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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 Jul 14. 2024

애니메이션은 우리 모두를 위한 영화 예술입니다.

By Phil Lord, Chris Miller (Apr, 2022)

[저자 소개] ; 필 로드 (Phil Lord)와 크리스토퍼 밀러 (Christopher Miller)는 할리우드의 감독, 각본가이자 제작자입니다. 두 사람은 다트머스 (Dartmouth) 대학에 다녔으며, 그곳에서 처음 만난 이후 현재까지 영화 작업을 함께 해 오고 있습니다. 애니메이션 작품들로 유명한 감독 듀오입니다.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 (Cloudy with a Chance of Meatballs, 2009; 2013) 시리즈, 레고 무비 (The Lego Movie, 2014; 2017; 2019) 시리즈, 스파이더맨 유니버스 (Spider-Verse) (2018; 2023) 시리즈, 그리고 미첼 가족과 기계 전쟁 (The Mitchells vs. the Machines, 2021) 등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특히,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Spider-Man: Into the Spider-Verse, 2018)로는 9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 애니메이션 작품상을 수상한 바 있습니다. 이들은 다음 원문을 통해, 애니메이션을 단지 어린이 전용 상품으로 취급하는 편견에 대해 지적하며, 애니메이션은 어린이와 어른 모두를 위한 것이고, 애니메이션을 실사 영화와 동등하게 하나의 영화 예술 (시네마, cinema)로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애니메이션에 대한 존중을 요구하는 것인데요. 다음 번역문을 통해서 함께 살펴봅시다.


원문: https://variety.com/2022/film/news/phil-lord-christopher-miller-animation-oscars-1235225442/


지난 일요일, 2022년 3월 27일 개최된 9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디즈니 공주들로 변장한 3명의 배우들이 다음과 같은 멘트로 <장편 애니메이션 작품상> 시상을 시작했습니다: “애니메이션 영화는 아이들이 성장기 때 가장 많이 접하는 영화 종류입니다. 정말 많은 아이들이 이미 본 애니메이션 영화를 또 보고, 또 보고… 하지요. 아마 부모님들께서는 저희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아실 듯합니다.”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 작품상 후보에 오른 5가지의 작품을 그저 부모들이 마지못해 견뎌야만 하는 어린이 전용 상품으로 싸잡아 몰아가는 것은 그야말로 경솔한 발언이므로 고려할 가치 없이 묵살하면 그만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냥 묵살해 버리기에는, 저희처럼 일평생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드는 데 헌신해 온 사람들에게는 그런 경솔한 발언이 일상이었기 때문에 짚고 넘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예전에 한 메이저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대표는 애니메이터들을 한데 모아 놓고, 만약 우리들이 주어진 일을 잘 해낸다면, 언젠가 실사 영화 (live-action)를 맡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수년 뒤, 다른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한 임원은 우리가 만든 어떤 애니메이션 영화가 너무 재미있는 나머지 “진짜 영화 (real movie)”가 떠올랐다고 했습니다.


물론, 세상에는 애니메이션 업계에 대한 폄하, 무시, 과소평가 등을 바로잡는 문제보다 중요한 것이 훨씬 더 많습니다. 당장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만 해도 우리가 특별히 주목해야 하는 중요한 작품들이 많았지요. 그러나 애니메이션에 대한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폄하는 저희 애니메이터들에게 가장 예민하고 중요한 문제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현재 미국 애니메이션 노동조합 (Animation Guild)은 미국 영화·TV 제작자 연합 (Alliance of Motion Picture and Television Producers, AMPTP)에 애니메이션 업계 종사자들에게 공정한 임금을 지불하라는 요구를 진행 중에 있습니다. 특히, 애니메이션 영화 매출이 이렇게 큰 상황에서는 더욱더 공정한 임금 지불을 요구할 명분이 있지요. 애니메이션 영화로 벌어들이는 돈이 그렇게 많은데도 여전히 애니메이션 작가들의 임금이 실사 영화 작가들의 임금의 절반도 안 된다는 것은 충격적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보다 자세한 사항은 #NewDeal4Animation 해시태그 운동 참조).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 거의 모든 프로덕션 현장이 작동을 멈추었을 때, 애니메이터들은 곧바로 재택근무에 돌입했습니다. 그리고 의심할 여지없이, 이들이 만든 애니메이션 영화들 덕분에 우리 영화 산업 전반은 무너지지 않고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애니메이션 영화들은 촬영 기술, 디자인, 의상, 연기 등 모든 영역에서 늘 우수한 역량을 보여주는 편입니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 중에서는 역대급으로 면밀하게, 영화적으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 작품들도 있었는데, 그 작품들은 역대급으로 복잡한 음악과 사운드 디자인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그 애니메이션 작품들은 히트작이기도 합니다. 방송 관계자들은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에 오른 수많은 작품들이 많은 이들에게 보여지지 않았다며 한탄하지만, 그들은 루카 (Luca, 2021),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 (Raya and the Last Dragon, 2021), 미첼 가족과 기계 전쟁 (The Mitchells vs. the Machines, 2021)과 같은 애니메이션 부문 후보들을 간과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3개 작품들은 2021년 미국에서 가장 많이 스트리밍 된 영화 10개 중 3개였습니다 (그리고 그 10개 중 7개는 애니메이션 작품이었습니다). 전 세계 박스 오피스 기준, 역대 최고 수익을 올린 영화 50편 (50 highest-grossing films of all time) 중 13개 작품 (무려 25%)이 애니메이션 작품입니다. 주류 애니메이션 영화를 찾는 극장 관객의 상당수는 어린이를 동반하지 않은 성인입니다.


