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 에스카르고「day3」

생폴드방스와 어머니의 날

by 이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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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폴드방스>

오늘은 동생이 가장 고대하던 생폴드방스를 가는 날이다. 샤갈이 사랑했다는 언덕 위 작은 마을 생폴드방스는 지금까지도 화가들이 모여서 살고 있다고 한다. 영화와 연기를 업으로 삼고 있는 현직 예술가 동생은 아예 생폴드방스 안에 숙소를 잡자고 할 정도로 크게 기대했다. 운 좋게 생폴드방스 안에서 이십만 원대 에어비앤비를 찾아 예약했으나, 최대 인원이 두 명이라는 이유로 취소당했다.


나는 동생의 집착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유튜브로 본 생폴드방스는 어제 갔던 에제 빌리지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작고 산업화된 관광지 느낌.


“금, 너 거기 영상 봤어? 진짜 별 거 없던데.”


동생이 괜한 환상에 사로잡힌 건 아닐지 걱정했지만, 동생은 이미 여러 영상을 찾아봤으며 자신과 잘 맞는 곳일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 ✽ ✽



동생은 꼭두새벽 첫 차를 타고 출발하자고 주장했으나, 준비하다 보니 아홉 시가 되어서야 숙소 문을 나섰다. 어제 숙소로 돌아올 때 내렸던 까뉴 쉬르 메르(Cagnes sur-mer)역까지 가서 버스를 타면 된다. 프랑스 여행 삼일 차, 슬슬 삼십 분 걷는 일쯤은 이제 대수롭지 않다.


동네를 걷다가 주민들이 바게트를 서너 개씩 안고 나오는 빵집을 발견했다. 누가 봐도 동네 맛집이었다. 급할 것도 없겠다, 앉아서 아침을 먹고 가기로 했다. 먹을 때만큼은 마음이 잘 통하는 세 모녀다. 오늘 정해진 일정은 열한 시 반 레스토랑 예약 밖에 없었다. 나머지는 맘대로였다. 하루 종일 식사 일정 하나분인 날만큼 사치스러운 날이 또 있을까.


좁은 빵집은 테이블 세 개와 진열대로 꽉 차 있었다. 식사빵만 있을 거란 예상과 달리 온갖 빵이 다 있었다. 엄마는 산딸기 파이, 동생은 애플파이, 나는 피스타치오 크루아상을 골랐다. 최대한 프랑스어를 쓰고 싶어 하는 동생은 애플파이의 프랑스식 표현 ‘쇼송 오 뽐므’를 외워 주문했다. 그리고 나눠먹을 에끌레어와 에스프레소도 주문했다. 전부 다해서 11.2유로밖에 들지 않았다.


우리 셋은 각자 시킨 빵에 몹시 만족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역시 빵을 주식으로 하는 사람들은 다르다”는 말을 읊조렸다. 엄마는 샌드위치를 가리키며 “이것도 내일 먹어보자”라고 말했다. 한 마을에서 머문다는 게 다행으로 여겨졌다. 이 빵집을 다시 올 수 있다니!


프랑스산 밀가루로 배를 채우고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생폴드방스행 버스 탑승자들은 전부 여행자들 같아 보였다. 현지인 마을에 있을 땐 로컬 주민들 사이에 혼자 여행자라서 여행온 기분이 났는데, 여행자들 사이에 여행자가 되어도 여행온 기분이 났다. 전자는 살짝 설레는 여행이라면 후자는 왠지 안도감이 드는 기분이다.


버스는 꾸불꾸불 산을 올랐다. 지중해 햇살이 빠짐없이 내리쬐는 언덕들 사이 현대식 별장들이 듬성듬성 심어져 있었다. 그리고 산세 너머로 거짓말처럼 흙색 마을이 불쑥 모습을 나타냈다. 동화책을 펼쳐서 튀어나온 삽화 같았다. 본래 중세 요새 마을로 지어졌던 생폴드방스는, 인근에 위치한 방스(Vence) 지역을 방어하기 위해 건설된 전략적 요충지였다고 한다. 홀연히 나타난 중세 마을의 모습에 잠시 넋을 잃었다.




