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Lucy Liu (April, 2021)
[저자 소개] ; 루시 루 (Lucy Liu, 참고로 Liu는 “리우”가 아닌 “루”로 발음)는 1968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중국계 미국인 배우입니다. 영화 미녀 삼총사 (Charlie's Angels, 2000; 2003) 시리즈, 시카고 (Chicago, 2002), 킬 빌 1부 (Kill Bill: Volume 1, 2003), 쿵푸 팬더 (Kung Fu Panda, 2008; 2011; 2016) 시리즈, 넷플릭스 오리지널 상사에 대처하는 로맨틱한 자세 (Set It Up, 2018) 등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드라마 앨리 맥빌 (Ally McBeal, 1998–2002), 엘리멘트리 (Elementary, 2012–2019) 등으로도 유명합니다.
할리우드에서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배우 활동을 해 온 그녀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19년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Hollywood Walk of Fame)에 입성했습니다. 할리우드에서 아시아계 배우가 거의 없었던 시절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미디어에 얼굴을 비춘 그녀는, 그녀가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전 세계 대중에게 <아시아계 배우의 대명사>로 인식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녀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말합니다. 할리우드에서 아시아계 배우에 대한 정형화된 생각이나 이미지가 아직도 공고하다고 말합니다. 다음 <워싱턴 포스트 (The Washington Post)> 기고문을 통해서 그녀의 생각을 살펴봅시다.
원문: https://www.washingtonpost.com/opinions/2021/04/29/lucy-liu-asian-stereotypes-hollywood/
제가 자랄 때에는 텔레비전, 영화, 잡지 표지 등 어떤 곳에서도 저나 제 가족과 닮은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그나마 외형상 가장 가까웠던 인물들을 꼽으라면, 시트콤 바니 밀러 (Barney Miller, 1975–1982)에 나온 일본계 미국인 배우 잭 수 (Jack Soo), 스타 트렉 (Star Trek) 시리즈에 나온 일본계 미국인 배우 조지 타케이 (George Takei), 1970년대 세탁보조 제품 칼곤 (Calgon) TV 광고에 나온 일본계 미국인 배우 앤 미야모토 (Anne Miyamoto) 정도를 언급할 수 있습니다. 특히, 앤 미야모토 (Anne Miyamoto)는 유머 감각이 있었고, 강인하고 진실되어 보였고, 아시아계 특유의 악센트가 전혀 없었습니다. 어쩌다가 텔레비전을 틀면 30초 동안 광고에 등장할 뿐이었지만, 그녀는 제 어린 시절의 우상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제 놀이터는 골목길과 철거 부지였습니다. 그곳에서 저와 제 친구들은 줄넘기도 했고, 핸드볼도 했고, 미녀 삼총사 (Charlie's Angels) 캐릭터를 재연하기도 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나중에 커서 제가 실제로 미녀 삼총사 (Charlie's Angels) 중 한 명을 연기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죠.
제가 할리우드에서 거둔 몇몇의 성공이 어느 정도는 아시아계 배우 전반의 입지를 다지고, 그 역할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었음에 참 다행이라고 느낍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느낍니다. 미국 사회에서 특정 인종에 대한 인식을 개선해 나가는 과정은 결코 선형적인, 순탄한 발전의 형상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거의 200년 간 지속되어 온 아시아계 인물에 대한 고정관념을 한순간에 바꾸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아퐁 모이 (Afong Moy)는 지난 1834년에 미국으로 이민을 온 첫 번째 중국인 여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녀는 사이드 쇼 (sideshow, 서커스 등에서 손님을 끌기 위해 따로 보여주는 소규모의 공연) 출연자로 일했습니다. 그녀는 중국 전통 의상을 입고, 전족 풍습으로 인해 유치원생 발 크기에 불과했던 작은 발을 내보인 채, 박스형 전시장 안에서 중국 전통 노래를 부르도록 강요받았습니다. 유럽에서는 시누아즈리 (chinoiserie, 17-18세기 유럽 왕족과 귀족들이 열광했던 중국풍 문화)와 아시아계 가정을 묘사했던 직물 회화의 인기로 인해 중국 사람들이 그저 장식을 위한 대상인 것마냥 취급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옛날에 서양 문화권에서는 중국 여성이 단순히 순종적이고 고분고분한 여성상 (흔히 “Lotus Blossom,” 즉 연꽃처럼 아름답고 연약한 여성이라고 비유적으로 표현)이거나 혹은, 공격적이고 맹렬한 여성상 (흔히 “Dragon Lady,” 즉 용처럼 신비롭고 위험하고 두려운 여성이라고 비유적으로 표현)인 것으로 묘사되었음을 알고 있습니다. 두 표현 모두 (“Lotus Blossom,” “Dragon Lady”) 아시아계 여성에 대한 미국 사회의 케케묵은 고정관념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오늘날 아시아-태평양계 미국인 (Asian Americans and Pacific Islanders, AAPI; 아시아계 미국인 집단을 표현하는 여러 개념 중 하나; 참고로 태평양계 미국인의 경우 하와이 원주민 등을 의미)이 포괄하는 문화는 아퐁 모이 (Afong Moy)가 보여준 것보다는 훨씬 더 다양하고 입체적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표현되는 데 있어서는 여전히 현실적인 제약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틴 보그 (Teen Vogue) 칼럼 (제목: Hollywood Played a Role in Hypersexualizing Asian Women; 할리우드가 아시아계 여성을 과도하게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데 일조했음을 지적한 칼럼)에서는 제가 영화 킬 빌 (Kill Bill)에서 맡은 <오렌 이시이 (O-Ren Ishii)> 캐릭터가 소위 “드래곤 레이디 (dragon lady)”의 전형적인 사례라고 지적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제 캐릭터가 “교활하고 기만적이며…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자신의 성적 특성을 강력한 도구로서 활용하지만, 그것은 단지 교묘한 속임수일 뿐, 결국 남성성을 위협하는” 아시아계 여성을 나타낸다고 주장했습니다.
