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25년 3월7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개최한 크립토 서밋에서 예산 중립적인 방식으로 비트코인을 추가구입하겠다고 한 것을 두고 해석이 분분하다.
크립토 서밋 이후 비트코인 가격이 하락한 것으로 보아, 시장에서는 이를 추가 매입을 하지 않거나 추가 매입을 하더라도 소극적일 것이란 뜻으로 해석하고 있다.
필자는 이를 트럼프의 정책과 비트코인의 본질에 대한 대중의 '이해 부족' 때문이라고 확신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비트코인을 전략적 준비금(SBR)으로 비축하겠다고 전제하고, 단 추가 매입은 예산 중립적인 방식을 쓰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과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에게 그러한 방법을 '반드시(Should)' 찾으라고 명시했다.
예산을 쓰지 않겠다고 한 것을 두고 추가 매입 의지가 없거나 약하다고 해석하는 건 국회의 막강한 '예산권'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예산과 통화정책은 전적으로 국회의 권한이다. 제아무리 대통령이라고 해도 국회가 승인한 예산을 변경할 수 없다. 심지어 대통령이 알뜰하게 행정부 살림을 한다고 해도 예산을 절감할 수 없다. 국회가 정해준 예산은 특정한 경우가 아니면 반드시 집행해야 한다. 행정부가 예산을 덜 쓰는 게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런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는 건 1974년 닉슨 행정부 시절 제정된 국회 예산법(The Congressional Budget and Impoundment Control Act of 1974) 때문이다.
이 법은 연방 예산의 편성 및 집행에 대한 의회의 권한을 강화하기 위해 제정되었으며, 대통령이 자의적으로 예산을 보류하거나 삭감하지 못하도록 견제한다.
닉슨 행정부가 인플레이션 문제로 재정을 축소하자, 의회가 예산권을 강화하기 위해 제정한 법이다.
이 법은 특히 대통령이 예산 사용을 보류(Impoundment)하는 것을 강력히 제한한다.
대통령이 의회가 승인한 예산을 사용하지 않으려면 반드시 의회의 동의를 받도록 했다. 의회 승인 없이 행정부가 예산을 보류하는 것은 위헌적 행위로 간주된다.
트럼프가 정부 계약을 일방적으로 취소하거나, 특정 부서의 지출을 제한할 경우 의회의 동의 없이 예산을 집행하지 않는 것(Impoundment)에 해당할 수 있다.
2019년 트럼프 행정부가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 예산을 보류한 사례에서 이미 국회 예산법 위반 논란이 발생했었다.
대통령이 예산을 삭감하거나 특정 프로그램을 중단하려면 반드시 의회의 승인 필요하다.
현재 일론 머스크의 도지(DOGE)가 추진하는 공무원 대량 해고 및 정부 계약 취소가 의회가 승인한 예산 구조를 변경하는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
대통령은 '국가 비상사태'가 아닌 이상 독자적으로 예산을 변경할 수 없다.
트럼프가 '경제 위기'를 이유로 정부 지출 삭감을 강행할 경우, 이는 국회 예산법에 위배될 가능성이 있다.
과거 트럼프 1기 당시 국경장벽 건설을 위해 국방 예산을 전용했을 때, 하원이 이를 문제 삼고 법적 대응을 했던 사례가 있다.
트럼프가 2기 취임 직후 미국-멕시코 남부 국경에서의 불법 이민 문제를 이유로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한 것도 예산법과의 충돌 가능성을 우회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트럼프가 민주당의 강력한 반발을 무릅쓰고 강력하게 재정지출 축소를 추진하는 상황에서 '비트코인 전략적 준비금'을 위해 예산을 편성하겠다고 하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전략적 비트코인 준비금(SBR)'에 대해서는 공화당 내에서도 아직 당론이 모아지지 않은 상황이다. 민주당은 당론으로 이를 반대할 가능성이 크다. 상원은 공화당 53, 민주당 45, 무수속 2로 구성돼 있다. 하원은 공화당 220, 민주당 215석이다.
양원 모두 공화당이 과반이다. 밀어부치면 못할 것도 없지만 문제는 '필리버스터'다. 필리버스터란 법안 상정을 고의로 지연시키기 위해 무제한 토론을 하는 것을 말한다. 상원에서 필리버스터를 우회하려면 50+10표가 필요하다. 즉 공화당이 모두 찬성해도 민주당 의원 10명을 포섭해야 한다.
단, 조정절차(Reconcilliation)를 이용하면 필리버스터를 우회해 과반 표결로도 가능하다. 이 경우 SBR이 연방 예산 관련 법안이라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이같은 점을 감안할 때, 현재 전략적 비트코인 준비금 관련한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트럼프가 예산 중립적인 방법을 찾으라고 한 건 예산을 쓰지 말라는 명령이 아니다. 예산은 민주당의 반대로 쓰지 못하게 될 게 뻔하니, 예산을 쓰지 않고도 비트코인을 매입하는 묘안을 찾으라고 명령한 것이다.
트럼프는 전략적 비트코인 준비금에 대해 아주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그럼에도, 트럼프가 현재 시장의 오해를 적극적으로 불식시키지 않는 건 당연하다.
100만BTC 매입을 앞두고 비트코인 가격을 본인이 끌어올릴 이유가 전혀 없다. 오히려 비트코인 가격이 떨어지면 현재로서는 트럼프 입장에서는 미소를 지을 일이다. 매수 협상을 앞두고 매도자들에게 같력한 매수 의지를 보일 협상가는 없다. 트럼프는 특히 '협상의 기술' 면에서는 달인의 경지에 있는 인물이 아닌가.
사족을 달면, 트럼프가 추진하는 재정지출 축소는 국회 예산법을 감안할 때 목적을 달성하기 힘들다. 달성한다고 해도 성과가 미약할 수 있다. 물론 트럼프가 정지적인 구호로만 재정지출 축소를 외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집권 초기 지지층 결집을 위해 강조법을 쓰는 건 맞는 듯 하다.
비트코인과 나스닥은 통화량(M2), 즉 유동성에 민감한 자산이다. 최근 자산시장 하락이 관세 전쟁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건 재정지출 축소가 M2 증가 둔화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국회 예산법은 트럼프 입장에서는 악법이고, 비트코인이나 나스닥 투자자 입장에서는 강력한 방패다.
이 것이 바로 비트코인 투자의 딜레마다. 비트코인에 대한 투자는 돈벌이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탈중앙화' 철학을 지지하는 행위다. 그러면서 세계화의 잔재인 예산법을 지지하게 되는 건 이해관계의 충돌인 셈이다. 어쩌겠는가 세계평화보다 중요한 게 내 계좌의 안전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