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한복판에서 와인을 벌컥벌컥 마셨다.
눈이 번쩍 떠졌다. 새벽 다섯 시 반이었다. 세 시간 남짓 잤을 뿐인데 가뿐하게 일어났다. 한국에서는 여덟 시간을 꼬박 자도 몸이 물 젖은 솜뭉치처럼 무거웠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창밖에서 쏟아지는 새소리 때문인지 저 누워 있기 아깝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서울에서도 나는 늘 새소리에 눈을 떴다. 다만 그것은 스마트폰 알람앱에서 설정한 Bird Sound라는 기계음이었다. 가짜에 익숙해져 있던 감각이 진짜를 마주하게 된 이 순간이 더할 나위 없이 호사스러운 사치로 느껴졌다.
프랑스 시차에 적응되어 있던 동생은 일찍 일어날 줄 알았지만 엄마도 일찍 일어날 줄은 몰랐다. 그는 비행기에서 2시간 밖에 자지 못했지만 토분 마냥 식물 에너지가 가득한 마을의 기운을 받았다며 너끈히 일어났다. 눈곱만 뗀 잠옷차림의 동양인 여자 세 명은 느릿느릿 마을 탐방을 나섰다.
어젯밤에 봤던 모습에서 색온도와 채도를 올린 것 같은 풍경이 우리를 맞았다. 정말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마을 전체가 토분 같다고 말한 동생의 표현이 딱 맞다. 벽돌로 된 건물과 곳곳에 꺼내놓은 각양각색의 화분을 보고 있자니 나 조차도 이 마을에 뿌리내린 식물이 된 듯했다.
동생은 앞장서서 우리를 마을 꼭대기에 있는 성당으로 이끌었다. 우리가 머문 아파트가 18세기 건물이었던 것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이 마을 역시 수백 년의 시간을 품고 있을 것이다. 오래된 서까래와 묵직한 돌문을 보고 있자니, 다른 세기를 걷는 기분이 들었다. 어디선가 새벽 6시 정각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렸다. 유럽에서는 도시를 가도 작은 시골 마을을 가도 정각이면 어김없이 종소리가 들려왔는데, 여행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도 이 종탑이란 존재는 무뎌지지 않았다. 수백 년 된 종탑이 일러주는 시간은 서두를 것 하나 없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 어느 문 앞에 쓰여있던 글귀
"당신이 가진 걸 부러워하게 만들기보다는, 당신이란 존재 자체로 감동을 주는 사람이 되세요! 행복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산책을 마치고 본격적인 외출 준비를 시작했다. 오늘은 바쁜 날이다. 니스 시내에서 시작해 꽃시장과 바다를 구경하고 빌프랑슈르메르를 들른 다음 에제 빌리지까지 다녀와야 하는, 여행 중 일정이 가장 빡빡한 하루였다. 아침 샤워파인 엄마와 동생은 샤워를 했고, 밤 샤워파인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서 창 밖을 바라보며 새소리를 들었다.
아침으로는 엄마가 챙겨 온 전투식량을 챙겨 먹었다. 강된장 비빔밥과 쇠고기 비빔밥. 물을 넣으면 김이 펄펄 나면서 누룽지 같았던 쌀이 밥처럼 변한다. 그럼 소스를 넣고 비벼 먹으면 된다. 여행 첫날부터 한식이 그리웠던 것은 아니고 든든하게 먹어야 할 것 같아서, 그리고 프랑스 외식 물가에 겁먹어서 그렇게 먹었다. 준비를 마치니 여덟 시 반이 넘었다. 발걸음을 재촉했다.
오르막길에 위치한 이 마을에는 정부에서 운영하는 무료 셔틀버스가 다닌다. 20분마다 마을 초입에서 출발해, 둥근 오르막길을 돌아 다시 마을 초입까지 데려다주는 44번 버스다. 유치원버스만 한 버스인데, 딱 차 한 대 다닐 좁은 도로에 정말 빠듯하게 달린다. 자칫 잘못하면 집 앞에 놓인 화분을 칠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달리는데 정작 요리조리 피해 가며 운전하는 기사님의 표정은 항상 밝다. 머무르는 동안 매일 타면서 얼굴을 익힌 기사님은 우리가 타면 활짝 웃으며 인사해 주었다.
