업을 앞두고 있었던 저로서는 그의 HBO 드라마 프로젝트 참여 제안이 특히나 달콤하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제 미래를 위태롭게 하지 않으면서 나아갈 방법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것만은 확실하게 했습니다. 앞으로는 절대로 하비 와인스틴의 사적인 공간으로의 초대에 응하지 않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저는 제가 속한 교내 영화 제작사에 하비 와인스틴을 초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그가 직접 제가 어떤 것을 원하는지 알 수 있고, 또 제 동료들도 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는 제 초대를 수락했습니다. 그러나 당일 저녁에 뉴욕 일정 때문에 올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는 다시 약속을 잡자고 했습니다. 이후 그의 새로운 브로드웨이 연극 <네버랜드를 찾아서 (Finding Neverland)>의 대본 리딩 현장에 공식 초청을 받았을 때, 저는 놀라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초청에 응해야 할지 말지 계속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학교 일정 때문에 참석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고 답했습니다. 이에 그는 딱 제가 필요한 말을 해주었습니다: “같이 오고 싶은 사람 있으면, 누구든 데려오세요.” 저는 믿을 수 있는 남자 동료 두 명을 데리고 갔습니다.
연극의 대본 리딩이 끝난 뒤, 참석자 전원은 저녁을 먹기 위해 레스토랑에 갔습니다. 그는 저를 옆에 앉혔고, 맞은편에는 다른 여배우가 앉았습니다. 그는 제가 데려온 남성 동료 두 명을 다른 테이블에 앉혔습니다. 온통 제가 모르는 업무 얘기뿐이었고, 하비 와인스틴은 손쉽게 화제를 돌리며 재미있는 얘기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었습니다. 저는 다시금 그가 매력적이고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일전에 <마사지 사건>에서 제가 느꼈던 불편감이 혼란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맞은편에 앉아있던 여배우를 봤습니다. 듣기로는 최근에 하비 와인스틴과 프로젝트를 진행했다고 했습니다. 혹시 그녀도 저처럼, 이 <영향력 있는> 남성으로 인해 불편감을 느낄 만한 일은 없었던 것인지 궁금해하며, 그녀의 표정을 유심히 살펴보았습니다. 물론, 저는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집으로 가기 위해 기차를 타야 했기에 우리는 너무 오래 머물지 않았습니다. 제 남성 동료 두 명 역시 하비 와인스틴에 대해서 좋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하비 와인스틴은 자신이 원하는 게 있으면, 그것을 얻기 위해 상대방을 매료시킬 수 있는 재주가 있었습니다. 그는 분명히 약자를 괴롭히는 악인이면서도, 그와 동시에 아주 매력적인 사람으로도 보일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하비 와인스틴의 특질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적개심을 누그러뜨리고 혼란을 느끼도록 했습니다. 저는 이제 앞으로는 그가 선을 지킬 것이라고 믿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두어 달 뒤, 저는 하비 와인스틴으로부터 메일을 한 통 받았습니다. 영화 <W.E.>의 뉴욕 시사회에 저를 초대한 것이었습니다. 시사회를 마친 후에는 뉴욕 맨해튼의 트라이베카 (TriBeCa) 지역에서 술도 한 잔 마시자고 했습니다. 저는 이후 교통편 예약을 위해 그의 남성 직원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메일도 그렇고, 남성 직원의 전화도 그렇고, 저는 전반적으로 하비 와인스틴이 이전보다 선을 잘 지키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안심해도 될 것 같아서 저는 혼자서 시사회에 갔습니다. 시사회를 마친 후, 예정대로 트라이베카 지역에 식사를 하러 갔습니다. 이때, 한 남성 직원이 교통편을 준비해 주었습니다. 식사 장소는 트라이베카 그릴 (Tribeca Grill)이라는 유명 식당이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한 여성 직원을 만났고, 저번 대본 리딩 때처럼 다 같이 그룹으로 식사를 하는 줄 알았으나, 그녀는 저와 하비 와인스틴만 같이 식사를 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단지 하비 와인스틴이 올 때까지 저와 함께 있어 주었습니다. 그녀는 초조해 보였습니다. 저는 그렇게 공사다망한 남자 밑에서 일하는 그녀가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을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하비 와인스틴이 도착했고, 함께 있던 여성 직원은 즉시 떠났습니다. 우리는 술과 전채 요리를 시켰습니다. 저는 무알코올 음료를 시켰는데, 이에 그는 또다시 화가 난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집요하게 강요하지 않고 대충 넘어가는 듯했습니다. 전채 요리가 도착하기 전에, 그는 선언했습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저는 위층에 개인 공간을 갖고 있어요. 나머지 식사는 거기서 합시다.” 저는 어이가 없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식당에서 마저 먹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는 제게 순진하게 굴지 말라고 했습니다. 제가 여배우가 되고 싶다면, 이런 일을 기꺼이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유명 여배우들과 데이트했다고 했고 (두 명을 언급했습니다), 지금 그들이 어디까지 성공했는지 보라고 했습니다.
