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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 예술 (contemporary art)이란?
‘아름다움’이라는 판단의 기준을 내다 버린 예술작품.
‘(스펙터클한) 볼거리’가 없어진 예술작품.
예술을 공부하고 창작하는 사람들끼리 지적 유희를 즐기기 위해 만든 그들만의 리그.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예술이라 칭해지는 대상에 관한 비 관심자들의 시선이다. 아름답지도 않고, 특별히 볼 것도 없고, 그래서 누군가가 ‘이거 예술작품이야’라고 소개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만한 그런 대상들이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유통되고 있다. 이러한 대상들을 기술(테크네, arts)이 아닌 여전히 특별한 의미를 지닌 예술(Art)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뭘까?
1957년 마르셸 뒤샹은 ‘예술작품은 관람자를 통해 만들어진다’라고 선언했다. 60년대를 시발점으로 한 동시대 미술은 이 시대적 사명을 부여받아 최대한 많은 관객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끌어들이기 위한 형식적 실험에 착수했다. 천재적 예술가가 만든 소수의 귀족을 위한 천상의 작품이 아닌, 대중들이 자신들의 일상을 주제로 한 작품에 개입할 수 있게 제작된 작품은 예술의 민주화로 여겨졌다. 예술적인 가치판단은 논외로하고, 사회적으로 유의미하며 지적 호기심을 만족시켜줄 만한 다양한 형식의 작업들이 ‘참여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제작된다. 예술 앞에 ‘참여’라는 단어를 덧붙인다면, 난해하고 곤란한 형이상학이 아니라, 누구나 개입할 수 있으며 좀 더 쉽고 친근한 예술이라 느껴지지 않는가?
참여예술은 예술가와 그 후원자에서 관람자와 그들의 맥락으로 옮겨진 방점에 가장 부합하는 예술이다. 참여예술의 경계는 모호하다. 어떠한 예술가도 나는 '참여예술 작업을 하는 예술가다'라고 선언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또한 엄밀히 말해 모든 예술작품은 미래의 관람자들을 고려한 채 제작되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작품에 대한 관람자의 신체적 개입을 허용하고 때로는 관객의 참여자체를 목적으로 제작하는 작업들을 참여예술이라 지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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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예술의 주체인 관람자(spectator)는 라틴어 바라보다는 말에 어원을 두고 있다. 관람자의 존재는 관음증적 훔쳐보기를 뜻하기도 하고, 눈앞에 펼쳐지는 일에 대한 목격자로서 사건에는 개입하지 않는 수동적인 시각적 행위를 하는 자이다.
한편, 에티엔 수리오는 자신의 미학 사전에서 <스펙터클을 구경한다는 것은 존재에 참여하는 행위이다. 이는 참여의 시선이다. 즉, 공동체(communaté)에 들어가는 것이다. 재현의 물질적 조건들은 변했지만, 스펙터클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그 본질은 공동성을 위한 창조이다. (Produire pour une collectivité.) ‘바라보기’라는 미적 태도는 스펙터클을 창조하며, 관람자가 존재할 때에만 어떤 사건은 스펙터클이 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즉, 관람자는 일종의 사회적인 행동을 수반한다.
수동적인 목격자와 적극적인 참여자 사이 어딘가에 관람자가 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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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후반부터 후기 구조주의자들과 정신분석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우리는 이미, 타인의 시선에 의해 구성되는 존재임을 인식하게 된다. 이러한 정신분석학의 방법론들이 과거에 소거되었던 예술에서의 '주체' 문제를 수면으로 끌어올렸으며 예술을 구성하는 다양한 층위에 대해 고민하게 했다. (제도비판론, 하위주체의 문제, 작품분석에서 부차적으로 여겨졌던 예술가의 삶과 사상에 대한 주목 등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을 비평하고 해석하는 데 있어서 ‘관람자’는 늘 부차적인 존재였다. 관람자끼리의 상호작용에 대한 이론을 내세운 비평가들도 결국 예술작품의 형식적 요소나 전시방법, 예술가의 배경 등에 주목하였을 뿐이다.
관람자를 직접적 주체로 상정한 비평들은 90년대 와서야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는데, 논쟁적인 니콜라 부리오의 관계미학 논의나 자크 랑시에르의 해방된 관람자, 영미권에서는 클레어 비숍의 반목과 갈들 담론을 대표주자로 꼽을 수 있겠다. 이들이 주장하는 바, 예술실천의 영역에서 참여 예술이라 불릴만한 작업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음은 사실이다. 다만, 이 참여라는 형식이 예술의 제작과 그 결과에 있어 '관람자의 정체성, 혹은 자의식'과는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아직 남아있다. 즉, 관람자가 의식적으로 혹은 선택적으로 작품앞에서 하는 행동이 예술작품에 어느정도까지의 영향을 주는가? 라고 질문해볼 수 있다.
이 일련의 이야기는 예술이라는 영화의 모든 장면에 존재하고 있었지만 한 번도 얼굴을 내밀지 않았던 유령들. 관객에 관한 것이다. 예술작품에 대한 비평이나 미술사 연구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은 예술작품 읽기를 기초로 한다. 작품의 형식을 통해 관객이 어떻게 드러나는가, 참여 예술에서 관객의 참여가 가능한가, 예술작품과 공공성의 관계에 관한 두서없는 질문들이 뒤 따라오는 일련의 글들을 쓰게 만든 최초의 질문이다.
Table of contents
0. 관람자의 정체성, 그 곤란한 시작
1. 참여예술의 드라마틱한 장면들
1.1. 시프리앙 가야의 폐허-제국주의를 비판하는 소비주의
1.2. JR, 예술이 세상을 구원한다? -프로파간다의 또 다른 이름
1.3. 토마스 허쉬혼, 마을미술은 성공할 수 있을까?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