<생폴드방스>

생폴드방스를 가볍게 한 바퀴 돌았다. 돌을 쌓아 만든 건물 사이에 켜켜이 갤러리가 들어가 있었다. 마을 초입을 지나쳐 계단을 오르는데 어떤 할아버지가 갤러리에서 튀어나와 동생을 불러 세웠다. 들어와 보라는 그의 말에 동생은 홀린 듯 갤러리로 들어갔다. 설마 돈 많은 동양인 여행객으로 오해받은 것은 아닐지 무척 경계하며 따라 들어갔다.


백발에 키가 큰 주인 할아버지는 자신을 화가이자 콜렉터라고 소개하며, 우리에게 고흐와 피카소의 습작품을 보여주었다. 모두 진품이라고 했다. 약간의 허풍이 느껴지긴 했지만 우리에게 물건을 팔려고 하기보다는 정말 자랑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구경이 끝날만하면 동생이 새로운 질문을 던졌고, 할아버지는 기뻐하며 길게 대답했다. 나는 그런 동생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구경했다. 마지막에 피카소 그림이 그려진 쿠션 커버를 영업했지만 점심 먹고 돌아오겠다고 말하고는 겨우 빠져나왔다.


아마 나 혼자 왔다면 들어가지 않았을 공간이다. 컴인 이라며 손짓하는 갤러리 주인에게 어색한 미소로 쏘리하고 대답했겠지. 동생이 문을 열었고 우리는 따라 들어갔다. 같은 장소라도 누구와 가느냐에 따라 다른 기억이 생긴다.


에제든 생폴드방스든 관광지는 파는 물건도 분위기도 비슷했다. 우리나라 서울 관광지들이 비슷한 것과 똑같았다. 유럽이라고 크게 다를 거 없었다. 역시 생폴드방스도 별거 없다고 생각하며 길을 걷는데 어디선가 한국어가 들렸다. 패키지 여행 무리가 보였다. 괜히 한국인인 걸 티 내기 싫어 입을 꾹 다물었다. 아마 입은 옷만 봐도 한국인임을 알아봤겠지만 말이다. 저들은 얼마를 내고 여행왔을까. 내가 찾아봤던 프로방스 패키지 여행은 인당 천만 원 수준이었다. 나는 원래 여행지에서 패키지 여행객을 마주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많은 이들에게 관광 명소화된 곳을 내가 지금 걷고 있는다는 뜻이니까. 그런데 이곳에서 마주친 패키지 여행객은 왠지 기분이 좋았다. 샹폴드방스에서 만났을 땐 뿌듯함을 느꼈다.



고흐와 달리 생전에 온갖 부와 명예를 즐기고 떠난 샤갈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인생은 충분히 그에게 호의적이었기에 나까지 보태어 그의 죽음을 아쉬워할 필요 없겠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여기까지 왔으니 안 보고 갈 수 없어 들렀다. 생폴드방스 한 켠에는 샤갈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가족 묘지도 있었다. 넓진 않았지만 제각기 다른 비석과 묘지 모양에 매료되었다.

우리 셋은 자연스럽게 흩어져 묘지를 구경했다. 샤갈의 무덤보다도 나의 시선을 끈 것은 일반인들의 묘지였다. 매장하여 돌로 된 세로로 길쭉한 비석이 놓여있었다. 그 위에는 누군가가 올려놓고 간 돌들이 쌓여 있었다. 유대교에서는 금방 시드는 꽃과 달리 영원히 존재하는 돌을 올려놓음으로써 당신을 영원히 기억하겠다고 약속한다고 한다. 감히 돌을 올려놓진 못했다. 죽으면 무상하다는 당연한 사실을 프랑스까지 가서 다시 한번 깨닫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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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에서 핸드폰 케이스를 팔며 여행 경비를 벌었던 동생은 여행 계획 짜는 걸 도와주지는 못했지만, 생폴드방스에서의 레스토랑만큼은 직접 예약했다. 샤갈과 피가소가 단골이었다는 식당, 황금 비둘기(La Colombe d'Or')였다. 나는 비싼 가격에 별다른 특별함을 느끼지 못해 시큰둥했지만, 동생이 이토록 기대하는 건 해줘야 할 것 같아서 투덜거림을 꾹 참았다.


