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근교에는 조선왕릉들이 잘 보존되어 산책이나 가벼운 하이킹 하기에 안성맞춤의 장소다.
더욱이 사계절 내내 울창한 소나무 숲은 운치를 더해줘 연인이나 가족, 친구들과 함께 다녀오기에 참 좋다.
이 왕릉들은 스핑크스처럼 웅장하지도 않고, 중국 황릉처럼 요란하지도 않고 소박하며 단아하다.
500여 년이나 왕조가 지속되서인지, 부장품이 소박해서인지, 도굴도 거의 없고 보존상태도 매우 양호하다.
경국대전에 의하면 왕릉은 경복궁 십리(4km) 밖, 백리(40km) 이내에 조성하게 되어있다.
영월에서 유배생활 중 살해당한 단종의 장릉을 제외하고, 왕의 번거로운 행차 및 경호를 고려 대부분 한양도읍 외곽에 조성되었는데
초기에는 개별로 왕릉이 조성되었다가, 능을 조성하면 부근의 민가와 무덤들을 철거해야 하므로 백성들의 고통을 고려해 집단적으로 조성되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동구릉(東九陵)과 서오릉(西五陵)이다. 한양 동쪽 현 구리시에 9개의 능, 서쪽 현 고양시에 5개 능이 함께 조성되었다. 그밖에 서삼릉, 헌인릉, 선정릉, 융건릉 등이 있다.
동구릉은 서울시 경계 부근에 위치하나 교통이 불편했었는데 인근에 8호선 동구릉역이 생기면서 나들이하기 좋은 곳으로 바뀌었다.
이 동구릉에 묻혀있는 재미있는 권세 스토리를 소개한다.
추위도 지났으니 이 글 읽고 좋은 사람과 편안한 역사산책 한번 하시길 권한다.
1. 수양대군의 야수 같은 권력욕을 현릉의 금천교를 지나면 만난다!
능원 정문을 지나 주욱 올라가 첫 번째 수릉을 지나고 만나는 능이 조선조 5대 임금인 문종의 능인 현릉이다. 평범한 이 능에 재미있는 사연이 있다.
능 입구로 들어서면 작은 도랑위로 금천교를 건너고 홍살문을 지나자마자 좌로 한번, 우로 한 번씩 90도로 꺾어서 제향공간인 정자각으로 가는 길(신도와 왕도)이 조성되었다.
어떤 다른 능에서 발견할 수 없는 특이한 모습(직진이 아닌 길 꺾어짐)인데 그것은 바로 문종의 기를 꺾어 자신의 권력을 오래 유지하겠다는 수양대군의 야욕의 흔적이라고 해설사는 전한다.(공식 문헌에는 없고 야사로 전해짐)
그러나 10살의 어린 조카(단종)가 왕위 승계 후1년 만에 숙부인 수양대군이 반강제적으로 왕위를 빼앗고, '단종 복위운동'의 여파로 폐위되고 영월로 귀양 가서 살해된 역사를 돌아보았을 때 납득이 되는 스토리다.
요즘 정치권이나 재벌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권력싸움을 보면 그리 어색하지는 않다. 말년에 고통스러웠던 세조의 인생! 그 벌을 받은 것 같다.
2. 조선조 창업주 이성계, 권력의 무상함을 나타낸 건원릉의 억새풀!
현릉을 지나면 동구릉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조선조 창업주 태조 이성계가 묻힌 건원능을 만난다.
이성계는 조선조 창업 후, 한양으로 천도를 하고 토지개혁, 경국대전 완성 등 조선의 기틀을 마련했으나
연이은 두 차례의 '왕자의 난'으로 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퇴위하여 고향인 함경도 함흥에 거주하였다.
한양에서 함흥의 이성계를 모시러 간 사신들을 모두 죽여 '함흥차사'란 말이 유래(=심부름 가서 오지 않거나 늦게 오는 사람) 되었다 하며,
그는 무학대사의 간청으로 한양으로 돌아와 창경궁에서 불교에 심취하며 여생을 보냈다.
말년에 고향인 함흥에 묻어줄 것을 유언하였으나 아들인 태종은 개국군주인 아버지의 능을 원거리에 조성하기 곤란해 가까운 이곳에 모셨으며
고향의 향취를 느낄 수 있도록 함경도 억새풀로 봉분의 조성하였다고 한다.
건원능 봉분의 거친 억새풀 모습은 역성혁명으로 조선조를 창업하고, '왕자의 난'으로 창업보다 힘들다는 인고의 시간을 보낸 그의 수성의 인생역정을 상징한다.
3. 조선조 여성 최고 권력실세 정순왕후(영조의 부인, 정조의 할머니, 순조의 증조할머니)
능원을 돌아 절반가량 지나면 오른편으로 원릉을 만난다. 영조와 그의 계비인 정순왕후의 묘역이다. 영조의 정비인 정성왕후가 사망해, 계비가 된 정순왕후는 생전에 자식은 없었다.(결혼 시 왕 66세, 왕비 15세)
며느리보다 젊은 정순왕후는 초기부터 권세를 부렸으며 며느리 혜경궁 홍씨(사도세자 부인)와 대립했고,
정조시대에도 왕대비로 정조와 긴장관계를 유지했다.
11살인 순조가 즉위하자 대왕대비로 4년간의 수렴청정으로 인사권을 행사하고, 언문교지를 내리는 등 본격적인 정치를 하였고 천주교를 박해하였다.
*** 왕대비는 '왕(정조)의 할머니', 대왕대비는 '왕(순조)의 증조할머니'
오래전 높은 시청률로 인기를 모았던 모 TV방송의 명품사극 '이산(정조대왕의 일대기)'에서도 실세 왕대비로 역할이 묘사되었다.
조선조 왕비중 고종의 민비와 더불어 최고의 권세를 누린 여걸로, 그 덕분인지 정비인 정성왕후를 제치고 남편 옆에 묻혔고 묘역도 넓고 풍광도 시원시원하다.
생명체가 모여있는 어떤 곳에서도 경쟁이 있고 필연적으로 함께하는 권력작용이 있다.
사람과 동물은 물론 식물에게도 있다. 울창한 숲 속에서 햇볕을 더 많이 차지하려는 나무들의 키크기 경쟁 같이...
평화롭고 아름다운 이 묘역에서도 인간들의 치열한 삶의 흔적들이 남아있다.
저 세분이 권력을 쟁취하려고 얼마나 기회를 엿보고 두려움 속에서 결단했으며, 권력을 지키려 얼마나 노심초사 했을까?
그리고 인생의 종착역에서 얼마나 허무함을 느꼈을까?
인생무상 새옹지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