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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쥴 Oct 09. 2023

공해가 되지 않는 글쓰기에 대해

한글날 훈민정음과 트렌드 2024를 읽고


'나는 자연인이다¹'는 도시 현대인의 힐링 프로그램으로 9년째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다.


프로그램 기획 초기,

담당 PD는 자연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을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자연인들은 수도 없이 계속 나왔고 이들 대부분은 산으로 들어가기 전에 꽤나 공감할 수 있는 삶의 이야기를 갖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도시에서의 생활을 벗어나려 한다는 것은 사회 내에서의 교류가 매우 피곤할 수 있음을 알려준다.


우리는 교류를 통해 관계를 맺고 자원을 얻는다.

이는 사회적 동물이라는 우리의 본성에 깊숙이 녹아 있는 행위다.


우리는 좀 더 효율적으로 교류하기 위해 다양한 수단을 사용한다.

말과 음악은 즉각적으로 상대방에게 뜻과 감정을 전달하고,

그림은 개념이나 느낌을 시각적으로 알려주며,

글로서 감정과 생각을 정제하고 공유한다.


이런 방식들을 통해 우리는 끊임없이 읽고, 보고, 듣고, 표현하며 정보를 나누고 서로를 이해한다.




WWW로 온 세상이 연결되어 있는 현재는 보고 듣고 이해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


각종 채널과 매체로 쏟아지는 메시지와 광고, 불필요한 정보의 물결 속에서,

정말로 필요한 정보를 찾아내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습득해야 할 지식과 기술의 트렌드는 너무나 빠르게 쌓이고,

쏟아지는 이메일과 실시간 카톡에 재빨리 대응하느라 우리 자신은 계속 소진된다.²


김난도 교수가 ‘분초사회(Don't Waste a Single Second: Time-Efficient Society)’를 트렌드코리아 2024의 첫 번째 키워드로 뽑은 이유가 충분히 납득이 간다.


제약회사의 IT 서비스와 마케팅 관련 업무를 보다 보니 몇 년 전부터 나는 트렌드코리아가 나오면 분초를 다퉈서 가급적 빨리 흩어보고 납득되는 부분만을 발췌해 발 빠르게 활용하곤 했다. 그래서 오히려 이번 '분초사회'키워드는 조금 늦게 다뤄졌다 생각이 든다.


우리는 넘쳐나는 콘텐츠의 무한한 바다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정보를 보다 효율적으로 공유하기 위해 인간은 인터넷과 같은 IT 기술을 발전시켰지만, 끊임없이 업데이트되는 세상은 우리를 더욱 지치게 한다.

IT혁명으로 인한 콘텐츠의 즉각적인 접근성은 우리를 조금의 시간도 낭비할 수 없는 생산성의 노예로 채찍질한다.

유발 하라리가 농업혁명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라고 하지 않았나. 여분의 식량이 여분의 시간을 뜻하지 않고 오히려 더 많은 노동을 가져다줬듯이 우리는 더 많은 지식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내 글이 공해가 되지 않으려면 자신의 분초를 내주며 내 글을 읽어주시는 분께 누가 되지 않아야 한다.

소음 섞인 벤츌레이션이 되지 않도록 내 삶의 서사를 쓰고,  

내가 믿고 싶은 것이 아닌 증명 가능한 데이터와 축적된 경험에 기반한 정보를 쓰고,

오만한 개똥철학이 아닌 우리가 놓치고 있는 지혜에 대해 쓰고 있는지 자문해야 한다.


정보의 근거가 무엇인지 왜 그러한지, 개인의 서사는 그 자아상과 가치관의 변화를 일으킨 그 동기가 무엇인지 알려줘야, 이야기는 보편성을 얻고, 정보는 정설이 되고, 개인의 서사는 찌푸림 없이 읽힐 수 있다.


세종대왕께서는,

문자가 맞지 않아 어린 백성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도 그 뜻을 펴지 못한 것을 가슴 아파하셨다.

백성 각자의 생각과 감정,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가 정확하고 솔직하게 표현돼야 한다는 어진 왕의 동기에 의해 한글이 만들어진것이다.

디지털 세상에 두벌씩으로 어떤 문자보다 효율적으로 입력되는 한글을 콘텐츠의 홍수 속 또 다른 공해 수단으로 만들 수는 없지 않은가.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문자와로 서르 사맛디 아니할쎄
이런 전차로 어린 백성이 니르고져 홀베이셔도 마참네 제 뜨들 시러펴디 돋할 노미하니아
내 이랄 윙하야 어엿비너겨 새로 스들 여들 짜랄 맹가노니
사람마다 해여 수비니겨 날로 쑤메 뻔한크 하고져 할따라미니라³


이렇게 바쁜 분초사회에서,

내 글을 선택해서 읽어주신 분들께 어떤 정보나 어떤 울림을 공유해야 할지 고민해 본다.


박노해의 걷는 독서 서문



1. 종합편성채널 MBN의 인기 교양 프로그램.

   2012년 8월 22일부터 방송을 시작했으며 현재 매주 수요일 밤 9시 10분부터 10시 20분까지 방영한다.


2. 도둑맞은 집중력 내용 中 : 요한 하리 저자(글) · 김하현 번역


3. 훈민정음 해례본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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