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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금나비 10시간전

원정 마라탕

11월 12일, 막내가 폐렴이 나아 2주간 학교를 쉬고, 학교에 간지 이틀째 화요일. 막내는 아프다며 학원을 빠지겠다고 했다.

"엄마엄마!"

"응?"

난 마음이 덜커덩 내려앉았다. 큰일이 생겼을까 봐서였다. 아이들이 학교나 밖에 있을 때 전화가 오면 왜 이렇게 마음이 내려앉는지 무소식이 희소식이다.


"나 오늘 다리 아파서 집에 빨리 가야 할 것 같은데..."

"그래, 너무 힘들면 학원에서 시험 치지 말고 수업만 듣고 와."

나는 아프다는 막내의 말에 정에 휩싸였다. 그런데 수업만 듣고 바로 집에 오면 되는 막내에게서 문자가 왔다.

"엄마, 나 친구랑 놀다 갈게."

"뭐, 놀다가?"

"이**친구임, 마라탕 먹고 놀이터에서 조금 놀다가 길고양이 간식 살꺼임. 이** 나랑 집 가까움. 이** 여자임. 이만!"

"지금 어두 컴컴한데 무슨 놀이터? 마라탕은 어디서?"

나는 계속 카톡 전화를 했지만, 막내에게 씹혔다.

"9시 안으로 와!"

그때가 8시 반이었다.


"어우, 뭐임? 나 돌다 갈껀디, 전화를 왜 이렇게 많이 해!"

밤 9시 반이었고 나는 걱정됐다. 7시 반에 나와 마라탕을 먹고 놀이터에서 놀다가 고양이 츄르를 사고도 남을 시간 아닌가?

"너무 늦은 시간이야! 엄마, 이렇게 늦게 놀다 오라고 허락 안 했어!"

"친구랑 같이 있는데, 뭐가 위험함! 내가 집에 갈 땐 안 위험해! 가까운 롯데몰이 위험함?"

"놀이터에 조금 놀다가 온다고 했는데, 롯데몰? 다리 아픈 거 순 거짓말이네! 아프다 해서 일찍 오라고 했고만."

"나, 보건실에서 타이레놀 먹어서 괜찮아짐. 파스도 다리에 붙였고. 오늘만 놀게. 우리 동네야. 지금 롯데몰에서 츄르사고 돌아가는 길임. 놀이터에 가서 그네탈 예정."

"헐, 할 건 다 하네. 어딘데?"

"찾아오지 마! 어딘지 이름 모름, 도착하면 인증 사진 보냄. 이만!"

"알아야 안심되지, 사진 찍어 꼭!"

"ㅇㅋㄱㄷ"

"진짜 담엔 이렇게 늦으면 안 돼!"

"땡큐!"


막내는 인증사진과 함께 다리 아프다는 건 핑계였고, 실컷 놀다 10시 반이 넘어서 들어왔다. 폐렴으로 아파서 2주 동안 집에 감옥처럼 있었으니 실컷 놀고 싶었나 보다. 그래도 딸 가진 엄마 마음은 학원 말고는 친구와 놀아도 9시 안에 집에 들어오길 원할 것 같다. 아무튼 타이레놀과 파스의 힘으로 잘 놀고 잘 먹고 안전하게 와서 나도 기분이 좋았다. 담엔 늦게 들어오지 않을 거라는 믿음과 함께...  


 


 

마라탕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집을 탈출해, 아니 집에 들어오지 않고 바로 마라탕을 먹기 위해 친구를 꼬드겨 마라탕을 먹으러 간 사실. 토요일만 라면을 먹게 하는 규칙을 정했다가 내가 밀키트 마라탕을 한 번 해준 후로 마라탕에 꽂혀서 한 달에 한 번 마라탕을 먹게 되었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불닭볶음면까지 끼어들어 막내는 너무나 많은 맵짠 면들에 빠졌다. 그러다 마라탕을 먹으려 원정을 떠난 거고. 그것도 폐렴이 낫고 학교 가기 이틀 만에. 아플 때도 마라탕을 먹더니, 이젠 나았다고 먹는단다. 엄마가 주문 안 해줄게 뻔하니까. 마라탕님을 찾으러 갔다.

엄마보다 마라탕인가? 낳아주고 길러줘도 소용없다! ㅋㅋㅋ

나는 적군인 마라탕과 불닭볶음면과 라면들과 싸우고 있다. 결코 너희들이 이기기만 하지 않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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