저는 정중히 그의 제안을 거절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길 때까지 잠시 침묵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당신은 지금 어떤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인지 모를 겁니다.” 저는 답했습니다: “송구스럽지만, 만약 그 제안을 받아들이게 된다면, 저는 발을 뻗고 잘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거절해야만 합니다.”
그 시점에 그의 모든 태도와 표정은 변했습니다. 이후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럼 우리는 이제 밤에 지나가는 두 척의 배가 되었군요 (we are two ships passing in the night).” 저는 그 속담을 처음 들어봤기 때문에 그에게 무슨 뜻인지 되물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그냥 딱 그런 뜻이에요. 우리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두 척의 배라고요.”
저는 답했습니다: “네, 그런 것 같군요.”
그는 맺음말을 했습니다: “그럼 우리는 여기서 끝이네요. 떠나도 됩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로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는 앞장서서 저를 데리고 식당에서 나왔습니다. 제 심장은 아주 빠르게 뛰었습니다. 그는 저를 위해 택시를 불렀습니다. 저는 지하철을 타겠다고 했습니다. 당시에는 택시 요금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그는 제게 약간의 돈을 주면서, 유치하게 굴지 말고 택시를 타고 가라고 말했습니다. 택시에 타기 전, 저는 제가 배우 생활을 제대로 시작해 보기도 전에 제 이름이 더럽혀지는 것이 아님을, 또 향후 제게 주어질 기회들이 파괴되는 것이 아님을 확실하게 해야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그럼, 우리 사이에 아무 문제없는 걸로 알겠습니다.”
그는 답했습니다: “뭐, 당신의 커리어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괜찮을 거예요.” 이는 당시 협박으로 들리기도 했고, 또 안심을 시켜주는 말로 들리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어느 쪽인지는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그 후, 저는 2013년 9월 전까지는 하비 와인스틴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를 오랜만에 다시 본 건, 2013년 9월 개최된 토론토 국제 영화제에서 제 첫 장편 영화 출연작인 노예 12년 (12 Years a Slave, 2013)을 선보일 때였습니다. 애프터 파티에서 그는 저를 발견했고, 제 옆에 앉으려고 원래 제 옆에 앉아있던 사람을 밀어냈습니다. 그는 제가 이렇게나 빨리 지금의 위치에 도달했다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놀랍다고 했고, 이럴 줄도 모르고 과거에 저를 너무 홀대했다고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과거 행동이 부끄럽다고 했고, 앞으로는 저를 존중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이에 저는 고맙다고 했고, 더 이상 말을 섞지 않았습니다. 저는 혼자서 조용히 스스로와 약속했습니다. 앞으로 절대 하비 와인스틴과 일하지 않을 것을 말이죠.
