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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민 Aug 06. 2024

<이모>, 권여선

K장녀

<안녕 주정뱅이>에는 총 일곱 개 단편이 수록됐다.
그중 <이모>라는 작품에 예전부터 나는 아픈 마음이 깊었다

동생들에게 줄거리를 말하고 친구들에게 소개하며 남편에게도 이야기했다.
책을 읽고서 마음에 응어리처럼 무언가 남을 때 아무나 붙들고 말하고 싶어진다
<이모>가 그랬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신조어가 있다. 바로 K장녀.
도대체 왜 때문에 맏딸이 살림 밑천이며
하다 하다 대한민국 모든 장녀는 이래야 한다 규정 같은 k장녀라니.
가부장적 정서를 넘어 선 모든 가정안 책임과 희생의 대명사.
나는 불편함을 넘어 거부감이 들었다.
큰누나 맏언니의 무게감을 안다.
부모와 동생들을 위해 일찌감치 학업을 포기하고 공장으로 술집으로 생계유지가
아닌 핏줄들 뒷바라지하던 시대가 있었다.
나는 희생이라고도 말하기 싫다.
보람이라도 있어야지 대부분의 경우 그렇지 못했다.
그 시절은 그랬다고 쳐도,
문화인지 뭔지 모를 진화로 거듭난 K장녀에 이르러 언감생심 그런 건 꿈도 못(안) 꾸는 나.
장녀로서 일종의 자격지심이었을까? 단호하게 아니다.
권리는 없고 의무만 주어지는 것 같아 무겁고 불평등하고 불편하다.

​그렇다면 <이모>에 나오는 윤경호의 삶은 어떤가?
대학 때 아버지를 잃고 졸지에 가장이 된다.
졸업과 함께 대기업에 입사해 생활비와 동생들 학비를 대고
그들이 대학을 마치자 금전적 지원을 중단한다.
그러나 남동생이 사업인지 도박인지 부도를 내는 바람에 그동안 모아 놓은 돈과 퇴직금을
남동생 빚 청산에 쏟아붓는다.
이후 작은 출판사를 다니지만 그녀의 어머니가 몰래 서류를 꾸며 남동생 보증을 서게 해 놓은
바람에 빚에 물려 신용불량자가 된다.
다시 비정규직 일을 하며 신용을 회복하는데 10년 가까이 걸렸고 그녀 나이 이미 쉰 살.
그때부터 윤경호는 집을 나와 가족들과의 관계를 끊고 혼자 살 결심을 하며
누구에게도 돈 한 푼 주지 않고 악착 같이 돈을 모은다.

이야기 속 이야기.

액자 소설로 읽히는 어느 겨울날,
이웃과의 불쾌했던 에피소드와 그녀의 과거가 교차한다.
이제 그녀는 췌장암 말기환자다.
검소하고 간결한 혼자만의 삶을 꾸리며 날마다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다가
두시쯤 집에 와 점심을 먹고 다시 도서관에 가서 문 닫는 6시에 집으로 온다.
담배는 하루에 네 개비
아침에 일어나 하나, 점심 먹고 둘, 저녁 먹고 셋, 잠자기 전에 마지막 담배를 피우고
일요일 밤에 소주 한 병에 다소 사치스러운 안주를 만들어 먹는 정도다.
혼자 살면서 요리에 재미를 붙여 냉장고에 항상 다시 국물이 준비되어 있고
데치거나 말려놓은  채소와 해물들이 구비돼 있다.
조기도 시래기도 제철에 무더기로 사다가 손질해 말려 두었다.
한 달에 65만의 생활비는 그중  30만 원이 아파트 월세이고 산술적으로 하루 만원씩 쓰면 되는데
하루에 실질적으로 그렇게 다 쓰지도 못한다고 담담히 말한다.
"희망이 없으면 자유도 없다"던 그녀의 말은 유의미하다.
비로소 혼자 살 수 있던 그 시기가 가장 희망적이었을 테니까.​

서술의 화자는 조카며느리다.
그러니까 췌장암 앓는 남편의 이모를 처음 병문안 간 날 퇴원하면 놀러 오라고,
나는 네가 내 피붙이가 아니어서 좋다고 하면서.
글 쓰는 조카며느리에 애정과 신뢰를 느낀다.
그렇게 일주일에 한 번씩 도서관 휴일인 월요일마다
찾아가  듣게 되는 이모의 일생이다.


권여선 작품에는 작가가 주인공인 경우가 많은데
예비 작가로 추정되는 조카며느리에게 풀어놓는 이야기다.
숨을 거두며 그녀의 아파트 보증금과 통장에 남은 유산의 1/3이  조카부부에게 상속된다.
35만 원씩 쓰던 이모가 9년 5개월을 살 수 있는 돈이었다.
이마저도 서술자의 시외할머니 즉 이모의 어머니는 외아들 빚 갚기에 올인하길 바란다.

​"무엇을 위한 희생이고 무엇에만 배타적으로 이타적이냐?"라고 묻던 이모의 목소리가
실제로 들리는 듯하다.

​K장녀는 싫고 그냥 큰 언니로서 동생들 불러 모아
엄마와의 시간 함께 할 계획이다.
자유 평등 평화 행복 희망 가득한 시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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