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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 이후] 트럼프가 바이든보다 똑똑하다?

- 파리협약의 두얼굴

by 김창익

기자가 파리협약을 달러 패권과 연관지어 생각하는 건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우선 파리협약으로 그린(신재생) 에너지 소비가 늘더라도 석유의 절대 소비량이 줄지는 않을 것이란 점이다. 전체 에너지 소비량에서 차지하는 석유의 비중은 그린 에너지의 사용이 증하하면서 그에 반비례해 줄 것이다. 하지만 전체 에너지 소비가 증가하는 속도가 빨라지면서 석유의 절대 소비량은 오히려 증가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석유패권전쟁'을 쓴 최지웅은 최근 모 일간지 연재를 통해 이같은 사실을 강조했다.

출처: 아시아경제

그는 엑슨모빌이 BP와는 다른 노선을 가는 이유를 석유 절대 소비량이 인구증가와 더불어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글에 따르면 엑슨모빌의 올해 연례보고서에서 '인구증가에 따른 석유수요 증가'를 명시했다. 회사의 장기전략을 이같은 근거위에서 세우고 있다고 한다. 엑슨모빌 대런 우즈 CEO는 2040년까지 인구, 특히 중산층 인구 증가로 에너지 수요는 지금의 20% 가량 증가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수요는 대부분 석유와 가스로 충족된다는 것이다.


실제 석유 수요의 가장 큰 결정 요인은 인구 규모였다. 지난 20년간 석유수요 그래프가 우상향한 이유는 인구의 증가 때문이었다.


석유 수요는 식량을 제외하면 다른 어떤 상품보다 인구와의 상관관계가 높다. 특히 석유는 가격 비탄력적인 대표적인 원자재다. 예를 들어 금같은 귀금속은 가격이 오르면 구매 시점을 늦출 수 있다. 물론 금은 안전자산이기도 해 더 오를 것이라고 생각하면 금 사재기에 나서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가격에 따라 수요가 급등락하는 건 사실이다. 석유는 그렇지 않다. 석유는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했던 2011년에도, 40달러대로 하락했던 2016년에도 연도에 상관없이 꾸준히 우상향했다. 인구가 꾸준히 증가했기 때문이다. 유가가 올랐다고, 자동차 운행 빈도를 낮춘다거나 비행기 운항료가 급증해 해외 출장을 못간다거나 하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석유의 절대 소비량이 크게 줄지 않을 것이란 사실은 파리협약과 관련해 많은 것을 시사한다. 예컨데 현재의 석유 소비량을 100이라고 하고, 파리협약의 목표치인 'Under 1.5도'에 맞추기 위해 석유 소비량을 2050년까지 70으로 낮춰야 한다고 해보자. 우리는 언뜻 신재생 에너지 비중을 늘려 이 목표치를 맞출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탄소배출권 거래로 인한 비용이 어느 순간 제로(0)가 될 거싱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신재생 에너지 비중이 늘어도 석유 소비량 자체가 줄지 않으면 이머징 마켓 뿐 아니라 중국이나 미국은 탄소배출권 구입에 상당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그 것은 석유 소비가 늘어나는 것에 비례해 증가할 것이다.


상대적으로 석유 소비 비중을 더많이 줄이거나, 혹은 절대적인 석유 소비량을 줄일 수 있다면 상당량의 탄소배출권을 팔아 이익을 취할 수 있다. 파리협약 체제란 프레임을 만든 것 만으로 엄청난 부가가치를 만들어 낸 셈이다. 금본위제 페지 후 달러 만큼의 위력은 아니어도 석유 소비가 지속되는 한 지속적으로 돈을 벌 수 있다.


영국이 대표적이다.


이라크 전쟁 당시 영국은 미국의 후세인 정권 축출에 가장 적극적인 협력자였다. 여기엔 석유를 둘러싼 은밀한 이해관계가 숨어있다.


