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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인북 Oct 22. 2024

귀여운 나무 두 그루

<아낌없이 주는 나무>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첫 수업 책으로 고르며 나는 어쩌면 뻔한 전개를 떠올렸는지도 모른다.

아낌없이 주는 존재 = 부모님이라는 공식을 따라 이 아이들도 엄마, 아빠의 이야기를 쓰겠지. 아! 아빠보다는 엄마 쪽이 더 많은 이야기가 나올지도 몰라. 그럼 수업 마치고 어머님들께 아이들이 얼마나 엄마의 존재에 대해 애틋하고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알려드려야지.

하지만 내 생각은 완전히 어긋났다.




“00에게도 이런 나무 같은 사람이 있어요?”

“네! XX요!!”

순간 나는 빵! 하고 웃음이 터져버렸다. 생글생글 웃으며 이야기한 그 이름은 함께 수업을 듣는 친구였다.

“와 그렇구나~ 왜 XX가 나무 같은 사람이에요”

“XX는요 제가 다치면 와서 괜찮아?라고 물어봐주고요, 축구할 때 저한테 패스도 잘해줘요!”

이야기를 듣고 있는 친구를 슬쩍 보니 웃을 듯 말 듯 뿌듯하면서도 부끄러우면서도 즐거운 입꼬리가 들썩인다.

여기서 나는 감지했다.

아, 물어보나 마나 구나.

오늘 이 수업엔 귀여운 나무 두 그루가 앉아 있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고전 중의 고전,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한 소년과 나무의 이야기이다.

절친인 나무와 즐거운 추억을 쌓던 소년은 자랄수록 나무를 찾아오는 발걸음이 뜸해진다.

나무와 소년의 이름이 새겨지던 곳에는 어느새 소년과 누군지 모를 다른 이의 이름이 새겨진다. 그렇게 홀로 있는 시간이 많아진 나무에게 더 이상 소년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을 만큼 커버린 소년이 찾아온다.

함께 시간을 보내자는 나무에게 나에겐 돈이 필요하다, 집이 필요하다, 배가 필요하다며 나무가 내어주는 열매와 나뭇가지와 줄기까지 가지고 가버린다. 이가 나빠서 사과를 먹을 수도 없을 만큼 나이가 먹어버린 소년에게 밑동까지 내어주는 나무의 헌신적인 모습이 책의 핵심 감동 포인트다.


출처 pixabay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된 후 만나는 이 책의 내용은 씁쓸하리만큼 부모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어릴 땐 하염없이 나만 바라보고 나랑만 놀고 싶어 하고 끊임없이 러브레터를 써오던 아이가 자랄수록 내 열매와 나뭇가지만 바라게 되면 어쩌나. 내 줄기까지 베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배를 만들어 타고 떠나버리면 밑동만 남은 내 마음은 얼마나 휑할까. 그래도 자식이라고 힘들고 외로울 때 찾아오면 안간힘을 다해 몸뚱이를 펴며 밑동을 내어주겠지. 아 생각만 해도 승질이 솟구치네. 그래도 줄기는 내주지 말아야 그거라도 얻어보겠다고 자주 찾아오려나. 이래서 나이 들면 자식들한테 다 물려주지 말고 돈주머니 쥐고 있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건가. 아니 나무를 베어갈 거면 다음을 생각해서 옆에 묘목이라도 몇 그루 심어놓고 베어가던가 뭐 이리 대책 없이 다 가져가는 거야. 그 와중에 나무는 다 줘놓고 뭘 더 주고 싶은데 없다고 미안해하는 거야. 뻔뻔하게 가져가는 소년보다 이게 더 짜증 나네.



이미 상상의 나래 속 나는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 있었다. 대학 보낸낸다고 한번, 결혼시킨다고 한번 휜 허리. 돌아가며 손주들 봐달라고 부탁하는 아이들 등쌀에 휘말려 정신놓고보니 어느새 나이 80의 호호할매가 되었는데 그런 나에게 찾아와 뭐 하나라도 더 가져갈 것 없나 기웃거린다면? 예끼 이놈아!  이런 부모 등골 빼먹는 싹퉁 바가지들! 이미 상상속의 난 역정내며 지팡이를 휘두르는 호통 할머니가 되어있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이놈들을 어떻게 하면 그런 몹쓸 인간으로 만들지 않을까 생각이 흘러간다. 가만보자, 인성검사를 해봐야 하나… 자립심을 키워야 하나 배려심을 길러야 하나, 뭐가 우선이지?


생각의 흐름을 끊어낸건 우연히 돌린 시선 끝에 있는 책 표지였다. 웃고 있는 소년과 가지를 내밀고 있는 나무. 아! 이 책을 쓰신 쉘 실버스탄인 작가님 이런 생각 하라고 쓰신 이야긴 아니었을텐데? 등골 브레이커 아닌 자립과 배려 넘치는 아이로, 라는 부제 정도 붙어야 하는 책이 아니었건만. 꼬질꼬질 때 묻은 내 마음보단 보송보송한 아이들의 생각이 이 책엔 더 어울리겠다.



출처 pixabay


한 친구가 이런 질문을 만들었다.

- 왜 소년은 나무 밑동에 앉았을까요?

“ 자기가 다 가져가고 뭔가 너무 받기만 하고 주진 않았으니까. 나무가 원하던 건 같이 있는 거니까 앉아서 같이 얘기하고 그랬을 것 같아요.”

“ 옛날에 놀았던 추억도 있고 그런 거니까 다시 그렇게 놀고 싶은데 늙어서 그렇게는 못 노니까 같이 얘기하면서 노는 것도 재밌으니까 나무에 앉은 것 같아요. 소년도 그제서야 나무랑 놀고 싶은 마음 때문에 앉으면서 또 놀던걸 생각하면서.”

-  그럼 소년은 나무 밑동에 앉아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내가 다시 어린아이가 되고 싶다. 다시 나무랑 놀게… 이랬을 것 같아요.”

“모든 걸 가져간 게 미안하니까 자기도 언젠간 다시 돌려주겠다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


아이들의 마음속 소년은 마냥 파렴치한 등골 브레이커는 아니었다. 내 이야길 들어주고 사과도 나눠주고 그네도 타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베프에게  잠깐 속상하고 섭섭한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지만 미안한 마음으로 다시 같이 시간을 보낼 줄 아는, 배려와 추억을 예쁘게 간직할 줄 아는 사람. 종종 사소한 일로 삐질 수도 있고 패스해 준 공이 엄한 곳으로 굴러가 화가 날 수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런 것 정도는 묻어 두고 함께라는 시간 속에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또 한그루의 나무였다.


축구 경기 때 패스 한 번으로, 먹고 싶어 했을 때 나눠준 두바이 초콜릿 한 조각으로 서로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란 칭호를 얻은 아이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란 어쩌면 그 정도로도 충분히 시작할 만한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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