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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슴슴하게씀 Jan 30. 2022

겨울이 싫다

20220130

20220130 겨울이 싫다


그간 많이 추웠다. 눈도 쌓일 만큼 내렸다. 다급하게 나온 출근길에 몇 번을 미끄러질 뻔하며 생각했다. 겨울이 싫다.



겨울이 싫다. 지금이 겨울이라서 싫은 게 아니고 그냥 싫다. 이유는 많은데 무엇보다 춥다. 겨울에 태어났지만 추위를 잘 못 견딘다. 그래서 밖을 돌아다니는 게 괴롭다. 혼자 쏘다니는 걸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곤란한 일이다. 나는 자주 노래를 들으면서 동네를 산책하고 햇볕을 쐬고 달리기를 한다. 가끔은 좋아서가 아니라 필요해서 한다. 필요한 일은 하지 않으면 탈이 난다. 어떻게 나냐면 집 안에 박혀서 한없이 울적해진다. 하필 해가 일찍 지는 것도 울적해지기 좋은 최적의 조건이다.


눈이라도 오는 날이면 거리는 미끄럽고 질척거린다. 매일 아침 출근길에 자기의 운동 능력을 시험하는 지각쟁이들에게는 큰 장애물이다. 순수 달리기 실력으로만 따지면 능히 극복 가능할 시험을 노면 상의 컨디션이란 외부 요인 때문에 좌절하는 일은 참으로 아쉽다. 그래서 ‘아쉽다’와 유사한 발음의 단어를 가쁜 숨과 함께 내뱉으며 떠나간 지하철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게 된다. 지하철을 타더라도 질척이는 거리를 지나온 사람들과 부대끼다 보면 옷과 신발이 더러워져 있다. 마찬가지로 아쉬움을 달래게 되는 일이다.


그 밖에도 겨울엔 아쉬운 순간이 많다. 가스비 고지서를 받아 들 때, 아침에 무심코 눈을 팍 떴다가 건조함에 다시 감아야 할 때, 옷 가게에 걸린 겨울 외투가 나를 보고 있어서 냉큼 다가가 가격표를 확인해보곤 곧장 내려놓을 때, 어디선가 피 냄새가 나서 확인해보니 건조해진 입술이나 손이 찢어져 있을 때, 아쉽다.



애석하게도 사계절이 아름다운 나라에서 태어나버렸다. 따스한 계절밖에 없는 누추한 나라에서 태어나지 못했다. 아름다운 사계절은 돌고 돈다. 내년에도 겨울이 오고 그다음 해에도 겨울이 온다. 한 번쯤 안 왔으면 좋겠는데 때 되면 성실하게도 재깍재깍 온다.


쟤가 꾸준히 오고 내가 이곳에 계속 있는다면 분하지만 내가 받아들여야 되는 거다. 그래서 겨울이 괜찮은 이유를 애써 생각해보았다. 겨울에 기분이 좋아지는 일은 뭐가 있을까. 자주 가는 카페에 크리스마스 장식이 놓여서 맘껏 구경했다. 겨울엔 방어회,를 외치며 지인들을 만날 때마다 매번 방어회를 먹었다. 눈이 내리는 귀갓길에 한동안 묻어둔 자이언티의 <눈>이나 그레고리 포터의 <If Love Is Overrated>를 골라 볼륨을 최대로 해놓고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런 것들을 생각하니 금세 침이 고이고 흡족한 미소가 지어진다. 마치 겨울이 자기도 꽤 괜찮다며 어필하는 것 같다. 빠르게 침을 삼키고 미소를 거둔다. 그리고 덧붙인다. 그렇다고 겨울이 좋은 건 절대 아니야.



얼마 전 근교의 카페에 놀러 갔다가 통창 너머로 꽁꽁 언 연못을 보았다. 추위를 싫어하는 친구를 굳이 데리고 그쪽까지 걸어가 봤다. 연못 둘레의 산책길을 걷다가 친구에게 문득 드는 생각을 말했다. 야 이 연못은 얼어 있어서 더 예쁜 것 같다. 억울하지만 꽁꽁 언 연못 같은 것들을 보며 봄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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