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Joseph Gordon-Levitt (July, 2023)
[저자 소개] ; 조셉 고든 레빗 (Joseph Gordon-Levitt)은 1981년 미국 태생의 배우입니다. Gordon은 어머니의 성이고, Levitt은 아버지의 성인데, 두 분의 성을 하이픈으로 연결해서 Gordon-Levitt으로 조셉의 성을 지은 건 부모님의 결정이었다고 합니다. 조셉 고든 레빗은 영화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 (10 Things I Hate About You, 1999), 500일의 썸머 ((500) Days of Summer, 2009), 인셉션 (Inception, 2010), 50/50 (2011), 다크 나이트 라이즈 (The Dark Knight Rises, 2012), 루퍼 (Looper, 2012), 링컨 (Lincoln, 2012), 돈 존 (Don Jon, 2013), 하늘을 걷는 남자 (The Walk, 2015),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 (The Trial of the Chicago 7, 2020) 등으로 유명합니다.
한편, 그의 특별한 경력 중 하나는 2010년쯤 <HitRecord>라는 온라인 협업 미디어 플랫폼을 설립한 것입니다. 이는 온라인상 불특정 다수를 위한 창작 활동 플랫폼이며, 참여자는 영상 편집, 글쓰기, 노래 제작, 시각 예술 등 다양한 형태로 개인의 작업물을 업로드할 수 있고, 다른 참여자들과 함께 작업하고 싶은 경우에는 프로젝트를 생성해 참여를 요청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어떤 참여자가 “이번 주는 열정을 주제로 짧은 글을 써서 올리기”라는 프로젝트를 생성하면, 이에 다른 참여자들이 자유롭게 글을 올리는 방식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평생을 연기해 온 조셉 고든 레빗이지만, 그에게도 배우 활동의 침체기가 있었습니다. 그는 누군가가 자신을 캐스팅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창작의 주체자가 되기로 결심하여 본 플랫폼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본 글에 대하여] ; 작년 2023년 7월 14일부터 11월 9일까지 미국 배우·방송인 조합 (Screen Actors Guild-American Federation of Television and Radio Artists, SAG-AFTRA) 파업이 있었습니다. 당시 시기적으로 미국 작가 조합 (Writers Guild of America, WGA)이 두 달 앞서 파업을 시작해 진행 중에 있었는데, 미국 배우·방송인 조합도 뒤따라 파업을 선언함에 따라, 두 조합이 함께 미국 영화·TV 제작자 연합 (Alliance of Motion Picture and Television Producers, AMPTP)에 맞서 파업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1960년 최초로 진행된 동반 파업 이후, 두 조합은 다시금 힘을 합치게 되었고, 그들은 공통적으로 인간 창작자에 대한 인공지능 (Artificial Intelligence, AI)의 위협이 최소화되기를 원했습니다. 이 핵심 안건을 지지하기 위해 조셉 고든 레빗은 2023년 7월 26일 <워싱턴 포스트 (The Washington Post)>에 한 글을 기고했습니다. 인공지능이 인간 창작자의 작업물을 사용한다면, 공짜로 사용해서는 안 되고, 반드시 사용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글이었습니다. 해당 글을 핵심 위주로 번역하여 다음과 같이 공유합니다.
배우들은 재방료 (residuals)를 사랑합니다. 재방료는 배우들의 수입 중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재방료는 배우들이 촬영을 마친 후 오랜 시간이 지나서 보통 수표로 지급되는데, 이는 대중들이 여전히 새로운 채널이나 국가에서 그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입니다. 어떤 재방료 수표는 몇 센트에 불과하기도 하고, 또 어떤 재방료 수표는 수천 달러나 그 이상이 되기도 합니다.