애니메이션은 어린이만을 위한 영화가 아닙니다. 애니메이션은 우리 모두를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스튜디오는 이를 알고 있습니다. 때문에 애니메이션 영화 제작에 전례 없는 규모의 투자가 이뤄지고 있는 것입니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 애니메이션 작품상을 수상한 <엔칸토: 마법의 세계 (Encanto, 2021)>는 어떻게 세대를 걸쳐 가족의 트라우마가 전해 지는지와 관련해 아주 복잡하고 미묘한 주제를 다루었는데, 이는 자녀가 있든 없든 간에 많은 어른들이 지극히 개인적인 수준에서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후보작 중 <나의 집은 어디인가 (Flee, 2021)>는 아프가니스탄 난민에 관한 가슴 아픈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어린이용 작품이 아닙니다. 과거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작 중, <내 몸이 사라졌다 (I Lost My Body, 2019)>, <바시르와 왈츠를 (Waltz with Bashir, 2008)>, 그리고 <페르세폴리스 (Persepolis, 2007)>도 모두 어린이용 작품이 아니었습니다. 금번 아카데미 단편 애니메이션상 수상자 알베르트 미엘고 (Alberto Mielgo) 감독은 수상 소감 때 <애니메이션은 시네마 (Animation is cinema)>라고 역설했습니다. 이는 되풀이할 만한 가치가 있는 감상입니다.


이러한 관점을 바탕으로, 저희는 다음과 같은 제안을 드리고 싶습니다: <내년 아카데미 시상식 때는 높이 평가되는 영화 감독이 애니메이션 관련 시상자로 초대되어, 애니메이션을 하나의 영화 예술, 즉 시네마 (cinema)로 정의해서 시상 멘트를 전달함과 동시에, 시상도 진행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를 들어, 기예르모 델 토로 (Guillermo del Toro) 감독이 시상자로 나서는 것은 어떨까요? 애니메이션의 진가를 깊이 인정하고 있는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라면, 애니메이션이 영화보다 더 오래된 예술 형식임을 청중에게 상기시켜 줄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애니메이션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영화도 없으니, 그만큼 애니메이션을 존중해 주길 요청할 수 있겠습니다. (역주: 참고로,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바로 그다음 해였던 95회 아카데미 시상식 때 <피노키오 (Pinocchio, 2022)>로 장편 애니메이션 작품상을 수상하였습니다. 해당 부문의 시상자는 아니었지만, 높이 평가되는 영화 감독으로서, 그 역시 <애니메이션은 시네마 (Animation is cinema)>라고 역설했습니다. 시상자가 아닌 수상자로서, 결국 원문을 쓴 감독들의 소망을 이뤄준 셈입니다.)


아니면, 봉준호 감독이 시상자로 나서는 것은 어떨까요? 봉준호 감독은 한국의 영화 비평 매거진 필로 (FILO)에 2021년 최고의 영화 9편을 소개하면서 금번 아카데미 시상식 때 소개된 장편 애니메이션 작품상 후보 중 2편 – 나의 집은 어디인가 (Flee, 2021), 미첼 가족과 기계 전쟁 (The Mitchells vs. the Machines, 2021) – 을 포함한 바 있습니다. 봉준호 감독은 시상 멘트에 왜 이 두 작품을 포함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면서 시상을 진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덩크슛 (White Men Can’t Jump, 1992)>의 개봉 30주년을 기념했다면, 우리는 지난 7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Spirited Away, 2001)>으로 장편 애니메이션 작품상을 수상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수상 20주년을 기념할 수도 있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을 내년 아카데미 시상식의 장편 애니메이션 작품상 시상자로 초대하는 것은 어떨까요? 전혀 늦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로서는 아카데미 시상식 무대를 빛내는 첫 번째 순간이 될 것입니다. (역주: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최근 9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The Boy and the Heron, 2023)>로 장편 애니메이션 작품상을 수상한 바 있습니다. 그의 두 번째 아카데미상 수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시상식에는 모두 불참하였습니다.)


더군다나 우리가 올해 2022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펄프 픽션 (Pulp Fiction, 1994)>의 개봉 28주년을 기념했다면, 내년 2023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애니메이션 영화로는 최초로 아카데미 작품상 (Best Picture) 후보에 올랐던 <미녀와 야수 (Beauty and the Beast, 1991)>의 노미네이션 31주년을 기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실사 영화가 굳이 10년 단위로 기념하지 않고 자유롭게 기념할 수 있다면, 애니메이션 영화도 자유롭게 의미를 부여할 수 있어야겠지요.


당시 1992년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로 애니메이션 영화였던 <미녀와 야수 (Beauty and the Beast, 1991)>가 포함된 것은 세간의 동요를 야기했습니다. 누군가는 애니메이션 영화가 매해 작품상을 수상할 수 있음에 우려했습니다. 이러한 감상은 어느 정도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 작품상 (Best Animated Feature)>이 2002년에 신설되는 데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는 현대 시네마에 대한 애니메이션 영화의 기여를 인정하는 한편, 어느 정도는 애니메이션 영화가 “진짜 (real)” 상을 받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애니메이션 업계에 대한 더 이상의 폄하, 무시, 과소평가는 없어야 합니다. 아주 미묘한 부분도 따져 물어야 합니다. 이제는 우리가 분명하게 애니메이션 영화의 위상을 높이기 시작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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