2003년 3월20일 이라크 전쟁 발발 이후 원유값은 배럴당 130달러까지 치솟는다. 독일과 프랑스 등 EU내 비산유 국가들은 원유 가격 폭등으로 경제성장률이 반토막 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영국은 달랐다. 북해산 브렌트유를 생산하는 영국은 노르웨이와 더불어 유럽에서 거의 유일한 산유국이다. 이라크 전쟁으로 인한 충격에서 영국은 지정학적으로나, 원유 수급문제에 있어 다른 EU 주요국들과 이해관계가 완전히 달랐다는 얘기다.


당시엔 수많은 보고서가 석유 공급 문제를 걱정하고 있었다. 영국과 미국은 모두 산유국이지만 소비에 비해 공급이 줄거나, 또는 기존 수출량에 비해 수출이 줄어드는 상황을 우려했다.


이라크전 발발 직전 영국 석유고갈분석센터는 2010년 후 석유 생산량이 급격히 감소할 것이란 보고서를 내각에 제출했다. 직전 미국 정부도 미국 원유 생산량이 급격히 줄어 2020년이 되면 국내 석유소비량의 30%도 충족하지 못할 것으로 전망했다.


2016년 이라크 전쟁 관련 영국의 칠콧 보고서에 따르면 토니 블레어 당시 영국 수상이 조지 부시와 2002년 이미 이라크 전쟁에 합의한 것으로 조사됐다. 블레어 총리가 원유 수급상황과 전후 이라크 석유 이권에서 영국 업체들이 소외되는 것을 우려, 서둘러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이라크 전쟁에 찬성하는 입장의 메모를 전달했다는 것이다. 당시 메모 내용은 "I will be with you"였다. 마치 연애편지와도 같다. 블레어가 부시의 푸들이라고 비아냥거림을 당한 이유다.



2010년대 중반 셰일가스 혁명으로 석유를 둘러싼 미국과 영국의 이해관계는 그 전과는 완전히 엇갈린다.


가장 큰 이유는 미국이 영국의 몫을 제대로 챙겨주지 않아서다. 딕 체니 당시 부통령은 이라크 전쟁에 참여할 동맹을 모집하러 다니면서 "이라크 전에서 미국과 함께 작전한 나라들의 계약 입찰들은 더 호의적으로 취급받을 것"이라고 사탕발림을 했었다. 하지만 전후 이라크 석유는 딕 체니 부통령의 헨리버튼이 사실상 모두 장악했다. '닭 쫒던 개 지붕쳐다보는 격'이 된 셈이다.


미국은 셰일혁명으로 석유 생산량이 폭증한 반면 영국은 석유 매장량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는 점도 두 나라의 엇갈린 행보를 잘 설명해준다. 미국은 석유가 소비되는 글로벌 경제 구조를 유지해야 하는 입장이고, 영국은 친환경 에너지로 산업구조를 빨리 바꿔야 미래의 생존이 보장되는 구조가 된 것이다.


영국을 대표하는 EU 국가들의 입장에서 탄소배출권 거래는 1974년 키신저가 고안한 석유달러 시스템 만큼 기발한 아이디어다. 영국과 독일 입장에선 친환경 에너지 소비구조로 급격히 전환함으로써 탄소배출권을 일종의 수출 자원으로 만든 것이다. 인구 구조도 그렇지만 미국이 글로벌 경제를 석유 소비구조로 끌고가려는 의지를 가고 있는 한, 특히 중국이 급격한 경제 발전과 더불어 막대한 석유를 소비하는 한 탄소배출권 거래 규모는 더불어 증가할 수 밖에 없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영국과 독일로부터 탄소배출권을 수입하지 않으면 석유 수입이 불가능한 시대가 올 수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7년 취임 후 제일 먼저 파리협약을 탈퇴한 것은 재주 부리는 곰이 되기 싫어서였다. 재주는 누가 부렸는데, 그 열매는 영국과 독일이 따먹을 것이기 때문이다.

조 바이든 당선인이 승리가 확정되자 파리협약 재가입을 선언한 건, 전임자 색깔 지우기였을 것이다. 민주당이 선점한 그린뉴딜 정책의 계승이기도 하다. 그와 민주당이 이타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어쩌면 가장 멍청한 행보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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