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아이의 눈으로 본 영국 (1)

제3절 지도 위에서 시작한 영국 탐험

by 백지

1. 지도 위에서 만난 영국, 아이의 눈으로 본 세상

초등학교 1학년이 되면서 아이는 영어, 수학, 과학 등 다양한 수업을 접하기 시작했다. 한 학기마다 핵심 주제가 주어졌는데, 기차와 날씨에 대한 주제를 배운 이후 영국 지리에 대한 수업이 이어졌다. 아이는 그렇게 캔터베리, 캔트, 런던에 대해서 배웠다.

동시에 아이는 영국이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의 네 나라로 이루어진 연합 왕국(The United Kingdom)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각 나라의 수도와 국기, 그리고 대표 상징까지 하나하나 익혀갔다. 잉글랜드의 사자, 스코틀랜드의 유니콘, 웨일스의 붉은 용, 북아일랜드의 적색 손이다. 런던은 잉글랜드뿐만 아니라 영국 전체의 수도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어서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 웨일스의 카디프, 북아일랜드의 벨파스트를 지도에서 찾아보고 직접 그려보기도 했다. 그리고 도화지 위의 지식이 되지 않도록 기회가 되는 대로 직접 가보자고 약속했다.

"영국은 크기가 얼마나 돼요? 우리나라보다 커요?" 아이의 질문에 아이 책상 옆 라디에이터에 붙여 놓은 세계지도를 함께 바라보았다. 영국의 전체 면적은 약 24만㎢로 약 10만㎢인 우리나라의 약 2.4배 정도였다. 한반도 전체의 면적은 약 22만㎢로, 사실상 영국 전체와 거의 비슷한 크기였다. 그중 런던과 우리가 살고 있는 캔터베리가 있는 잉글랜드는 약 13만㎢로, 우리나라보다 조금 더 컸다. 한반도는 영국과 비슷하고, 잉글랜드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규모였다.

잉글랜드는 영국의 남동부에, 그리고 캔터베리는 다시 잉글랜드의 남동부에 위치한다. 우리나라 부산 근처에 살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고 아이의 시선으로 크기와 위치를 가늠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아이의 호기심 덕분에 우리 가족 모두 영국 지리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었다.




2. 산업혁명과 기차 이야기, 영국을 움직인 힘

아이가 학교에서 처음 배운 주제는 바로'기차'였다. 토마스 기차를 좋아하던 아이는 쉽게 그 주제에 빠져들 수 있었다. 우리는 그 배경에 영국은 산업혁명의 발상지라는 자부심이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이는'철도의 아버지'로 불리는 조지 스티븐슨(George Stephenson, 1781~1848)에 대해 부모와 함께 찾아보는 숙제를 받았다. 그가 잉글랜드 출신으로 1825년 세계 최초의 공공 철도에서 승객을 태운 증기기관차 로코모션 No.1을 개발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기차에 대한 관심은 아이의 학습을 교실 밖으로 확장시켰다. 과학 수업 시간에 이 인물과 기차의 원리를 배운 아이는 DT(Design and Technology) 수업 시간에 기차를 그리고 종이 상자로 기차 모형을 만들며 흥미를 키워나갔다.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더 깊이 탐구하기 위해 우리는 런던 과학박물관을 찾았다. 자연사 박물관과 담장을 하나 두고 옆에 있었다. 이곳에서는 증기기관차 엔진과 스티븐슨의 기차 모형을 찾아다니며 보물 찾기를 하듯 둘러보았다. 인류 진화, 우주, 전자통신, 자연재해 등 광범위한 과학 전시물을 관람하며 영국이 산업혁명의 나라임을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었다. 특히 건물 맨 위층에 위치한 원더랩(Wonderlab)에서는 전기, 자석, 소리, 빛 등 과학 원리를 직접 체험하고 과학 공연을 관람할 수 있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불은 산소, 열, 연료 이 세 가지가 있어야 만들 수 있다!" 배운 내용을 신나게 설명하는 아이의 모습에서'배움'이 얼마나 즐거운 경험이 될 수 있는지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코벤트 가든의 런던 교통박물관에서는 마차와 더블데커 버스의 역사는 물론 세계 최초 지하철의 역사까지 살펴볼 수 있었다. 이곳에서는 19세기부터 현재까지 200년간의 런던 교통 발전사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초기 말이 끌던 옴니버스부터 현대의 빨간 버스까지, 그리고 1863년 세계 최초로 개통된 지하철 메트로폴리탄 철도의 역사적 차량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상호작용식 전시물들과 함께 런던의 독특한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교통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산업혁명의 심장부, 영국 북부 탐방

