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조, 만지고 싶은 기분
사람은 겪어봐야 안다는 말이 있다. 이 문장을 나는 사람을 볼 때 첫인상이나 그 사람에 대한 소문 혹은 평판으로 단정 지어 생각하지 말라는 의미라고 이해했다. 직접 겪어본 뒤에 그 사람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거라고. 우리 기관의 관리자가 새로 와서 사람들이 술렁일 때 내 나름대로는 거기에 휩쓸리지 않고 신중하게 데이터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처음 인사하던 날 느껴졌던 인상을 포함하여 그 이후로 마주칠 때마다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주된 감정이나 인상이 밝은지 어두운지, 침착한지 활기가 넘치는지. 일을 할 때는 구체적으로 어떤 점을 보완하고 수정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전달하는지, 진행되는 과정에서 부드럽게 절차가 이어지는지. 갑작스럽게 구성원이 아프거나 자리를 비우는 변수가 발생했을 때 관리자로서 어떻게 반응하고 대처하는지 등등.
6개월 정도 겪어보고 나니 내 마음속에서 이번 관리자는 같이 일하기 어렵고 불편한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려버렸다. 내년에 보직을 신청하지 말아야겠다고 마음을 굳게 다졌다. 인사이동 시기에 예상한 대로 관리자 면담이 있었고, 나는 그 자리에서 보직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올해 업무가 좀 과도해서 무리가 되었고, 내년에는 학업 계획과 가족계획도 있기에 쉬어가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보직을 맡은 사람들이 보직을 그만두고 싶어 하는 건 매년 반복되는 일이고, 또 이걸 자신이 원하는 구성원을 받아가거나 원하는 자리를 갖기 위한 협상 카드로 쓰기도 하니까 관리자가 재차 보직을 제안할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순순히 물러나시는 게 아닌가. 나로서는 잘된 일이지만, 협상 카드로 쓰려고 했던 분들은 꽤나 당황했고, 보직을 내려놓겠다는 사람들이 속출하며 공석이 늘었다. 이런 상황에는 관리자분들이 동정표 유발 작전이나 협박 작전 둘 중 하나를 택하여 빈자리를 급하게 채우곤 했었는데, 우리 관리자님은 굉장히 조용하게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으셨다. 관리자가 조용해지자 구성원들은 소란스러워졌다. 관리자의 침묵이 길어지니 언제 나에게 보직 제안이 들어올지 모른다는 각자의 불안과 두려움이 가중된 거다. 직장 분위기가 이렇게 엉망이 된 게 관리자 탓으로 느껴졌고, 관리자에 대한 나의 호감도는 거의 바닥에 가까워졌다.
이런 와중에 하필, 관리자와 당직 날이 겹쳤다. 출근을 하며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표정으로 티 내지 말자. 같은 공간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 그뿐이다. 사랑의 반대말은 증오가 아니라 무관심이다. 관심 갖지 말자. 당직 업무를 시작한 지 20분 정도 되었을 때, 관리자가 출근했다. 같은 공간에 둘이서 있는 건 처음이다 보니 마인드컨트롤을 하긴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괜히 긴장이 되었다. 인사하고 바로 업무 시작하실 줄 알았는데, 웃으면서 가까이 다가오셨다.
"아침은 먹었어요? 고구마 챙겨 왔는데, 같이 먹어요."
"앗, 네."