영화 킬 빌 (Kill Bill)에서는 제가 맡은 <오렌 이시이 (O-Ren Ishii)> 캐릭터 말고도 3명의 다른 여성 킬러들이 나옵니다. 왜 우마 서먼 (Uma Thurman)이나 비비카 A. 폭스 (Vivica A. Fox), 대릴 해나 (Daryl Hannah)는 “드래곤 레이디 (dragon lady)”라고 콕 집어 얘기하지 않나요? 저는 단지 그들이 아시아인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아예 서양식으로 턱시도를 입고 금발 가발을 착용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랬더라도 저는 계속 “드래곤 레이디 (dragon lady)”로 낙인찍혔을 것입니다. 제 아시아계 민족성 때문입니다. 만약 주류 미국인들이 저를 여전히 “타자 (Other)”로 보기 때문에 제가 특정 역할들을 맡을 수 없고, 더불어 아시아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강화한다는 이유로 제가 “전형적인 아시안 (typically Asian)” 역할들을 피하고자 한다면, 저는 아시아-태평양계 미국인 (AAPI) 여성으로서 도대체 어떤 배역을 맡아야 하는지 막막해집니다.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최초의 중국계 미국인 배우이자, 1960년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Hollywood Walk of Fame)에 첫 번째 아시아계 미국인 여성으로서 입성하게 된 애나 메이 웡 (Anna May Wong)은 백인 배우가 “황인 분장”을 하고 아시아인 역할을 맡는 <옐로페이스 (yellowface)> 관행으로 인해 중요한 배역들을 맡을 수 없었습니다. 또한, <다른 인종 간의 출산 금지법 (anti-miscegenation laws)>으로 인해 다른 인종의 배우들이 영화에서 키스하는 것을 금지한 탓에 백인 배우들과 함께 연기할 수 없었습니다.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Hollywood Walk of Fame)에 입성하고 1년 뒤 운명한 애나 메이 웡 (Anna May Wong)은, 오드리 헵번 (Audrey Hepburn) 주연의 티파니에서 아침을 (Breakfast at Tiffany's, 1961)에서 미키 루니 (Mickey Rooney)가 <옐로페이스 (yellowface)> 관행에 따라 황인 분장을 하고, 뻐드렁니 보철물을 낀 채, 일본인 역할인 미스터 유니오시 (Mr. Yunioshi)를 연기한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녀가 이 연기를 보지 못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할리우드는 현실보다 더 진보적인 세계를 지향하는 작품을 자주 만듭니다. 그리고 이것은 영화 미녀 삼총사 (Charlie's Angels)라는 작품이 제게 무척이나 중요했던 이유들 중 하나입니다. 저는 <알렉스 먼데이 (Alex Munday)>라는 매우 상징적인 캐릭터를 연기함으로써 주류 관객이 아시아인에 대해 갖고 있었던 기존의 편향된 생각들을 정상화하고, 이른바 “미국적인 것들 (Americana)”의 범주를 좀 더 포용적으로 바꾸는 데 기여했다고 자부합니다.
미국에 있는 아시아인들은 분명 놀라운 기여를 해 왔지만, 여전히 우리는 “타자 (Other)”로 간주됩니다. 우리는 여전히 “드래곤 레이디 (dragon lady)” 혹은, 연약하고 가정적인 게이샤 (geisha) 등으로 구분되어 보여집니다. 이러한 고정관념은 그 자체로 매우 제약적이고, 또 치명적입니다.
얼마 전 2021년 3월 16일,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스파 업체 3곳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범인은 21세 백인 남성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8명이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중 6명이 아시아계 여성이었습니다. 범인은 자신이 인종 차별주의자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의 주장과는 달리, 대부분 아시아인들이 일하고 있는 장소들만 타깃으로 삼았고,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성적 유혹의 원천을 제거하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범인에게 그 원천은 아시아계 여성이었던 것입니다. 이 비뚤어진 해명은 아시아계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온갖 비유에서 기인함과 동시에, 그러한 비유를 영구화합니다.
이러한 사건은 아시아-태평양계 미국인 (AAPI) 집단이 선입견과 고정관념을 이겨낼 가능성을 약화시키고, 더구나 우리가 매일매일 은밀하게 마주하는 체제내적 인종차별 (systemic racism)을 극복할 가능성은 더욱더 기대할 수 없도록 만듭니다.
미국에서 자행된 인종차별의 역사를 아주 잔인할 정도로 솔직하게 살펴보지 않는 이상, 우리 사회 전반이 어떻게 성장할 수 있을까요? 이제는 그만 “드래곤 레이디 (dragon lady)”의 허상에서 빠져나올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