셔틀버스를 타고 마을 초입 정류장에 내렸다. 그리고 우리를 니스 시내로 데려가 줄 버스를 탔다. 관광객들이 많지 않은 마을이라 마을 주민들이 우리를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어젯밤에 탔던 것처럼 신용카드를 찍어서 결제할 요량으로 버스에 올랐다. 한 달이라는 시간을 들여 여행 계획을 짰지만, 세세한 대중교통 이용법까지 알아가지 않았다. 신용카드가 찍히지 않았다. 결국 한 명씩 기사에게 버스카드를 구매했다. 4유로짜리 버스카드였는데 그 안에 버스를 한 번 탈 수 있는 일회권이 포함되어 있었다. 우리는 이십 분쯤 가다가 내려서 2량짜리 긴 버스에 탑승했다. 숙소가 있던 현지인 마을을 벗어나, 이제 점점 니스 같은 모습이 창가에 담겼다. 반짝이는 바닷가와 아침부터 나와 썬베드에 눕고 러닝 하며 바다를 즐기는 사람들.
버스에서 내려 마세나 광장의 아폴로신 동상을 지나 걷다가 허름한 슈퍼에서 즉석으로 오렌지 주스를 만들어주는 기계를 발견했다. 엄마가 오렌지 주스를 마셔보고 싶다고 한 것을 기억하고 한 잔 주문했다. 4.9유로라 저렴해 보이지만 한화로 하면 8천 원이나 되는 돈이었다. 너무 비싸다고 생각하는 사이 오렌지 여덟 알이 기계에 굴러 들어가 착즙 되었다. 돈 아깝다는 소리가 쏙 들어갔다.
목에 주렁주렁 카메라를 메달은 나는 누가 봐도 여행자였다. 언제가 다음이 될지 모를 가족여행인 만큼 영화 같은 기록을 남기고 싶어서, 80만 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비디오카메라를 샀다. 하지만 기록을 남기느라 순간을 즐기지 못하고 있었다. 동생이 오렌지 주스를 마시는 모습을 폰으로 한 번, 비디오카메라로 한 번, 필름 카메라로 또 한 번 찍었다. 카메라를 바꿔가며 찍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새로 산 비디오카메라의 조작이 서툴러, 그만 전원을 끄다가 방금 찍은 영상을 삭제해 버렸다. 생생한 리액션이 담긴 장면을 잃었다는 사실에 순간 짜증이 치밀었다. 그러나 그 기분 때문에 여행까지 망칠 순 없었다. 집중하기로 했다. 필름 카메라와 핸드폰만 쓰기로. 비디오는 크로스백 깊숙한 곳에 넣었다.
꽃시장으로 가는 길엔 방해물들이 많았다. 과일과 빈티지 물품 등 오만가지를 파는 작은 시장을 발견한 것이다. 거기엔 오래된 엽서를 모아놓고 파는 상점이 있었다. 엽서가 빽빽이 담긴 상자는 프랑스의 도시 이름이 적힌 인덱스들로 구분되어 있었다. 아마 그 도시로 보내졌던 엽서인 것으로 보였다. 빼곡히 담긴 엽서 중에서 손에 잡히는 엽서를 하나 꺼내 프랑스어 해석을 돌려 보았다. 1927년 편지였다.
“나의 친애하는 친구들에게,
다들 어떻게 지내고 있니?
너희의 소식을 듣지 못한 지도 꽤 오래되어, 혹여 어디 편찮은 곳은 없는지 마음이 쓰이는구나.
우리로 말하자면, 꽤 잘 지내고 있어.
크로느에서 전해 오는 소식도 좋고, 에밀네도 잘 지내는 것 같아.
조만간 그들에게도 편지를 한 통 써야겠다고 생각하는 중이야.
오늘은 성초절이라서 우리는 크레페를 만들어 먹고 있어. 너희도 크레페를 좀 만들었니? 맛은 어떤지 궁금하구나. 펠랭이 지금 한창 크레페를 굽는 중인데, 세상에나, 정말 맛있단다!
우리 셋의 마음을 담아 너희 모두에게 포옹을 보낸다.
우정을 담아, 카미유가.
1927년 2월 2일, 칸에서.”
어쩌다 이 편지들이 여기까지 오게 된 걸까. 카미유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답을 들을 수 없는 여러 질문들이 떠올랐다.
