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방스 드라이브 「day4」

렌터카를 빌릴 결심

by 이솔

오늘은 사흘간 머물렀던 꺄니으 슈흐 메흐를 떠나는 날이다. 몇 번을 소리 내어 뱉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어려운 이름이다.

오늘도 일찌감치 하루를 시작했다. 체크아웃할 때쯤 호스트 잭과 인사를 나눌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체크인하던 날 잭과 저녁 식사를 함께했던 동생이 지나가는 말로 “당신이 우리 가족도 만나봤으면 좋았을 텐데요”라고 했는데, 그 말을 잊지 않고 찾아준 것이다. 프랑스 사람들에게 빈말이란 없다.


준비가 길어지는 엄마와 동생을 뒤로한 채, 마지막 동네 산책을 하러 나섰다. 아름다운 마을을 걸으며 언젠가 이 지역에서 살면서 더 낱낱이 알아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특별한 걸 하진 않았다. 좋았던 장소들을 다시 찾았다.

먼저 늘 턱시도 카오스 고양이 두 마리가 사이좋게 낮잠 자던 골목. 프랑스 고양이 공략법은 한국 고양이와 똑같았다. 검지로 손인사를 한 다음 바닥에 철퍼덕 앉아 엉덩이를 때려주면 된다. 프랑스 고양이는 아마 못 알아들었겠지만, 행복하고 건강하라는 인사를 건넨 채 다음 스폿으로 향했다. 저 멀리 보이는 바다를 보면서 걸을 수 있는 내리막길이었다. 돌계단을 따라 마을 초입까지 내려갔다. 그리고 작게 흐르는 물줄기를 따라 걸었다. 왜 이렇게 사람이 많은가 했는데 그 끝에 고등학교가 있었다. 등교가 한참이었던 것이다. 잠시 내가 이 동네에 유일한 동양인 전학생이었다면 얼마나 떨렸을까 짧게 망상했다. 프랑스 곳곳엔 아직도 종이 포스터가 롤링되어 돌아가는 아날로그 광고판이 많았다. LED 광고판에 비해 해상도가 떨어지지만, 꼭 필요하지 않으면 디지털로 대체하지 않는다는 게 딱 프렌치 스타일 같았다.

짧은 산책을 마치고, 엄마와 어제 들렀던 동네 빵집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오늘은 렌터카를 빌려 베르동 협곡과 무스티에로 떠날 예정인데, 가는 길에 차에서 간단하게 먹을 요기용 샌드위치를 미리 사놓으려는 요량이었다.

빵집이 숙소에서 멀진 않았지만 구글맵에 서툰 엄마가 과연 좌표를 보고 잘 찾아올 수 있을까 내심 걱정했다. 가끔씩 이렇게 엄마에게 퀘스트를 주곤 하는데, 언젠가 엄마 혼자 해외여행을 떠나게 될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엄마는 짠하고 나타났다. 알고 보니 스마트폰 지도 대신에 어제 걸었던 기억을 더듬어 온 것이었다. 역시 내비게이션과 문자 메시지도 없던 세상에서 살아남았던 X세대답다.


엄마와 쟁반에 빵을 쓸어 담았다. 우리에겐 괜찮은 레스토랑을 골라서 생전 처음 보는 메뉴를 먹는 것보다, 현지인들이 많이 찾는 빵집의 베이커리를 양껏 먹는 편이 훨씬 쉬웠다. 바질, 치킨 샌드위치를 하나씩 사고 아몬드 크루아상과 피스타치오 크루아상, 그리고 스위스 초코라는 귀여운 이름을 가진 초코빵을 하나 샀다.

치킨 샌드위치 5.8유로 피스타치오 크루아상 1.8유로 아몬드 크루아상 2.7유로 초코 스위스 2.6유로. 파리 바게트보다 빵 값이 싸다.


그리고 오늘 산책길에 발견한 바게트집에서 단돈 1.1유로짜리 바게트를 구매했다. 현지인들이 어깨에 바게트를 다섯 개씩이고 가길래 기억했다가 들른 것이었다. 바게트는 맛없기 힘드니 저렴하면 떙큐다.