런던에서의 경험이 우리의 호기심을 더욱 자극했다. 우리 가족은 산업혁명이 실제로 시작된 잉글랜드 북부 지역을 찾아 나섰다. 잉글랜드 북부 요크에 위치한 국립철도박물관(National Railway Museum)에서는 조지 스티븐슨 동상과 그의 업적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철도 전문 박물관인 이곳 중앙 홀에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증기기관차로 기록된'몰라드(Mallard)'가 전시되어 있었다. 영국 최초의 고속디젤열차 HST(High Speed Train), 그리고 초기 유로스타(Eurostar) 실물 차량 등도 함께 있었다. 특히 아이가 그림 숙제에 적었던'Flying Scotsman'이 실제로는 1923년부터 런던과 에든버러를 연결한 유명한 증기기관차라는 것을 알고 더욱 흥미로워했다.

이어서 방문한 맨체스터 과학산업박물관(Science and Industry Museum, Manchester)은 우리에게 산업혁명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해 주었다. 이곳은 세계 최초의 여객 철도역인'리버풀 로드 역(Liverpool Road Station)'을 박물관으로 개조한 곳으로, 역사의 현장에서 역사를 배우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했다.

스티븐 호킹 박사의 전동 휠체어, 최초의 프로그램 저장식 컴퓨터'맨체스터 베이비(Manchester Baby)', 그리고 기계식 방직기 등이 전시되어 산업혁명과 과학기술의 역사를 한눈에 살필 수 있었다. 풍선 안에 증기를 주입하거나 종이와 작은 풍선을 증기로 띄우는 실험을 통해 아이들은 증기가 어떻게 동력으로 전환되는지 흥미롭게 배울 수 있었다.

방직기와 방적기, 증기기관 등 전시물들은 이 도시가'산업혁명의 발상지'로 불리는 이유를 명확히 보여주었다. 한 전시물에는"기계가 인간 노동을 대체하면서 노예제도에 의존할 필요가 줄어들었고, 이는 노예 해방 운동에 간접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이를 보며 산업혁명으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기계를 부쉈다는 러다이트(Luddite) 운동이 떠오르며, 산업혁명의 빛과 그림자를 함께 생각하게 만드는 의미 있는 순간이었다.

이러한 탐구 여행은 자연스럽게 스코틀랜드까지 이어졌다. 런던 킹스크로스 역에서 Flying Scotsman과 같은 노선을 운행하는 LNER(London and North Eastern Railway) 열차를 타고 에든버러로 향하는 동안, 아이는 창밖으로 스쳐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과거 이 길을 달렸을 증기기관차들을 상상했다.

스코틀랜드 국립박물관에서는 산업혁명의 또 다른 주역인 제임스 와트(James Watt, 1736~1819)를 만나볼 수 있었다. 제임스 와트는 기존 증기기관의 효율을 혁신적으로 개선한 인물로, 그의 이름은 오늘날 전력 단위인'와트(Watt)'로 남아 있다. 스티븐슨의 기차가 와트의 개선된 증기기관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게 된 아이는 역사의 연결고리를 이해하며 더욱 흥미로워했다. 이곳에서는 복제양 돌리도 만날 수 있었다.


현재까지 이어진 산업혁명의 유산

산업혁명의 유산은 기차와 박물관 속 유물로만 머물러 있지 않았다. 런던의 타워 브리지 동력실에서는 거대한 증기 장치가 다리를 들어 올리던 당시의 모습을 재현한 전시가 있었다. 아이는"진짜 이 엔진이 다리를 들어 올렸나?"라며 놀라워했다.

또한 한때 화력발전소였던 테이트 모던 미술관과 대형 아웃렛 공간으로 재탄생한 배터시 발전소에서는 산업혁명 유산이 현대적으로 보존되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과거의 산업 시설들이 문화와 상업의 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을 보며, 역사가 단순히 과거에 머물지 않고 현재와 끊임없이 대화하고 있음을 실감했다.

