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사고에 영향을 미친다.
요약
1. 유럽 언어에는 한국어와 다르게 성별 명사가 있다.
2. 성별 명사를 통해, 언어가 사람의 사고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 일상 속에서도 우리의 사고에 영향을 주기 위한 언어 표현이 많다는 것을 인지해야 하며, 잘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올해 1월, 계절학기를 프랑스에서 수강할 기회가 생겨 유럽을 다녀올 기회가 생겼다. 덕분에 겸사겸사 유럽 여행을 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유럽 여행 중에 느낀 생각과 감정들 중에 글로 남기고자 하는 글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모든 생각을 글로서 정제하는데 어려움을 느꼈고, 어느덧 유럽을 다녀온 지 2달이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유럽 여행 중에 가장 흥미로웠던 점, 단 한 가지에 대해서 고민을 해보았다. 가장 중요한 것 이외에는 중요하지 않다고 하지 않던가. 그런 의미에서 개인적으로 제일 흥미로웠던 것은 유럽에는 남성 명사와 여성 명사가 있다는 것이다.
남성 명사? 여성 명사?
한국어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많은 국가의 유럽의 언어에서는 남성 명사와 여성 명사를 찾아볼 수 있다. 명사의 성별에 따라 사용되는 관형사나 동사가 달라지는 등 문법적으로 다르게 사용된다. 재밌는 점은 남성 명사와 여성 명사가 항상 생물학적 성별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럽 국가 언어를 배울 때 많이들 헷갈린다고 한다. 예를 들어 '열쇠'는 남성 명사일까, 여성 명사일까? 한국어를 사용하는 우리는 이러한 질문조차 떠오르기 어렵다. 반면 독일에서 열쇠는 남성 명사이고, 스페인어에서 열쇠는 여성 명사이다. 그렇다면 '여자아이'는 당연히 여성명사일까?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 '여자아이'는 여성 명사지만 놀랍게도 독일에서는 중성명사로 사용된다. 즉, 성별 명사는 직관적으로 분류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일종의 언어별 규칙처럼 사용되고 있다.
성별 명사가 유럽 국가 별로 다르다는 점은 그 자체로도 신기하지만 그 명사에 대한 인식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 '언어 상대성 실험'으로 알려진 Baroditsky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열쇠'를 남성 명사로 인식하는 독일인들은 열쇠와 Hard, Heavy와 같은 남성향적인 단어를 떠올렸고, 반면 '열쇠'를 여성 명사로 인식하는 스페인인들은 Little, Lovely, Tiny와 같은 여성향적인 단어를 떠올렸다. 다른 예시인 '다리(bridge)'에 대해서도 비슷한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데, 독일인들은 Beautiful, Elegant와 같은 여성향 단어를 떠올리는 반면, 스페인인들은 Big, Dangerous, Strong과 같은 남성향적인 단어를 떠올렸다. 성별 명사가 없는 한국인으로서는 신기할 따름이다.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날까?
흔히 우리는 '속으로 말하는 방식'으로 생각을 한다. 즉, 우리 생각을 구체화하는 도구로서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어를 사용한다면 한국어로 생각하고, 독일어를 사용한다면 독일어로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어느 언어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우리 생각을 표현하는 방식에 영향을 받으며, 이는 곧 생각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생물학적 성과 관련 없는 명사들임에도 특정 성별 명사로 분류되는 동사와 관형사와 묶어 사용되다 보니 결국 사고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이러한 언어의 차이가 국가별 문화의 차이에도 영향을 미쳤으리라 생각된다.