현재 미국 작가 조합 (Writers Guild of America, WGA)과 미국 배우·방송인 조합 (Screen Actors Guild-American Federation of Television and Radio Artists, SAG-AFTRA)은 파업을 진행 중에 있고, 주요 안건 중 하나는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로 인한 재방료 (streaming residuals)의 책정입니다. 저는 두 조합의 자랑스러운 노조원으로서, 그들의 요구 사항 일체를 강력히 지지합니다. 그러나, 저는 재방료와 관련해서 할리우드를 넘어서는 보다 방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배우들, 작가들, 그리고 영화와 텔레비전 업계 종사자들은 인공지능 (Artificial Intelligence, AI)의 위협을 받는 첫 번째 그룹이 될 것입니다. 인공지능이란, 엄청난 양의 “학습 데이터 (training data)”가 입력되면, 이후 학습된 패턴을 따라 그 데이터를 가공해서 새로운 데이터 조합을 생성하는 기술을 뜻합니다. 빅테크 기업들과 거대 엔터테인먼트 기업들, 그리고 그 외 금전적인 이익에 눈이 먼 온갖 기업들은 머지않아 인공지능이 놀라울 정도로 적은 비용으로 인간 수준의 작업 (human-level work)을 수행할 수 있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주장은 인간의 숨은 노력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애초에 인공지능이 가능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요? 그것은 바로 인공지능에 투입되는 학습 데이터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인간의 노동력입니다. 우리는 이 노동력의 가치를 잊으면 안 됩니다. 생성형 인공지능 (Generative AI, 학습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생성할 수 있는 인공지능의 한 형태)은 최초 시점에 대규모의 데이터 투입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기반으로 학습하여 새로운 데이터 조합을 생성해 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그 학습 데이터를 생산할까요? 바로 우리 인간입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들은 그 노동력에 대한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버튼 하나만 누르면 완전한 장편 영화 한 편을 생성해 낼 수 있는 새로운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있다고 합시다 (일부 업계 관계자는 이것이 곧 실제로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학습 데이터로 쓰기 위한 엄청난 양의 과거 영화들이 필요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수익을 창출해 낼 때마다, 그 프로그램이 학습한 과거 영화들을 만든 사람들은 일정한 보상을 받아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보상을 받을 사람들로 저는 오직 배우들이나 작가들만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닙니다. 저는 오늘날 재방료를 받지 않는 사람들, 예컨대 촬영 감독, 의상 디자이너, 음향 기술자 등도 포함하고자 합니다. 인공지능이 삼키고, 으깨고, 모방할 작업물의 모든 주인은 일정한 보상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원칙은 연예인, 의사, 엔지니어는 물론이고, 업무 시 컴퓨터를 필요로 하는 모든 직업군에 적용됩니다. 아직까지는 인공지능이 우리가 하는 일을 완전히 대체할 수 없지만, 곧 그 대체가 가능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공지능의 학습을 위해 데이터를 생산했던 사람들은 결국, 그들 덕분에 학습된 인공지능에 의해 생업을 위협받게 될 것입니다. 인공지능에 투입되는 학습 데이터를 생산했던 사람들을 위해 일정한 보상, 즉 연예인의 경우에는 새로운 형태의 재방료 정책을 수립하여 장기적으로 경제적 안정을 꾀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주장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이미 재런 러니어 (Jaron Lanier)와 같은 유명 컴퓨터 과학자, E. 글렌 웨일 (E. Glen Weyl)과 같은 유명 경제학자는 빅테크 기업들이 금전적 보상을 제공하지 않으면서 마음대로 사람들의 데이터를 수익화해서는 안 된다고 오래전부터 주장해 왔습니다. 참고로, 재런 러니어는 가상 현실 (Virtual Reality, VR), 혼합 현실(Mixed Reality, MR)이란 용어를 처음으로 고안하고 상용화한 인물로 유명하며, E. 글렌 웨일은 기술이 인간 사회의 다양성과 협동, 상호 이익과 공동 번영을 가져올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는 학자로 유명합니다.
두 학자는 지난 2018년 9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Harvard Business Review) 잡지에 <더 나은 디지털 사회를 위한 청사진 (A Blueprint for a Better Digital Society)>이란 글을 기고하며, “데이터 존엄성 (data dignity)”이란 용어를 제안한 바 있습니다. 그들은 근본적으로 기술 발전을 포함한 모든 현대성 (modernity)이 인간의 존엄성을 강탈하는 현실을 비판합니다. 그들의 주장은 간단합니다. 실리콘 밸리는 인간의 데이터를 동력원으로 삼아 작동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실리콘 밸리에 있는 빅테크 기업들은 데이터 소유주인 인간에게 데이터 사용료를 지불해야 마땅합니다. 이것이 바로 “데이터 존엄성”의 개념이고, 궁극적으로 정직한 미래 사회를 만들기 위한 방법입니다. 또한, 두 학자는 예견했습니다. 앞으로 인공지능이 점점 더 명성을 얻게 됨에 따라, 데이터 존엄성은 더욱더 중요한 개념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죠. 그리고 이것은 오늘날 현실이 되었습니다.
