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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민 Aug 23. 2024

<마지막 이야기들>, 윌리엄 트레버

삶의 기쁨과 슬픔

흔한 표현으로 작가들의 작가로 불리는 윌리엄 트레버.
줌파 라히리는 "그의 작품이 없었다면 나는 아마 길을 잃었을지도 모른다"라고 말했으며
올리브 키터리지의 작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나는 언제나 트레버를 읽고 또 읽는다.
그리고 항상 놀란다."라고 했고
무라카미 하루키는 트레버의 소설이 "군더더기 없는 적확하고 생생한 묘사와
칼같이 예리한 동시에 불가사의한 부드러움을
지닌 소설가"라고 칭했다.
거기에 덧붙이자면 나는
'시간을 견디며 더욱더 단단해지는 이야기'에 공감한다.

21세기의 체호프로 인정받는 윌리엄 트레버.
그의 소설은 언제나 평범한 일상에서 시작한다.
그야말로 소시민들의 이야기, 그렇기에 다채롭고 흥미롭다.
올 초 교보문고에 갔다가 마지막 이야기가 전시 돼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더 이상 그의 신간은 볼 수 없겠구나 했다가 정보도 없이 발견한 <마지막 이야기들>
그날로 와서 다 읽었던 기억이다.

아일랜드 출신의 그는 장. 단편 소설과 희곡 논픽션 등 백 편이 넘는 작품을 발표했고
단편과 장편 소설 양의 분야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드문 작가다.

어디 양뿐이겠는가? 질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꾸준히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2016년 88세에 타계했다.

<마지막 이야기들>에 수록된 주인공들은 시작할 땐 평범한 인물 같아 보이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강렬한 이미지가 된다.

독신의 피아노 선생에게 어느 날 천재성을 지닌 조용한 소년이 제자로 들어오면서
집안의 물건이 하나씩 사라진다.
괴로움과 당혹감에 삶의 기반이 흔들리는 것은 그녀의 과거를 떠올리게 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추억으로 간직했던 과거 연인의 약속을 의심하며
그가 남긴 오점을 고통스러워한다.
계절이 바뀌고 소년이 오지 않게 되자 그녀는 점차 평온해지면서
지나 온 삶이 진실이었고 삶 자체가 경이로움이었음을 깨닫는다.

사람은 누구나 슬픔을 지니고 산다고 말해 비관적 작가로 오인받기도 했다는 트레버.
그러나 맞는 소리 아닌가?
슬픔 없는 인간이 있을 리야.

나는 웃음도 많고 웃음소리도 큰 사람이지만
지금이라도 누가
"너 한 번 울어 봐" 하면 몇 초도 안돼 눈물 흘릴 준비가 되어 간다.

삶에서 슬픔은 정도의 차이지만 늘 동반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전제해야 오히려 세상을 살아가는 데 이해력이 커진다고 할까?
초연함이라고 할까?
딱히 거창하게 해석하기보다 인간의 삶이란 슬픔과 기쁨의 씨실과 날실이다.
이것 없는 저것이 없다.
삶의 가혹한 흔들림에 끝까지 남는 것은 새삼 희망이다.
식상한 단어 일지 모르나 그 평범함이 진리라는 걸 알게 한다.
이렇기만 하고 저렇기만 하다면 그건 불행이다.
현실도 소설과 만찬가지로 기회가 찾아온다.
종당 판도라의 상자에 마지막 남은 희망을 꺼내 올리는
윌리엄 트레버의 소설이 꼭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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