엄마와 나는 마치 파리지엥처럼 각자 빵이 든 누런 종이봉투를 품에 안고 근처 마트(Inter Marche)에 들렀다. 살림하는 사람에게 여행 가서 마트를 들르는 행위는 참 위험하다. 살림꾼들에게는 ‘한국보다 싼 식재료’와 ‘한국에는 없는 식재료’가 눈에 빤하기 때문이다. 엄마와 나, 두 살림꾼이 만났으니 또 예상보다 장을 많이 봐버렸다. 거기다가 유럽이라는 특수성까지 겹쳐져서 ‘식당 보다 싸겠지’란 마음과 ‘지금 안 먹어보면 언제 먹어보겠어’란 마음까지 합세했다. 치즈 냉장고에서 우린 한참을 두리번거렸다. 치즈 냉장고만 여덟 칸이었다. 한국에서는 주식인 쌀도 김치도 이렇게 많은 선택지가 존재한 적이 없었다. 치즈는 어떤 우유로 만들었는지로 시작해서 어떻게 숙성했는지, 얼마큼의 지방을 함유하고 있는지 등등 내가 파악할 수조차 없는 수많은 기준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치즈라곤 체다 치즈와 모차렐라 치즈만 먹던 두 동양인 여성은 고심 끝에 천사가 그려진 치즈를 골랐다. 그리고 요거트 당근라페 바나나까지 두 손 가득 짐을 들고 숙소로 향했다.



✽ ✽ ✽



동생은 숙소에서 짐 정리를 마치고 알커피를 끓여 놓고 있었다. 엄마와 사온 주전부리를 테이블에 차리자 금방 잭이 도착했다. 금주는 마치 몇 년 알고 지낸 친구인 양 잭과 포옹했다. 실물로 본 잭의 얼굴은 에어비앤비 프로필보다 곱절로 잘생겼다. 사실 프로필 사진으로만 봤을 땐 변태 아저씨 같다고 생각했던 터였다. 위아래로 청남방에 청바지를 빼입고 선글라스를 쓴 잭은 큰 키에 잘생긴 이탈리안계 중년이었다. 그는 무척 스키니했다.

왠지 아빠와 닮은 느낌이 있었다. 비록 평생 살을 빼기에 위해 온갖 다이어트를 했던 아빠는 병에 걸리고 나서야 비로소 잭만큼 스키니해졌지만 말이다.


잭과 식탁에 앉아 대화를 나눴다. 영어를 못하는 그를 위해 챗 GPT를 활용했다. 잭은 자신을 부동산 업자라고 소개했다. 우리가 묵은 이 에어비앤비 건물은 사실 오래된 18세기 아파트 건물인데, 언젠가 스위스 부자가 억만금을 줄 테니 팔라고 한 적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유서 깊은 공간을 더 많은 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잭은 판매하지 않고 여행자들의 숙소로 운영 중이라고 했다.


잭은 우리를 보며 말했다.

“Vous avez beaucoup de chance de pouvoir voyager comme ça dans toute l'Europe et faire un grand voyage Europe–Corée.” 이렇게 가족과 함께 유럽과 한국을 오가는 큰 여행을 할 수 있다니 정말 행운이에요

나는 여행 내내 이 말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이렇게 셋이 시간을 맞추어 긴 여행을 떠나왔다는 것 자체가 행운이라는 점을 말이다.


우리는 어제 생폴드방스에서 강매당했던 6유로짜리 물에 대해 잭에게 고자질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잭은 딱 한 단어를 써서 보여줬다.

“voleur (도둑)”


곧 프로방스에서 첫 렌트를 앞둔 우리는 베르동 협곡까지 국도로 갈지 고속도로로 갈지 아직까지도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현지인 잭에게 베르동까지 고속도로가 나을지, 국도가 나을지 물었다. 잭은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Il vaut mieux prendre la route nationale, c'est très beau et ça coûte c'est gratuit et c'est moins dangereux. 국도로 가는 게 더 좋아요. 풍경이 아주 아름답고, 돈도 들지 않고, 더 안전해요.”


국도로 가면 한 시간 정도 더 걸리지만, 아름다운 남프랑스 정취를 느낄 수 있을 거라 기대하며 국도로 마음을 굳혔다.


우리는 헤어지기 전, 잭이 체크인 때 준비해 둔 생수와 간식에 대해 다시 한번 감사를 표했다. 특히 쏘카칩이 맛있었다며 인사를 건넸는데, 잭은 주소를 알려주면 한국으로 택배를 보내주겠다고 했다. 절대 빈말을 하지 않는 잭을 알기에 극구 사양했다. 쏘카칩은 니스의 특산물로 유명한데 병아리콩으로 만든 칩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잭이 준비했던 쏘카칩은 윗부분이 빨간 색인 공산품이었다. 이번 여행에서 먹은 과자 중 가장 맛있었다.


