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벽장

꿈에 방 안의 벽을 살펴보고 있었는데, 네모난 블록으로 넓게 덧대있었다.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크기의 블록이었다. 나는 왠지 그 벽에 손을 대고 싶었다. 그 속에 뭔가가 있을 것만 같아서.

나는 블록 하나를 잡고 흔들어보니, 그것은 합판과 종이들로 매워진 벽이었고, 깊숙이 걷어내 보니 남편의 물건들이 있었다. 사진도 있고, 동전도 있고, 서류들과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 잡동사니 물건들이 나왔다.


어제 화장실 벽장을 정리하면서 남편 물건이라 손대지 않던 것을 물어보지 않고 과감히 정리하면서 버렸다.

나보고 "늘 정리해라, 바닥은 수시로 청소해야 한다."라고 잔소리하던 남편이었다. 그런데 자기 물건을 물어보지 않고 버리는 건 싫어했다.

꿈에 남편의 이름과 가족에 대해 알고, '이 사람이다.'라고 생각하고 결혼해서 십 년 넘게 살고 있을 때쯤, 남편이 2년 동안 안 입고 안 쓰던 자기 물건이 있으면 버리라고 한 적이 있었다. 나는 한 차례 남편의 물건을 버리긴 했지만 남은 건 한동안 손대지 않고 있었다.

화장실 벽장에 남편의 물건은 가로로 긴 네모 종이 박스에 쟁여둔 물건들이었다. 결혼하기 전부터 호텔에서 머물 때마다 가져왔던 세면도구(치약, 면도기) 세트며, 안 쓰는 칫솔도 많고 동전꾸러미, 아이들 어릴 때 몇 백 원씩 용돈으로 주었던 것도 그 안에 보물처럼 남아있었다.

"나보고 정리하라고 하면서 남편도 정말 많은 잡동사니를 묵혀두고 있었네!"

왜 본인의 생각과 추억이 담긴 잡동사니를 부인에게 버리라고 하는지 이해가 안 됐지만 내가 정리해 주면 남편도 생각과 여러 마음의 묵혀둔 어려움들이 정리될 수 있나 싶어서 그냥 내가 치워주기로 마음먹은 지 오래다.

자기 손으로는 차마 버릴 수 없는 기억들이 있는지....


막내는 한 번씩 아빠가 용돈이라며 손바닥에 동전을 쥐어주면 그렇게 좋아하고 기대했었다. 남편은 운동선수는 아니지만 선수들의 가정처럼 집에 자주 오지 못하는 일을 한다. 그래서 혼자 아이들을 키우다시피 했다. 나는 혼자 키우는 어머니들의 속을 알았으면 됐다고 생각하며 마음을 내려 논지 오래다.


어제 꿈은 물어보지 않고 버리는 걸 싫어했던 남편의 물건을 버린 후 꾼 꿈이라 특별하다.

나는 벽 안에 꽁꽁 숨겨놓았던 남편의 물건들을 다시 넣고 봉인했다. 남편이 모를 거라고 생각하고....

다음 장면은 내게 움직이지 않는 스티커 같은 곤충이 6개 있었다. 한 개는 특이한 곤충인데, 노린재는 아니지만 그런 몸통을 가졌고 등이 금색이었다. 몇 분만 지나면 이 스티커 같은 곤충들이 진짜 벌레가 된다고 믿고 있었다. 나머지 곤충은 파리였다. 5개 중 한 마리가 진짜 곤충이 돼서 날아가려고 했는데, 내가 눌러 잡았고, 나머지 파리 스티커를 돌돌 말아서 지켜보고 있었다. 금색의 스티커 곤충은 몸이 입체적으로 돼서 곧 움직일 것 같았다. 그 곤충은 집안 곳곳에 금칠의 선을 그어놓을 것 같다는 상상을 했다.


다음 장면, 꿈에선 시공간을 초월한다. 나는 두 군데의 장소를 보았는데, 동산 같은 숲을 헤치고 오른 동그란 좁은 꼭대기 장소를 선택했다. 남편보다 빨리 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먼저 도착했다. 그런데 남편도 내쪽으로 와서 뒤에서 백허그를 했다. 이게 무슨 꿈이지?

개꿈은 아닐 거라고 본다. 주말이라 늦은 9시에 일어나 다시 비몽사몽으로 자다가 한 시간쯤 꾼 꿈인 것 같다.

꿈이 현실이 되는 순간은 정말 놀라울 때가 있다. 오늘 선명하게 꾼 꿈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며칠 되새겨볼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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