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 이야기
내담자라는 말은 겉보기에는 그저 역할 혹은 상황을 지칭하는 듯하다. 그러나 그것은 그런 사회적 위치가 아니라 존재방식이며 동시에 태도다. 내담자가 된다는 것은 단지 상담실에 들어서는 행위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자기 안의 혼돈을 언어로 조직하려는 시도이자 결코 정리되지 않을 상처를 누군가와 함께 바라보겠다는 다짐이다. 치료의 대상이 아니다. 실존의 균열 앞에 스스로를 앉히는 존재이다. 피하고 싶은 고통을 피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린 사람이다. 이 결심은 아무리 조심스럽고 유보적인 것일지라도 인간 조건에 대한 가장 깊은 긍정으로 작용한다. 나를 해체하면서 나를 회복하려는 이 이중적 운동 속에서 내담자는 단순한 고통의 소유자가 아니라 고통을 생의 자원으로 전환시키는 주체가 된다.
그 안에서 내담자는 자신을 말로 조직하면서 동시에 그 말의 한계에 부딪힌다. 그는 말하는 순간마다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고 있음을 느낀다. 무의식은 침묵으로 남아있고, 기억은 왜곡되고, 감정은 너무 빨리 지나간다. 그러나 내담자는 그 실패 속에서도 계속 말한다. 그는 자기 안의 어떤 것, 단어로는 포착할 수 없는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한다.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어떤 감각, 어떤 표정을 이야기 속에 흘려보내고, 그 조각들이 상담자에게 도달하길 기다린다. 이 기다림은 단순한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관계의 윤리를 전제하는 존재 방식이다. 그는 기다리는 사람이며, 동시에 기다려지는 사람이다. 이는 오직 상호적인 주체 사이에서만 가능하다. 내담자는 관계란 일방적 치료가 아닌 상호 변형이라는 점을 삶으로 증명해낸다.
내담자는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자기 내면의 실재를 직면하기 위해 낯선 타인의 앞에 앉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용기가 필요하다. 삶의 모순을 숨기지 않고, 언어의 어색함을 견디며, 감정의 모호함을 품는 존재론적 용기. 존재의 균열을 드러냄으로써 그것이 단지 개인적 고통이 아니라 보편적인 인간 조건임을 선포하는 ‘말을 하기 시작한 자’이자, ‘말할 수 없음을 끌어안는 자’. 그는 자신의 파편을 꺼내 하나씩 상담가의 앞에 내려놓는다. 그것은 완성된 자서전이 아니라 말이 되지 않는 기억의 조각이며, 원인을 알 수 없는 눈물이며, 어떤 때는 말보다 더 많은 것을 담은 침묵이다. 그 안에서 내담자는 문제가 아니라 이해를 필요로 하는 이야기로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해답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정답 없음’을 받아들이기 위해 온다. 누구도 대신 결정해줄 수 없는 상황 앞에서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기 위한 연습을 하러 온다. 상담은 그에게 어떤 삶이 옳은지를 말해주는 공간이 아니라, 어떤 삶을 원하는지를 묻는 공간이다. 내담자는 이 물음을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그 물음의 무게를 견딘다. 그는 상담자의 눈을 통해 자신을 다시 본다. 하지만 그 시선을 의지하지 않는다. 시선을 참고하되, 자기만의 시선을 만들어간다. 그것은 자아를 건축하는 행위이며, 동시에 그 자아가 결코 완성될 수 없음을 수용하는 일이기도 하다. 내담자는 완성되고 싶은 충동과 불완전함에 머물겠다는 태도 사이에서 미묘한 균형을 이루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 균형 속에서, 그는 점점 더 스스로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는다.
내담자는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을 머리가 아닌 몸으로 살아낸다. 진단되지 않는 아픔을 말하고, 분류되지 않는 감정을 탐색하며, 낯선 감각들을 언어로 만들려 애쓴다. 상담실은 그의 실험실이고, 그는 그 안에서 삶을 새롭게 조율해보는 실험자다. 실패해도 된다. 왜냐하면 그 실패조차 의미 있기 때문이다. 언제나 어떤 경계 위에 있다. 과거와 미래 사이, 내면과 외면 사이, 침묵과 언어 사이, 이해받고 싶은 욕망과 자기만의 고독 사이. 그 경계를 넘나들며 인간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정의를 매일 갱신해나간다. 이는 자기 내면에 대한 질문을 포기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 질문은 단지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서로에게 던져야 할 존재의 질문이기도 하다.
내담자가 된다는 것은 자기 고통의 주인이 되겠다는 선언이다. 그것은 피해자에서 주체로 나아가는 여정이며, 상처를 자기 인생의 중심에 위치시키는 전환이다. 더 이상 상처를 덮지 않고 그것을 말하기 시작한다. 그는 도움을 받으려 온 것이 아니라 함께 존재할 사람을 찾으러 온다. 내담자는 혼자가 되기 위한 준비가 아니라, 관계 안에서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한 연습을 하고 있는 중이다. 누구보다 자기 삶에 책임지려는 사람이며, 그 삶이 설령 실패로 가득하더라도 그것을 고유의 언어로 말할 수 있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내담자는 말보다 더 깊이 질문하는 사람이며, 삶이라는 답 없는 문제를 가장 깊이 사유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바로 그 점에서 그는 치유의 가장 중심에 있는 존재다. 상담가보다도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