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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슴슴하게씀 Feb 14. 2022

남 탓 좀 하는 게 꼭 내 탓은 아닙니다

20220214

20220214 남 탓 좀 하는 게 꼭 내 탓은 아닙니다


신입사원의 특권이 있다고 한다. 많이 질문하고, 실수해도 된다는 것이다. 나는 하나 더 있다고 생각한다. 남 탓을 좀 해도 될 특권이다. 이제 막 들어온 회사인데 내 탓할 껀덕지도 별거 없고, 말하는 감자가 남 탓을 한다고 크게 피해 볼 사람도 없다.



잘못을 하는 사람은 꾸지람을 듣는다.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알고 자랐다. 자라다 보니 의문이 생겼다. 잘못했다는 게 뭘까. 그게 진짜 잘못일까. 반대로 잘하는 건 뭘까. 꾸지람을 듣고 지켜보면서 잘못의 기준이란 다분히 꾸짖는 이의 자체 판단에 좌우된다는 걸 느꼈다.


문제는 사람이 대개 남에게 관심이 없다는 거다.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이 멋지다는 건 누구나 다 안다. 하지만 아는 것과 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평가를 할 때 대부분은 일의 결과를 갖고 판단한다. 과정에 관심을 갖는 이는 드물다. 관심을 갖고 봐도 파악하기 어려운 게 과정인데 관심도 없으면 전혀 모르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 가운데 억울하게 욕먹는 일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평가자의 불편한 심기만 더해지면 된다.


또 다른 문제는 조직이 부당한 만큼 나도 제법 부족하다는 거다. 세상은 빠르고 복잡하다. 그만큼 한 사람이 짊어져야 할 일도 많다. 그 일을 다 해내기에 사람이란 동물은 아직 부족하다. 아무리 신경을 쓰더라도 실수를 할 수밖에 없다. 여태껏 실수를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같은 실수를 여러 번 하는 사람도 자주 봤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고들 한다. 반복해서 말하자면 아는 것과 하는 것은 아주 큰 차이가 있다. 개선은 말처럼 쉽지 않다.



남 탓도 좀 하면서 살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살기 힘들다. 물론 변명하지 않고 다 떠안는 사람은 멋있다. 하지만 그 멋을 감당하기에도 사람은 부족한 존재다. 내 탓만 하다 보면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무너질 때가 온다. 본인이 정말 두드러지게 부족한 사람이 아닌가 의심하게 된다. 실은 다들 고만고만하게 좀 잘난 혹은 좀 못난 사람들 사이에서 말이다.


그렇게 다 본인의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은 정작 남에게는 한없이 너그럽다. 남에게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어떻게든 찾는다. 그런데 본인에겐 어떠한 이유든 불문하고 그러면 안 되는 거였다고 자책한다. 본인도 남과 같은 사람인데 스스로에게만 특별히 다른 기준을 부여할 필요가 있을까. 자신을 차별하는 것도 어찌 보면 사람을 차별하는 짓이다.



그리하여 나를 탓하지 않고 남을 탓해도 될 명분을 구했는데 중요한 건 그다음이다. 남 탓을 하면서까지 나를 지켰다. 그건 그래야만 말하는 감자에서 싹이라도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앞에 쌓인 많은 일에 비해 조직이 제공하는 자원은 부당하고 내 역량은 부족하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을 버티기 위해서는 남 탓을 좀 해야 한다. 대신 남 탓만 하지 말고 남 탓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인지해야 한다. 주어진 상황과 내 역량을 제대로 인지해야 그 가운데 만들 수 있는 최선이 무엇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라도 버티면서 최선의 아웃풋을 만들어 나가는 게 스스로를 낙오시키지 않으면서 덜 부족한 나로 나아가는 방법일 것이다.



덧붙이자면 아무리 스스로를 지키려 노력한대도 사람은 참 여러 모로 부족하다. 언제까지고 혼자서 지키는 건 한계가 있다. 그럴 때 좋은 사람이 옆에 있어야 한다. 나만 알 수 있는 복잡한 사정을 깊이 들어주고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 말이다. 다행히 내 주변엔 그런 사람이 몇몇 있다. 그들에게 하소연을 하다 보면 종종 벽난로처럼 은은한 따뜻함을 느낀다. 누군가가 내게 와서 하소연을 할 때 내가 그들의 모습을 닮아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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