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키우시나요? 나는 누가 키워주나요?
어떤 글부터 써야 할까? 고민이 많았어요. 돌봄노동자가이드라. 자칫하면 돌봄 노동에 관한 가이드 즉 육아나 살림을 잘하기 위한 가이드로 비칠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그러나 저의 글들을 보면서 눈치채셨겠지만 저는 살림에는 젬병인 사람입니다.
우선 살림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았는데요. 1. 한집안을 이루어 살아가는 일 2. 살아가는 형편이나 정도 3. 집 안에서 주로 쓰는 세간.이라고 네이버 국어사전에 나와 있네요. "나는 살림에는 소질이 없어."라고 말할 때 우리는 첫 번째 의미로서 살림을 정의할 수 있겠어요. 한집안을 이루어 살아가는 일에는 또 어떤 일들을 포함할까요. 정리, 청소, 요리... 다른 가족 구성원들을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일도 포함할까요? 구성원들이 생활하기 좋게 3번째 정의의 '살림'을 배치하고 관리하는 일도 포함될 수 있을까요?
저를 비롯한 돌봄 노동인들, 육아인들, 그러니까 육아인이라고 해서 모두 성별이 여성인 엄마라고 여기고 싶지는 않지만 여전히 제 주변에는 '엄마'라고 불리는 당신들이요. 우리는 모두 살림의 주체라기보다는 보살핌을 받고 살아가는 구성원이었어요. (낯간지러운 말이지만 여전히 달리 표현할 말을 찾을 수 없는) 꿈이 있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한 열심이 있었어요. 열심을 다한 일이 공부일 수도 있고 일이나 작업이었을 수도 있겠지요.
물론 별다른 열의 없이 살아온 시절도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 여기 이곳까지 흘러오게 만든 무언가가 저는 당신의 '열정'이라고 생각해요. 아이를 낳고 키우며 몇 년간의 세월을 보냈죠. 처음 만났을 때만 하더라도 신입이던 남편은 어느덧 그보다 더 어린 신입사원들에게 '꼰대'소리 듣는 나이가 되었죠. 그만큼 사회에서 한창인 때를 보내고 있겠죠. 세포였던 작은 존재는 아기가 되고 어린이가 되어가고요.
가족 구성원들이 변화하거나 성장하는 동안 우리도 분명 고생하고 성장했을 텐데 이 충만했던 시절을 이력서에 한 줄 넣을 수 없는 것이 억울해요. 아이를 어느 정도 키워두니 성숙을 넘어 늙어버린 것 같은 나의 모습이 서러워요. 아이가 기관에 가 있는 시간만이라도 내 시간으로 보람되게 쓰고 싶어요. 이 시간이 다음 커리어의 토대가 된다면 보다 더 기꺼이요.
이런 분들을 위해 이런 분들과 고민하고 성장항 수 있게 돕는 시간을 가지고 싶어요. 우리는 어떤 일을 잘할 수 있을까요? 사실 모든 답을 정해서 아이템을 들고 짜잔 나타나고 싶었는데요. 그렇게는 할 수 없었어요. 모두가 하고자 하는 일이 다르고 할 수 있는 일이 다를 테니까요.
고민해 보니 저는 책과 글쓰기를 통해 그 길을 찾아왔어요. 결혼 후 생긴 변화라면 제 일에 대해 우리 가족 같은 팀원인 남편과 함께 고민해 볼 수 있다는 것이었어요. 제가 잘하는 일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으며 또 이것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그럴듯한 일이 될 수 있는지 냉정하게 판단해 줄 수 있는 타인이거든요. 아이를 낳고서부터는 딸아이가 몇 십 년 후 저와 같은 고민을 하게 된다면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어린 시절 엄마의 어떤 모습을 기억하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었고요. 그러니 내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남편도, 아이들도 걸림돌이 아닌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더라고요.
돌봄노동자가이드 매거진에서는 남편 탓, 아이탓 하지 않고도 나를 키울 수 있는 몇 가지 방법들을 소개하려고 해요. 집안마다 분위기가 다르고 아이마다 기질이 다르며 돌보는 환경이 달라도 실천할 수 있는 소소한 방법들을요. 큰돈을 들이지 않아도 되고 지속가능한 리추얼(ritual)을 만들 수 있는 방법들을 소개할 거예요. 별거 없을지 몰라요. 하지만 조금은 나아질지도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