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식이란

누군가를 위해 조식 금식을 하고 있다. 8일간의 조식 금식, 오늘이 이틀째다.

얼마 전에는 3일 금식을 했었다. 그때와 다른 점은 하루 한 끼쯤은 먹지 않아도 생활에 큰 지장이 없기에 수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공통점도 있다. 바로 유혹이다.

매일 먹던 음식의 패턴이 몸에 배어 있어, 집 안을 지나갈 때마다 익숙한 음식들이 유난히 또렷하게 눈에 들어온다. ‘먹으면 안 된다’는 생각보다 먼저 마음이 반응하고, 어느새 침이 고여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스스로 놀라게 된다.

어찌 보면 먹고 싶은 것을 참는 일은 몸에 대한 작은 희생일지도 모른다. 커피 향의 쌉싸름함과 달콤함이 혀끝에서 되살아난다. 눈앞에 있고, 손만 뻗으면 먹을 수 있는데 스스로 제동을 거는 것이다.

“왜 먹지 말아야 해? 먹어. 먹어도 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마치 악마처럼, 빌런처럼 속삭이는 소리가 들린다. 이것은 내 마음의 한쪽 목소리다. 그 속삭임을 그대로 따라갔다면 나는 이미 커피를, 신선하고 고소한 샐러드를, 어제 치킨집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아들이 튀겨온 치즈볼을 단숨에 먹어버렸을 것이다.

“먹으면 안 돼. 네가 다짐했잖아. 그리고 이건 누군가를 위한, 눈에 보이지 않는 약속이자 선물이야. 기도와 같은 거지.”

나는 앞에서 요동치는 마음을 밀어내고, 조용히 기다리던 또 다른 목소리를 따른다.


조식 금식 이틀째. 지난번 3일 금식 때도 그랬다. 아들은 밤 12시에 내가 좋아하는 순살 간장치킨과 양념치킨을 튀겨 왔었다. 가끔 사장님이 유통기한이 임박한 닭은 튀겨서 가져가라고 하신다고 했다.

이번 금식은 밤 12시부터 다음 날 정오 12시까지 음식을 먹지 않는 방식이다. 그런데 밤 9시쯤 아들에게 문자가 왔다.

“엄마, 치즈볼 튀겨 갈 건데 몇 개 튀겨 갈까?”

“세 개.”

그렇게 답을 보내고 나니 마음이 또 한 번 흔들렸다. 아들은 밤 12시 반쯤 돌아왔다.

“엄마, 치즈볼 드세요. 누나, 막내야! 치즈볼 먹으러 나와!”

치즈볼 봉지를 식탁 위에 올려놓으며 환하게 말했다.

금식을 할 때마다 신기할 만큼 맛있는 것들이 유혹처럼 다가온다. 하지만 막상 지나고 보면 그 유혹은 생각보다 하찮은 것이었다.

“내일 12시 지나서 먹을게. 따끈해서 맛있겠다!”

“왜요?”

“금식 중이거든.”

금식뿐만이 아니다. 내 마음 안에는 하루에도 여러 번 두 가지 마음이 부딪힌다. 그러나 내가 세운 선한 기준이 분명할 때, 다른 마음은 장난꾸러기처럼 힘을 잃고 사라진다.

오늘도 기쁜 마음으로 금식을 한다. 나를 위한 일이 아니라, 누군가를 위한 것이기에 더 소중하다. 이 작은 정성과 절제가 그분께 닿기를, 조용히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