첫 번째 도착지인 니스 플라워마켓은 남대문 화훼시장을 좋아하는 내가 가장 기대하던 장소이자, 아파트 베란다에 식물을 잔뜩 키우며 죽은 식물도 다시 살려내는 식집사 엄마가 분명 좋아할 곳이었다.
남대문에서 수입꽃이라는 이유로 비싸게 받았던 꽃들이 지천에 깔려 있었다. 꽃잎이 얇고 이국적인 색을 가진 그런 꽃들. 영화제에 다녀온 동생에게 한 송이 선물할까 라는 마음이 들었지만, 종일 들고 다닐 생각에 포기했다. 꽃이 비싼 것도 한몫했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선물하지 않았던 순간을 후회한다. 약간의 돈과 불편함만 감수했다면 잊지 못할 순간을 선물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한 남자가 아내에게 꽃다발을 선물하는 로맨틱한 장면을 목격했다. 유아차에는 갓 태어난 아기가 자고 있었다. 프랑스 남자들은 낭만적이군. 그런데 아내가 유아차를 끌고 꽃다발까지 들고 있었다. 남자가 둘 중 하나를 들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이 시장은 꽃시장이란 이름이 무색하게도 꽂이 아닌 것들이 더 많았다. 상인들이 직접 만든 빵, 토마토나 마늘 바질 같이 다양한 부재료를 넣고 절인 올리브, 사람 허벅다리만한 햄을 팔고 있었다.
우리는 쏘카라는 니스 전통 병아리콩 전병 같은 요리와 뽐므, 토마토 치즈빵, 납작 복숭아를 사서 해변가로 나섰다.
니스의 바다는 기대보다 평범했다. 모래사장이 아니라 자갈해변이라는 점만 빼면 우리나라랑 비슷했다. 연한 바닷물 색은 제주도에서 본 듯했다. 오히려 사진이 더 잘 나왔다. 필름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인화해 보니 요시고 사진이 따로 없었다. 내가 눈으로 본 풍경보다 이국적이고 아름다웠다.
아직 봄 날씨라 수영하기엔 쌀쌀했는데 수영복만 입고 입수하는 사람도 왕왕 있었다. 니스까지 온 이상 발이라도 담가보기로 했다. 그래서 바지 밑단을 접은 양말을 벗고 맨발을 담갔다. 서양인들이 아무렇지도 않고 물놀이하길래 수온이라도 따듯할 줄 알았는데 저 사람들은 인간이 아닌가 보다 싶을 정도로 물이 차가웠다. 동생도 합류했다.
엄마는 물을 무척 싫어한다. 저 멀리 빠져있는 엄마에게 가까이 와서 파도라도 보라고 재촉했다. 엄마는 표정을 찌푸린 채 다가왔다. 자갈을 빠져나가며 부서지는 파도의 소리가 좋았다. 바로 그때, 과장을 보태 집채만한 파도가 밀려왔다. 우리가 피할 새도 없이 빠르게.
우리 셋은 무릎까지 젖었다. 문제는 엄마만 양말과 신발 모두 신고 있었다는 것이다. 트렁크 수영복을 입은 남자가 우릴 보고 설핏 웃었다.
우리는 예정에 없던 태닝을 하게 됐다. 이 작렬하는 지중해 태양이 엄마의 양말과 신발을 모두 말려주길 바라며 자갈 위에 양말을 펼쳐놓고 운동화도 쫙 벌려 놓았다. 하지만 당시 시간은 아침 열 시, 지중해 태양이 본격적으로 출근하기 전이었다. 마를 리 없었다. 큰 기대 없이 그냥 누워서 지나다니는 비행기와 해수욕을 즐기는 프랑스 사람들을 구경했다.
이 여행의 독재자, 아니 가이드인 나는 누워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괜히 마음이 급해졌다. 그래서 둘을 일으켜 세우고 다음 행선지인 빌프랑슈르메르로 출발했다.
