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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권 Aug 24. 2024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며  

스팅이 연주한 My one and only love 

타지에서 이야기가 통하는 현지인과 사귀는 건 행운이다. 그것도 배울게 많은 마음 좋은 형님들이라면 더더욱. 내 서툰 외국어에도 불구하고 독일인 형님 몇 분과 꽤 친하게 지낼 수 있었던 데는 음악이라는 취미를 공유하는 덕도 컸다. 스팅의 LP를 발견한 건 남미 여행을 마치고 독일에 돌아와 우리를 초대한 그분 중 한 분의  집이었다. 

 유튜브 프리미엄과 스포티파이, 멜론의 시대. 클릭 한 번으로 원하는 음악을 바로 들을 수 있는 편리한 시대다. 그러나 이상하게 구하기 쉬워지니 예전처럼 즐기지 않게 된다. 음악 하나를 듣기 위해서 돈을 모아 음반 가게에 가거나, 심지어 라디오 프로에 엽서를 보내서 그 시간을 기다렸다가 카세트테이프로 녹음하던 불편한 시절이 오히려 노래 한곡 한곡의 값어치를 올려주던 때가 아닌가 한다. 하얀 앨범 재킷 안에 들어있는 플라스틱 LP와  표지에 인쇄된 검은 글씨에서 작은 실물이 갖는 질감을 느끼니 이 음악과 관련된 많은 것들이 떠올랐다. 디지털의 시대지만, 아날로그적인 물성이 갖는 힘은 퇴색되지 않는다. 


 

스팅의 음악은 한때 열렬히 좋아했던 많은 것들 둘 중 하나다.  스팅의 앨범은 어떤 것들은 그럭저럭 좋고, 어떤 것은 많이 좋다. 마치 멜로디로 무신경함을 표현하는 것 같은,  툭툭 던지듯이 노래하는 그는 장르의 구분으로부터 자유로운 뮤지션이다. 상당수의 위대한 음악가가 그렇듯이. 대부분은 락의 범주에 머무르지만 가끔은 스탠더드 재즈도 연주했다. 그의 노래는 여러 영화에 수록되었는데, 대중적으로는 고독한 킬러의 마지막을 다룬 영화 Leon의 수록곡 Shape of My Heart 가 유명하다.   


어떤 사람이 좋아하는 음악은 대부분 30세 이전에 각인된다고 한다. 그리고 어떤 음악은 평생 어떤 사람이나 사건과 각인된 버리기도 한다. 스팅은 내게 두 명의 여성과 각인이 되어 있다. 하나는 불행히도 내가 여자에게 저지른 가장 큰 잘못 중의 하나와 관련되어 있고 다른 하나는 내게 평생 지속되는 사건, 아마도 내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사건과 크게 관련이 있다.  


 1995년, 내가 늦깎이 대학생으로 대학을 다닐 때다. X세대니, 아웃사이더니 하는 말들이 유행했다.

우리 마음의 밑바닥까지 정말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겉으로는 사람을 만날 때 무엇보다 취향이 맞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유행하던 때였다. 

좋은 영화는 혼자 봐야 하고, 남들이 듣지 않는 음악을 찾아 듣는 것이 진짜 음악을 듣는 것이며 

누군가와 그런 '나만의' 취향을 공유한다는 건 시시하게 돈으로 환원할 수 없는 무한한 가치가 있다는 믿음.

사회적으로는 군사 독재시대가 끝났지만 아직도 그 사회의 관성이 남아 있을 때이고, 대학사회에서 운동권이 퇴조하던 시기다. 거칠게 말하자면 집단보다는 개인의 생각가 취향이 중요하다는 입장이 힘을 얻어가던 때다. 그 생각의 족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아마도 히피와 반문화, 그리고 무엇보다 콜린 윌슨의 Outsider 가 영향을 줬을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흔적도 있으리라. 타인에게 관여하지 않되, 자신의 핵심에는 남들과 타협하지 않는, 자신만의 무언가를 갖고 살아야 한다는 것.  지금 생각하면 약간 겉멋 든 표현이지만 소위 쿨한 자신읠 유지하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일이라는 믿음 또는, 그렇게 믿고 행동하는 사람이 멋진 거라는 믿음. 


