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은 그냥 취미로도 할 수 있잖아."
"일하고 남는 시간에도 할 수 있잖아."
그림을 그리는 건, 무언가를 만드는 건 취미로 하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다. 순수미술을 전공한 나에게도 사람들은 곧잘 미술은 그냥 취미로 하는 거야 라는 말을 했다. 돈 버는 현실이 쉽지 않아서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게 생각보다 녹녹지 않아 걱정 어린 충고에서 해준 말이겠지만 나에게 이런 말은 걱정 어린 충고가 아니다. 그냥 인생 대충 살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미술이 취미가 될 수 있었다면, 나는 이런 글을 쓰지도 내 인생 전부를 미술이라는 것 때문에 방황하며 살지도 않았겠지. 미술은 취미로 하라는 말은 돈벌이가 되지 않으니 돈벌이는 다른 일로 하고 그래도 미술이 좋다면 남은 여가 시간에 하라는 말인 것이다. 미술을 취미로 하라는 이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좋아하는 일도 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미술을 취미로 하라는 말과 함께 두 번째로 많이 듣는 말은 "미술학원이나 해."라는 말이다. 무엇이든 그것이 일이 되면 들어가는 시간과 돈은 크다. 글쓰기도 그림도 취미로 하지 못하는 이유는 내 마음이 크기 때문에. 그리고 집중해야 할 시간들이 생각보다 길기에. 나는 그림을 그리고 글을 끄적인 다음 남는 시간에 돈 버는 일을 한다. 내 창작활동들이 비록 지금은 나에게 돈을 주고 있지는 않지만 언젠가 이 시간들이 돈으로 환산되기 바라며. 남들이 출근하는 시간에 나는 작업실로 내 책상 앞으로 출근한다. 그리고 그곳에 앉아 무엇이 되든 쓰고 그리고 본다. 나의 매일의 할 일을 한다. 그래서 취미가 될 수 없다. 쉽게 그만두고 싶지 않다. 이것들이 나에게 주는 고통까지 고스란히 안고 갈 거다. 그럴 준비가 나는 됐다. 창작활동에는 반드시 비어있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을 중간중간이 빈 시간들. 그런 비어있는 시간들이 많이 확보가 되어야 한다. 소위 멍때리는 시간. 옆에서 보면 멍때리고 아무일도 안하는 것 같이 보이지만 그 안에 머릿속은 계속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 있다. 만들어 내고 비우고 또 만들어내고. 하지만 다른 돈버는 일을 시작함과 동시에 이 비움의 시간은 대부분 사라진다. 머릿속에 무언가 떠올라도 금방 사라져버리고 만다. 제대로된 일자리 없이 아르바이트를 근근하며 창작활동을 한다고 생각될지 모르겠으나 창작활동을 하기 위해 최소한의 시간에만 돈을 버는 것이다.
그런데 미술학원은 아무나 하나. 미술 학원을 하려면 공간을 차릴 비용이 마련되어야 하고 수업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그리고 미술 학원을 운영한다고 해서 개인 작업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을 거라 생각해서는 안된다. 우리의 하루치 체력에는 한계가 있고 미술학원도 결국 일이기 때문에 운영하려고 이리저리 애쓰다 보면 하루의 시간이 모자라다. 미술을 전공했다고 해서 쉽게 미술은 취미로 즐기기만 하라느니 차라리 미술학원을 차려 돈을 벌라느니 같은 말은 안 해주면 좋겠다. 그저 묵묵하게 너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을 응원한다고 아니 차라리 아무 말 하지 말길. 생각보다 나는, 우리는 알아서 잘 살아가고 있다. 좋아하는 것들을 하고자 이런저런 삶의 방향을 탐구하면서 오늘 하루도 묵묵히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 그래서 나는 내 창작물들이 돈이 되게 할 거야. ‘미술이 돈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겠다.’ 언젠가 보았던 사진 속 벽화에 쓰여있던 글이 생각난다.
인스타그램 @eyouupe
저는 여자인데요. 서른일곱이고요. 결혼은 안 했습니다. 비혼이냐고요? 모르겠어요. 저도. 언제 결혼할 거냐고요? 모르겠어요. 저도. 직업은 저도 모르겠습니다. 미술을 했는데 그게 돈벌이는 아니었어요. 그래서 무엇을 직업으로 얘기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서른일곱 해를 살았는데 아직도 모르겠어요.라고 아는 언니에게 얘기했더니 “나도 아직 모르겠어. 인생이 원래 그래.”라고 한다. 다행이야. 아무도 모르는 게 인생이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