테이트 브리튼 미술관에서는 그림 속에서 산업혁명을 만날 수 있었다. 이곳에서는 산업화 시대 영국의 풍경을 화폭에 담은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J.M.W. Turner, 1775~1851)의 작품들을 감상했다. 예술가의 눈으로 포착한 역사적 순간들과 마주하면서, 산업혁명이 단순히 기술의 발전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변화였음을 느낄 수 있었다. 터너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연기와 안개가 합쳐진 흐릿한 대기는 실제로 산업혁명 시대의 대기오염을 반영한 것이라는 연구 결과도 흥미로웠다. 아이와 함께 이런 역사적 맥락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터너가 1798년 캔터베리 대성당의 지하실(crypt)과 모턴(John Morton, c. 1420–1500) 추기경, 당시 캔터베리 대주교이자 헨리 7세의 수석 고문의 무덤을 그린 작품을 비롯해 캔터베리 대성당을 소재로 한 여러 작품을 남겼다는 것을 알게 되어 아이는 더욱 반가워했다.

아이가 학교에서 배운 영국의 지리, 과학, 역사, 그리고 인물들의 이야기는 이처럼 박물관과 여행, 실생활 경험을 통해 하나의 거대한 서사로 엮어졌다. 교과서 속 지식이 현실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것을 보며 아이는 영국이라는 나라를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3. 살아있는 역사: 성과 궁전, 대성당, 수도원

아이의 친구 소피아의 아버지는 어느 날"영국은 박물관 같다"라고 말했다. 당시 이야기는 여전히 열쇠를 고집하는 사람들, 오래된 집을 고쳐가며 사는 사람들, 수백 년 된 건물들에 관한 것이었다. 아이 역시 영국의 지리뿐 아니라 세월을 품고 살아 숨 쉬는 역사적 건축물들에 대해 배워가기 시작했다.


1) 성(城)과 왕(王), 이야기가 깃든 역사 속으로의 초대

아이가 학교에서 흥미롭게 접한 주제 중 하나는 바로'성(Castle)'이었다. 어린이집 시절 라푼젤을 좋아했던 아이는"이곳의 성은 어떻게 생겼을까?" 하고 자주 궁금해했다. 이 호기심은 우리 가족을 영국의 역사적인 성들로 이끌었다.

우리 집 인근 가스 스트리트(Gas Street)에는 캔터베리 성(Canterbury Castle)이 있었다. 우리가 영국에 머무는 동안 보수 공사로 내부 관람은 어려웠지만, 두꺼운 석벽과 좁은 창을 가진 방어 중심의 노르만 양식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이 성은 1066년 잉글랜드를 정복한 정복자 윌리엄(William the Conqueror)이 초기 통치 시기에 세운 전략적 요새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학교 수업에서는 아이가 직접 중세 성의 모습을 그려보고, 종이와 다양한 재료를 활용해 모형을 만드는 활동이 이어졌다. 아이는 해자(moat), 도개교(drawbridge), 쇠창살 문(portcullis), 방어용 성벽(battlement), 화살 구멍(arrow loop) 같은 단어를 익히며 성의 구조물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종이 상자, 아이스크림 통 등을 이용해 함께 성을 만들고, 중세의 기사가 된 듯한 상상 놀이를 하며 성의 구조와 쓰임새를 자연스럽게 익혀갔다.

어른인 나에게는 이런 영어 단어들이 낯설고 어렵게 느껴졌지만, 문득 깨달았다. 아이에게는 이 모든 것이 처음이다. 무언가 어렵거나 쉬운 것은 결국 어른의 기준일 뿐이라는 것을. 아이에게는 모든 것이 낯설고, 그렇기에 동시에 어렵기도 하고 새롭고 흥미롭기도 한 시기였다.

성의 명칭과 구조를 배운 뒤, 우리 가족은 캔터베리에서 런던 방향으로 차로 약 40분 거리에 있는 리즈 성(Leeds Castle)을 찾았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 중 하나로 불리는 리즈 성은 헨리 8세가 여섯 왕비 중 첫 번째 왕비였던 아라곤의 캐서린(Catherine of Aragon)을 위해 개조하고 자주 찾았던 장소로 유명하다. 이 성은 오랜 역사를 지녔지만, 아름다운 호수 위에 자리한 동화 같은 모습으로 평화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아이와 함께 성 안팎을 둘러보며, 학교에서 배운 단어들을 실제로 하나하나 짚어보았다. 성의 입구에서 도개교와 쇠창살 문, 해자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연간 회원권을 구입한 우리 가족은 다음 방문 때 더욱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어린이를 위한 탐험 노트를 기록하며 성의 역사와 특징을 더 깊이 알아갔다. 성 모양의 놀이터에서 신나게 뛰어놀고, 작은 골프장에서 미니골프를 치며 리즈 성에서의 시간을 즐겼다.

