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세상은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가벼운 시대를 살고 있다 믿는다. 손가락 하나로 지구 반대편의 소식을 전해 듣고, 보이지 않는 클라우드(Cloud)에 기억을 저장하며, 가상 화폐로 부를 축적하는 시대. 우리는 물질의 제약에서 벗어나 순수한 정신과 데이터의 세계로 진입했다고 착각하곤 한다. 하지만 이 책, 에드 콘웨이의 『물질의 세계』를 펼치는 순간, 그 투명하고 매끄러운 환상은 산산이 조각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리던 내 손끝이 사실은 거칠고 투박한 돌멩이와 연결되어 있음을, 내가 누리는 이 안락함이 땅속 깊은 곳에서 누군가가 파낸 흙더미 위에 위태롭게 서 있음을 느낀다. 에드 콘웨이는 영국의 저널리스트이자 경제 전문가지만, 이 책에서 그는 숫자가 아닌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우리를 지하 갱도로 안내한다.
그가 안내하는 여섯 가지 물질—모래, 소금, 철, 구리, 석유, 리튬—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내가 그은 밑줄들은 단순한 정보의 기록이 아니라, 우리 문명이 잊고 지낸 거대한 빚문서처럼 다가온다.
우리는 여전히 돌을 깨고 있다
아직도 땅을 폭파하여 얼마나 많은 모래와 암석을 얻고 있는지를 고려한다면, 우리는 여전히 석기시대에 꽉 붙들려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철과 구리에 대한 수요는 최근 들어 더 증가했다. 상황이 이럴진대 현대는 철기시대이고, 더 나아가 구리시대, 소금시대, 석유시대, 리튬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AI 시대', '디지털 시대'라는 화려한 명패를 내걸었지만, 실상 우리는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땅을 파헤치고 더 많은 돌을 깨부수고 있다. 단지 그 행위가 우리의 시야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칠레의 사막이나 콩고의 광산에서 이루어지기에 모르고 있을 뿐.
이 문장을 읽으며 내 삶의 태도를 되돌아본다. 너무 쉽게 결과만을 향유하려 하지 않았던가. 과정의 지루함, 노동의 고단함, 물질의 저항 같은 것들은 촌스러운 것으로 치부하고, 오직 세련된 결과물만을 탐닉하지 않았나. 하지만 문명이라는 거대한 탑은 클라우드 서버가 아니라, 땅속 깊이 박힌 철근과 콘크리트 위에 서 있다. 이 첫 번째 문장은 붕 떠 있던 내 두 발을 땅으로 끌어내려 단단한 대지에 밀착시켰다.
매끄러운 화면 뒤의 거친 손길
책을 읽어 내려가며 마주한 불편한 진실은 우리의 우아한 일상이 누군가의, 혹은 지구 어딘가의 처절한 파괴를 담보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나의 시선을 오랫동안 붙잡아 둔 문장은 결혼반지에 대한 저자의 자조적인 독백이었다.
어째서 나는 이 금이 어디에서 왔는지 확인하지 않았던 걸까? 아내의 약혼반지 다이아몬드가 분쟁지역 다이아몬드가 아니라는 사실은 그렇게 열심히 확인했으면서 말이다. 그런데도 이 반지를 만들기 위해 인간과 토지가 어떤 희생을 치렀는지는 왜 확인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완성된 보석의 영롱함에는 감탄하지만, 그것을 얻기 위해 파헤쳐진 20톤의 흙과 암석, 그리고 갱도 속 광부의 땀방울은 상상하지 않는다. 이것은 단순히 자원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의 삶 전반에 걸친 '단절'에 대한 이야기다.
식탁 위의 고기가 어떤 생명이었는지, 내가 입은 옷을 누가 바느질했는지, 내가 쓰는 스마트폰의 배터리 원료를 캐기 위해 어떤 아이가 갱도로 들어갔는지. 우리는 '소비자'라는 편리한 이름 뒤에 숨어 생산 과정의 고통과 버려지는 부산물을 외면한다. 저자가 느꼈던 '도살장을 둘러보기 전의 기분'은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품고 있는 근원적인 부채감일 것이다.
이 문장은 나에게 묻는다. 우리의 안락함은 무결한가. 우리가 누리는 것들의 출처를, 그 무게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보이지 않는 것들이 세상을 지탱한다
우리는 스티브 잡스나 일론 머스크 같은 비전가들을 숭배한다. 하지만 에드 콘웨이는 이 화려한 무대 뒤에서 묵묵히 기계를 돌리는 진짜 주인공들을 조명한다.
물질세계에서 당신은 낯선 이름이지만 매우 중요한 회사들, 예를 들면 CATL, 바커 Wacker, 코델코 Codelco, 사강 Shagang, TSMC, ASML을 만날 것이다. 이 이름들은 당신에게 별 의미가 없겠지만, 누구나 다 아는 월마트 Walmart, 애플 Apple, 테슬라 Tesla, 구글 Google 같은 비물질 세계의 회사들보다 어쩌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현대 경제에 가장 잘 숨어있는 비밀이 바로 이것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브랜드들은 그들의 똑똑한 아이디어를 제품으로 만들기 위해 물질세계의 이름 없는 회사들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물질세계가 있음으로써 비로소 아이디어가 현실에서 구체화될 수 있는 것이다.
애플의 매끄러운 디자인도, 테슬라의 혁신적인 자율주행도, 결국은 리튬을 정제하고 구리를 제련하고 실리콘을 웨이퍼로 구워내는 이 '이름 없는 회사들' 없이는 허상에 불과하다.
