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후-
“하영아, 점심 먹고 가. 응? 제발~”
“안되는 거 알잖아. 점심은 엄마랑 먹기로 했어.”
“아니! 저녁 늦게 가는 것도 아니고 점심만 먹고 가는건데도 안되냐?”
“응. 안 돼.”
하영은 잔뜩 골이 난 친구를 보며 부드럽게 미소 짓는다.
“즐겁게 1박 2일 여행 다녀왔잖아. 우리 엄마 입장에서는 1박 2일 여행 허락도 엄청 큰 거야.”
“알지알지. 너 예전에 겪었던 그 사건. 나도 알지. 그래도 아쉬워서 그러지.”
“내일 학교에서 보면 되잖아. 다른 애들한테도 잘 말해줘.”
“에휴. 알겠어. 애들아~ 하영이는 먼저 간대.”
하영이는 급히 친구들과 인사 후 서울역을 벗어났다.
그때 전화가 울린다.
“엄마! 응. 지금 막 서울역에 도착했어. 이제 지하철 타고 갈거야. 한 30분 정도 걸리겠지? 우리 점심 같이 먹자. 조금 이따 만나요.”
어제 밤잠을 설쳐가며 자신을 기다렸을 엄마를 생각하며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서울역 지하도 밖으로 나온 정운은 오랜만에 보는 햇빛에 눈이 부셔 잠깐 휘청거렸다.
서울역 앞에서 무료로 빵을 나눠준다는 동료의 말에 무거운 몸을 이끌고 밖으로 나온 참이었다.
늘 지하도 안에만 있어 그런지 밖의 풍경이 낯설었다.
바삐 걸음을 옮기는 사람들은 자연스레 그를 피해 걸었다.
행색을 보면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정운은 그런 사람들을 신경쓰지 않았다.
오로지 빵만 얻어 다시 지하도로 들어가면 그만이었다.
“하영아, 점심 먹고 가. 응? 제발~”
정운은 ‘하영’이라는 단어에 걸음을 멈춰 주위를 둘러보았다.
앞에 젊은 아가씨 두 명이 대화하고 있다.
그녀들을 빤히 쳐다본다.
우리 하영이랑 이름이 같구나.
우리 하영이도 그때 그 일만 없었다면 저 나이가 되었겠지.
그녀들을 보며 20년 전 죽은 아이를 떠올렸다.
다 부질없는 짓.
다시 서울역으로 걸음을 옮긴다.
대화를 하던 여자 중 한 명이 그의 곁을 빠르게 지나쳐 간다.
“하영아, 엄마야. 어디니?”
밤새 잠을 설친 지수는 아침이 되자 거실로 나와 시계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11시 10분.
아이가 서울역에 도착할 시간이다.
조심스레 전화를 걸었다.
하영이의 목소리를 듣자 그제야 마음이 놓인다.
내 딸 별 일 없구나.
같이 점심을 먹자는 말에 지수의 피곤함이 말끔히 사라진다.
오늘도 무사히.
매일 바라고 또 바랐던 지수의 바람처럼 오늘도 하영은 건강하게 지수의 곁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