그다음에 찾은 곳은 영국 해협을 마주한 절벽 위 요새, 도버 성(Dover Castle)이었다. 도버의 상징인 화이트 클리프(White Cliffs) 옆에 자리한 이곳은 캔터베리 대성당과 함께 켄트 지역의 주요한 역사 명소로 꼽힌다.

이 성은 고대 로마의 등대(1세기)부터 12세기 중세 요새, 그리고 2차 세계대전(1939~1945) 당시의 지하 군사 본부까지, 서로 다른 시대를 아우르는 풍부한 역사를 품고 있다. 아이와 함께 실제 지하 땅굴 벙커에 들어가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간접적으로 체험해 볼 수 있었고, 성 꼭대기에 올라 멀리 바다 건너 보이는 프랑스를 바라보며 "나라와 나라 사이의 경계"라는 개념을 자연스럽게 익혀갔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푸른 해협은 영국의 오랜 방어 역사를 보여주는 듯했다.


1-1. 왕실의 일상을 품은 공간, 윈저 성(Windsor Castle)

윈저 성의 존재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그 실체를 제대로 알게 된 것은 꽤 우연한 계기였다. 바로 그 근처에 레고랜드(Legoland)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 번은 레고랜드'오픈런'을 하기 위해, 아직 잠든 아이를 그대로 차에 태워 출발한 적이 있었다. 안경과 갈아입을 옷은 잘 챙겼지만, 막상 도착해서야 한 가지를 빠뜨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로 신발을 두고 온 것이었다! 어린이 자동차 운전 체험 중, 신발을 신지 않은 아이는 안전 규정에 따라 결국 안전요원에게 이끌려 나와야 했고, 울음을 터뜨렸다. 부랴부랴 윈저 시내로 향해 등산화 매장에서 아이에게 맞는 샌들을 급히 사서 돌아왔다.

레고랜드에서 시작된 하루가, 윈저 성과의 뜻밖의 만남으로 이어졌다. 말로만 들었던 윈저 성도 머지않아 가보기로 했다. 현재도 영국 왕실이 실제 사용하는 윈저 성은 품격과 위엄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잘 정돈된 정원과 웅장한 외관 덕분에 군사 요새를 넘어, 왕실의 생활공간으로서의 기품을 함께 보여주고 있었다. 성 내부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곳은 메리 여왕의 인형의 집(Queen Mary's Dolls' House)과 왕실 아파트(State Apartments)였다.

아이의 발걸음이 한쪽 장식장 앞에 멈췄다. "어? 저건 한국에서 온 거잖아!" 아이의 말에 따라가 보니, 유리관 안에는 한복을 입은 인형과 하회탈이 고이 진열되어 있었다. 1999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우리나라 안동을 방문했을 때 받은 선물들이었다. 자신이 속한 나라가 이렇게 멀리 떨어진 왕실 공간에서도 환영받고 있다는 사실에, 아이는 신기함과 자부심을 동시에 느낀 듯했다. 그 작은 전시물은 국제적인 교류와 문화적 자긍심을 심어주는 뜻밖의 선물이었다.

성 밖으로 나와, 하루는 멀리 곧게 뻗은 4km 롱 워크(Long Walk) 길을 걷기도 했다. 또 다른 하루는 오른편 길로 향해 잔잔한 템스 강 위를 유유히 떠다니는 백조 무리에 모이를 주기도 했다. 고풍스러운 성과 어우러진 그 풍경은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1-2. 마법 같은 역사 속으로, 에든버러 성(Edinburgh Castle)

아이는 《해리 포터》를 무척 좋아했다.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다가 처음으로 실사 영화를 접한 뒤로는,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아닌 실제 배우가 등장하고, 실존하는 건물이 있으니 이야기 속 세계가 더 생생하게 다가온다"라고 말하곤 했다. 그런 아이에게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 성(Edinburgh Castle)은 꼭 가야 할 곳이었다.

에든버러 시내를 내려다보는 거대한 바위산 위에 굳건히 세워진 에든버러 성은, 그 위치만으로도 거대한 요새 그 자체처럼 느껴진다. "진짜 호그와트가 있다면 이런 모습일까?" 아이의 말처럼 위엄 있는 외관과 가파른 지형, 중세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성의 분위기 덕분에, 마치 마법사의 학교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실제로 작가 J.K. 롤링은 《해리 포터》를 집필하면서 에든버러의 풍경과 분위기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알려져 있다. 성 전체에 흐르는 고풍스럽고 신비로운 분위기는 어린아이뿐 아니라 어른의 마음까지도 단숨에 사로잡았다.