우리 테이블의 웨이터는 능글맞은 이탈리아인이었다. 까맣고 구불거리는 머리를 한 그는 영어에 서툴러 의사소통이 어려웠으나 다른 웨이터들보다 잘 생겨서 좋았다. 우리는 치즈를 곁들인 스테이크, 흰 살 생선과 삶은 야채 플레이트, 샐러드, 그리고 로컬 와인 작은 병을 주문했다. 탭 워터 주문도 잊지 않았다. 물도 사 먹어야 하는 유럽이지만, 탭워터를 요청하면 수돗물로 주기 때문에 무료다.


첫 번째 메뉴가 나왔다. 우린 분명 흰 살 생선과 삶은 야채 플레이트를 시켰는데 야채 삶은 것만 덩그러니 나왔다. 웨이터를 불러 흰 살 생선은 어디 있냐고 물었고, 그는 능청스럽게 웃으며 미안하다며 생선 한 덩이를 가져다주었다. 이번엔 샐러드를 먹는데 달팽이 한 조각 나왔다. 순간 기분이 불쾌했다. 우리가 봤던 메뉴판에 달팽이가 들어있다는 설명은 없었기 때문이다. 손을 들어 웨이터를 불렀다.


“왜 여기 달팽이가 들어가 있죠?”


웨이터는 능청스럽게 두 손바닥으로 샐러드 속 달팽이를 가리키며 천진하게 말했다.


“싱글 에스카르고!”


원래 샐러드에 한 마리의 달팽이가 들어간다는 말은 아직까지도 믿을 수 없지만, 그의 능청스러움에 속았다고 해두자. 우리 사이에서 이 사건은 아직까지도 싱글에스카르고 사건이라며 회자되곤 한다.




그 웨이터와 악연이었던 걸까, 결제할 때도 삐그덕 거렸다. 계산보다 가격이 비싸게 나와서 영수증을 확인해 보니, 탭워터라며 갖다 준 물이 사실 6유로짜리 생수였던 것이다. 당시 환율로 구천 원이었다. 물 한 병에 구천 원을 내다니 총무이자 가이드로서 상심이 컸다. 예상컨대 우리 테이블을 담당했던 웨이터는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던 것이 분명하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부탁하며 카드를 건네는데 웨이터는 왠지 삐친 말투를 보였다. 왠지 팁을 달라는 제스처 같았으나, 자신이 했던 실수들을 아는지 팁이란 직접적인 단어는 말하지 않고 조금 머뭇거리다가 결제해 줬다. 처음 만났을 때의 친절함은 온데간데없고 웬 시무룩한 중년 남성만이 남아있었다. 결국 다 돈이었음을 씁쓸해하며 식당을 나섰다.


나는 생수로 등쳐먹은 것과 음식의 평범함을 떠올리며 별로라고 평가했는데, 동생은 추후 프랑스에서 먹었던 것 중 가장 맛있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서울로 돌아가면 동생에게 좀 더 맛있는 양식을 사줘야겠다.


생폴드 방스는 어제 간 에제 빌리지와 비슷한 인상이었다. 아름다운 마을임은 확실하지만, 그 안에 상점들로 꽉 들어찬 어딘가 관광지스러운 동네. 엄마와 나는 이곳을 충분히 느꼈다고 생각했고, 예술가 동생은 근처 샤갈 피카소 미술관에 가서 그림을 보고 혼자 돌아오겠다고 했다. 구글맵 덕분에 이렇게 따로 놀기도 되고 세상 참 좋아졌다. 아침부터 돌아다녔더니 아직 두 시였다. 프랑스는 아홉 시는 되어야 해가 지니 아직 여행할 시간이 많이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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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둘이 버스 정류장에 남았다. 왠지 동생 없이 엄마와 둘이 있는 건 어색하다. 평소보다 더 틱틱대게 된다. 정류장에서 한국말이 들렸다. 내 또래의 신혼부부였다. 결혼식을 올리기 전에 나를 낳은 엄마는 신혼여행을 가지 못했다. 신혼여행자들을 보는 엄마의 마음은 어떨까.