이 작은 마을에게 아쉬운 안녕을 건넸다. 여행은 크게 보면 만남과 헤어짐으로 이루어져 있는 인생을 아주 짧게 압축해서 경험하게 한다.




<렌터카를 타고 베르동 협곡으로>

니스 시내에 위치한 렌터카 대여소로 가기 위해 마을 입구에서 우버를 불렀다. 현재 시각 10시. 대여소가 있는 시내까지는 차로 30분 걸리는데 렌터카는 11시로 예약해 놓았으니 넉넉하다.

호출하고 나서 금방 혼다 SUV가 잡혔다. 우리 집 세 여자는 각자 20인치 캐리어를 잡고 기다렸다. 십 분쯤 지나자 혼다 차량이 다가왔다. 그런데 이게 웬걸, 드라이버는 우리를 보고 휑하고 지나가버렸다. 그리고 예약을 일방적으로 취소했다. 이게 대체 무슨 날벼락같은 일이란 말인가. 가장 가능성 있는 가설은 우리의 캐리어를 보고 도망쳤다는 것이다. 아니 그래도 말이라도 하던가, 왔다가 이렇게 가버리는 건 무슨 예의인지.

화가 났지만 화 낼 시간이 없다. 우버로 다시 택시를 호출했다. 혹시 몰라 그랩도 켰다. 여기서 내가 한 가지 간과한 점이 있다. 전 세계 어딜 가도, 우리나라처럼 택시가 금방 잡히는 나라는 없다는 점이다. 택시가 바로 잡힐 거라는 생각부터 틀린 일이었다. 잡혔다고 해서 알람이 와서 보면 30분 뒤 도착하는 택시가 잡히기 일쑤였다. 렌터카 사무실에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할 것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동생과 함께 택시를 불러 더 빨리 탑승할 기회를 넓히고 싶었으나, 동생은 내가 한국에서부터 받아오라고 말했던 택시앱을 다운로드하지 않은 상태였다. 분노 게이지가 머리끝까지 차올랐지만 어쩔 수 없지. 내 폰으로 잡힌 15분 뒤 도착한다는 택시를 기다리기로 했다. 이 택시를 탄다면 빠듯하게 11시에 렌터카 사무실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또 버림받을까 걱정됐던 나는 엉터리 영어로 빠르게 메시지를 보냈다.


“혹시 캐리어가 3개인데 타는데 문제없을까?”


손톱을 가만 두지 못하며 기다리는데 답장이 왔다.


“문제없어.”


여행 가이드로서 불안했던 나는 한 번 더 물었다.


“방금 한 개 차가 우리를 버리고 떠나갔거든. 정말 가능한 거 맞지?”


“이상한 기사네. 나는 문제없어”


두 번의 확답을 듣고서야 마음이 놓였다. 나 혼자 해결사 모드가 되어 문제를 해결하고 돌아왔는데, 그 사이 엄마와 동생은 어찌해야 할지 모르고 굳어있었다. 나는 문제 상황이 생겼을 때 냉정하고 차가워지는 편인데 그래서 F인 엄마와 동생은 나의 눈치를 살핀다. 이런 상황이 싫은데 냉정해져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서 어쩔 수 없다.


곧 하얀색 벤츠 우버가 도착했다. 흰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우버 기사는 동양계 프랑스인이었다. 그는 차에서 나와 직접 트렁크를 열어주었다. 그리고 캐리어를 들어 넣으려고 했다. 팁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던 터라 직접 캐리어를 들어 올리려 했는데, 그는 만류하더니 캐리어를 번쩍번쩍 들어 올려 트렁크에 넣었다. 나중에 팁을 요구한다면 몇 유로를 줘야 할지 벌써부터 걱정됐다.


백인들만 있던 마을에 있다가 (비록 겉모습만 일지라도) 동양인을 만나니 마음이 쉽게 편해졌다. 가장 말석인 기사 옆자리에 동생을 앉히고 회장님 좌석에 엄마를 앉혔다.

우리가 한국인임을 안 그는, 자신을 한국 드라마 광이라고 밝혔다. 우리가 본 적 없는 가을연가 같은 옛날 드라마까지 섭렵하고 있었다.