성 안으로 들어서면 인상적인 공간들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스코틀랜드 왕실 보석이 전시된 크라운 룸(Crown Room)은 긴 줄을 서야 했지만, 그 기다림이 아깝지 않았다. 이곳에서는 스코틀랜드 왕의 왕관(Crown), 의식용 검(Sword of State), 그리고 왕홀(Sceptre)이라는 세 가지 상징적인 왕권의 보물을 눈앞에서 볼 수 있었다. 보석 하나하나에 깃든 역사와 상징이 공간의 무게감을 더하며, 스코틀랜드 왕실의 오랜 전통과 권위를 생생하게 전달했다.

우리에게 특별한 순간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매일 오후 1시, 성벽 위에서 울리는 전통 대포, '원 오클락 건(One O'Clock Gun)'이다. 발사 시간이 다가오자 주변은 숨을 죽인 듯 고요해졌고, '펑!' — 드디어 굉음과 함께 대포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순간, 놀란 아이가 내 옷자락을 꽉 잡았다. 이 전통은 1861년부터 이어져 온 유서 깊은 관습이다. 시계가 흔하지 않던 시절, 근처 리스(Leith) 항구의 선박들이 항해용 시계를 맞추기 위해 활용했던 중요한 정각 신호였다. 원래는 에든버러 칼튼 힐(Calton Hill)에 설치된 '타임 볼(Time Ball)'이 시각 신호를 제공했지만, 에든버러의 흐린 날씨 탓에 시각보다 청각 신호인 대포 소리가 선박들에게 훨씬 더 유용했던 것이다.


2) 궁전: 왕과 여왕이 사는 멋진 집

2-1. 버킹엄 궁전, 왕실의 심장부를 느끼다

우리는 버킹엄 궁전(Buckingham Palace)을 방문하며 영국 왕실의 심장부를 느낄 수 있었다. 궁전 앞에서 펼쳐지는 근위병 교대식(Changing of the Guard) 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붉은 제복과 털모자를 쓴 근위병들이 절도 있는 동작으로 교대하는 웅장한 모습은 영국 왕실의 전통과 위엄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궁전(Palace)'이라는 단어에 우리는 자연스레 한국의 경복궁이나 창덕궁을 떠올릴 수 있었다. "왕과 왕비가 사는 집이구나" 하고 아이도 짐작했다. 버킹엄 궁전은 왕실의 거주지이면서, 왕족의 생활은 물론 국가의 중요한 공식 행사와 환영 만찬 등이 열리는 공간이었다. 그 화려함과 기능적인 편의성이 조화롭게 구성되어 있었다.

궁전 주변의 그린 파크(Green Park)와 하이드 파크(Hyde Park)를 함께 산책하면서, 우리는 궁전이 단지 왕족의 거처가 아니라 런던 시민들에게 열린 공공 공간, 즉 푸른 자연을 품은 도시의 허파와도 같은 존재임을 느낄 수 있었다. 왕실의 품격과 도시의 일상이 공존하는 버킹엄 궁전은 런던의 상징이자 살아있는 역사였다.

2-2. 햄튼 코트 궁전, 헨리 8세의 숨결을 따라

우리는 영국의 유명한 왕 중 한 명인 헨리 8세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는 햄튼 코트 궁전(Hampton Court Palace)에도 가보았다. 붉은빛이 감도는 벽돌 건물, 르네상스 양식의 웅장한 외관과 잘 보존된 내부는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들어간 듯한 느낌을 선사해 주었다. 넓은 부엌, 장대한 연회장, 그리고 유명한 미로 정원 같은 공간들을 거닐며 아이는 감탄했다. "이런 곳에서 진짜 왕이 살았구나!"

햄튼 코트 궁전은 사실 1514년경 토머스 울지 추기경(Cardinal Thomas Wolsey)이 자신의 권세와 부를 과시하기 위해 건설을 시작한 곳이다. 그러나 울지 추기경이 헨리 8세의 눈 밖에 나면서, 1528년 울지는 이 화려한 궁전을 헨리 8세에게 헌납하게 된다. 이후 헨리 8세는 이곳을 자신의 가장 사랑하는 궁전 중 하나로 만들며 대대적인 확장과 개조를 단행했다. 그는 자신의 거대한 수행원들을 수용하고 성대한 궁정 생활을 즐기기 위해 궁전을 크게 늘렸다. 헨리 8세의 여섯 왕비들이 이곳을 거쳐갔으며, 특히 그의 세 번째 부인인 제인 시모어(Jane Seymour)는 이곳에서 아이 에드워드 6세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하기도 했다.

