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시아 삶의 시작

estoy en España

by 눈썹이


오늘은 3월 4일이다. 일요일부터 이번 주 내내 비만 잔뜩 올 예정이다.


IMG_9492.jpg?type=w580 봄.. 비?



어제까지 발렌시아 아주 근처에 꾸예라 라는 동네에 거주하고 있는 절친 Q와 그녀의 남자친구T 네에서 행복한 3박을 하고 나름대로 억지를 부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다시 발렌시아 아파트로 돌아왔다.


output_2584905797.jpg?type=w580 Cullera, España



작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딱 일 년 만에 만난 오랜만에 만남에 몽글몽글 기분이 들뜬 것이었는지, 끊임없이 재잘대는 10대 소녀처럼 신이 났었다 (뭐 계속해서 thirties new twenties라고 외쳐댔지만). 금요일 저녁에 도착해 장을 보며 와인을 3병이나 산 게 과한 욕심이었을까. 일요일 아침 사건 덕분에 비바람이 심한 날씨만큼 벅찬 시간을 흘려야 했지만, 지금 조금 낮은 책상 앞에 앉아(Q가 빌려준 퍼즐 상자를 랩탑 위에 올려놓아야 했다) 내가 얼마나 감사한지, 오늘 아침에 엄마와 통화하며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다시 한번 상기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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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enos Aires, Argentina


배고프면 어쩌냐고 하고 걱정했는데, 의외로 괜찮음에 마음이 놓인다. 좀 배고파야 해, 하며 자신을 다그치고, 아주 살짝 갖고 싶어도 사지 말라고 다그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계부를 쓰기 시작해야지! 했는데 가계부가 정말 간절해졌다.


output_520654725.jpg?type=w580 Moleskin recipe note, gifted from Q&T



저녁을 만들기 전, 마침 장을 보고 막 엘리베이터에 탔을 때 임못쌩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사랑스러운 김예쁨이 걱정이 넘쳐서 전화를 요구했다나, "언니, 저 괜찮아요," 를 거듭 말하고 나름 웃기다고 생각한 mushrooming 이야기를 꺼내 걱정을 달래줬다. 지난주 미리 독일로 갈 비행기를 끊어놔 다행이라며 곧 볼 거라 신이 난다고 했다. 벌써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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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의 아버지가 national sports인 mushrooming을 해서 채집한 말린 버섯들을 잔뜩 받아왔다. 장을 보며 축축하고 쌀쌀한 날씨와 어울리며 말린 버섯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수프를 만들어야겠다 싶었다. 2019년 과테말라, 페루에 지내던 이후로 장을 제대로 본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장 보는 "hack"을 까먹었었나 보다. 하우징 사무실에 잠시 들른 뒤 어딜 가야 하나 너무 막연해하다 발 닿는 데로 걷다 보니 Mercat Central de Valencia였다. 장을 볼까 하고 들어갔다 필요한 것들이 머릿속에 바로 떠올랐다. 오랜만에 장을 봤을지 몰라도, 퍼뜩 떠오르는 생각들이 대견스러워 그 이후로 시간이 헛되이 흐르지 않은 것 같았다. 힘든 일도 초연하게 대하는 것도 그렇고. 다만 여전히 부족했던 내 마음가짐들을 반성하며 더 따지고 더 조심하는 자세를 열심히 의식화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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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을 다져 소금을 뿌려두고 올리브오을 둘렀다. 그리고 약간의 chorizo(스페인 돼지고기 소시지) 으깨 살살살 볶았다. 물을 붓고 말린 버섯과 함께 약간 약한 불로 끓였다. 그 사이 당근, 감자, 양파는 채를 썰었다. peeler가 없어서 지그재그 날의 칼로 살살 긁었는데, 역시 잘돼서 peeler를 살지 말지 아주 조금의 고민만 들었다. 채 썬 채소를 넣기 전, 소금을 한번 더 넣고 보글보글 끓은 후 채소를 넣었다. 다시 한번 끓으면 생강과 할라페뇨를 넣었다. 그리고 브로콜리를 마저 넣고 끓인 뒤 염소 요구르트(스페인은 양과 염소 유제품을 더 많이 먹는다)를 한 스푼 넣어 살짝 걸쭉히 만들었다. 불을 끄고 약간의 레몬즙을 뿌려 마무리했다. 아침에 미리 구워둔 사워도우와 함께 먹었다. 따뜻하고 든든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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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일기를 시작하고 앞으로의 단기 계획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거참, 오기 전 HFK의 "써보는 경험"의 수업이 이렇게나 글을 순탄히 쓰게 도움을 줬다니 한 번의 세션만 들었다는 게 너무 아쉽다.


일기를 쓰니 정말 다시 20대가 된 것 같다. 다들 잘 지내고 있으면 좋겠다.



여전히 나는 사랑이 많은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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