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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 Dec 30. 2020

은희였던 우리 어린 날, <벌새>

House of Hummingbird, 2018, 김보라

2019년 9월 3일에 써놓은 글을, 

용기가 없어 발행하지 못하다 이제야 발행한다.



5.0/5.0



    은희네 집 같은 가정에서 뭔가 문제를 제기하면 가장 먼저 듣는 말이 무엇일 것 같은가? 그리고 그 문제 제기를 누구한테 할 것 같은가?


    나는 대한민국의 43932152번째 은희다. 처음으로 우리 집이 무언가 잘못되었고 그로부터 상처 받았다는 걸 깨달은 것은 고등학생 때였다. 그때가 처음으로 집을 나와 기숙사에 살기 시작한 때였다.


    고등학생 이전의 나는, 소위 말하는 날라리였다. 친구들과 몰려다니고, 학교가 끝나면 노래방을 들르고, 학원에 공부하러 가는 게 아니라 친구를 만나러 가는, 가끔 문구점에서 물건을 훔치고 선생님 말씀은 지지리도 듣지 않는, 그런 학생이었다. 그나마 공부머리가 조금은 있어서 성적이 잘 나와준 덕분에 크게 혼나지는 않지만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그런 학생. 


    그때 함께 몰려다니던 친구들을 기억한다. 다른 사람들에겐 우리가 그냥 껌 좀 씹는 날라리 같았을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눈 친구들이었다. 가족 중 누구에게 맞은 얘기, 부모님이 이혼한다는 얘기, 어제 부모님이 싸워서 집 안에 뭐가 부서졌다는 얘기, 전학을 많이 다녀서 힘들다는 얘기... 시시콜콜한 연애 얘기나 우스운 일들에 대한 이야기 사이로 우리는 정말 많은 대화를 했고 서로를 위해 많이도 울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그런 학생들을 볼 때면 그런 이야기들을 생각한다. 분명히 사정이 있겠거니, 아무 이유 없이 그렇게 굴기에는 너무 어리고 예쁜 나이니까.


    그러나 나도 그런 아이였다는 것은 <벌새>를 보고서야 알았다. 나는 그냥 그 친구들과 있는 게 즐거워서 몰려다닌 건 줄 알았는데, 아니 어쩌면 조금은 알고 있었을 테지만 이제까지 잘 외면해왔던 것일 테다. 나는 내 가족들을 너무나도 사랑해서 그들의 잘못을 알면서도 잊고 잊으려 애썼다. 


    <벌새>의 가장 현실적인 점이  무엇일까?  개인적으로 가족들이 매일 밤 모여 식사를 한다는 것과 크게 싸운 다음 날 함께 시시덕대며 티브이를 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집이 정확하게 그랬으니까.


    부모님한테 맞은 날도, 오빠가 아빠한테 골프채로 맞은 날도, 엄마랑 아빠가 크게 싸운 날도, 그 모든 날에 우리는 저녁을 함께 먹었다. 왜? 그래야만 했다. 그러지 않으면 더 큰일이 날 테니까. 아빠가 너무 미워서 다 부숴버리고 싶은 날도 아빠가 숟가락을 뜰 때까지 기다렸다. 그 사소한 것을 지키지 않으면 그다음 번엔 세상이 무너질 테니까. 밥을 다 먹기 전까지 (남기는 것도 결코 허용되지 않는다.) 식탁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아빠가 엄마한테 혀를 차는 소리나, '에이씨'같은 추임새를 다 들어가며 밥을 먹었다. 내가 뭘 잘못하면 늘 엄마의 탓이 됐다. 그건 당연했다. 아빠는 절대 잘못할 일이 없는 완벽한 사람이었으니. 


    그게 다 싫었다. 완벽하지도 않으면서 완벽한 사람 프레이밍 하는 모습도 싫었고, 그 프레이밍 하나를 위해 온 식구가 희생되어야 하는 것도 싫었다. 우리를 위해 돈을 번다고? 정말 위한다면 생색내지 말지. 누가 낳아달라고 했나? 자기들이 낳아놓고 왜 나한테 그래? 하는 생각을 수 없이 했다. 


    엄마랑 아빠가 크게 싸우거나 오빠나 내가 크게 맞은 다음 날은 늘 평온했다.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이 하루가 흘러갔다. 저녁때 모여서 밥을 먹고, 다 같이 과일을 먹으며 티브이를 봤다. 웃긴 프로그램을 보며 함께 웃었다. 오빠나 내가 울면 약을 발라 줬고 미안하다고 사과도 했다. 부모님은 아무리 크게 싸워도 한 방에서 잤다. 