궁전 내부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로 남아있는 16세기 주방이 있어 당시의 대규모 연회를 짐작하게 한다. 한때는 200명이 넘는 요리사들이 800명이 넘는 왕의 수행원들을 위해 음식을 준비했다고 하니, 그 규모를 상상할 수 있다. 또한, 17세기 후반 윌리엄 3세와 메리 2세 여왕은 베르사유 궁전에 필적하는 바로크 양식의 새로운 궁전 부분을 유명 건축가 크리스토퍼 렌 경에게 의뢰하여 증축하기도 했다.

궁전의 아름다운 정원 한편에는 또 하나의 볼거리가 숨어 있었다. 바로 '더 그레이프 바인(The Great Vine)'이라는 거대한 포도나무였다. 1768년, 조지 3세의 정원사였던 랜달(Lancelot Brown)이 심은 이 포도나무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포도나무 중 하나였다. 이 오래된 나무는 햄튼 코트 궁전의 긴 역사와 함께 한 세월을 보여줬다.

마침 우리가 방문한 날은 독수리와 올빼미를 조련하는 맹금류 퍼포먼스, 그리고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창을 들고 말을 타고 겨루는 조스트(Joust) 행사가 있는 특별한 날이었다. 헨리 8세가 시대의 튜더 궁정 문화를 재현했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중세 시대의 활기찬 생활 모습은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생생한 체험을 선사했다.

헨리 8세의 파란만장한 이야기와 함께, 무엇보다 아이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은 궁전 안에 마련된 '매직 가든(Magic Garden)'이었다. 이곳은 아이들이 마음껏 뛰노는 놀이터이자 상상력과 신화적 요소가 절묘하게 가미된 상상의 정원이었다. 중세의 성곽, 용, 미로, 망루 등이 조화를 이루며 아이의 놀이가 자연스레 이야기가 되고, 경험이 되는 특별한 공간이었다. 이곳에서의 경험은 아이에게 역사에 대한 흥미를 더욱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2-3. 런던탑(Tower of London), 미스터리와 역사가 공존하는 공간

런던탑은 아이가 가보고 싶어 했던 장소 중 하나였다. 《카카오프렌즈》 영국 편에서 이곳의 미스터리를 다뤘기 때문이다. 런던탑이 성인지 궁전인지 묻는 아이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검색해 보니, 공식 명칭은 'Her Majesty's Royal Palace and Fortress'로 '궁전(Palace)'이라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중세 군사 방어 기능이 강한 요새에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런던탑은 시대에 따라 왕실의 거처, 감옥, 처형장, 보물 창고 등 다양한 역할을 해온 복합적인 공간으로, 궁전과 성, 감옥이라는 세 얼굴을 모두 지닌 장소였다.

런던탑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까마귀들이 우리를 맞이했다. "여섯 마리의 까마귀가 항상 런던탑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전설을 들려주자, 아이는 까마귀 한 마리씩을 진지하게 세기 시작했다. 미신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실제로는 여덟 마리를 기르고 있다고 한다.

화이트 타워(White Tower)는 아이에게 특히 깊은 인상을 남겼다. 정복왕 윌리엄이 11세기말 런던을 통제하기 위해 지은 이 탑은 노르만 양식의 대표적인 건축물이자 전략적 방어를 고려해 설계된 요새 구조를 보여준다. 계단을 오르며"왜 이렇게 높은지" 묻는 아이에게 당시에는 외부 계단을 철거해 적의 침입을 막는 방어 방식을 사용했다고 설명하자 신기해했다. 벽면에서는 에드워드 4세 아이들의 뼈가 발견된 곳도 볼 수 있었다.

마침 타워 브리지(Tower Bridge)가 천천히 들어 올려지는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고, 과거와 현재가 한 시야 안에 겹쳐진 인상적인 순간이었다. 런던 타워 근처는 가장 현대적이면서 동시에 가장 예스러운 곳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덕수궁 돌담길 너머로 높은 빌딩이 보이는 풍경처럼,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는 도시의 모습이었다.

