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2]대중(對中) 독립문?

중국으로부터 자주독립

by 시냇물

파리개선문은 에펠탑과 함께 프랑스를 대표할만한 상징건축물이다. 파리를 찾는 관광객들 대부분이 들리는 곳이기도 하다.

에뚜알 광장에 '승리의 아치' 란 이름의 이 개선문은 나폴레옹이 이탈리아 원정 시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을 보고 몹시 탐이 났으나 도저히 가져올 수 없자 만들도록 지시해 건축되었다 한다.

***에뚜알 광장 : 12개 거리가 부채꼴 모양으로 뻗어있어, 지도 위에서 빛나는 '별'모양으로 보이기에 이곳을 '별(에뚜알)의 광장'이라 불렸다. 현재는 샤롤드골 광장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그러나 건축을 지시한 나폴레옹은 생전에 완공된 이 개선문은 볼 수 없었고, 유배지에서 사망한 뒤 그의 시신이 개선문을 통과하였다 한다.


이 같이 세계 곳곳에는 전승을 기념하거나 국왕이나 구국 영웅의 권위와 영광을 위해 개선문들이 만들어져 있는데 파리개선문이 가장 유명하다.


우리나라에도 있다. 파리 개선문을 본떠서 만들었다는 서대문구에 위치하는 독립문이다.


건축 목적이 '독립'이라는 것이 조금 이채로웠다.


청일전쟁 후 중국(청나라)의 간섭에 벗어난 것을 계기로 자주독립의 결의를 다짐하려고


독립협회(서재필) 주관으로 범국민적 호응 속에 착공 1년 만인 1897년 11월 20일에 완공하였다.

*** 전쟁 후 일본과 청나라 간 체결된 시모노세키 조약에 '청은 조선이 완전 자주독립국임을 인정'


독립문은 중국사신을 영접하는 사대외교의 상징적 장소라 할 수 있는 영은문을 헐고 그 자리에 건립해 의미를 더 해 주었다.

현재 독립문 바로 앞에 주초석만 남아있는 영은문은 모화관 앞에 세웠던 문으로, 새 임금이 즉위한 후 명나라 사신이 조칙을 가져오면 임금이 그를 직접 큰 절을 하며 영접하던 장소다.

국빈을 맞는 영빈관을 모화관(=중국의 문물이나 사상을 우러러 사모함)이라 하고 그 입구의 영접장소를 영은문(=은혜로운 분을 맞이하는 문)이라 명명했으니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참 부끄럽기 그지없는 장소다.


이 독립문은 중국(청나라)으로부터 자주독립을 하려는 국민의 의지를 표현한 나름의 상징물이지만 석연치 않은 면도 있다.


1. 조선 500년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던 중국으로부터 자주를 선언했지만 서구열강(일본도 편승)에게 무방비로 노출 및 간섭이 시작됨으로 자주독립의 의미 퇴색


*** 일본이 청일, 노일전쟁에서 승리 후 노골적으로 조선 침탈 시도, 미국은 일제의 식민통치 동의


2. 독립문의 현판 글씨가 이완용의 글씨라는 주장이 있다는 점(1924년 동아일보 풍문기사와 여기에 뚜렸한 반박이 없음)


3. 1979년 성산대로 설치 시 최초위치에서 서북쪽으로 70m 떨어진 지점으로 옮겨서 역사적 의미 퇴색

그러나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자주독림의 기치를 들고 독립협회 조직, 독립문 건립, 독립신문 제작 등 활동을 한 독립협회는 나름 평가받을만하다.


현재는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을 포함해 '서대문 독립공원'으로 깔끔하게 조성되어 시민으로부터 사랑받는 장소로 다시 태어났다.

1908년 건축된 서대문 형무소는 일제에 항거하는 애국자들이 투옥되었고, 해방 후에는 서울구치소로 개칭하여 주로 시국사범들이 수감되었다. 잘 알려진 수감자는 백범 김구선생과 유관순 열사가 계시다.


위치도 그렇고 초라해 보이는 개선문 같은 작은 독립문을 보며 '저게 독립문이야!' 하며 무덤덤 지났지만 그 문 바로 앞 영은문 주초석의 사연을 알게 되니 참 새로워 보인다. 대견해 보인다.


이 독립공원은 나라가 힘이 없던 시절 중국에 사대하고, 일본에 식민통치를 받던 아픈 역사가 생생히 남아있는 곳이다.


자녀들과 함께 찾아 역사교육하기에 안성맞춤의 장소다.


독립문에 대한 글을 정리하다 재미있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나라 운명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던 미일중소 4세력중 미국, 일본, 중국에 대한 국민들의 저항의식이 꽤 있었다. (러시아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낮음)


다소 주관적이지만 이명박 정권시절 반미 에너지가 강하게 분출되었고, 문재인, 윤석열 정권시절에는 반일 에너지가 만만치 않게 분출된 것 같다. 화풀이도 꽤 된 느낌이다.


***우리민족의 한풀이 문화라할까 그러한 정서가 있음은 각종 연구로 증명


그럼 중국에 대해서는 어떤가?


한사군 시절부터 6.25 전쟁시까지 무력에 의한 압력, 문화적 영향력은 우리에게 참으로 지대했다.


그러던 중국이 공산국가가 1949년 부터 최근까지 누적된 반중정서는 우리 국민들은 좌우를 떠나 상당히 높아졌다.


이 비축된 반중에너지가 분출될까? 그렇다면 언제 어떤 계기로?


만약 2008년 4월 27일 서울에서 베이징올림픽 성화봉송단 난동사건 같은 일이 다시 한국에서 재현된다면 그 에너지가 폭발할 것이다.


군사나 경제는 물론 문화마져 세계 정상급 국가가 된 대한민국!


그러나 진정한 독립은 군사나 경제보다 의식의 자주와 자립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당당(堂堂/proudly)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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