그는 니스가 재미없다며, 언젠가 서울에 가서 살아보고 싶다고 말했다. 매일 서울로 출퇴근하며 회색 인간이 되어가는 나로서는 이해되지 않는 발언이었다. 이렇게 아름답고 그냥 존재하는 것만으로 행복한 남프랑스를 떠나 어째서 회색 도시로 오고 싶다는 건지. 나는 우리 반대로 살아보자며 우스갯소리를 던졌다. 사실 진심이었다.


그는 갑자기 엄마에게 호감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너희 엄마는 아름다워. 진심이야.”


엄마에게 남자친구 사귀라고 장난 식으로 이야기하긴 하지만, 엄마를 맘에 들어하는 남자를 목격한 것은 또 처음이었다. 20대인 동생과 내가 아닌 엄마에게 플러팅을 하는 게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그의 나이를 알고 보니 40대 중반이었다. 동양인이 잘 안 늙는다고는 하지만 그는 얼굴만 보기에는 30대 초중반 같았다. 물론 딸들은 엄마의 국제결혼을 적극 환영하는 입장이다.


택시비 6만 원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프랑스 택시 기사들은 다 이렇게 재미있나. 헤어지기 전 동생은 기사와 인스타그램 친구를 맺었다. 그는 우리와 헤어지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천천히만 운전하면 위험한 일 없을 거야. 교차로 조심하고. 만약 렌터카를 빌려 운전하다가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 연락해”


다행히 연락할 일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뒤를 봐줄 현지인 친구가 한 명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했다. 사고 나면 바로 보이스톡을 걸 테다.



✽ ✽ ✽



11시에 딱 맞춰 도착한 니스의 알라모 사무실은 한 평 남짓할 정도로 좁았다. 거의 백화점 화장실 한 칸만 했다. 먼저 온 손님이 있어 기다리다가 우리 차례가 되어 결제카드를 내밀었는데 결제가 되지 않았다. 렌터카 비용 결제는 운전자 카드로만 가능하기에 엄마에게 해외결제 혜택이 있는 카드를 발급받아오라고 했는데 그게 불통이었다. 우리 뒤에 손님들이 줄을 서기 시작해 안 그래도 떨려 죽겠는데 두 번째 카드도 실패했다. 불친절한 직원은 협박 섞인 말투로 말했다.


“디스 이즈 유어 라스트 찬스.”


세 번째 카드 결제에 실패했으면 렌트를 못했을지도 모른다. 결국 한국에서 쓰던 (해외 결제 혜택이 전혀 없는) 신용카드로 겨우 결제에 성공했다.


차를 받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우리가 예약한 옵션은 콤팩트 카였는데, 너른 주차장에서 차를 여유롭게 살펴본 다음 출발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직원이 지하 주차장에서 올린 차를 주차장 입구에서 잠깐 보고 바로 출발해야 하는 시스템이었다. 예상과 다른 불친절과 불편에 당황했지만 가만히 있을 시간이 없었다. 빠르게 차 외관 사진을 사십 장 넘게 찍었다. 타이어와 백미러까지 꼼꼼히 촬영했다. 와중에 엄마는 렌터카 직원이 건넨 서류에 태연히 사인하고 있었다.


“엄마, 서류는 읽고 사인하는 거야?”


“어어~”


엄마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서류를 제대로 읽어봤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엄마는 늘 그렇게 ‘별일이야 있겠어’하는 태도를 보였다. 정말 나와는 정 반대의 성향이다.


우리가 받은 차는 피에타의 SUV 차량이었다. 우린 이 차가 하이브리드인지 한참 달리고서야 알았다. 정신없는 니스 시내를 달리던 중 계기판에 알 수 없는 게이지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전기 배터리 게이지임을 알았다. 렌터카 직원은 하이브리드차라는 점도 설명해주지 않았다. 직원이 원망스러운 맘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었다. 한국에서 엄마가 모는 차도 하이브리드 차량이기 때문이다. 나는 운전자인 엄마의 옆자리애, 동생은 너른 뒷자리에 혼자 앉았다.


사실 렌터카를 빌릴지 말지 수백 번 고민했다. 먼 타국에서 운전을 한다는 것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불안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심지어 나는 운전자도 아니다. 이십 년 차 드라이버 엄마가 운전할 예정인데 오히려 그래서 더 걱정됐다. 익숙하지 않은 프랑스 도로 상황도, 어쩌면 벌어질지 모르는 불의의 사고도, 우리가 만들지 않은 흠집을 뒤집어씌울지도 모를 렌터카 렌터카 직원도 두려웠다.