나에게는 결혼은 할 수 있으려나 하는 마음이 앞선다. 과연 내가 수천만 원을 들여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을 다녀온 다음 아이를 갖는 대한민국의 일반적인 코스를 밟을 수 있을 것인가. 이렇게 살 수 있냐의 문제인지, 아니면 이렇게 살고 싶냐의 문제인지는 여전히 헷갈렸다.


많은 여행자들과 함께 하행 버스를 탔다. 운 좋게 엄마와 마주 보는 의자에 앉았다. 나는 피곤했던 나머지 그만 까무룩 잠이 들었다. 이십 분쯤 지나 역에 도착했을 무렵 엄마가 어깨를 흔들며 깨워줬다. 엄마도 잠들었다면 정류장을 놓쳤을지도 모른다. 이 여행을 진두지휘한다는 자의식에 차있는 나지만 사실 엄마의 챙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까뉴쉬르메르>

이제는 익숙한 까뉴 쉬르 메르역에 내렸다. 엄마는 숙소로 돌아가 낮잠을 자고 싶어 했고, 나는 마을 아래에 있는 바다를 가고 싶었다. 우선 숙소에 가서 재정비를 하기로 합의했다. 저벅저벅 길을 걷는데 어떤 프랑스인 중년 여자가 말을 걸었다. 처음엔 알아듣기 어려웠는데 귀 기울여 보니 이런 이야기였다.


“바다는 이쪽이 아니고 저쪽이야.”


여행자인 우리가 현지인 동네방향으로 걷고 있으니 잘못된 길로 걷고 있는 줄 알았나 보다. 멕씨에 가까운 메르씨를 외치며 다시 가던 길을 걸었다.




숙소에 도착해 엄마는 씻지도 않고 침대로 직행했다. 나는 핸드폰 배터리를 충전하고 혼자 바다까지 걸어가 볼 요량이었다. 왠지 모를 헛헛함이 느껴져 오징어 짬뽕을 끓여 먹었다. 한국인이라면 거부할 수 없는 라면 냄새에 엄마가 한 입 달라고 할 줄 알았는데, 얼마나 피곤했는지 벌써 얕게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잠든 엄마에게 다녀오겠다고 말한 다음 집을 나섰다.


처음엔 마을을 정처없이 돌아다녔다. 이 마을을 샅샅이 구경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언제 다시 올지도 모르는 이 공간을. 내버려 두고 떠나기 아쉬웠다. 구석구석 살펴보다가 건물 사이에서 낮잠 자던 고양이 두 마리를 만나서 엉덩이를 열심히 두들겨줬다. 걷다 보니 발가락이 아파서 계단에 살짝 앉아 물집이 생긴 발가락에 대일 밴드를 붙였다.


마을을 벗어나 아래로 직진하면 바다였다. 익숙한 곳 익숙한 사람이 없으니 두려움이 몰려왔다. 혹시 모를 소매치기에 대비해 핸드폰은 가방에 넣고 현지인인 척 고개를 빳빳이 들고 걸었다. 러시아 글자가 적힌 식당 앞에 건장한 남자들이 드럼통 같이 생긴 테이블 앞에 서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피하고 싶었지만 피하면 저들이 내가 두려워한다는 걸 아니까 그냥 걸었다. 속으로 되뇌었다. ‘나는 프랑스인이다 나는 프랑스인이다…’


도착한 바다는 생각보다 푸르지 않았다. 왜 니스 해변이 유명한지 알겠다. 니스 해변보다 오른쪽으로 몇 킬로 떨어져 있을 뿐인데 서해 같이 어둑한 색의 바다였다. 도시와 붙어있는 바다여서 그런지 한국의 한강과 비슷했다. 강아지를 산책하고 조깅하는 사람들. 벤치에 앉은 노부부. 모래사장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는 비행 청소년들.


