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 이야기
분열 (splitting)
정신분석의 원시적 방어기제 중 하나. 감내하기 어려운 상반된 정동을 한 대상 안에서 통합하지 못할 때, 이를 ‘전적으로 좋은 것’과 ‘전적으로 나쁜 것’으로 분리함으로써 심리적 균형을 유지하려는 방어기제. 분열을 사용하는 내담자는 한 사람을 선과 악으로 극단적으로 분열시켜 이상화하거나 평가절하하는 양극적 방식으로 경험한다. 급변하는 감정 기복은 이러한 내적 불안정성에서 기인한다. 경계선 성격장애(BPD)에서 주로 찾아볼 수 있다.
정신분석적 관점에서 경계선 성격장애 내담자의 '분열'을 다루는 일은 그 방어기제가 작동하게 된 발달적 맥락과 무의식적 역동, 그리고 이를 유지시키는 반복의 구조를 종합적으로 조망하는 작업이다. 분열은 흔히 이분법적 사고나 극단적 감정 반응의 형태로 표면에 드러나지만, 상담가의 시선은 언제나 그 표면 아래에서 동시에 작동하는 정동의 긴장, 그리고 그것을 견디지 못하는 자아의 취약성을 함께 탐색한다.
이와 같은 시각에서 내담자의 발화를 경청하다 보면, 관계 경험을 묘사하는 문장 곳곳에서 분열의 흔적을 마주하게 된다. 내담자는 특정 인물을 전적으로 이상화하며 ‘완전히 좋은 대상’으로 지각하는 한편, 아주 작은 실망이나 좌절을 경험하기라도 하면 그 인물에 대한 평가를 완전히 뒤바꿔 전적으로 ‘악한 대상’으로 전환한다. 이 급격한 변화는 상반된 정동을 동시에 품는 통합 기능의 균열을 보여준다.
분열은 관계 속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예컨대 내담자가 어떤 대상에 대해 "그 사람은 나를 절대 실망시키지 않을 거예요"라고 말하다가, 갑자기 "없어졌으면 좋겠다"며 분노할 때 우리는 이러한 감정의 급변을 단순한 변덕으로만 취급해서는 안 된다. 이 급격한 전환은 '좋음'과 '나쁨'을 통합된 전체로 지각하는 능력이 아직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그 감정의 기원이 과거의 관계 경험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섬세히 추적하게 된다.
1. 분열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분열이라는 방어기제는 초기 발달 단계에서 양육자의 정서적 일관성 부족과 맞닿아 있다. 생후 초기의 영아는 자신에게 유쾌한 자극을 주는 양육자, 즉 따뜻하게 안아주고, 적절한 타이밍에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좋은 대상'으로 경험하고, 반대로 불편함을 해소해 주지 않을 경우 동일한 사람임에도 '나쁜 대상'으로 인식한다. 이후 양육자가 꾸준히 안정적인 돌봄을 제공할 경우, 아이는 점차 "좋을 때도 있고 실망스러울 때도 있지만 여전히 같은 사람"이라는 내적 모델을 형성하며, 좋고 나쁨으로 분리되어 있던 대상 표상이 서서히 통합된다.
그러나 양육자의 돌봄이 불규칙하고, 예측 불가능하며, 혼란스러울 경우 아이는 '좋은 대상'을 충분히 경험하지 못한 채 '나쁜 대상'에 의해 박해 받는다는 불안을 경험한다. 이러한 압도적인 공포를 버텨내는 방법은 언젠가 찾아와 자신을 구원해 줄 메시아처럼 '좋은 대상'이라는 존재를 가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분열은 아이에게 생존을 위한 전략이 된다. (통합하면 좋은 대상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 결과 성인이 된 이후에도 관계에서 경험하는 작은 실망만으로도 분열 구조가 활성화되고 하나의 대상은 선과 악이라는 극단적으로 형태로 분리된다.
2. 임상장면에서 분열의 양상
임상 장면에서 이러한 역동은 특히 전이 관계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내담자는 상담가를 절대적으로 이상화하며 “나를 완전히 이해하여 주는 유일한 사람”으로 경험하기도 하고, 어느 날 세션에서 느껴진 무관심이나 실망스러운 반응을 계기로 상담가를 “결국 나를 버릴 사람”으로 인식하기도 한다. 이때 상담가가 해야 하는 일은 그 감정을 조절해 주거나 설명하는 것을 넘어서, 정서의 급격한 변화 속에 어떤 내적 장면이 재현되고 있는지를 탐색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담가의 일관된 태도는 내담자가 분열을 통해 방어하는 불안의 본질을 수용하는 중간 지대를 형성한다. 이곳에서 내담자는 좋고 나쁨이라는 양가적 사고를 감내할 수 있는 내적 지지 체계를 획득하게 된다.
그러나 이 통합의 과정은 결코 직선적이지 않다. 내담자는 여러 차례의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며, 때로는 이전보다 더 강렬한 방식으로 분열된 정서를 상담가에게 투사한다. 이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반복이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분열된 자아 부분들이 치료적 관계 안에서 만나기 시작했다는 임상적 신호일 수 있다는 점이다. 내담자가 말하지 않은 정서, 예컨대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억압된 의존 욕구, 혹은 드러내기 두려운 공격성이 상담가와의 관계에서 간접적이지만 가시적인 형태로 떠오르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러한 순간은 내담자가 분리했던 자아의 파편들이 서로를 의식하기 시작하는 결정적 전환점이 된다.
3. 통합의 길
시간이 흘러 내담자가 어느 날 "예전 같으면 선생님에게 분노했을 텐데, 이번에는 그냥 섭섭했다고 느꼈어요"라고 말하는 때가 온다. 이는 사소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중요한 변화를 의미한다. 분열의 강도가 약화되고 감정을 보다 미세한 스펙트럼으로 경험하기 시작했다는 징후이기 때문이다. 내담자는 이제 감정을 반드시 '좋음' 혹은 '나쁨'이라는 이분법적 체계로만 정리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무의식적으로 서서히 받아들인다. 이 변화는 오랫 동안 강렬한 정서적 역동을 견뎌온 내담자와 상담가가 함께 이루어낸 협력의 결과이다.
분열은 고통스럽지만 동시에 내담자를 버티게 해준 생명유지장치다. 그래서 상담의 목적은 분열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내담자가 두려움 없이 다채로운 정서를 마주할 수 있는 내적 세계를 확장하는 것이다. 상담가는 이 여정에서 꾸준히 안정된 환경을 제공하고, 내담자가 불안할 때 그 불안의 의미를 함께 해석하며, 말해지지 않은 두려움, 분노, 고통, 슬픔을 함께 견딘다. 그렇게 내담자는 점차 한 대상 안에 좋은 면과 나쁜 면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현실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그 순간 내담자는 분열이라는 낡은 갑옷을 벗고 비로소 새로운 세상을 온몸으로 경험할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