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의 행복을 위해 오늘 행복을 미루고 억압하는 아이들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잖아요."
라고는 하는데, 화살표의 방향을 바꾸어 보면 어떨까? 성적은 행복에 영향을 미칠까?
아니, 애초에 성적과 행복이 관련은 있는 걸까?
최근 상담한 한 아이가 말했다. "행복하게 살려면 지금부터 빡세게 공부해서 이과 가고 좋은 대학 가서 취업하고 좋은 아내 만나서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싶어요."
대학에서 입학사정관으로 일할 때는 성실한 아이들, 준비된 아이들을 많이 봐왔다. 고등학교 시절 내내 지각 한 번 거의 한 적 없는 아이들, 매 수업 시간 수업 태도가 성실하다는 교과 선생님들의 좋은 평가들로 빼곡히 채워진 아이들, 어쩐 일인지 획일화된 독서 목록과 컨셉이 확실한 동아리 활동, 학급의 임원은 한 반에 기껏해야 두 명일 텐데 어떻게 이 많은 아이들에게 임원 경험이 있는 것인지. 아님 회장, 부회장까진 못하더라도 동아리 회장이라도, 하다못해 멀티 부장이라도 맡음으로써 리더십의 역량을 '보여 주어야 하는' 아이들.....
대단하다 싶으면서도 안쓰러웠다. 성적이든 학생부든 당락이라는 결과를 확실하게 뒤집을 수 있는 아이는 많지 않았다. 성적 대로만 선발해서도 아니었고, 학생부 만으로만 선발해서도 아니었다. 아이들은 분명 저마다 치열한 3년을 보냈을 텐데 정작 결과로 보이는 모습은 비슷했고 성적도 비슷했다. 입시 특성상 같은 대학의 문턱에서 비슷한 아이들끼리 경쟁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내가 근무하던 대학은 SKY도 아니었는데, 그렇게 치열하게 학생부를, 그러나 결국에는 서로가 비슷하게 채워 오는 아이들이 많았다.
아무튼 그래서, 요즘 애들 정말 힘든 거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나마 노선이 정해진 고3이라면 조금 나을지도 모르겠다. 고1이라면 수시냐, 정시냐를 두고 일단 어느 한쪽이 확실하게 망하기 전까진 두 쪽 다 잘 관리해 놔야 하니 버거울 수밖에 없다. 늦은 밤 학원에서 돌아오면 학원 숙제하느라 늦게 잠들고, 다음 날 이른 아침 등교하면 학교에서도 쉴 틈 없이 긴장의 연속일 것이다.
그런 상황을 알기에 아이에게 물었다.
너, 지금, 행복하니?
"평온은 해요. 제가 뭘 해야 나중에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를 아니까요. 어차피 지금은 하고 싶은 것들 못하고 참고 힘든 거 해야 된다고 생각하니까요. 지금 다 포기하고 살면 나중에 행복하겠죠."
다시 물었다.
"지금은 그럼 네 마음은 어떤데? 이렇게 3년, 오로지 버티는 힘으로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사실은 다 놔버리고 싶어서 하루는 엉엉 울었어요."
"원래 하고 싶었던 꿈을 접고 취업 잘 되고 돈 잘 벌 것 같은 진로로 정하고 나니, 이전에 '진짜 꿈'을 꾸었던 저는 사라진 느낌이에요. 안타까워요."
지난주에 흥미롭게 읽은 논문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행복은 4년 후 학업 성취를 예측한다."라는 논문이었다.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의 중학교 2학년 청소년 중 표본으로 선출된 청소년의 패널 데이터를 종단 연구한 결과, 중학교 2학년 시기의 행복이 4년 뒤의 학업성취를 예측한다는 것이었다. 이때 학업성취도와, 흔히들 성적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 확신하는 사교육 정도와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통제했을 때에도 중2 시기의 삶의 만족은 4년 뒤인 고 3 시기의 학업성취를 유의미하게 예측하는 결과가 나타났다.
또한 같은 논문에서 제시된 두 번째 연구(두 번째 연구에서는 서울, 대전 지역의 3개 고등학교에 당시 고3으로 재학 중이었던 학생을 대상으로 분석되었음)에서는, 고3 시기의 삶의 만족이 이후 대학생이 되었을 때에도 학업적 적응과 목표 달성도를 예측할 것인가를 연구했다. 이 또한 유의미한 결과가 나타났다. 이때에도 마찬가지로 고3 때의 학업성적과 가정경제수준은 이후 학업적 적응과 목표 달성 정도와 관련이 없었다고 한다.
이 연구결과들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첫째, 행복을 느끼는 것이 한국 청소년들의 중요한 과업이라고 할 수 있는 학업성취와 무관하지 않으며, 오히려 긍정적인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둘째, 행복이 으레 높은 학업성취를 예측한다고 생각되는 부모의 학력과 수입, 사교육의 설명력을 능가한다는 것이다.
다른 내용도 추가적으로 논의될 수 있겠지만, 일단 아이에게는 이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오로지 버티는 힘만으로는 어려울 것이다.
100m 달리기가 아닌 마라톤을 해야 하는 지금, 힘차게 달리기만 해서는 완주조차 불가능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언젠가 행복해질 것이라는 막연함으로 현재를 괴로워하며 살아가기에 3년은 너무 길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그토록 꿈꿔온 것을 부인하고, 친하게 지내온 친구들과의 관계도 단절한 채 공부에만 매진하는 것은 옳지 않거니와, 그렇게 사는 것이 가능하지도 않을 것이다.
아이에게 의미가 잘 전달이 되었을까? 물으니,
".... 저는 중학교 2학년 때를 돌아 보면 행복했거든요. 그럼 고3 때 성적 좋겠네요."라는 17세 아이의 답변이 돌아왔다.
이게 그렇게 전달이 되었다니, 살짝 허탈했다. 그러나 머릿속에 오로지 성적 올리기로 꽉 차 있는 아이의 생각에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대한 수용과 유연함이 있을 리 없다.
모쪼록 아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러나 행복은, 당사자가 적극적으로 추구해야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 참고문헌 *
구재선, 서은국(2012). 행복은 4년 후 학업성취를 예측한다. 한국심리학회지: 사회 및 성격, 26(2), 35-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