어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들과 저녁을 먹고 다 함께 택시를 타고 니스 구시가지로 넘어가서 야경을 볼 계획이었다. 마침 동생도 미술관을 다 보고 돌아오는 길이라길래 함께 까르푸에 만나서 장을 보기로 했다. 피곤해 쉬고 있을 엄마를 위해 오늘은 무리해서 외식하기 보다는 집에서 이것저것 차려 먹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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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에 갔는데 사람들이 꽃다발을 사고 있었다. 포장지에는 ‘보나베띠 마망(Bon appétit, Maman)’이라고 쓰여있었다. 촉이 왔다. 오늘 프랑스의 어머니 날이구나. 근데 왜 잘 먹겠습니다 엄마라고 할까. 다소 패륜적인 게 아닐까.


간단히 해 먹을 수 있는 것들 위주로 골랐다. 냉동 피자와 냉장 파스타, 종이팩에 든 토마토 수프. 프랑스의 냉동식품은 다를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리고 산딸기 파이를 좋아했던 엄마를 위해 큰맘 먹고 한 팩에 무려 구천 원짜리 라즈베리 한 팩을 샀다. 일요일이라 그런가 마트엔 현지인들이 식료품을 사서 나래비로 줄을 서있었다. 프랑스인들은 식료품을 쌓아두지 않고 오늘 먹을 것 오늘 산다고 들었는데, 정말로 다들 소량으로만 샀다. 옆에서 프랑스 청년이 마담이라고 부르길래 누구를 부르나 두리번거렸는데 나를 부른 것이었다. 카운터 하나가 비어있었다.



늘 가방에 넣어 다니던 노란색 장바구니에 식료품을 가득 담았다. 연약한 라즈베리를 그 사이에 넣었다간 금방 눌릴 것 같아서 동생에게 라즈베리를 따로 들자고 말했다. 자진해서 장바구니를 혼자 짊어진 동생은 귀찮다는 듯 그냥 가자고 했다. 동생이 드는 마당에 나는 더 할 말이 없었다. 그 안에서 라즈베리가 짜부라질까 걱정됐지만 믿고 맡기기로 했다.


일곱 시가 다 됐는데도 프랑스는 해 질 기미가 없었다. 장을 보고 집에 들어가자니 정말 이곳에 사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우리가 여행자가 아니라 교환학생이었다면 어땠을까. 여기에 살았다면 어떤 고민을 안고 살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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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 도착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가 안에서 문을 열어줘야만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문을 두드려도 엄마가 대답이 없었다. 건물의 반대편으로 가서 침실 쪽 창문을 향해 엄마를 불러봤다. 역시나 답이 없다.

옆집 문이 갑자기 열렸다. 두건을 둘러쓴 할머니가 무슨 일 있냐는 듯이 다정히 말을 걸었다. 우린 도둑 같아 보이지 않기 위해 어색하게 웃었다. 바로 그때 극적으로 문이 열렸다. 잔뜩 부은 눈의 엄마가 문을 연 것이다. 우리가 집으로 들어가는 걸 보고서 할머니는 웃으면서 자신의 집으로 들어갔다.


어머니 날에 걸맞은 식사를 차려볼 생각이었다. 엄마를 식탁에 앉혀놓고 장 본 것들을 구경시켰다. 비싼 라즈베리를 냉장고에 넣으려고 꺼낸 순간. 잔뜩 짜부라진 라즈베리를 마주했다. 순간 내 말을 듣지 않고 장바구니에 휘뚜루마뚜루 들고 온 동생에게 깊은 화가 났다. 고 탓하는 투로 말했다.


“언니가 이거 따로 들쟀잖아.”


동생은 당황하며 내 손에서 라즈베리가 든 플라스틱 통을 뺏어갔다.


“아니 나도 이렇게 될 줄 몰랐지.”