렌터카로 베르동 협곡을 간다는 일정은 일치감치 계획됐지만, 막상 렌터카 예약은 출발이 임박해서야 겨우 완료했다. 빌리는 데까지 2주나 머뭇거린 것이다. 우리 집에 운전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엄마 밖에 없다 보니 더 겁났다. 엄마에게 프랑스 운전 여행을 보내주며 “엄마 이렇게 운전할 수 있겠어?” 물으면 엄마는 영상을 대충 보고는 “엄마 운전 잘하잖아~언제 또 프랑스에서 운전을 해보겠니”라고 답했다. 막연한 불안함은 전날까지도 나를 괴롭혔다. 렌터카가 후결제였기 때문에 이제라도 계획을 바꿀까라는 생각을 전날 밤까지도 했다.

엄마는 이런 나의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프랑스 운전에 금방 적응했다. 복잡한 니스 시내도 문제없었다. 심지어 한 손으로 빵을 먹으며 운전대를 잡는 여유까지 보였다.



✽ ✽ ✽



복잡한 니스 시내를 조금만 벗어나자 금방 한적해졌다. 대신 회전 교차로의 늪이 나왔다. 체감 상 오 분에 한 번씩 로터리가 나왔다. 차가 별로 없는 도로라 속도만 잘 줄여서 진입하면 돼서 별 문제없었지만, 딱 한 번, 교차로에 늦게 반응하는 바람에 급정거해서 바람에 사고가 날 뻔한 적이 있었다. 그 외에는 전부 안전한 운행이었다. 통제 성향이 강한 나는 엄마가 운전하는 차로 네 시간 걸리는 할머니댁에 갈 때면 늘 뜬 눈으로 운전을 함께 한다. 눈을 감는 건 너무 불안해서 견딜 수 없다. 그러나 오늘 이후로 엄마의 운전에 대해 토를 달지 않기로 했다. 엄마는 내심 남프랑스에서 운전을 해봤다는 걸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 같았다. 물론 그렇게 여길만한 경험이다.


고속도로를 탔다면 한 시간이면 됐겠지만, 우리는 국도로 달리기 때문에 세 시간 정도 걸렸다. 그러나 후회는 없다. 구글맵에서 스쳐 지나갔던 같은 아기자기한 마을들에 들어갔다가 나오기도 하고, 길가에 핀 양귀피 꽃밭도 실컷 봤다.

한 번은 화장실에 들를 겸 간식도 살 겸 리들(RIDLE)에 들렀다. 회사에서 일할 때 사례 조사를 했던 유럽의 저가형 마트 체인인데 직접 와보니 기분이 묘했다.

동네 마트인데 코스트코처럼 천장이 높고 넓었다. 포도주 종류는 왜 이렇게 또 많은지. 일단 화장실부터 들르려고 했는데 아무리 찾아도 화장실이 안보였다. 이런 걸 물어보는 건 암묵적으로 가장 쾌활한 동생이 하기로 되어 있었기에 동생은 군말 없이 갈색 머리 직원을 찾아 말을 걸었다. 잠시 뒤 나타난 동생은 우리를 어디론가 이끌었다.


“고객용 화장실은 없대. 대신 직원용 화장실 열어주겠대.”


동생은 마트 직원에게 키를 받아왔다. 이때부터였을까, 동생의 문제 해결 능력은 돋보였다. 동생이 특유의 순수한 말투와 서툰 영어로 질문하면 어느 국적의 사람이든 기쁘게 대답해 준다.


볼일을 해결한 다음 장을 봤다. 차에서 먹을 과자와 음료, 그리고 밤에 마실 맥주를 샀다. 엄마는 뜬금없이 투박한 디자인의 오렌지 주스 한 병을 골라왔다. 엄청 큰 플라스틱 병에는 XL라고 투박하게 적혀있었다. 그래, 망해도 좋은 경험이니까. 그런데 유럽에서 먹은 음료 중 그 오렌지주스가 가장 맛있었다. 거의 모든 마트에서 오렌지주스만 보이면 사서 마셔봤지만, 아무도 리들의 촌스러운 엑스라지 주스의 맛을 따라오지 못했다.

역시 드라이브는 간식과 함께해야 제맛이다. 차에 흘리지 않게 (흘리면 추가 청소 비용을 내야 할 수도 있으니까) 조심해서 과자를 집어 먹었다. 간식을 먹으니 더 드라이브하는 느낌이 났다.