그때 나는 대학에서 미술 관련 전공을 하는 귀여운 여자애를 만나고 있었다. 귀한 집 무남독녀로 자란 그녀는 신촌에 있는, 사람들이 명문대학이라고 말하는 대학에 다녔다. 귀엽고 똑똑했고 매사에 거침이 없었다. 왜 그런 여자애가 나를 만나는지는 이해가 잘 안 됐는데, 인생에는 이렇게 이해 안 되는 일이 가끔 일어난다. 아마도 그녀는 자기 마음대로 주위사람들을 몰고 다니는 데 익숙했던 것 같다. 분명 그런 성향이 어딘가에서는 (특히 가끔 그녀의 말속에서 등장하던 그녀의 전 남자친구와는) 문제가 됐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딱히 그런 일에 토를  다는 사람도 아니었고, 그래서 그녀의 성향이 딱히 장애가 될 것도 없었다. 더 정확히는 그건 그 사람의 문제고 나와는 관계가 없다고 생각했다. 

 내게 유일하게 좀 문제가 되는 건  그녀는 가난한 철학도인 나에게는 부담스러웠던 비싼 레스토랑을 주로 다녔다는 것이다. 더치페이 같은 말이 굉장히 어색했던 시대라 데이트비용을 내가 다 부담하려니  부담이 되긴 했지만,  그게 딱히 큰 불만이 되지는 않았다. 나는 유지비가 별로 안 나가는 인간이고, 검도용품을 사거나 만화방 가는 것, 앨범이나 책을 사는 것 이외에 돈을 쓰는 데가 없었으니까.  한 번은 같이 백화점에 갔다가 당시 회사원 한 달 월급 정도 되는 가격의  원피스를 즉석에서  보고 놀란 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자기 돈 자기가 쓰는데 누가 뭐랄 것일까? 

  

 개인적인 취미 외에는 그 여자애가 있었다. 우리는 주말에 자주 만나고, 영화를 보거나 맛있는 것을 먹으러 다녔지만 '너희 사귀니?'하고 누가 묻는다면 복잡한 표정을 지었을 것이다. 

"아니 그럼 왜 만나는 건데?"라고 할 만도 하지만, 굳이 거기에 토를 달자면, 나는 뭔가를 남에게 바라거나 이끌려고 하지 않는 쿨병에 걸려 있었고,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한 인간이었지만 사실은 그 나이 되도록 제대로 된 연애 한번 해 본일이 없어 뭘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는 것. 그리고 불완전한 이전 연애의 여진 속에 있었다는 것도 원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젊고 바보 같은 데다가 그녀는 꽤 예쁘고 귀여웠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몇 개월간 지속되던 그 관계가 파국을 맞은 건 연말이었다. 이 영화 때문이다. 

우리는 강남역 시티극장에서 만났다. 개봉한 영화들을 살펴보다가  니콜라스 케이지와 엘리자베스 슈 주연의  리빙라스베이거스라는 영화를 발견했다.  '절망한 시나리오 작가가 마지막 여행을 라스베이거스로 가서 죽을 때까지 술을 먹다가 거기서 만난 매춘부와 마지막 사랑에 빠진다고? 


유튜브와 블로그가 없던 시절의 좋은 점은, 예상치 못한  만남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좋은 영화를 대중의 기준대로 골라주고, 심지어 그 영화의 줄거리를 2배속으로 보는 지금보다 접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은 현저히 적던 시대. 그러나 그러기에 자신의 취향이란 걸 발견하기 좋은 시대다. 이제  세상은 평평해졌고 좁아져 버렸다. 이제 우리가 사는 세상은 미답의 산이란 남지 않았고,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오지 고향의 디아스포라 같은 건 사라져 버린 세상이다. 그러나 그때는 달랐다. 가끔 신대륙을,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던 새로운 땅을 발견하는 마법 같은 순간을 만나기도 했는데, 그날이 바로 그런 순간이었다.

영화가 시작되고, 나는 트럭에 부딪친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영화를 보면서 아주 가끔 찾아오는 몰입의 경험이었다.  어떤 이유로 어떤 영화는 특정 장소와 환경에서 나를 사로잡는다. 정복자 펠레가 그랬고, 영화 비우티풀이 그랬다. 그날 나는 라이트를 킨 차들이 위험하게 지나치는 라스베이거스의 밤거리를 헤매는 니콜라스 케이지와 그를 사랑한 엘리자베스 슈에 완전히 빠져들고 있었다. 


