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206
대학생 때 병원에서 소견서를 받아야 할 일이 있었다. 그저 어느 병원이든 가서 진단을 받고 건강하다는 말 한 줄 받으면 된다고 했다. 그때 나는 실제로 건강했기에 쉽게 처리될 줄 알았다. 근처 병원에 가서 사정을 말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의사는 단호하게 안 된다고 말했다. 단호하기만 한 게 아니었다. 거의 소리를 지르며 화를 냈다. 나는 소견서가 필요한 쪽을 연결해주려고 전화를 건 뒤 교수에게 내 핸드폰을 주었다. 그는 전화를 하다 제 화를 못 이겨 내 핸드폰을 테이블 위에 던져버렸다. 옆에 있던 간호사도 눈치를 봤다. 병원을 나오면서 생각했다. 내가 그렇게 잘못했나. 아니면 만만해 보였나. 의사는 안하무인이어도 되는 걸까. 내가 병원에 아는 사람이 있었다면 어떻게 해볼 수 있었을까. 앞으로도 나는 이렇게 무시당하고 살아야 되는 걸까. 며칠 동안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상상력이 많으면 그 인생 고달퍼. 전설의 타짜 ‘아귀’가 말했다. 정작 아귀의 충고가 필요했던 사람은 자기 자신이었다. 그의 상상력은 큰 판에 발동해버렸다. 제 돈 모두 하고 손모가지를 건 아주 큰 판이었다. 아귀는 돈도 잃고 손도 잃었다. 판에 앉은 이들이 자신을 속여 끝내버리려 한다는 상상 때문이었다. 해머가 자기 손을 내려찍는 와중에도 아귀는 제 상상과 다른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니 이게 왜 사쿠라야.
인간은 상상의 힘으로 여기까지 왔다. 동굴에서 지내며 하루하루 살아남기 위해 사냥하고 채집하던 인간이 안락한 보금자리를 얻게 된 건 상상 덕분이다. 하나 포근한 침대 위에서 잠을 이루지 못해 맘 졸이는 것 또한 상상 때문이다. 생존에 도움이 되지 않는 상상들은 종종 인간을 괴롭히고 심해지면 도리어 생존을 위협하기도 한다.
억울한 일을 당하면 이런저런 상상을 하곤 했다. 주로 권선징악의 시나리오를 그렸다. 나를 억울하게 만든 사람이 언젠가 크게 벌받는 상상을 했다. 또는 군자의 복수를 꿈꿨다. 그 사람보다 더 나은 위치에 서게 되어 그에게 10년 만의 복수를 하는 상상을 했다. 군자의 복수에 걸맞게 그는 내 상상 속에서 더 악한 사람이 되어야 했다. 그래야 더 통쾌하게 되갚을 수 있었다. 그러나 복수에 성공해도 현실이 아니었고 실패하면 비참하기만 했다. 무엇보다 그렇게 상상하고 있는 내 실제 모습이 군자는 전혀 아니었고 소인배라 하면 딱 맞았다. 더 억울했다.
일어나지 않았고 일어나지 않을 일을 상상하는 건 재미있다. 반면 감당할 수 없는 상상도 있다. 그 상상 속 세상은 실제보다 내게 훨씬 비협조적이다. 너무나 모질어서 상상인데도 무력감을 느낄 정도다. 실재하지 않는 세상이 주는 무력감은 실재하는 나를 초라하게 만든다. 그런 상상은 하면 할수록 우리를 갉아먹어서 한없이 불안하고 작아지게 한다. 거기에 빠져 들면 우리 인생은 고달파지고 그 끝엔 멀쩡한 손모가지를 잃고 마는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
까맣게 잊고 살던 그때 병원의 일이 최근에 불쑥 떠올랐다. 이제는 군자의 복수를 하기 위해 머릿속에서 10년을 보내지 않는다. 대신 군자의 무심을 했다. 군자의 복수가 10년이 걸려도 늦지 않는 거라면, 군자의 무심은 10초가 걸리면 한참 늦은 것이다. 뭐, 그런 일도 있었지,라고 생각하고 치우는 건 분명 10초나 걸릴 일이 아니다.
최근 누군가가 내 험담을 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 사람에 대해 상상하지 않기로 했다. 그가 나를 어떤 사람으로 생각하고 내 어떤 점에 불만인지 상상하지 않는다. 그에 맞춰 어떻게 해명해야 할지도 상상하지 않는다. 깊게 상상할수록 내 상상 속의 그 사람은 현실의 그 사람과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될 것이다. 지금 내가 그와 대면하는 동안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눈앞에서 문제가 생긴다면 그때 대응하면 된다. 그렇지 않았던 요 며칠 발 뻗고 푹 잤다. 오늘도 그럴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