정류장을 가기 위해 아까 봤던 시장을 다시 지나는데, 상점들이 하나둘 문을 닫고 있었다. 이제 폐장하는구나 싶어 그냥 지나치려는데 엄마가 체리를 파는 매대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거기엔 중년 아주머니 두 명이 봉투에 체리를 담고 있었다. 엄마는 폐점하면서 남은 체리를 무료로 가져가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고는 한 아주머니에게 바디랭귀지로 말을 거는 것이었다. 웃으면서 비닐과 체리를 번갈아 가리키는 엄마를 보더니, 프랑스 아주머니는 직접 비닐봉지를 하나 꺼내 엄마 손에 쥐어주고 손으로 체리를 집는 시늉을 했다. 엄마는 아주 자연스럽게 그 옆에 서서 성한 체리를 솎아냈기 시작했다. 내 눈엔 전혀 보이지 않았던 장면이 엄마에게는 보였던 모양이다. 기가 막히게 공짜 체리를 찾아냈다. 엄마는 진한 빨간색의 체리를 거의 한 근 골라냈다.
키만큼 큰 코에 부슬거리는 머리를 가진 남자 사장님이 엄마의 체리 채집이 끝나길 기다리고 있는 나에게 다가오더니 갑자기 체리 속에서 체리블라썸 꽃이 달린 가지를 하나 찾아 건넸다. 갑작스러운 고백에 나는 연신 메르시를 외쳤다. 엄마가 성의를 표하려 지갑을 열자, 그는 그냥 가라는 듯 손사래를 쳤다.
갑자기 간식이 한가득 생겼다. 엄마는 바로 한 알 맛봤다. “맛있다. 너네도 먹어봐” 나는 이 상황이 그저 웃기고 재밌었는데 동생은 좀 부끄러운 눈치였다. 아무렴 어때. 좀 부끄러워도 오래 기억에 남을 추억을 만드는 편이 더 낫다. 체리는 손에 끈적거리는 과즙이 묻어도 멈출 수 없을 만큼 달고 시원했다.
체리 씨를 한 손으로 훔치며 다시 정류장으로 향하다가 너무 더워 잠시 성당에 들어갔다. 어디를 가든 오래된 성당이 널려 있다는 점은 프랑스에게 가장 부러운 점이었다. 누구나 잠시 멈췄다 갈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주는 묵묵히 관대한 공간. 이곳이 니스 구시가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도시를 떠날 때쯤 되었을 때의 일이었다. 안 가본 줄로만 알고 아쉬워했는데 이미 지나쳐온 공간이었다.
니스 버스 체계에 나름 익숙해진 우리는 교통카드와 연결된 앱으로 티켓 3개를 구매한 다음 버스 리더기에 태그했다. 그런데 낯선 삡 소리와 함께 x 표시가 떴다. 식은땀이 났다. 다시 충전해 보고 카드를 바꿔도 봤는데 계속 X 였다. 내려달라고 해야 하나. 우왕좌왕하는 사이 어느새 버스 안은 빌프랑슈르메르로 가는 관광객들로 넘실거렸다. 기사님은 우리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지만 엄마를 데리고 하는 여행에서 부정을 저지를 순 없다는 생각에 어쩔 수 없이 하차했다. 다행히 원래 목적지보다 한 정거장 먼저였다. 그 정류장에서 내린 건 우리밖에 없었다.
다행히 5월 말 니스의 날씨는 덥지도 춥지도 않은 완벽한 날씨였다. 지중해의 따뜻한 바람이 살랑댔다. 이십 분을 걸어야 했지만 우리는 불평 대신 아까 버스에서 있었던 일의 스릴을 추억하며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 멋진 담벼락을 만나 한참을 앉아서 먼바다를 바라봤다.
빌프랑슈르메르에 다 달았을 무렵, 엄마가 화장실을 가고 싶다고 했다. 급하지 않다며 평화로운 척했지만 딱 봐도 딸들을 걱정시키기 싫어서 하는 거짓말이었다. 엄마 입에서 화장실이란 단어가 나온 순간부터 두 딸은 화장실 찾는 데 혈안이 됐다.
한국에서 추천받아서 설치한 Flush라는 화장실 찾기 앱에서는 근처에 무료 화장실이 있다고 나왔지만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무용지물이었다. 이리저리 배회하다가 친절해 보이는 젤라또 가게 사장님이 부둣가 근처 공공 화장실을 알려줘 겨우 갔는데, 여자 남자 공용이었으며 ‘끔찍’이란 단어와 딱 어울리는 곳이었다. 화장실계의 악몽이랄까나.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프랑스에는 공공 화장실은 보통 공용이며 상태가 안 좋다.)
