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정말로 '남의 편'일까?

심리상담 이야기

by 이상혁 심리상담가

많은 아내들이 농담처럼 이 말을 꺼낸다. '남편'은 '남의 편'이라고. 웃자고 던진 말인데, 웃음은 오래가지 않는다. 어느 순간 그 말이 농담이 아니라 체감이 되기 때문이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어야 할 그가, 가장 먼저 나를 이해해줄 것이라 믿었던 그가, 결정적인 순간마다 나와 같은 편이 아니라는 느낌을 줄 때, 이 질문은 결코 가볍지 않다. 왜 우리는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 가장 깊은 소외를 경험하게 되는 걸까.


연애할 때의 관계는 '나와 너'라는 단순한 구조 위에 놓여 있다. 둘 사이에 해결해야 할 문제는 대부분 둘의 감정이고, 둘의 선택이다. 그러나 결혼이라는 제도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관계는 갑자기 복잡해진다. 가족이 되고, 역할이 생기고, 과거의 관계들이 현재로 유입된다. 부모, 형제, 친척, 사회적 기대까지 한꺼번에 끌려 들어온다. 이때 남편은 더 이상 단순히 '내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의 아들이고, 누군가의 형제이며,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의 수행자가 된다. 그가 나를 외면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은 어쩌면 그가 여러 정체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지 못하고 있을 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해와 체감은 다르다. 머리로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은 쉽게 납득하지 못한다. 내가 상처받았다고 말할 때 그는 중립을 가장한 침묵을 택하고, 분명히 내 편을 들어 줘야 할 순간에 애매한 태도를 유지한다. 그 중립은 균형이 아니라 방어 같다. 갈등을 키우고 싶지 않다는 남편의 태도는 한쪽에게는 버려졌다는 감각으로 남는다. 그때 이 질문은 비난이 아니라, 확인에 가깝다. 나는 이 관계 안에서 어디에 서 있는가? 그는 나를 어디에 두고 있는가?


많은 남편들은 자신이 갈등을 중재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중재는 양쪽이 동등한 위치에 있을 때만 성립한다. 이미 힘의 균형이 무너진 상황에서의 중립은, 침묵하는 쪽이 아니라 침묵을 선택한 쪽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그래서 아내는 종종 이중의 상처를 입는다. 문제 그 자체로 한 번, 그리고 남편의 태도로 또 한 번. 이때 관계의 균열은 사건이 아니라 반복에서 생긴다. 한 번의 선택이 아니라, 매번 비슷한 방식으로 나를 뒤로 미루는 태도가 쌓이며 확신으로 굳어진다. 그는 결국 내 편이 아니구나, 혹은 적어도 항상 내 편은 아니구나.


그렇다고 해서 이 질문의 답이 단순히 그렇다/아니다로 끝나지는 않는다. 남편이 남의 편처럼 느껴지는 순간은, 관계의 우선순위가 명확하지 않을 때 발생한다. 누구의 감정을 먼저 살피고, 누구의 상처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지에 대한 합의가 없을 때, 그 공백은 오해와 분노로 채워진다. 많은 부부가 싸우는 것은 사건 때문이 아니라 우선순위에 대한 암묵적인 기대가 어긋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당연히 당신의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는 순간 신뢰는 조용히 흔들린다.


그렇다면 '남편'은 정말로 '남의 편'인가?


이 질문은 부부관계를 판단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 질문은 관계를 돌아보는 질문이다. 우리는 같은 편인가, 아니면 각자의 세계를 지키느라 서로를 방치하고 있는가. 남편이 진짜로 남의 편이 되는 순간은 그가 외부의 시선을 나의 감정보다 우선할 때다. 반대로 불편하고 어려운 순간에도 나의 편에 서는 선택을 반복할 때, 그는 비로소 배우자가 된다. 편이 된다는 것은 항상 옳다는 뜻이 아니라, 함께 책임지겠다는 태도에 가깝다.


남편은 남의 편인가, 아니면 아직 자기 편과 우리 편의 경계를 배우지 못한 사람인가. 이 질문을 던질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관계를 감정이 아니라 구조로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동시에 그 구조를 다시 세울 수 있는 가능성도 함께 열린다. 같은 편은, 내 사람은 자연스럽게 생겨나지 않는다. 그것은 매 순간 결정해야 하고, 반복해야 하며, 때로는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지켜야 하는 태도다. 그 선택이 쌓일 때, 남편은 더 이상 남의 편이 아니라, 비로소 ‘내 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