알코올중독으로 직장에서 해고되고, (무언가가 그를 갑자기 알코올중독에 빠지게 했는데 그 진짜 이유에 대해서는 나오지 않는다.) 이혼 후 사랑하는 아들의 양육권까지 뺏긴 니콜라스케이지는 거리의 여자 엘리자베스 슈와 서로에게 단 한 가지를 약속하며 사랑에 빠진다. 술을 그만 마시라고 하지 말 것, 몸을 파는 일을 그만하라고 하지 말 것. 그러나 서로를 속박하지 않는 사랑이 과연 얼마나 지속될 것인가? 결국 그들은 싸우고 헤어진다.

헤어진 그들은 서로 다른 파국을 향해 달린다. 어느 날 총각파티를 하기 위해 매춘부를 부른 운동부 애들에게 몹쓸 짓을 당한 엘리자베스 슈는 침대 위에서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맞고 있는 니콜라스 케이지를 만난다. 그들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랑을 나누며 니콜라스케이지는 마지막 숨을 거둔다. 

 

그때 들려오는 노래가 Sting 이 부른 My one and Only love.


The very thought of you makes my heart sing

Like an April breeze on the wings of spring,

And you appear in all your splendor,

My one and only love.

너를 생각하면 가슴이 설레

봄날개에 부는 4월의 바람처럼

너는 그대의 모든 영광 속에 나타나고

나의 유일한 사랑      


그들이 스쳐 지나가고, 경계하고, 만나고, 사랑하고, 절망하는 모습을 보는 동안 나는 정말 몰입해 보며 가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나지막하게 코 고는 소리가 들려온 것은. 

옆을 보니 그 여자애가 나지막이 코를 골면서 자고 있었다. 


나는 다시 스크린을 바라보며 집중하려 노력했다. 영화가 끝나고 내려가며 그녀가 뭘 먹지?라고 물었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시티극장 앞에서 택시를 잡은 나는 그녀를 먼저 태우고, 지갑에서 손에 집히는 대로 지폐를 꺼낸 후 쥐어줬다.


"잘 들어가. 그리고 다신 나한테 연락하지 마."


택시가 떠나는 걸 보고 나는 영화관을 다시 뛰어올라가 표를 구매했다. 다음 영화가 곧 시작할 것이다. 

나는 그날 리빙라스베이거스를 온전히 혼자서 다시 보고 밤거리를 걸어 집에 돌아왔다. 그 영화의 여운에서 깨기 싫었기 때문이다. 


Sting과 관련된 또 하나의 각인은 그 사건으로부터 10년이 지난 후에 일어났다. 지금이야 결혼시기가 많이 늦어졌지만 당시만 해도 30대가 넘어가면 왜 결혼을 안 하냐고 주위에서 불안해하는 게 자연스러울 때다,  내가 이미 오래전부터 공개적으로 비혼을 선언하고,  결혼을 염두에 둔 소개를 거절하자, 주위에서는 여러 가지 책략을 써서 결혼을 염두에 뒀을 만남으로 나를 몰아가려 했다. 그 방법 중 하나는 내가 제안을 거절하기 어려운 상대로부터의 소개 같은 방식이었다. 


아버지 때부터 귀하고 어려운 관계를 이어가고 있는 집에서 여성을 소개해 줬는데, 부담스럽기 짝이 없었다. 내가 약속을 차일피일 미루자, 자존심이 상한 상대가 결국 안 만나겠다고 선언했다. 큰 실례고 미안한 일이지만,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러나 얼마 후  이번에는  그 집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의 담임 선생님을 "남 주기에는 너무 아깝다."라는 설명과 함께 만나라고 소개해 줄 때는 거절할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이번에 또 그러면 소개해 준 분들께 너무 큰 실례다."라는 말을 신신당부했다.  