유럽의 차들은 선탠이 되어 있지 않았다. 글로만 읽었을 땐 잘 상상이 되지 않았는데, 조수석에 타보니 실감 났다. 앞 차에 타고 있는 사람들이 훤히 다 보였다. 선탠이 안 되어 있으면 불편할 것 같았는데 끼어들기가 정말 잘됐다. 안에서 손을 한 번만 들면, 바로 양보해 줬다. 서로 얼굴을 보고 부탁하니 안 들어줄 수가 없는 구조였다.

조수석에 앉은 나는 엄마의 운전 조수로서 엄마 대신 고마움을 표현하는 일을 대행했는데 한 번은 대머리 프랑스 아저씨에게 양보를 했다. 아저씨는 차선에 진입하며 어깨 위로 따봉을 날렸고, 나도 질세라 옆에서 따봉을 날렸다. 아저씨가 이번엔 손을 흔들었다. 나도 흔들었다. 아저씨가 다시 따봉을 했다. 나도 따라 했다. 끝날 줄 모르던 인사 열전을 보던 엄마는 빵 터졌다.

친절을 베풀어도 깜빡이 한 번 받기 힘든 팍팍한 서울과 완전히 다른 프로방스의 넉넉한 모습이 나는 참 보기 좋았다.


베르동의 물줄기를 마주하자마자 렌터카를 고민했던 시간을 후회했다.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단박에 들었다. 생전 처음 보는 새파란 물이 햇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니스에서 봤던 어떤 건물보다도 이국적인 모습이었다.

그 아래에서 사람들은 여유롭게 보트를 타거나 피크닉을 즐기고 있었다. 본 적 없는 광경이어서 그리워할 수도 없었던 그런 신세계가 펼쳐졌다.

마음은 당장이라도 물가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자동차 창문을 깨고 캐리어를 훔쳐가는 도둑이 있다기에 차를 세워놓고 가방을 옷으로 가린 다음에서야 내렸다.



오후 세 시가 다 되어 도착했지만 베르동은 한창이었다. 다리 위에서 호수를 내려다보는 것만 해도 아름다워서 오리배를 안 타도 되겠다 싶었는데, 안 타자니 또 딱히 할 일이 없어서 오리배를 타기로 했다. 호수의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대여비가 저렴해졌다.

오리배 직원은 카드 리더기가 고장 났다며 현금 결제를 유도했지만, 왠지 상술인 것 같아서 나는 한 번만 긁어보겠다고 말했다. 옆에서 동생과 엄마는 “그냥 현금 줘”라며 나를 막았지만 객기였다. 역시, 카드 결제는 정상 승인됐다.

정작 한국에서도 비싸다며 타본 적 없는 오리배였다. 셋이서 열심히 발을 굴려 베르동 협곡을 구석구석 누볐다. 멋진 나무가 있는 절벽을 발견하면 물이 튀든 상관 않고 가까이 다가갔다. 깎아지는 절벽 아래 선 기분. 협곡 사이로 굽이쳐 오르는 바람을 맞으며 발을 굴렸던 순간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프로방스의 해를 받은 나의 가슴팍은 나약하게도 붉은 햇빛 알레르기를 뱉어냈다.


오리배를 반납할 시간이 다가오자 우리는 다시 출발했던 곳으로 오리 머리를 돌렸다. 페달에서 협곡을 가득 채우는 기분 나쁜 삐그덕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그 소리가 듣기 싫어 발을 더 빨리 굴렸다. 그 순간 동생은 물 위에 떠있던 까만 물체가 물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목격했다.

오리배 직원에게 여기 수달 같은 동물이 사냐고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농”이었다.




<무스티에>

보트를 반납하니 여섯 시쯤 되었다. 서둘러 다음 코스로 향했다. 베르동에서 이십 분만 달리면 도착하는 무스티에라는 마을이었다. 마을 주차장에 차를 대면 유료라기에, 마을 입구에서 떨어진 공터에 차를 세워놓고 걸어갔다.

엄마는 무스티에에 당도하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여기는 또 오고 싶다.”


엄마의 한 마디를 듣는 순간 마음이 놓였다. 웬만한 건 다 그냥 그렇다고 하는 엄마라, 저런 이야기를 쉽게 안 하는 타입이기 때문이다. 일단 엄마가 만족스러워하니 나까지 만족스러웠다.

무스티에는 한국 방송에 여러 번 나왔던 관광지이기 때문에 별 감흥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감히.

하지만 웬걸. 가끔 명성보다 못한 관광지들이 많았지만(예를 들어 생폴드방스?) 무스티에는 달랐다.


