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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냇물 Mar 12. 2023

초행길


처음 가는 길은 설레기도 하지만 걱정과 서투름이 함께한다. 처음 가는 산을 오를 때도 그렇고 미지의 여행지를 갈 때도 그렇다.     


인생 여정은 어떨까? 시인 프로스트는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며, 사람들은 남들이 적게 간 아름다울 것이라 여겨지는 길 즉 초행길을 선택한다고 가지 않는 길에서 노래하였다.  

   

초행의 길에서 겪은 경험은 오래 기억에 남는 추억이나 씁쓸한 기억이 되기도 하지만 인생의 자양분이 될 수 있다.


곱이곱이 넘어왔던 내 인생에서 제일 선명했던 초행길을 돌아본다.     


고교 2학년 여름방학 때 폭행사건에 연루되어 법정에 서고, 감사하게도 훈방이 되었다. 그 사건을 계기로 정신 차리고 공부에 더 집중한 결과 사관학교를 갈 수 있었다.    

  

대학을 공짜로 다닐 수 있고 장교로 군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게 강원도 시골 뜨기인 나에겐 너무 매력적이어서...     


입학 전 4주간의 훈련이 있었다. 소위 군인 만들기 과정으로 가혹하기가 이를 데 없다. 일명 beast training이라 불린다.       


난생처음 전투복을 입었고, 오리엔테이션을 해주던 첫날은 긴장 속에 부드럽게 넘어갔으나 다음날 6시 기상 소리와 함께 시작되는 훈련은 정신없었다. 공포의 분위기 속에서 4주간 진행된 지옥훈련이었다.   


하루하루가 생경하고 고통스러웠으나 가장 기억에 남는 두 경험이 있었다. 직각식사와 거짓말이었다.    

  

직각식사는 장교가 될 사관들의 올곧음을 상징하는 행동을 훈련시킬 목적으로 행하여졌던 것으로 보이나 나에겐 큰 문화충격이었다.      


직각보행도 했는데 직각으로 걷는 건 그래도 이해가 되었는데 직각으로 숟가락 질을 하는 건 너무 불편하였다. 반찬을 떨어트리거나 국물을 흘리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식사 때만 되면 이 식탁 저 식탁에서 신입생도들이 식사 자세 불량을 복창하며 밥을 못 먹고 아까운 식사시간을 보내는 공포스럽고 우스쾅스러운 광경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 당시는 근무생도에게 절대복종해야 한다는 생각과 밥을 기필코 먹어야 한다는 생존본능에 무조건적으로 반응했었지만 두고두고 의문스러웠던 기억이다.     


덕분에 정량의 밥을 놓치지 않기 위해 초스피드로 밥을 먹는 식습관은 아직까지 못 고쳐 집사람으로부터 종종 눈총을 받는다. 습관은 참 무서운 거다.     

 

이 생경한 훈련은 매사를 올곧게 직진하며 무조건적 복종을 강요하는 군인정신 함양을 위한 것이라 하나 군의 간부를 훈육하는데 참으로 부질없고 안타까운 관행으로 없어져야 할 군대문화라 생각한다.   


두 번째는 거짓말이었다. 거짓말을 하면 사관생도 도덕률을 위반하는 것으로 퇴교심사 대상이 된다.  

    

3주 차 힘든 10km 구보시 대열후미에서 정신없이 뛰고 있는데 화이버 하나가 대열 속으로 굴러들어 와 부지불식간 내 발에 부딪혀서 의도치 않게 차게 되었다.     

 

화이버는 훈련을 지도하는 근무생도의 상징과 같은 신성한 장비였다. 감히 신입생도가 그것을 차다니....   

   

구보를 인솔했던 근무생도는 우리 소대를 집합시켜 놓고 자신의 화이버를 찬 신입생도를 찾았다. 그는 평소에도 우리를 가혹하게 때리고 혹사시키는 악마와 같은 자로서 우리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나는 예상되는 그의 만행을 피하고자 자수의 손을 들지 않았다. 그 모임 후 별도로 호출되어 심문에 어쩔 수 없이 시인을 하니 창고로 데려가 사정없이 때리기 시작했다. 학교 때 복싱을 했다는 그의 펀치는 타이슨의 주먹 같았다.     

 

내 평생 얻어맞은 것 다 합친 것의 몇 배를 맞았다. 거짓말 안 하겠다고 복창하며 울었고, 고통을 참으며 서러워서 울었다. 다행히 퇴교는 되지 않았고 졸업하여 임관반지를 끼게 되었다.     


그 악몽 같았던 화이바 사건 덕분에 평생 믿을 수 없는 사람이란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타이슨 선배께 감사하다!       


오늘 뉴스에 해사 임관식이 보도된다. 곧 야전으로 초행길을 떠날 풋풋한 초임장교를 보며 그때를 생각한다. 거기서 만나는 인연이나 난관들이 때론 인생의 나침반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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