에든버러성과 마찬가지로 보석관(Jewel House) 입장을 위해서는 줄을 서야 했다. 보석관에서는 왕관과 황금 보물들이 무빙워크를 따라 이어졌고, 그 화려함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아이 눈에는 보주의 황금 방울이 금방울처럼, 왕홀이 여의주처럼 보였다고 한다. 성대한 파티 때 와인을 담았다는 화려한 금빛 그릇도 인상적이었다.

비피터(Beefeater)와 사진을 찍고, 유리 베개가 놓인 처형 기념비 앞에서는 헨리 8세의 두 아내 앤 불린(Anne Boleyn)과 캐서린 하워드(Catherine Howard), 그리고 레이디 제인 그레이를 포함해 이곳에서 처형된 10명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셔널 갤러리에서 보았던 눈을 가린 채 처형당하는 레이디 제인 그레이의 그림과 연결되며, 역사 속 인물들이 아이의 기억 속에서 퍼즐처럼 맞춰지는 듯했다.

블러디 타워(Bloody Tower) 앞에서는 에드워드 4세의 두 아이가 탑에서 사라진 미스터리와 함께, 그들의 삼촌 리처드 3세에 얽힌 역사의 어두운 면을 이야기했다. 아이는 '라이언 킹'의 무파사와 스카, 심바를 떠올렸다. 왕위 계승을 둘러싼 가족 간의 갈등이 시대와 문화를 초월해 반복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아이는 역사와 픽션 사이의 연결성을 발견한 듯했다. 런던탑은 아이에게 역사 속 인물들의 삶과 죽음, 권력의 그림자를 생생하게 느끼게 해 준 공간이었다.


3) 대성당과 수도원, 시간의 결이 있는 공간

3-1. 세인트 폴 대성당, 런던의 부활을 상징하다

캔터베리 대성당처럼 대성당은 언제나 도시의 심장에 자리했다. 런던에서는 웅장한 세인트 폴 대성당이, 요크에서는 고색창연한 요크 민스터가 그랬다.

세인트 폴 대성당을 둘러보고 첨탑을 오르는 길은 계단이 좁아질수록 긴장을 불러왔다. 위스퍼링 갤러리(Whispering Gallery)에서 시작된 계단은 스톤 갤러리(Stone Gallery)를 거쳐 가장 높은 골든 갤러리(Golden Gallery)까지 이어진다. 위스퍼링 갤러리에서는 그 이름에 걸맞은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건너편 벽에 대고 속삭인 작은 소리가 선명하게 되돌아오는 신비로운 공간이다. 소리가 이렇게 울려 퍼지도록 설계했다니, 과거 건축가들의 지혜에 절로 감탄하게 된다.

이 거대한 건축물은 1666년 런던 대화재와 떼려야 뗄 수 없다. 푸딩 레인의 한 빵집에서 시작된 불길은 당시 목조 건물이 대부분이던 런던을 삽시간에 집어삼켰다. 도시 전체가 잿더미로 변했고, 목조건물로 된 기존 세인트 폴 대성당 역시 그 운명을 피할 수 없었다. 잿더미 위에서 런던은 다시 태어났다. 그 중심에는 위대한 건축가 크리스토퍼 렌 경이 재건한 세인트 폴 대성당이 우뚝 섰다.

런던 브리지에서 워키토키 빌딩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만날 수 있는 화재 기념탑(The Monument)은 그날의 비극을 잊지 않으려는 런던의 노력이 엿보였다. 타임스 같은 영자 신문을 들고 기념탑 앞에서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을 보며, 이 사건이 단순히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에도 생생하게 기억되고 있음을 느꼈다.

놀랍게도 그 엄청난 화재가 당시 런던을 휩쓸던 흑사병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다는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를 생각하게 한다. 불길이 쥐와 벼룩의 서식지를 없애면서 역병의 확산을 막는 데 역설적으로 기여했던 것이다. 세인트 폴 대성당은 런던의 아픔과 회복, 그리고 역사의 복잡한 흐름을 오롯이 담고 있는 살아있는 증거였다.


3-2. 웨스트민스터 수도원, 천 년 역사의 심장

흔히 빅 벤 시계탑으로 알려진 엘리자베스 타워와 영국 국회의사당 바로 옆에서 웨스트민스터 수도원(Westminster Abbey)을 바라보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캔터베리에서 성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St Augustine's Abbey in Canterbury)에서 '수도원'이라는 명칭을 듣기는 했지만, 그 의미와 역사적 깊이가 쉽게 와닿지 않았다. 웨스트민스터는 천 년이 넘는 영국 역사와 함께해 온 역사 깊은 장소였다.

