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서부지법에서 대통령 체포영장 발부에 따른 큰 소동이 있던 날 난생처음 애오개 길을 다녀왔다.
서울을 포함 수도권 일대에서 꽤 오래 살았건만 초행길이었다. 5호선 애오개 역이 무정차 통과라서 한 정거장 더 간 공덕역에 내려서 다녀왔다.
그 일대는 약간의 오피스 빌딩과 상가 그리고 아파트, 주거지가 적당하게 어우러진 지극히 평범한 서울의 모습이었다.
단지 나에겐 초행길이란 것과 마음속에 뭔가 궁금한 '애오개'라는 지명뿐이었다.
처음 가는 길은 설레기도 하지만 생경해서 그 길에서 겪은 경험은 대체로 오래 기억에 남는다. 그러나 이 애오개 길에서 그런 생경함은 없으나 조금 특별한 지명이 주는 애잔함이 있어 그 어원을 찾아보고 싶어졌다.
애오개! 우선 순수한 우리말로 보이고 어감도 무척 아름답다만 왠지 조금 시려 보인다. 어원과 유래는 아래와 같다.
그 어원은 아이처럼 작은 고개란 의미에서 아이+고개, 애+고개이다. 한자로 표기하면 아현(兒峴)이라 적었는데 아(兒)의 표기가 아(阿)로 변하면서 서울특별시 마포구 아현동(阿峴)의 지명이 되었다 한다.
그런데 애고개가 애오개로 변한 것은 문헌에도 정확한 설명도 없고, 한글문법이 헷갈려 AI 신세를 졌다. '모음조화와 탈락'이라 한다.
모음조화는 서로 영향을 주는 두 양성 모음(ㅐ+ ㅗ)이 조화롭고 부드럽게 발음되는 현상이며, 자음인 'ㄱ'은 자연스레 탈락된 것이다.
'애오개'란 말은 듣자마자 무척 친숙하며 우리 민족의 한같은 것을 함의하는 단어로 들린다. 마치 '아리랑' 같이... 그래서 오묘한 우리말 새 단어가 태어났다.
한국민속 문화사전에서 그 유래를 살펴보면 세 가지가 있다.
1. 한양도성에서 사람이 죽었을 때 서소문을 통해 시체가 나가게 하였는데, 아이 시체를 이 고개에 묻게 하였다는 의미의 고개라는 '애오개'로 불리게 되었다 한다.
실제 아현동 산 7번지 인근에는 애총(애冢) 즉 어린아이 무덤이 곳곳에 있었다 함.
2. 한양도성에서 마포나루 방면으로 가는 길에 두 고개가 있었는 데 남쪽은 만리재는 큰 고개였으며, 서북쪽의 상대적 작은 고개인 이곳을 애고개라 부른 것에서 유래했다 함.
3. 풍수 관련설로 북한산 봉우리를 부아악(負兒岳, 아이를 업다)이라 하는데, 그 아이가 달아나는 것을 막으려고 서쪽산은 모악(母岳, 어머니), 남쪽산은 벌아령(伐兒嶺, 혼내준다),
그리고 모악의 남서쪽 고개를 떡을 줘서 그 아이를 달랜다는 의미로 병시현(餠市峴), 즉 떡전고개라 불렀다. 그 병시현이 아현(兒峴→阿峴)으로 변했다 한다.
조선시대의 생활상이나 지리, 풍수적 관점에서 애오개라는 지명의 유래가 설명되고 있다.
하여튼 우리 선조들이 이 금수강산에 터를 잡고 수천 년을 살아온 정주권 문화국답게 이곳에서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쌓여있다.
현대사에서도 사연이 계속 쌓인다.
6.25 전쟁 중 유엔군과 함께 인천에 상륙한 국군 해병 1 연대는 행주산성을 경유해 연희고지와 현 서강대가 위치한 노고산을 탈취해 적 방어선을 붕괴시킨 후 애오개를 넘어서 시내 중심으로 향했다.
그리고 마침내 9월 27일 15:08 중앙청에 태극기를 게양하였다. 이 길은 해병장병들의 투혼이 스며져 있는 호국의 길이란 역사가 또 쌓였다.
지난달에는 이곳 서부지법이 민주주의 위기의 현장이 되었다. 머지않아 우리 국민들의 민주주에 대한 염원과 집단지성에 의해 판가름될 것이다.
역사는 흐른다. 애오개 길은 어머니처럼 말없이 지켜볼 것이며, 그 흔적은 켜켜이 쌓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