내친김에 절벽에 자리한 성당까지 가보기로 했다. 지친 엄마는 숙소가 멀지 않으니 내일 아침에 다시 들러서 올라가면 안 되겠냐고 애원했지만, 오늘 떠나면 다시 오지 못할 걸 알기에 무리해서 엄마를 데리고 올라갔다. 가팔라서 그렇지 올라가는데 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마을에는 와인을 마시고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이 많았지만 성당에 올라가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특별할 것 없는 유명하지도 않은 성당이지만 돌로 만들어진 투박함이 우리를 이끌었다. 262개의 계단을 오르면 도달할 수 있는 해발 660미터에 위치한 노트르담 드 보부아르 성당이었다. 5세기 로마 시대에 세워졌다고 한다.


우리 앞엔 느린 걸음으로 계단을 오르는 백발의 할머니가 계셨다. 할머니는 이십 대 오십 대도 헥헥대며 오르는 길을 느릿느릿 한 걸음씩 걷고 있었다. 할머니를 앞서 걷는 찰나 서로 웃으며 눈인사를 나누었다.

구불구불 정원을 지나 나타난 성당. 유럽의 성당이라고 하기엔 투박하게 그지없었다. 때 묻은 벽돌로 된 외관에 촛불로 겨우 불을 밝힌 내부. 우리 셋은 아무 말 없이 각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암흑 속 작은 불빛을 향해 기도를 올렸다. 왠지 아빠가 생각났다. 함께 해외여행도 한 번 가보지 못하고 떠난 아빠. 가슴이 무거워질 때마다 아빠를 미워했던 나는 이제 명복을 빈다. 몇 번째 비는 명복인지는 모른다. 눈을 가만히 감고 성당의 찬 기운 속 새소리를 들으며 이런저런 세속적인 소원도 빌었다.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짐승의 소리 같기도 했다. 기도를 마치고 돌아보니 아까 마주쳤던 할머니가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올리고 계셨다. 그녀는 말해준대도 이해하지 못할 슬픔을 안고 있었다. 우리 모두 각자 그러하다. 각자의 슬픔은 각자의 모양이다.




<몽따냑으로>

주차해 뒀던 공터까지 다시 한참을 걸었다. 예약해 둔 숙소까지는 삼십 분밖에 걸리지 않지만, 산간 지역이라 그런지 벌써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해 서둘러야 했다. 잰걸음으로 걷는데 풀이 우거진 오솔길 하나를 발견했다. 엄마가 말했다.


“왠지 이 길, 우리가 차 세워둔 곳이랑 이어질 것 같은데?”


해가 질까 봐 마음이 조급했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성급한 마음을 덜어내기로 다짐했기에 조용히 엄마의 말을 따라 풀이 우거진 개구멍 같은 길로 걸었다. 거기서 우리는 아름다운 풀꽃과 노을을 봤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주차장과 이어져 있었다. 최소 10분은 절약한 것이다. 엄마의 용감함 그리고 근거 없는 확신에 믿음이 생겼다.


숙소로 가는 길, 기름이 애매하게 남아 주유소를 들렀다가 가기로 했다. 숙소 근처엔 주유소가 없어 미리 들리지 않으면 위험할 수 있었다. 프랑스는 한국과 다르다는 사실을 또 한 번 간과했다. 하나 놓치면 금방 다음 주유소가 나오는 우리나라와 달리 프랑스는 특히 산간지역은 주유소가 드문드문 있었다. 역시 무엇이든 촘촘하게 무한 경쟁하는 한국답다.


프랑스 주유소는 우선 보증금 10만 원을 결제하고 기름을 넣으면, 며칠 뒤 주유한 금액을 뺀 차감액을 돌려주는 시스템이었다. 우리 집에서 운전을 할 줄 아는 구성원이 엄마뿐이라, 우리 셋이 차를 타고 어디 갈 때면 늘 엄마 혼자 주유소에서 내려 주유구에 기름을 꽂고 결제까지 마치고 들어온다. 그런데 이번에는 엄마를 혼자 보내면 안 될 것 같았다. 함께 나가 옆에서 프랑스어로 된 스테이션에 플래시를 비춰주고 프랑스어를 해석했다. 그동안 홀로 나가 주유를 하고 금액을 결제했던 엄마가 얼마나 외로웠을까.



