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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슴슴하게씀 Jan 23. 2022

월급쟁이가 되어 버리는 게 싫었다

20220123

20220123 월급쟁이가 되어 버리는 게 싫었다


알바를 하다가 남몰래 운 적이 있다. 대학교 2학년 때다. 카페 마감 알바를 하며 꽉 찬 100리터짜리 쓰레기봉투를 옮기다 갑자기 내 미래가 보였다. 이렇게 다들 그러는 것처럼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교를 다니다 다들 한 번씩 하는 인턴도 하고, 다들 다니는 회사에 들어가서 월급쟁이가 되겠지. 주어진 일을 하며 상사에겐 굽실거리고 동료들과는 가끔 농담도 주고받고 퇴근하고는 피곤한 몸을 방바닥에 삐대다가 곧 잠드는 생활을 매일 반복하겠지. 그게 끔찍해서 울었다.


지금 돌이켜보니 지가 뭐라고 그랬을까. 건방지다. 크게 혼나야 마땅한 놈이다. 정말 크게 혼나야 한다. 아 내가 지금 월급쟁이가 돼서 그런 건 절대로 아니다.



평범한 인생을 살고 싶지 않았다. 특별한 사람이고 싶었다. 언제든 대체 가능한 톱니바퀴가 되는 건 싫었다. 내 인생에는 남다른 의미가 있었으면 했다.


그렇다고 특별해지기 위해 뭔가를 하지는 않았다. 톱니바퀴가 되지 않겠다는 건 세상과 맞물리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건 겁났다. 남들과 불협화음을 만드는 게 어려워서 최대한 비슷하게 생각하는 척했다. 예를 들면 소위 꿈의 직장을 다니는 선배들이 와서 특강을 해줄 때 동기들과 입을 모아 대단하다고 말하고 속으론 그래 봐야 월급쟁이인데,라고 생각하는 식이었다.


시간이 지났고 꿈의 직장을 왜 꿈의 직장이라 하는지 체감하게 되는 때가 왔다. 톱니바퀴가 대체되는 건 쉽다지만 그 형체를 갖추는 건 어려웠다. 조직의 목적은 잘 굴러가는 것이며 그를 위해 톱니바퀴들은 잘 맞는 이를 갖춰야 했다. 자신의 이를 부지런하게 연마해온 친구들은 금방 자기 자리를 찾아갔다. 속으로 딴생각만 한 나는 시간이 좀 더 걸렸다. 취준만 하면서도 자주 집중을 못하고 다 부질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타고난 겁을 떨쳐내지 못해 일단 다들 가는 길을 따라갔다.



지금은 회사를 다니며 그토록 되기 싫어하던 월급쟁이의 삶을 산다. 꾸물꾸물 출근해서 시키는 대로 일하며 상사에게 거듭 죄송하다고 말하고 동기들과 술을 먹고 집에 와서 겨우 씻기만 하고 잔다. 그리 나쁘지는 않다. 동기들도 같은 시기에 비슷한 나이로 입사했으니 다들 이렇게 사는가 싶었다. 술이 다 깬 뒤 지난밤 나눈 이야기들을 되짚어보니 그렇지 않았다.


동기 중 한 명은 예정에 없는 야근을 할까 봐 아침에 운동을 한다 했다. 또 다른 동기는 자기가 다니는 필라테스 학원 에이스다. 누구는 시를 쓴다. 일을 잘하고 싶어서 퇴근하고도 복습을 하는 기특한 사람도 있다. 건너 건너 듣기로는 부업으로 유튜버를 하는 사람도 있다.


다 같은 회사를 다니지만 하나하나 살펴보면 ‘그리고 그 후 그들은 월급쟁이로 오래오래 살았다’라는 진부한 한 문장만으로 끝나지 않을 삶을 살고 있다. 어느 하나 눈물 흘릴 정도로 끔찍해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그저 평범한 월급쟁이의 삶이라도 그리 나쁘지 않다. 진짜 끔찍한 건 누군가의 삶을 그리도 간단하게 치부하고 마는 진부한 시야다. 불손함을 넘어 불운하다. 각자 다른 등장인물들을 월급쟁이 1,2,3으로 치환해버린 글을 읽는 건 끔찍하게 재미없을 거다.



취준할 때 지하철 역 앞 조그만 카페의 커피가 값도 싸고 맛있다는 사실을 알아버렸다. 일찍 일어나는 습관도 들일 겸 눈 뜨자마자 그곳을 찾았다. 커피를 들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사람들이 역을 향해 분주히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 다들 출근하기 싫다는 생각만 하고 있을 거 같았다.


이제 나도 그 무리에 섞여 지하철을 타러 간다. 날이 더 추워졌다. 웅크린 채 역으로 내려가 사람들과 부대끼며 지하철 안에 몸을 쑤셔 넣는다. 지하철은 붐비고 두꺼운 패딩을 입은 사람들이 땀을 흘린다.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데도 조용하다. 저마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있다. 뭘 듣고 있는 걸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내가 포함된 경험적 통계에 따라 모든 사람은 출근길에 ‘출근하기 싫다’라고 생각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다만 그게 유일한 생각이 아닐 뿐이다. 그 나머지의 생각은 지하철의 고요함 너머에 있을 거고 그건 통계 밖의 영역에 속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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