미국에서 생산하는 5달러 중 4 달러가 서비스 부문에서 나오고, 나머지 1달러는 에너지업· 광산업·제조업에서 나온다. 그렇지만 소셜네트워크부터 소매업, 금융업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것이 물질적 하부구조에 의존하고 있지 않은가. 그것들을 가능하게 하고 거기에 에너지를 제공하는 건 물질계이다. X(트위터의 새로운 이름)나 인스타그램이 갑자기 사라진다고 해서 세상이 종말을 맞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강철이나 천연가스가 갑자기 사라진다면 상당히 심각한 이야기가 된다.
이 대목에서 나는 삶의 우선순위에 대한 통찰을 얻는다. 겉보기에 화려하고 주목받는 것들(서비스, 브랜드, 아이디어)이 있겠으나, 정작 위기 상황에서 나를 지탱해 주는 것은 투박하고 눈에 띄지 않는 것들(건강, 가족, 성실함, 저축)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종종 눈에 보이는 성과에 매몰되어 그 성과를 가능하게 하는 단단한 기반을 소홀히 한다. 강철과 천연가스처럼, 내 삶을 지탱하는 '물질적 하부구조'는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 그것은 아마도 매일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과 꾸준함이겠지.
혐오와 감사의 딜레마
석유 챕터에서 저자가 보여주는 균형 잡힌 시각은, 세상을 선과 악으로만 나누려는 우리의 이분법적 사고에 경종을 울린다.
석탄의 시대에 뒤이어 등장한 석유의 시대는 인류를 힘들고 단조로운 육체노동에서 해방시켰고, 전 세계의 소득을 높이고 우리가 더 오래 살 수 있게 해 주었다. 석유 제품과 석유 에너지는 영아 사망률을 낮추었고 영양실조와의 싸움에 힘을 보탰다. 다시 말해서, 연료와 화학물질의 원천인 석유가 없는 세상을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땅속에서 원유를 퍼올리는 과정에서 우리는 인류가 존재하기 전부터 계속되어 온 지질학적 사이클을 파괴하고 있다. 석유와 가스를 태우는 동안, 지하에 격리되어 있던 이산화탄소가 다시 대기 중으로 나오면서 지구온난화라는 새로운 시대를 촉발했다.
석유는 인류를 기아와 노동에서 해방시킨 구원자인 동시에, 지구 온난화라는 재앙을 불러온 파괴자다. 우리는 석유를 미워하면서도 석유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다. 이 모순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것은 우리 삶의 모습과도 닮았다. 나를 성장시킨 시련이 동시에 나에게 트라우마를 남기기도 하고, 나를 편안하게 하는 습관이 나를 병들게도 한다. 모든 물질에는, 그리고 모든 삶의 요소에는 명과 암이 공존한다. 저자는 석유를 무조건 악마화하거나 옹호하는 대신, 그 복잡한 딜레마를 직시하자고 말한다. 구리 챕터에서 언급된 '생태 문제와 환경 문제를 고려한다면 모든 해결책은 구리에서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라는 역설적인 문장처럼, 우리는 문제를 일으킨 바로 그 물질(자원)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운명일지 모른다. 도망칠 곳은 없다.
다시, 상상력의 빈곤을 넘어 물질의 제약으로
인류는 앞으로 평탄치 않은 몇 년을 보내게 될 것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는 인간의 주된 제약이 상상력의 빈곤뿐이라고 굳게 믿었다. 우리는 무척 세련되고 매끄러운 경제 체계를 만들었고, 그다음에는 그걸 구축했던 물질에 대해서 완전히 망각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탄소 중립을 이루고자 하면서 우리는 열역학과 물질의 제약이라는 피할 수 없는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
'꿈꾸면 이루어진다'는 식의 낭만적인 구호가 지배하던 시대는 저물고 있다. 우리는 이제 물리학의 법칙과 자원의 유한성이라는 차가운 현실 벽 앞에 서 있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비관적인 결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것은 성숙을 위한 초대장이다.
무한한 가능성이라는 허상에서 깨어나 내 손에 쥐어진 자원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 그리고 그 제약 안에서 최선의 해답을 찾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 그것이 현시대를 살며 후손에게 남겨야 할 우리의 태도가 아닐까. 상상력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는다. 결국은 물질을 만지고, 다듬고, 때로는 흙투성이가 되어야만 세상은 아주 조금 바뀐다.
흙을 만지는 마음으로
책을 덮으며 나는 내 주변의 사물들을 다시 본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노트북의 알루미늄 바디, 방을 밝히는 전구 속의 구리 선, 밖으로 낸 유리창. 이 모든 것은 저 먼 우주에서 온 마법이 아니라, 지구의 살점을 떼어내 수많은 사람의 노동으로 빚어낸 결정체들이다.
에드 콘웨이의 『물질의 세계』는 우리에게 감사함과 두려움을 동시에 알린다. 이 풍요로운 물질문명을 누리는 것에 대한 감사함, 그리고 이 문명이 얼마나 위태로운 균형 위에 서 있는지에 대한 두려움이다.
나와 당신의 문장은, 이제 공허한 관념의 유희를 멈추고 땅으로 내려와야 한다. 뜬구름 잡는 소리 대신, 모래알처럼 까슬까슬하고 소금처럼 짭조름하며, 쇳덩이처럼 묵직한 삶의 질감을 회복해야 한다. 우리가 걷는 이 길이 아스팔트가 아니라, 수억 년 된 암석과 누군가의 땀으로 다져진 길임을 기억할 때, 우리의 걸음은 조금 더 조심스럽고, 조금 더 겸허해질 것이다.
진짜 세상은 클라우드 너머가 아니라, 당신의 발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