기술적으로 말하자면, 제가 염두에 두고 있는 재방료 프로그램의 구현은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우선, 해당 프로그램에 탑재된 인공지능 시스템은 학습 데이터를 일일이 추적하여, 어떤 데이터가, 어느 정도로 인공지능의 결과물에 영향을 주었는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게다가, 각각의 데이터는 본인이라고 입증된 인간 혹은, 인간 집단의 소유로 여겨질 수 있어야 할 것이며, 궁극적으로 그들이 재방료를 받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지불 채널이 마련되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제 회사, 즉 온라인 협업 미디어 플랫폼 <HitRecord>에서 이와 비슷한 것을 시도한 적이 있습니다. 가끔은 수천 명에 달하기도 하는 온라인 참여자들과 예술 및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대한 콜라보를 진행하면서, 그들의 기여도에 따라 금전적 보상을 제공한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시도했던 것과는 달리, 인공지능 시스템으로부터 재방료를 계산해 내는 것은 천문학적인 규모의 스케일을 필요로 할 것입니다. 엄청난 양의 데이터와 사람들, 그리고 크고 작은 단위의 돈을 끊임없이 추적하고 관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제 아내가 OpenAI Nonprofit 조직의 이사회에 속해 있으므로, 덕분에 저도 인공지능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해도와 친숙도를 갖고 있음을 알립니다.)
이로써, 인공지능 시스템으로부터 재방료를 산출해 내는 기술이 얼마나 구현하기 어려운 것인지 설명했기 때문에, 이제는 진짜로 더 어려운 부분에 대해 논의하고자 합니다.
일반적으로 테크 기업들은 앞서 언급한 재방료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스스로 나서지 않을 것입니다. 기존의 수익을 포기하기 어려울 테니까요. 따라서, 그들을 강제할 수 있는 법을 제정해야 합니다. 최근 미국 저작권청 (U.S. Copyright Office)은 공식 성명 [전문 참조: Copyright Registration Guidance: Works Containing Material Generated by Artificial Intelligence, 88 Fed. Reg. 16190 (Mar. 16, 2023)]을 통해, “인공지능 기술이 기존에 있었던 방대한 인간 저작물에 의존해 학습하고, 그 학습을 통해 추론한 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콘텐츠를 생성한다”고 명시했습니다. 인공지능 기술에 대한 이러한 이해에 근거하여, 미국 저작권청은 “저작권이 인간 창의성의 산물만을 보호 (copyright can protect only material that is the product of human creativity)”하며, “가장 근본적으로는 헌법과 저작권법 모두에서 언급되는 “저작자 (author)”란 인간이 아닌 것을 제외한다 (excludes non-humans)”고 규정했습니다. 요컨대, 완전히 100% 인공지능 기술에 의해서만 생성된 작업물은 미국 저작권 등록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아무래도 이러한 저작권 규정이 있다면, 테크 기업들이 인공지능의 산출물에 대해 어느 정도 인간의 저작권을 인정함으로써 나름대로 재방료 프로그램의 실현을 위한 해답을 찾을 수 있도록 강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분명히 짚고 넘어갈 질문이 있습니다: 학습 데이터의 저작권은 누구에게 있을까요? 그렇다면, 누가 그 혜택을 누릴 수 있을까요?
제가 속한 영화와 텔레비전 산업에서는 그 학습 데이터의 저작권이 작가에게도, 배우에게도, 촬영 감독에게도, 의상 디자이너에게도, 음향 기술자에게도, 그 외 다른 창작자들에게도 없습니다. 저작권은 메이저 스튜디오들 (예: Discovery-Warner, NBC Universal, Paramount, Sony, Netflix, Amazon, Apple, Disney)이 소유하고 있습니다. 이제 뭐가 문제인지 감이 오시죠?