급한 불을 끈 우리는 카페에 갔다. 아니 카페에서 멀쩡한 화장실을 쓰면 됐을 텐데 우리는 왜 그 고생을 했던 것일까. 여행에서는 합리적인 사고가 가끔 고장 난다.
나는 가장 저렴한 에스프레소를, 엄마는 플랫화이트 동생은 블랑 맥주를 시켜놓고 한참을 떠들었다. 난생처음 온 동네에서 화장실을 찾느라 신경이 곤두섰던 우리는 서로 하소연하며 조금씩 마음을 풀었다.
그리고 아까 공용 화장실을 알려준 젤라또 가게로 돌아가 은혜를 갚았다. 엄마는 그가 알려준 화장실이 아주 별로였으므로 굳이 은혜를 갚을 필요가 있겠냐고 했지만, 절체절명의 순간에 도움을 준 그의 친절을 지나칠 수 없었다. 3.5유로짜리 피스타치오 젤라또를 시켰다. 그땐 몰랐지만 이번 여행에서 먹은 젤라또 중 가장 맛있는 젤라또였다.
에제 빌리지까지는 버스 대신 택시를 타기로 했다. 택시 기사는 자신을 니스 토박이라고 소개했는데 엄마가 한국에서 타는 차와 같은 현대 하이브리드 차량을 몰고 있었다.
“위 올소 해브 니로 인 사우스코리아”
그는 급격히 반가워했다. 그리고 위태롭게 한 손 운전을 하며 니스의 명소와 프랑스어를 알려주었다. 엄마 때만 해도 학생 때 배우는 제2외국어가 프랑스어였다고 했다. 에뚜알, 쥬마펠 같은 기본 단어들을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는 엄마는 기사와 드문드문 프랑스어로 대화를 나눴다.
에제 빌리지는 13세기에 로마의 침략을 피해 깎아지는 듯한 절벽 위에 지어진 마을이다. 돌로 지어진 집들이 즐비해 중세시대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 오늘 가장 기대했던 곳인데 마을에 들어서자 기대는 금방 실망으로 바뀌었다. 옛 정취보다는 관광객을 상대로 한 상점들만이 빼곡했다. 전주 한옥마을이라고 해서 갔는데 탕후루 뻥튀기 아이스크림 십 원 빵을 파는 한옥들만 즐비한 느낌이랄까. 가짜로 꾸며진 관광지 같아서 실망이 컸다. 차라리 숙소가 있는 카뉴쉬르메르가 더 진짜처럼 느껴졌다.
에제 빌리지의 꼭대기엔 선인장 정원이 있는데 니스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기 때문에 전망대로도 유명하다. 인당 8유로를 내야 하는데 감흥이 있을까 싶어 갈까 말까를 고민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폐장 시간이 지나 들어갈 수 없었다. 우린 늘 할 필요도 없는 고민을 하면서 살아간다.
한 바퀴를 돌며 구경을 마친 다음 버스 타러 정류장으로 가는 길에 마트에서 들렀다. 동생은 엄마 몰래 점원에게 담배를 파느냐고 물었다. 아쉽게도 프랑스는 마트가 아닌 타바라고 하는 담배가게에서만 담배를 팔기 때문에 살 수는 없었다. 대신 달달한 과자와 음료를 두어 개 샀다.
에제에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은 복잡했다. 에제에서 버스를 타고 니스 리키에역으로 간 다음, 기차를 타고 숙소가 있는 역에서 내려걸어야 했다. 한 시간 반 정도 걸리는 여정이었다. 한국에서라면 시간만 오래 걸릴 뿐 어려운 경로는 아니었겠지만 낯선 도시에서의 환승은 사람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휴대폰 배터리도 거의 다 닳아가고 있었다.
버스를 타고 니스 리키에역 근처에서 내리는 건 성공했는데, 문제는 8분 뒤 출발하는 기차를 놓치면 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점이었다. 역까지 걸어서 5분 정도 걸리기에 동생이 먼저 뛰어가 기차표를 예매하고 엄마와 나는 빠른 걸음으로 기차역에 가기로 했다. 동생을 먼저 보낸 엄마는 마음이 급한지 자꾸 전속력으로 뛰려고 했다. 옆에서 나는 엄마를 계속 진정시켰다. “엄마 괜찮아 우린 빠른 걸음으로만 걷기만 하면 돼.” 엄마는 물가에 자식이라도 내놓은 얼굴이었다. 동생도 이십 대 후반인데 말이다. 와중에 엄마는 피곤함으로 얼굴이 점점 흙빛으로 변해갔다.
