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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원 Apr 09. 2023

챗GPT로 작사하기

나의 해봥일지


챗GPT. 여기저기서 요즘 많이 나오는 말이다. AI니 알파고니 인간 지성을 마치 곧 능가할 것처럼 법석이는 인공 기계 지능 명칭의 최신 버전인데, 웹상에 곧잘 등장하더니 이젠 뉴스에 뻔질나게 나와도 이상하지 않고 SNS에 개인 체험담이 유행처럼 올라오면서 어느새 모르면 간첩 같은 분위기가 되었다. (최신 챗 기술을 얘기하면서 옛스런 표현을 써서 유감이다.) 뭔지는 진작 알았어도 딱히 직접 이용해 볼 생각은 하지 않았었는데, 오늘 우연찮게 가벼운 생각으로 체험해 보게 되었다. 이하는 그 짧은 첫 경험의 기록이다.


나는 작사를 한다. 본업까진 아니고 취미 삼아 쓰는 것이지만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열몇 곡이 등록되어 있는 작사가이긴 하다. 기자는 기사로, 작가는 소설로 챗GPT의 창작력을 테스트한다는데 노랫말 짓기처럼 그 실력을 엿보기에 적당한 태스크도 없다. 이미 녀석에게 작사 일을 시켜본 예가 기성 가수를 비롯하여 여럿 보고되어 있지만 나는 나대로 내 퍼스널 익스피리언스 차원에서 한번 겪어보기로 했다.



첫인사는 가볍게 시작했다.



나: Hi 안녕


ChatGPT: Hello! How can I assist you today?  안녕하세요! 오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나: I am a Korean lyricsist 나는 한국의 작사가야


ChatGPT: That's great! How can I assist you with your Korean lyrics? Do you need help with the language, structure, or ideas for your lyrics? 대단하시군요! 한국어 가사를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가사의 언어, 구조 또는 아이디어에 대한 도움이 필요하십니까?



대뜸 대단하다며 부산을 떠는 폼이 좀 과하게 느껴졌지만, 당황하지 않고 이왕 이리된 거 내 캐릭터를 디테일하게 구현해줄까 싶어 한술 더  과장된 수사를 곁들여 나에 대한 배경지식을 주입해 보았다.



나: 난 아름답고도 슬프고 감성적이며 훌륭한 노랫말을 많이 써온 작사가야. 젊은 시절 영화보다도 더 영화 같은 사랑과 이별의 경험들을 했고, 그 경험들을 가사로 멋지게 표현해 왔어. 이제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요즘 세대 감성에 맞는 가사를 쓰는 게 쉽지만은 않아. 20대에게 소구 할 수 있는 40대 작사가만이 쓸 수 있는 이별 노래 가사를 만들어줘



그랬더니 대뜸 에러 메시지가 떴다. 그것도 아주 정색하고.



ChatGPT: Something went wrong. lf this issue persists please contact us through our help center at help.openai.com.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이 문제가 지속되면 help.openai.com의 도움말 센터를 통해 문의하십시오.





질문이 장황해서였는지 아니면 내 소개가 마음에 안 들었던 건지 몇 번 새로고침을 해도 같은 오류 메시지가 반복해 떴다. 그래서 아예 채팅창을 새로 생성하고 시치미 뚝 뗀 채 사설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나: 40대 작사가가 요즘 감성으로 쓴 이별 노래 가사를 만들어줘


ChatGPT: 물론입니다. 요즘 감성에 맞게 작사해보았습니다. 다음은 40대 작사가가 쓴 이별 노래 가사입니다.


Verse 1

이젠 끝인가봐, 우리 사랑 이제 멈춰

서로 바라보던 시선이 서로 멀어져 가고

이젠 다른 길로 가는데, 왜 서로 머뭇거리는 걸까

Chorus

사랑이란게 이렇게 쉽게 끝나가는 걸까

그대와 함께 했던 추억들이 지금은 아픈 상처로 변해

사랑이란게 이렇게나 더럽게 변하는 걸까

그대와 함께한 기억들이 하나씩 사라져 가고

(중략)

Outro

우리 서로 잘 살아가길 빌게



질문이 간결해지자 녀석은 뚝딱 한 곡을 써냈다. 벌스부터 아웃트로까지 형식까지 딱 맞춰서. 그러나 "이젠 끝인가봐" 같이 전형적이고 뻔한 문장에서 감동을 찾기는 어려웠다. 그나마 사랑이 "더럽게" 변하냐고 묻는 호전적인 코러스가 개중 눈에 띄었달까. 혹시 요즘 감성에 맞춰달라는 요구에 그렇게 구색 맞춘  아니었는지 조금 의심스러웠다.


그래도 형식미는 제법 갖춰 보이기에 기대를 걸고 요구사항을 좀 더 명확하게 적시하여 다시 질문해 보았다.



나: 좀더 참신하고 구체적으로 문학적인 비유를 사용해서 다시 써봐


ChatGPT: 당신의 아름답고도 슬프고 감성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참신하고 구체적인 문학적인 비유를 사용하여 이별을 표현해보면 다음과 같을 것입니다.


