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19
이번 하반기에 치른 한 면접 때의 경험이다. 별 기대 없이 지원한 회사에 서류 합격을 했다. 지원서를 최대한 여러 군데 넣어보자는 생각으로 낸 곳이라 합격할 줄 몰랐다. 평소 준비한 직무와는 다른 직무로 지원을 했다. 그래서 면접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혔고 준비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면접 전날 밤까지 고민했다. 지금이라도 면접에 불참한다는 메일을 보내야 하나. 이런저런 상황을 따져봤을 때 꼭 면접을 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은 면접을 보기가 부담스러웠다. 준비도 안 되어있는데, 가서 말도 제대로 못 할 텐데 굳이 참석할 필요가 있을까. 계약직 근무였고 준비하던 것과 다른 직무였기에 면접까지 합격한다 해도 입사 여부는 또 고민해봐야 했다. 면접에 참석하는 목적은 오로지 면접 경험을 쌓는 것뿐이었다. 그게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결국 고민 끝에 면접을 봤다.
생각했던 대로였다. 준비가 하나도 안 되어 있었다. 질문에 제대로 말한 답변이 없었고 간단한 실무 테스트에 손조차 대지 못했다. 밝았던 면접관들의 표정은 몇 분만에 의아한 표정이 되었고 곧 무표정이 됐다. 한 질문에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다 보니 면접관이 내게 위로 섞인 말을 해주었다. ○○씨가 이 직무에 대해 더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아 보여서 드린 질문이니, 대답 못 했다고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혹시 더 하실 말씀 있으신가요? 나는 바로 없다고 대답했다. 면접은 예정된 시간보다 10분도 넘게 일찍 끝났다. 면접관의 배려가 고마웠다.
그리고 창피했다. 이렇게까지 아무 말도 못 한 면접은 처음이었다. 부족함만 보여줬던 경험이었다. 얻은 건 하나도 없었다. 창피함만 남는 경험이 과연 도움이 되는 걸까. 안 하니만 못한 경험이 아니었을까. 부끄러워서 그날 하루 동안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 면접을 보기로 한 결정이 잘한 건지 못한 건지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보면 못한 쪽에 더 가까운 것 같다.
모든 경험이 인생에 도움이 되지는 않는 것 같다. 어떤 경험은 오히려 겪지 않는 게 더 낫다. 하지만 사람이 좋은 경험만 골라서 할 수 없고 언제나 합리적인 판단으로 최선의 선택을 내릴 수 없다. 누구나 흑역사는 필연적으로 갖게 되는 법이다. 일어난 일은 돌이킬 수 없고 바꿀 수 있는 건 지금의 내 마음뿐이다. 나는 매일 밤 죄 없는 이불을 조금이라도 덜 걷어차기 위해 스스로에게 말하곤 한다. 친구야, 사람이 살다 보면 별 쓸데없는 짓도 할 수 있고 그런 거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