언어가 사고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고 세상을 보면 조금 달라 보인다. 생각보다 많은 영역에서 언어를 신중하게 사용하고 있음을 체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굳이 예시를 들지 않겠지만 정치, 사회적인 영역에서는 언어를 주제로 작은 전쟁을 펼치는 듯하기도 하다. 실제로 언어의 사용도 넛지(사람들의 선택을 유도하고 개선하기 위해 간접적인 방식으로 영향을 끼치는 것)의 일종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를 더 자세히 설명하기 위해 다음 몇 가지 특별한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토스의 에러 메시지는 특이하다. 은행이 점검 시간이라거나, 오류가 발생해서, 인증이 잘 안 되어서 잠시 후 다시 시도해 달라는 등의 언어를 사용한다. 이러한 UX는 무의식적으로 토스의 문제로 발생한 오류는 아니라는 이야기가 사용자에게 전달되게 한다. 물론 실제로 토스의 잘못이 아닐 수도 있다. 반면 다른 서비스들의 경우 공포스러운 언어(문제가 생겼다, 무엇이 잘 안 된다 등)를 사용하거나 과도하게 사과를 하는 등 서비스의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다.
결국 유저가 서비스가 좋게 느끼도록 가스라이팅(?)을 해야 하는 것일까? 사용자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유도하기 위한 언어를 고민하는 것은 사용자 경험을 증대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어디까지가 허용되어야 하는 수준인지는 대표자의 몫이다. 물론 악의적인 목적으로 사용자를 헷갈리게 하기 위한 언어 선택은 당연히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토스의 에러 메시지는 악의적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핀테크 어플로서 토스가 추구해야 하는 가치 중 하나는 안심하고 쓸 수 있는 어플이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기존 은행 어플들이 고객을 위해 보여주는 여러 사용자 동의, 에러 메시지는 오히려 사용자를 불안하게 했다. "내가 동의한 약관은 괜찮은 걸까?", "방금의 인증으로 인해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등의 생각이 들게 한 기존 은행 어플들은 사용자의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그에 비해 토스는 직관적이고 사용자 친화적인 언어로 사용자를 안심시켰으며, 실제로 기존 은행 어플들처럼 안전했다.(어쩌면 더)
사용자 입장에서 리뷰를 다는 일은 번거롭다. 좋거나 불만족스러운 경험을 서술하라는 리뷰는 무엇을 적어야 할지 마땅히 떠오르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리뷰 시스템에 가장 많은 고민의 흔적이 엿보이는 곳은 아무래도 배달 어플들이다. 전과 다르게 '음식은 어땠는지', '추천할 만한지'라는 경험 중심적인 언어 사용은 사용자로 하여금 부담감 없이 리뷰를 작성하게끔 도왔다. 단순히 표현하는 언어를 바꾸었을 뿐인데 훨씬 사용자가 부담을 적게 느끼는 사례이다. 또한, 단순히 왜 좋았는지 나빴는지 묻는 것이 아니라, 맛이나 양, 그리고 배달 등의 평가하기 쉬운 항목을 제공한 것도 응답률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었다.
언어가 사고에 영향을 미치는구나
앞서 성별 명사 실험부터 토스와 배달의 민족, 요기요 서비스에서 언어 사용(UX writing)에 관한 여러 예시를 확인하였다. 이 외에도 사실 세상에 우리에게 언어는 정말 큰 영향을 다양한 분야에서 끼치고 있다. 그래서 종종 특정 언어나 표현이 의도성을 가지고 나에게 접근하고 있다고 느낄 때가 많다. 이러한 세상에서 개인 단위인 우리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첫 번째는 언어가 사고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인지하고, 언어로 표현하고 표현되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사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언어에 관한 문제는 심도 깊게 고려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스타트업에서 평등적인 조직 문화를 위한 닉네임 사용이나 호칭 통일에 대한 결정이 불러올 장, 단점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한다. 또 창업 아이템을 표현하는 언어도 더욱 신중하게 고민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같은 아이템임에도 어떠한 언어로 표현하느냐에 따라 이미지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올바른 언어를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글쓰기나 UX에 언어가 많이 사용되는 것은 물론, 본질적인 말하기에도 언어가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예를 들어 평소 모호한 언어 사용이나 추측성 언어의 과도한 사용은 자칫하면 자신감이 없거나 말하고자 하는 내용의 신뢰도를 낮출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