기차를 놓칠 새라 나와 엄마를 뒤로한 채 먼저 뛰어갔던 동생은 티켓 발권 기계와 씨름하고 있었다. 당연히 터치 스크린인 줄 알았던 티켓 창구는 난생처음 보는 다이얼로 되어있었다. 90년대 다이얼 전화기처럼 생겼는 데 사용법이 그 어디에도 쓰여있지 않았다. 기차가 오려면 3분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나는 이미 다음 기차를 탈 생각에 마음을 접고 손을 놓고 있었다.
순간 동생은 혼자 고군분투를 멈추고 옆에 있던 프랑스 십 대 아이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띄엄띄엄 영어와 바디랭귀지로 예매가 안된다는 걸 호소했고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은 마치 자기 일처럼 나섰다.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프랑스어로 뭐라 뭐라 이야기하더니 할인 혜택까지 적용해 발권을 도와주었다.
그제야 생각했다. 내가 아까 그 상황이었다면, 그 아이들이 도와줄 수 있을 거라고 애초에 기대하지 않고 말조차 걸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한 시간을 꼼짝없이 기다려야 했겠지. 나는 늘 동생을 현실 감각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다. 이성의 세계에 사는 나는 계획에 약하고 계산할 줄 모르는 동생을 늘 나무랐다. 하지만 오늘 동생이 자기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장면을 처음으로 목도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동생을 조금 다른 눈으로 보게 됐다.
역에서 내려서 숙소까지 걷기로 했다. 유럽여행 이틀 차, 애매한 버스 편에 치여 이제 삼십 분 걷기는 예삿일이었다. 와인과 치즈를 사기 위해 아무 마트나 들렀는데 하필이면 중동 마트였다. 냉장고를 보니 후무스와 중동 음식만 가득했다. 그래서 찾는 재료가 없어서 아쉽다는 연기를 하며 자연스럽게 빠져나왔다. 그리고 그다음에 나타난 작은 구멍가게로 들어갔다. 엄마가 고른 2유로짜리 토스카나 화이트 와인과 치즈, 그리고 햄을 샀다. 시원한 와인병을 들자 참을 수 없는 갈증이 몰려왔다. 하루 종일 긴장했던 탓이었다. 엄마 눈치를 보다가 참을 수 없어 뚜껑을 열어버렸다. 그리고 길 한복판에서 와인을 벌컥벌컥 마셨다. 이게 웬일. 만 원도 되지 않는 와인인데 이렇게 맛이 좋을 수가. 물처럼 개운하고 샤인머스켓처럼 달았다.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짱 맛있어”하고 외치자 두 여자도 손을 내밀었다. 그리하여 우리 세 모녀는 길에서 병 와인을 사이좋게 나눠마시며 집으로 향했다.
하루 종일 만 육천 보를 걷고 대중교통을 다섯 번이나 탔지만, 정작 제대로 된 저녁 식사는 하지 못했다. 배가 고프진 않았지만 그냥 넘기기엔 아쉬운 하루였다. 오늘을 이대로 끝내고 싶지 않았던 두 딸은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침대에 누워버린 엄마에게 동네 언덕에 있는 바에 가서 한잔 할 것을 건의했다. “너희끼리 갔다 와~ 엄마 너무 피곤해.” 여행 초반부터 엄마를 배제할 수 없었던 우리는 열심히 엄마를 설득했고 결국 엄마는 따라나섰다.
여행 동지들끼리 화합을 다지는 시간이었다. 마을 꼭대기에 있는 레스토랑에 가서 생선 한 마리와 맥주, 글라스 와인을 마셨다. 손님 중 동양인은 우리 가족이 유일했다. 뭐 제대로 먹지도 않았는데 십만 원 가까이 나왔다. 동생과 작은 말다툼이 있었지만 여행 중인만큼 서로 금방 사과했다.
두 시간 동안 이어진 와인 회동의 결론은 이거였다. 이번 여행을 통해 너무 다른 우리 셋을 서로 더 이해해 보자고. 그래서 나는 제안했다.
“우리 셋이… 맞담배를 펴보는 거 어때?”
동생은 웃으며 찬성했고 엄마는 질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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