Verse 1

이별은 마치 봄이 지나가듯이 차츰층층 쌓여

서로의 마음이 점점 멀어지고 희미해져

우리 함께한 추억들은 마치 이슬처럼 어디론가 사라져가는 것 같았어

Verse 2

이젠 우리 서로가 서로를 잡을 수 없는 것 같았어

마치 낙엽이 나뭇가지에서 내려가듯이

어쩌면 이젠 우리 서로의 길은 갈라져야 하는 걸까

Bridge

이별은 마치 언덕을 오르듯이 천천히 다가와

서로를 떠나야만 할 만큼 멀어져 가는 것 같았어

하지만 그 끝에는 새로운 시간과 인연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Outro

우리 서로 잘 살아가길 빌어. 이별은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겨질 거야.



여전한 과잉친절 복창과 함께 봄과 낙엽과 언덕이 등장했다. 감정의 변화를 시간과 자연에 빗대는 것이 뭐 그렇게 대단히 참신한 은유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사랑이 왜 더럽게 변하니"보다는 꽤 문학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그런데 언뜻 그럴싸해 보이는 문장의 선후관계가 어딘가 좀 어색했다. "봄이 지나가듯" 한 것과 "차츰 층층이 쌓이는" 것이 어울리는 얘긴가? "언덕을 오르듯 천천히 다가온" 이별이 뜬금없이 "떠나야만 할 만큼 멀어져" 갔다고? 갑자기? 결국 기승전덕담으로 끝나버린 마지막 구절처럼 - "하지만 그 끝에는 새로운 시간과 인연이 어쩌구 저쩌구" - 그냥 적당히 있어 보이는 구문들을 늘어놓은 느낌이었다. 비유마저도 클리셰 할 수밖에 없는 것이 녀석의 한계인가. 아니면 아직 익숙지 않은 내 질문부터 클리셰 했을지도?


그리하여 뻔한 소리 따위는 집어치우고 더욱 과감한 주문을 넣어 보기로 했다.



나: 난 화학과 출신이야. 윤하의 노래 <사건의 지평선>처럼 과학적 소양이 묻어나는 독창적인 노랫말을 써봐


ChatGPT: 당신의 화학과 출신 배경을 살려, 과학적인 소양이 묻어나는 독창적인 가사를 써보겠습니다. 윤하의 <사건의 지평선>에서 영감을 받아, 화학 이론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가사를 제안해봅니다.


Verse 1

분자와 원자들이 만나

화학반응이 일어나

어느새 세상은 변해가고

나의 마음도 이리저리 번져가고

Chorus

사랑이란 화학반응

강한 결합력으로 이어지는 것

하지만 그 결과는 불확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사랑의 화학


Verse 2

시간이 지나면 변해가는 것

서로의 화학성이 바뀌어가는 것

그렇게 서로 다른 길로 떠나가지만

불타오르는 기억은 남아있는 것

Chorus

사랑이란 화학반응

강한 결합력으로 이어지는 것

하지만 그 결과는 불확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사랑의 화학


(중략)


Outro

화학에서는 예측할 수 없는 일이 많지만

사랑은 언제나 예측불허의 화학이야.



OMG. 화학과라고 했더니만 아예 화학가를 써버렸다. 하긴 분자와 원자가 만나 화학반응이 일어나는 것보다 더 케미 터질 일이 세상에 어디 또 있겠는가. "어느새 세상은 변해가고 / 내 마음도 이리저리 번져가고", 아주 착착 라임까지 신경 쓴 게 제대로 화학적 소양 묻어나는 찐케미의 사랑가라 하겠다. "사랑이란 화학반응 ~ 언제 끝날지 모르는 사랑의 화학" 후렴구가 반복해 불릴 상상을 하니 내가 언제 뽕짝 감성을 주문했나 자괴감마저 들었는데, 어라 반복해 읽다 보니 왠지 중독성 갑인 게 사랑의 밧데리 저리 갈 대박 나는 건 아닐지 살짝 흔들렸다.





말로만 듣던 챗GPT 첫 경험. 이대로 끝내기 아쉬웠던 나는 격려 차원에서 녀석에게 수미상응 초심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나: 그냥 지금까지 내 얘기 다 무시하고, 네가 쓸 수 있는 최고의 이별 노래 가사를 써봐


ChatGPT: 저를 믿고 최고의 이별 노래 가사를 써보겠습니다. 이별을 겪은 상처와 아픔을 담아, 다음과 같은 가사를 제안해봅니다.


Verse 1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떨리는 내 몸을 감싸안아

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별이란 걸 깨닫고 있어

Verse 2

이젠 다시 시작할게

이젠 너와 함께하지 않을게

한걸음씩 나아가며

아픈 기억들을 떨쳐내고

Chorus

이젠 울지 않을게

너를 그리워하지 않을게

이젠 나의 가슴속에

너란 추억도 없애줄게

Outro

이젠 다시 시작할게

이젠 너와 함께하지 않을게

한걸음씩 나아가며

아픈 기억들을 떨쳐내고



지가 저를 믿겠다며 자존감 뿜뿜 마지막으로 써낸 녀석의 답변은.. 처음보다 눈곱만큼은 나아진 건가? 확실한 건 녀석의 아웃트로 사랑은 한결같았다는 것이다. 아마도 학습 디폴트였나 보다. 뭘 또 다시 시작하겠다며 끝까지 지분대는 녀석에게 이별을 고하고 챗방에서 쿨하게 아웃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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