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지는 나도 좋아하는 여름 반찬이다. 어느 일본 작가는 복숭아와 함께 여름이 시작된다고 했건만 내게 여름은 단연 오이철이다.
김훈 선생의 <오이지를 먹으며>를 읽다가 그 옛날 시댁 여름 밥상이 떠올랐다. 텃밭에 널린 가지 오이 호박 고추 상추 같은 채소가 지천에 널려 대문 밖으로 나가 툭하고 따오면 그걸로 끝. 비벼 먹든 쌈 싸 먹든 특별할 것 없어도 별식이었다. 나는 그걸로 끝인데 당연히 김훈은 그걸로 끝내지 않는다.
그가 쓴 '오이지'를 읽고 나서 들었던 말하자면 글쓰기에 대한 짧은 나의 소견이다. 작가 김훈이기에 오이지에 대하여 이렇게나 본질적인 감각과 육감으로 글을 쓸 수 있는 것이겠지? 새삼 놀랄 일이 아니다. 그의 똥 이야기는 가히 학술적이지 않던가?
글을 쓰려면 알아야 한다. 제대로 정확하게. 포크 하나를 가지고 책 한 권을 쓰는 작가도 있다고 들었다. 연필 지퍼 송곳...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이런 물건 하나로 책을 쓰려면 적확하게 알고 난 후 자세하고 세밀하게 표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얼마나 많은 관심과 호기심 그리고 관찰력이 필요하겠는가?
일단 그것에 대한 백과사전만큼의 지식이 있어야 사전보다 재미있는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다. 공부하는 자세가 수반돼야 함은 물론이다. 연필에 대해 책을 쓴다고 하자. 필기도구로서의 용도를 넘어 탄생 배경과 역사 연필의 성분 흑연이 연필이 되기까지의 과정이라든가, 다른 펜들과의 비교 장단점 특수성 종이와의 관계 수명과 종류 등... 이런 것은 일반적인 사실들이다. 찾아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쉬운 것. 작가는 사실에 기초하되 일반적인 것 가지고도 일반적이지 않게, 그 이면의 이야기 숨은 것 캐내기에 능한 사람이어야 하는 걸까? 자고로 숨은 것 캐기 좋아하는 사람의 기본 성향은 호기심이 왕성한 사람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궁금해한다. 호기심이란 질문과도 일맥상통. 뭐지? 뭘까? 왜? 그래서? 진짜? 정말? 어머나 하는 깨달음.
장황하게 이야기한 것은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이 호기심이기 때문이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 호기심의 결여다. 처져 있는 요즘, 알고 싶은 것이 없으니 아는 것도 없고 관심이 생기지 않으니 나랑 상관없으면 끝까지 무관인 관계로 끝이다. 무슨 이야깃거리가 나오겠는가? 상황 끝인데. 호기심은 참견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라고 그야말로 궤변을 늘어놓기도 했다.
나야말로 사고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 좋아하는 것만 좋아하지 말고 그동안 소원했다 싶은 많은 것들에 시선을 두고 싶다. 호기심을 갖고 싶다. 말랑말랑하고 싶다. 누구처럼 ' 개미'에 대해 책 한 권 쓸건 아니지만 길바닥을 걸으며 혹시 '지렁이' 라도 기어가는지 관심 있게 볼 일이다. "넌 어쩌다 여기까지 기어 나왔니, 배로만 겨 다니려니 마찰에 쓰리지는 않더냐? 앗 참 " 토룡탕이라고 있던데 너 그게 뭔 음식인 줄이나...?"
내가 알고 싶은 건 내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될 것이다. 눈을 열어 둘러보니 새삼 궁금한 것 투성이거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