그리고는 말릴 틈도 없이 싱크대로 가서 물을 틀어 라즈베리를 씻기 시작했다.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안 그래도 연약한데 여기저기 상처나 뭉개지기까지 한 라즈베리를 거센 수압으로 때리는 물줄기. 거기서 난 이성의 끈을 놓았다.


“야 미쳤어?”


싸움의 서막이었다. 동생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았고, 나는 뭉개진 라즈베리의 범인을 분명히 하고 싶었다. 날 선 목소리가 오갔다. 엄마는 한숨을 쉬더니 방으로 들어갔다. 어머니 날 기념 식사 준비였는데 엄마가 제일 싫어하는 자매싸움이 개최되어 버렸다.


다행히 둘 다 어른인 덕분에 싸우기만 하진 않았다. 입으로 투닥거리며 손으로는 냉동피자 포장을 뜯어 오븐에 넣고 파스타를 전자레인지에 돌렸으며 전기포트에 토마토 수프를 넣고 끓였다. 분위기는 냉랭했지만 레스토랑 냄새가 났다.


프랑스는 마트 냉동피자도 맛있을 줄 알았는데 오뚜기 피자보다 맛이 없었다. 의외로 맛이 좋았던 건 바로 종이팩에 담겨있던 토마토 수프였다. 토마토만 든 것, 양파와 마늘이 든 것, 샐러리까지 든 것 다양했는데 우리는 토마토 양파 마늘이 모두 들어간 것을 구매했다. 끓였더니 기대하지 않았던 김치찌개 맛이 났다. 신 김치를 끓여 다진 마늘을 넣은 바로 그 맛이었다. 각자 컵에 담아 홀짝댔다.


엄마의 컨디션과 우리의 감정 상태를 봤을 때 니스 시내로 야경을 보러 나가는 것은 무리였다. 오늘 너무 한 것이 없다는 생각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대신 마을 언덕에 올라가 산 능선으로 일몰을 보자고 제안했다. 삐친 동생은 30분만 쉬다가 알아서 나오겠다고 해서 엄마와 둘이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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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언덕 벤치에 앉아 동생의 어리숙함을 탓했다.


“아니, 세상에 라즈베리를 그렇게 센 물로 씻는 애가 어딨어. 자취도 해본 녀석이 어떻게 그 정도 살림도 모르냐고.”


엄마는 동생이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못하는 면이 있다며 내 편을 들어줬다. 때마침 바람막이를 입은 동생이 어슬렁어슬렁 언덕으로 올라왔다. 우리는 엄마를 사이에 두고 멀찍이 떨어져 앉았다. 싸우기를 멈추고 이제는 어둠이 내려 한국과 별 다를 바 없는 풍경을 바라봤다.


엄마는 우리 둘이 싸울 때면 꼭 본인이 소리를 지른다.


“너희 둘이 제발 싸우지 좀 말어!!!!”


그러면 나와 동생은 싸우다 말고 엄마를 향해 소리친다.


“우리 둘이 풀 건데 왜 엄마가 참견이야!!!”


엄마는 우리 둘이 싸우는 걸 싫어한다. 자신이 잘못 키워서 그런가 싶다고. 엄마가 왜 그렇게 느끼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얼마 전 고양이 때문에 그 맘을 이해하게 되었다. 우리 집에 고양이 두 마리가 사는데, 평소에 서로 그루밍할 정도로 사이가 좋은 둘이지만, 가끔 둘이 죽일 듯 싸울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이놈!!!하고 호되게 소리친다. 그리곤 자책한다. '내가 까미한테 간식을 먼저 줘서 그런가…' 사이좋았던 둘이 그리워 울적해지기까지 한다. 엄마의 마음이 딱 이랬겠구나.


언제나 그랬듯 동생은 먼저 사과를 건넸고, 나 또한 화해를 위한 형식적인 사과를 건넸다. 서로의 예측 가능함이 구천 킬로미터 떨어진 프랑스 남부도 집이랑 별 다를 바 없게 만들었다. 멀리서도 우리는 결국 우리였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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