    그것들은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우리 가족은 사이가 좋은 걸까, 나쁜 걸까? 엄마랑 아빠는 서로 사랑하는 걸까? 부모님께 나는 소중한 딸일까? 우리 오빠는 소중한 아들일까? 그럴 거면 왜 때렸을까? 왜 화냈을까? 왜 그냥 좋은 말로 할 수 없었지? 


    그리고 그 물음들의 끝은 늘 나로 귀결됐다. 아, 내가 잘못해서 그런 거야. 내가 너무 잘못해서 화를 참을 수 없었던 거야. 부모님은 나를 사랑하는데 내가 그렇게 만든 거야. 내가 더 잘해야 해. 부모님을 화나게 하면 안 돼. 화만 내지 않으면 우리 부모님은 정말 좋은 분들이야.


    이제는 그런 생각들이 어릴 때 가정폭력에 노출된 아이들이 하는 생각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어린 날의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늘 부모님의 마음에 쏙 드는 막내딸 역할을 자처해서 해왔다. 지금 눈치 빠른 인간으로 자란 건 다 이런 바탕에서 시작된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지금은 잘 안다. 내 잘못 때문이 아니라는 거, 그리고 내가 잘못을 했다고 해도 그러면 안됐다는 거. 그러나 그때는 모든 게 그랬다. 뭔지 모르게 자꾸 억울하고 자꾸 눈물이 나지만 입은 이미 잘못했어요 말해버리는 그런 상황들의 연속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아빠를 미워했느냐? <벌새>의 은희가 아빠를 미워했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우리 아빠를 사랑한다. 배고픈 것도 참고 나와 온 유치원을 다 구경하고서 불 꺼진 식당에서 밥을 먹던 우리 아빠를, 나를 끔찍이 생각해서 내 진로를 반대했던 우리 아빠를, 그래 놓고 대학에 합격했을 때 나와 함께 춤을 췄던 우리 아빠를, 늘 늦은 밤 나를 데리러 오는 우리 아빠를, 나는 정말로 사랑한다. <벌새>의 은희 아버지도 병원에서 은희를 위해 울어주지 않았던가.


    이 모든 게 사랑에서 비롯되고, 사랑이라는 이름 하에 덮인 무엇들 때문에 벌어진다. 나를 사랑하지만 우리 아빠는 그런 사람인 것이고, 은희를 사랑하지만 은희 아빠는 그런 사람인 것이다.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고 엄마도 엄마가 처음일 테니 완벽한 부모가 될 수는 없는 것이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릴 적 내 세상은 번번이 무너졌고 또다시 쌓아 올려졌다. 그러나 무너진 세상은 흔적을 남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은희네 집 같은 가정에서 뭔가 문제를 제기하면 가장 먼저 듣는 말이 무엇일 것 같은가?

그리고 그 문제 제기를 누구한테 할 것 같은가?


정답은

'너 왜 그래?'와 '엄마'다.


    나는 우리 집에서 자타공인 가장 예민한 사람이다. 오빠는 그런 어린 날들을 개의치 않는다고 했고 엄마는 내게 그래서 상처를 많이 받았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우리 엄마도 그런 날들의 피해자였으니 나는 엄마에게 따지고 들면 안 되는 것이었다. 아빠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거나 자기는 그런 적이 없다는 말을 했다. 그런 과거에 얽매여 정신병원에 가는 건 쪽팔리는 일이라고도.


    사실 아빠한테는 이 얘기들을 다 해본 적 없다. 어릴 때부터 봐온 아빠는 화나면 무서운 사람이니까, 이런 얘기를 해서 화가 나면 무서운 사람으로 돌변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서 말을 할 수가 없다. 그냥 요즘은 안 그러니까, 나는 이제 자취를 하고 다시는 집에 살 일 없을 테니까 굳이 얘기해서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겠지 하고. 그냥, 또 아빠가 눈을 부릅뜨고 무서운 표정을 지을까 봐 무서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리 가족을 너무나도 사랑하는데

이 마음을 아시나요?





    이 모든 이야기가 <벌새>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것을 직접 겪지 않았다면 보여줄 수 없는 디테일한 부분들까지도.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참 많이 울었다. 은희가 어린 날의 나 같아서. 그리고 영화가 끝나고서도 참 많이 울었다. 어린 날의 은희였던 사람들이 남긴 리뷰들이 다 너무 힘이 되었다. 내가 이상했던 것이 아니라고 말해줘서 너무 고마웠다. 영지 선생님과 세상의 모든 은희들이 맺은 약속- 우리 모두 우리 덕분에 다시 손가락을 움직일 용기를 얻게 해준 고마운 영화라고 평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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