2014년에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저는 하비 와인스틴 제작사의 오퍼를 받았습니다. 새 영화에 출연해 달라는 제안이었습니다. 저는 하비 와인스틴 제작사이기 때문에 그 제안을 거절할 것이 분명했지만, 이러한 속사정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것은 조심스러웠습니다. 저는 거절 의사를 표명했지만, 하비 와인스틴은 제 거절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후 칸 영화제에서 그는 어떻게든 저와 직접 대면하려고 했습니다. 저는 수락했습니다. 저 혼자만 보는 게 아닌, 제 소속사 관계자도 동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수락할 수 있었습니다. 미팅에서 그는 자신의 작품에 저를 출연시키고 싶다는 의지를 가감 없이 드러냈습니다. 저는 다른 이유를 말하기보다는, 단지 제안받은 역할을 제가 굳이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해당 역할을 얼마든지 더 비중 있게, 중요하게 만들 수 있고, 더 나아가 러브신 (love scene)도 추가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제가 이번에 이 제안을 받아준다면, 향후 다른 제안도 해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다른 제안이라는 것은 바로 저를 메인으로 앞세운 스타 영화 (star-vehicle film)를 제작해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집요함에 저와 제 소속사 관계자는 더 이상 어떻게 정중하게 거절을 해야 할지 몰라서 난처했습니다. 막판에 가서는 제가 너무 화가 나서 그저 입을 꾹 닫은 채 가만히 있었습니다. 하비 와인스틴은 마침내 제 입장을 받아들였고, 그래도 언젠가는 꼭 저와 함께 일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러시죠, 감사합니다.” 저는 이렇게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제가 하비 와인스틴을 개인적으로 본 마지막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이 모든 것을 이제야 고백합니다. 왜냐하면 이제는 그때 당시 몰랐던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하비 와인스틴의 만행을 그저 고독하고 무기력하게 처리해 온 여성들의 수는 점점 늘었고, 저도 그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하비 와인스틴과 관련된 제 경험을 진지하게 들어주는 세계가 존재함을 모르기도 했습니다. 여러분도 알고 있잖아요. 제가 할리우드라는 세계, 즉 하비 와인스틴이 오래전부터 군림해 왔고, 심지어 그의 힘으로 주조한 세계에 들어가는 중이었던 것을 말이죠. 하비 와인스틴은 제가 할리우드 업계에 들어갔을 때 처음으로 만난 사람들 중 하나였고, 그는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원래 다 이런 거야 (This is the way it is).” 그리고 어디를 보든 다들 긴장을 풀고 아무런 문제 없이 그 사람을 대하고 있는 것 같았죠. 저는 이 모든 게 변할 수 있는 것인지 몰랐습니다. 저는 이것을 바꾸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따라서 제 생존 전략은 하비 와인스틴을, 그리고 그와 비슷한 유형의 남자들을 무조건 피하는 것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하비 와인스틴 이후로는 그런 불미스러운 일을 겪은 적이 없습니다. 이는 아마도 제가 참여한 모든 프로젝트에는 여성이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고, 남성의 경우에는 스스로를 페미니스트 (feminist, 여성의 자유와 권리의 확대,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사람)로 규정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으로 생각됩니다. 이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남용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제가 가장 관심을 갖는 것은 우리를 고립시키고, 우리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 계속되도록 허용하는 <수치심>에 맞서 싸우는 것입니다. 피해자는 <수치심>을 느낄 필요가 없습니다. <수치심>은 가해자의 것입니다.
저는 업계에서 저의 경험을 나눌 수 있는 여성들이 있음을 진작에 알았으면 참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제 얘기를 들어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진작에 알았으면 참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정의는 실현될 수 있습니다. 피해자가 이렇게 많다는 것은 곧 그 자체로 무시할 수 없는 힘이 됩니다. 저는 앞서 자신의 경험을 공유해 준 많은 여성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느낍니다. 덕분에 저도 용기 내어 이렇게 제 경험을 정리해서 나눌 수 있었습니다.
어떤 친밀감 (감정적, 신체적)을 표현하는 것은 배우라는 직업, 혹은 영화를 만드는 일의 핵심적인 부분이기 때문에 우리 업계에서 사람들 간의 선을 지킨다는 것은 때때로 난해한 문제입니다. 배우들은 공개적으로 아주 사적인 연기를 하고 돈을 받습니다. 때문에 누군가는 뻔뻔스럽게도 한 배우를, 혹은 배우 지망생을 집이나 호텔로 초대해서 곤란한 행동으로 그들을 당황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우리는 직업적으로만 활용되어야 할 친밀감이 남용되지 않도록 항상 경계하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저는 지금 이 시점이 어떤 중요한 전환점이 되기를 바랍니다. 할리우드 업계에서 이 문제에 대항할 수 있는 여성, 그리고 남성 공동체가 형성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피해 여성이 목소리를 낼 수 있기를, 그리고 그 목소리에 대하여 의심이나 조롱을 받는 등 또 다른 형태의 피해를 입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실 이 점 때문에 우리는 굳이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입니다. 무지몽매한 2차 가해, 그리고 무력한 순간에 낙인이 찍히고 특징이 지어질까 봐 두려워서 침묵하는 것입니다. 그동안은 하비 와인스틴의 손바닥 안에서 무력감을 견뎌야 했다면, 이제는 다 같이 목소리를 높임으로써 그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을 되찾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비 와인스틴이 자행했던 것처럼의 만연한 괴롭힘이 우리 업계에서 용납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제 막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으므로, 앞으로 우리 모두는 이런 문제에 있어서 침묵하지 않도록 합시다. 현재의 노력이 퇴색되지 않도록 합시다. 제가 이렇게 목소리를 낸 이유는, 이런 위법행위가 두 번째 기회를 받을 만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저의 목소리가 그동안의 침묵을 깨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