고구마 먹다가 얹히는 거 아닌가, 무슨 얘기를 해야 하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런 나와는 다르게 관리자는 가볍게 툭툭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더니, 나에 대해 궁금했던 점을 묻기 시작했다. 그게 불편하기보다 좀, 신기했다. 내가 맡은 역할이나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생각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수고와 어려움을 알아주고 인정해 주는 말을 하시길래 정말 깜짝 놀랐다. 이런 말을 하실 줄 아는 분이었나. 그러면서 자신은 우리 조직의 모든 구성원이 정말 능력이 많고 역량이 뛰어나다고 생각한다고, 그런데 구성원들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자신들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것 같다며. 사실 관리자가 구성원들을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도 놀라웠는데, 뒤이은 말은 정말 내가 이 분을 그동안 잘못 파악했나 싶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나는 각자의 자율성을 존중해주고 싶어요. 솔직히 이러이러한 이유로 당신 차례니까 보직 임명합니다. 이렇게 일을 처리하면 사실 나도 편하고, 가장 깔끔한데.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아요. 누군가 시켜서 일을 맡으면 아무래도 일을 하는 태도가 수동적일 수밖에 없고, 남 탓을 하는 데 에너지를 낭비하게 되니까. 그 일을 맡아도 개인의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 말이에요. 그렇지만 그건 분명히 있어요. 보직은 조직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씩은 해봐야 한다고 봐요. 그래야 조직이 어떻게 운영되고, 일하는 사람의 노고를 알고 좀 더 협조적으로 또는 적극적인 태도를 갖게 되니까. 그런데 그걸 시켜서 갑작스레 맡는 것과, 내가 해야 하는 일이다라고 하는 건 큰 차이가 있어요. 전 그런 면에서, 올해 보직을 맡는 게 부담이 된다고 하면, 그럼 내년에 맡으라고 해요. 그럼 일 년 간 그 업무를 좀 더 관심을 갖고 보겠죠. 조직이 돌아가는 것도 그렇고. 자신의 선택한 시기를 존중해주고 싶어요."
자신은 의견을 낼 수 없는 직장 분위기 속에서 당연히 해야 하니까 일을 했다고 고백하시면서, 자신이 관리자가 된다면 이 부분을 바꾸고 싶다고 생각했고 나름 실천하고 있는 중이라고 하셨다. 조직원들의 자율성과 선택을 존중하는 동시에 모든 구성원이 한 번쯤은 보직을 해봐야 시야가 넓어지고 성장한다는 자신만의 철학이나 소신을 밝히는 모습이, 정말 낯설었다. 솔직히 좀, 멋있었다.
"익숙하게 싫어하는 대상에 낯설게 임해보면 싫어하는 마음이 슬그머니 묘연해질 때가 있다."는 이 문장을 수집하면서도 과연 어떤 날, 어떻게 쓰게 될까 궁금했는데. 이렇게 빨리 꺼내어 쓰게 될 줄 몰랐다. 사람은 겪어봐야 안다더니. 6개월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짧았나. 아님 시간의 양보다 질의 문제였을까. 사람의 마음이 말과 행동으로 드러난다고 하지만, 전부가 꼭 그런 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사람을 알아가기에 진솔하게 나누는 깊은 1시간짜리 대화가 6개월의 관찰보다 훨씬 나을지도.
위의 글은 2024년 1월 26일에 작성되었고, 서랍 속에 내내 담겨 있던 글이다. 그때 발행했어야 했다. 지금의 나는 이 관리자를 바라보는 관점과 평가가 다르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발행하는 이유는, 새삼 내 글을 읽어보니 그 당시 나의 고민이 이랬구나, 맞아, 그때 이런 상황이었지. 다시금 경험하며 잊고 있던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과거의 내가 이런 생각과 감정을 겪었다는 걸 시간이 지나고 보니 참 낯설고 놀랍기도 하다.
그래서 자신이 쓴 일기나 글을 시간이 지나고 난 뒤에 꼭 다시 읽어보라고 하나보다. 나의 사고의 흐름과 정서의 변화를 발견할 수 있으니까. 그러다 보면 나는 사람과 관계할 때 어떤 부분을 주요하게 관찰하고, 어떤 가치관에 큰 점수를 주는지 발견할 수 있게 되니까 말이다.
내가 썼던 문장들, 짧은 글, 일기.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진 내가 쓴 글의 흔적을 따라가 보자. 우연하게 나의 새로운 조각을 또 발견하게 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