오늘 예약한 숙소는 무스티에 근처 몽따냑이라는 작은 마을에 있는 에어비앤비였다. 평점이 오 점 만점인 데다가 하루에 십칠만 원밖에 안 했다. 사악한 프랑스 물가에 비하면 거저 수준이었다. 체크인을 위해 집주인 앙투안과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우리가 예상보다 늦은 시간에 도착할 거라고 말하자, 앙투안은 자신이 체크인을 도와주러 나갈 건데 잠옷 차림임을 양해해 달라고 했다. 역시 패션의 나라 프랑스인다운 대답이다.


마을 공영 주차장에 주차하고 캐리어를 꺼내자 저 멀리서 키가 크지 않은 중년 남성이 편한 옷을 입고 걸어 나왔다. 앙투안은 우리를 환영하며, 몽따냑이 얼마나 살기 좋은 동네인지 한참 자랑했다. 자신이 나고 자란 고장에 대한 그의 진심이 느껴졌다. 실로 그러했다. 몽따냑은 아름다웠다. 크기는 작지만 주변이 자연으로 둘러싸여 있고 대문마다 꽃 덩굴이 남발했다.


앙투안의 에어비앤비도 몽따냑 같았다. 전면에 통유리로 된 문을 열고 들어가면 큰 거실 겸 부엌이 하나 나왔다. 거기에 엑스트라 베드가 놓여 있었고, 왼쪽 안방에 너른 침대가 하나 있었다. 전부 엔틱한 가구들로 꾸며져 있었다. 특히 화장실이 압권이었다. 그대로 따라 하고 싶은 예쁜 타일과 세면대로 꾸며져 있었다.

십만 원대에 예약한 거라곤 믿을 수 없을 만큼 진짜 예쁜 집이었다. 숙소를 소개해준 이후에도 앙투안과의 스몰토크(를 빙자한 몽따냑 자랑)가 한참 이어졌고, 십 분 정도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야 우리는 문을 닫을 수 있었다. 애정을 가진 고향이랄 게 없는 나로서는 마을에 대한 앙투안의 애정과 열정이 부러웠다.


동생은 늘 1인 침대만 보이면 자기가 자겠다고 자원했다. 그 까닭은 불편한 침대에서 내가 자겠다는 배려의 마음이 아니라, 잘 때만큼은 언니 엄마와 떨어져 있고 싶다는 일종의 시위였다. 이번에도 엑스트라는 동생차지가 되었다.

아직까지도 이렇게 예쁜 마을에 좋은 숙소를 저렴하게 얻은 기쁨에 취해있는 내게 동생은 섬뜩한 이야기를 꺼냈다.


“이 집, 앙투안의 어머니가 살던 집 같아.”


그렇게 생각하니 이해되는 지점들이 많았다. 욕실에 설치되어 있던 쇠봉. 보통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이 사는 집에 설치하는 것이다. 우리 할아버지가 허리 수술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도 쇠봉을 거실과 화장실 여기저기에 설치한 적 있다. 에어비앤비 치고 엔틱하고 아름다운 가구들. 어여쁜 타일과 세면대가 있는 화장실. 앙투안 어머니의 취향이라면 이해된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왠지 으스스해졌다.


“그 말 들으니까 왠지 무섭잖아. 혹시 앙투안의 어머니께서 우리가 여기서 자는 걸 싫어하시면 어떡해…….”


께름칙해하는 내게 동생은 의아해하며 되물었다.


“엥? 무서워하라고 말한 건 아닌데? 뭐 어때~ 그냥 그래 보인다는 거지.”


샤워하러 화장실에 들어가 화려한 세면대를 보며 왠지 모를 죄책감을 느꼈다. 왠지 모르겠지만 속으로 계속 ‘죄송합니다’를 되뇌었다.

대충 머리를 말리고 침대에 누워 엄마에게도 동생의 가설을 전했다. 엄마도 별로 개의치 않아하는 눈치였다. 화려한 꽃 패턴의 이불도 그분의 것이었으면 어떡하지. 이불이 닿은 피부 끝으로 찜찜함을 느끼며 과연 잠에 들 수 있을까 걱정했다. 그러나 우려가 무색할 정도로 금방 곯아떨어져 버렸다.




▲ 베르동협곡. 처음 느껴보는 아름다움이었다. 다시 가고 싶을 정도로 아름답다.

▲ 유럽 고양이는 왠지 기품이 넘친다옹.

▲ 프로방스엔 창가마다 화분들로 가득하다.

▲ 몽따냑의 한가한 오후



#여행에세이 #엄마랑유럽여행

수요일 연재
이전 06화싱글 에스카르고「day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