제가 영화를 하게 되면, 저는 스튜디오와 계약을 맺게 되고, 스튜디오가 영화에 대한 저작권을 소유한다는 것에 동의하게 됩니다. 이는 공정한 것 같기도 하고, 또 특별히 위협적인 제안으로도 느껴지지 않는 듯합니다. 어쨌든 스튜디오가 영화 제작비를 마련했으니, 원하는 만큼 영화로 돈을 벌어야겠죠. 그러나, 만약 스튜디오가 영화에 대한 “유일한” 저작권자가 됨으로써, 지적 재산 (intellectual property)을 인공지능에 투입되는 학습 데이터로 활용할 수 있는 권리까지 부여받아, 결과적으로 저를 이와 관련된 모든 수익 배분에서 제외할 것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면, 저는 절대 스튜디오와 계약을 맺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러한 계약 행태와 저작권 규정은 제가 속한 영화와 텔레비전 산업 말고도, 무수히 많은 산업들에 적용됩니다. 의료 산업을 예시로 들어 보겠습니다. 의사는 의료 기록의 형태로 다양한 유형의 지적 재산을 생산합니다. 그리고, 많은 의사들은 병원이 그 의료 기록의 “유일한” 소유권을 갖도록 계약을 맺습니다. 그러나, 만약 병원이 의사들이 작성한 의료 기록을 인공지능에 투입되는 학습 데이터로 쓰면서, 정작 모든 수익은 병원이 챙기게 되는 것을 사전에 의사들이 알고 있었다면, 과연 의사들이 계약서에 서명을 했을까요? 아마 그들도 절대 계약서에 서명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따라서, 인공지능에 학습 데이터를 제공한 것에 대한 금전적 보상이 현재처럼 주요 이해 당사자들을 제외하고 이뤄지는 관례가 저작권 계약 시 지속된다면, 테크 기업들은 학습 데이터의 원작자, 기여자인 인간 집단에게 정당한 금전적 보상을 결코 제공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과연 소송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요? 최근 독립 예술가들은 이미지 생성형 인공지능 기업 미드저니 (Midjourney), 스태빌리티 AI (Stability AI) 등이 그들의 작업물을 그들의 동의나 보상 없이 인공지능에 투입되는 학습 데이터로 활용했다며 집단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역주: 올해 8월 12일, 해당 건에 대해 법원은 증거 개시 절차 (discovery phase)로의 이행을 판결하며, 기업들이 자사의 인공지능 시스템을 개발한 방법에 대한 내부 자료를 제출하도록 했습니다. 이로써, 기업들이 인공지능 시스템을 개발할 때, 독립 예술가들의 작업물을 활용했는지 확인하고, 저작권 침해 여부를 가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현재 시점에서 비슷한 저작권 침해 소송들 중에서는 가장 진일보한 판결입니다.] 이와 비슷한 소송들이 계속 발생하고 있습니다. 저는 소송을 제기한 독립 예술가들이 승소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과연 그들의 편이 되어 줄 수 있는 “새로운 지적 재산권법” 없이 승소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요컨대, 제 요청 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인공지능에 학습 데이터를 투입함으로써 얻게 되는 수익은, 그 학습 데이터를 만드는 데 크고 작은 기여를 한 이들에게 골고루 분배되어야 함을 골자로 한 “새로운 지적 재산권법”이 제정되어야 합니다.
앞으로 인공지능은 우리의 직관을 뛰어넘어 훨씬 더 빠르고 강력하게 상황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우리가 미래에 마주할 변화들이 과연 좋은 것일까요? 아님, 나쁜 것일까요? 저는 아직도 어떤 믿음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향후 우리들 각자의 커리어가 더 생산적임과 동시에 더 유의미해지고, 우리들 각자에게 주어지는 보상 수준도 더 인격적임과 동시에 더 공정해질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물론, 이렇게 밝은 미래는 자동적으로 오지 않을 것입니다. 늘 그랬듯이, 그 일도 결국 창의적인 우리 인간들이 해야 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