드라마에서나 전형적으로 나오는 것 같은, 평소에는 갈 일이 전혀 없는 고급 호텔의 커피숍에서 만난 우리는 역시 드라마에서 나오듯이 뭘 좋아하는지 조심스러운 호구 조사를 했고, 나는 스팅을 좋아한다고 했다. 나는 교사라는 건 재미없는 사람들이라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귀여운 아가들 이야기는 재미있었다. 우리는 몇 번 데이트를 했고,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내게 뭐 하나 들려줄 게 있다고 했다. 그녀는 자기가 연주한 피아노 곡을 들려줬다. 

"아는 노래긴 한데 이 제목이 뭐지요? "  

"스팅이잖아요?"

나는 깨달았다. 이건 건로버트 레드포드가 나오는 오래된 영화 스팅의 'Entertainer'다.

속으로 정말 귀엽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스팅이 누군지 처음부터 몰랐던 것이다. 

그리고 8개월 후에 우리는 결혼을 했다. 결국 내 취향이나 소양 같은 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니었던 셈이다. 


내 행동에 대해서 돌아보게 된 건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나서였다.  내가 뜻밖에 유부남이 되고, 아이들의 아버지가 된 이후였다. 서로 좋아했던 영화 이야기를 하다가 별생각 없이 이 경험을 말하자 나에게 아내는 정색을 하고  화를 냈다. 뭐 그리 이기적인 사람이 있냐면서, 그러나 심지어 그때조차 내가 생각한 것은 '아 타인들은 그렇게 느끼는구나. ' 하는 정도였다. 그녀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된 것은 그 후로도 세월이 지난 이후에나 가능했다.
그런데, 내가 한 행동은 분명 나쁜 일이었지만, 만일 그때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고 한들 과연 내가 다른 선택을 할까도 싶다. 이전과 다른 것이 있다면, 단지 지금은 내가 한 일이 나쁜 일이라는 사실을 알 뿐이다.

그리고 나와 헤어진 게 그녀에게 꼭 나쁜 일이지 많은 않을 것이다. 그 이후 펼쳐진 내 인생에는 우여곡절이 많았고, 제법 높은 봉우리와 행운도 있었지만, 깊은 웅덩이와 불운도 있었다. 나는 그녀가 그 모든 것을 함께 헤쳐 이겨낼 수 있었을지 의심스럽다. 그러니 지난 일은 다 잘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묘한 우연의 장난인데, 내 전화에  My one and only ~라고 적힌 이름이 있다. 원래 나는 사람이름을 다 존칭 빼고 이름으로 적는다. 그런데 내가 전화기에 적은 아내 이름을 본 막내와 아내가 질색 팔색을 하는 것이었다.(둘이 좀 비슷하다.) 어찌 그렇게 멋없이 무정하게 이름을 적느냐고, 그래서 그때 즉석에서 적은 게 생각한 게 스팅이 부른 My one and only love라고 적으려 했지만,  거기 넣을 수 있는 철자의 제한으로 인해  My one and only라고 되어 버렸다. 그래도 아내는 만족한 눈치다. 그러나 only 다음에 무슨 말이 들어갈지 어찌 알고!


지금 생각하면 리빙 라스베이거스는 실제로는 사랑이 정말로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에 대한 111분짜리 대답이다. 가장 낮은 사람들을 통해 진짜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한 편의 우화다. 상대방에게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을 때, 그때도 우리는 그 를 사랑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그 사랑이야말로 가장 숭고한 것이 아닌가?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이유를 물을 때 흔히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장점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누군가의 능력이 좋고, 외모가 좋고, 성품이 좋다는 말은 능력과 외모, 성품이 없으면 사람을 좋아할 이유가 없다는 뜻 아닐까? 그렇다면, 그걸 정말로 사랑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일까? 

 My one and only라는 말은, 그 뒤에 무엇이 나오던 정말 용감한 말이다. 한번 사는 우리 인생의 단 한번 찾아오는 무엇이라니! 사랑은 욕망과 구분할 수 없으며, 우리의 욕망은 모호하다. 그래서 사랑도 모호하고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래서 실패는 사랑의 일부일 수밖에 없다. 내가 보다 철없고, 순수하고, 그래서 더 바보 같고 무례한 인간이었을 때 본 리빙 라스베이거스는 그 모든 실패와 욕망을 넘어서는 사랑의 이미지로 남아있다. 아마도 우리가 가 닿을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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