수도원(Abbey)은 원래 수도사나 수녀들이 공동생활을 하며 신앙 활동을 하던 종교 공동체와 그 건물을 의미한다. 웨스트민스터 수도원 역시 10세기 중반 베네딕트 수도사들이 세운 수도원이 그 기원이었다. 16세기 헨리 8세의 종교 개혁과 수도원 해산 이후 수도원으로서의 기능은 대부분 사라졌다. 현재는 '웨스트민스터의 성 베드로 참사회 교회(Collegiate Church of St Peter at Westminster)'라는 공식 명칭을 가지고 있지만, 그 역사적 뿌리 때문에 여전히 '수도원'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이곳은 1066년 정복자 윌리엄(c. 1028~1087) 이래 영국 왕의 대관식이 거행되고 있는 장소이다. 또한 수많은 왕과 여왕, 그리고 아이작 뉴턴(1642~1727), 찰스 다윈(1809~1882), 찰스 디킨스(1812~1870) 등 영국의 위대한 과학자, 작가, 정치가, 군인들이 잠들어 있거나 기념되고 있는 국가적 기념 공간이기도 하다. 특히 '시인들의 코너(Poets' Corner)'에는 제프리 초서, 윌리엄 셰익스피어, 찰스 디킨스 등 영국 문학의 거장들의 묘비와 기념비가 모여 있다.

웨스트민스터 수도원은 웅장한 고딕 양식의 건축물 자체로도 감탄을 자아내지만, 그 안에 담긴 영국의 역사와 왕실의 이야기가 이곳을 더욱 빛나게 만든다. 매일 미사와 예배가 진행되는 살아있는 교회이기도 하며, 역사와 건축, 그리고 경건한 분위기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4. 궁금한 왕: 헨리 8세

1) 헨리 8세는 알아야지! 역사 속 그의 흔적

헨리 8세(Henry VIII, 1491~1547)의 이름은 캔터베리에서 가장 먼저 만날 수 있었다. 캔터베리 대성당 정문 위에는 헨리 8세의 모습이 조각으로 남아 있고, 내부 스테인드글라스 창에서도 그의 얼굴을 찾아볼 수 있다. 그의 이름을 알고 나니 대성당뿐만 아니라 도시 곳곳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그는 토마스 베켓(Thomas Becket)과도 얽혀 있었다. 토마스 베켓은 12세기 헨리 2세와의 갈등 끝에 이 대성당 안에서 왕의 명을 받은 기사들에 의해 암살당한 대주교였고, 이후 그는 순교자로 추앙받으며 성인으로 시성 되었다. 그의 무덤은 수백 년간 유럽 전역의 순례자들이 찾아오는 신앙의 중심지였다.

하지만 헨리 8세는 종교개혁을 단행하며 가톨릭 교회로부터 독립했고, 이에 따라 베켓의 성인 지위를 박탈하고 무덤도 철저히 파괴하라고 명령했다. 종교적 권위에 맞선 상징적 조치였다. 당시 대성당 외곽에 자리한 성 어거스틴 수도원(St. Augustine's Abbey)도 헨리 8세의 수도원 해산 정책(Dissolution of the Monasteries)에 따라 해체되었다. 자연스럽게 아이의 머릿속에도'헨리 8세'라는 이름이 각인되었다. "도대체 헨리 8세는 어떤 왕이었을까?" 궁금증은 점점 더 커졌다.


2) 헨리 8세의 결혼과 튜더 왕조의 운명

아이는 학교에서 보여준 《호러블 히스토리 (Horrible Histories)》 영상으로 헨리 8세를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헨리 8세의 삶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 중 하나는 바로 여섯 번의 결혼이다. 이 결혼들은 개인사에 머무는 것이 아닌, 잉글랜드의 종교 개혁, 정치 질서, 그리고 왕위 계승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첫 번째 아내인 아라곤의 캐서린(Catherine of Aragon, 1485~1536)과의 사이에서는 딸 메리 1세(Mary I, 1516~1558)를 낳았다. 헨리 8세는 남자 후계자를 원했지만, 캐서린이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되자 이혼을 추진했고, 이로 인해 로마 가톨릭교회와 결별하는 중대한 결정을 내린다. 이것이 바로 잉글랜드 성공회(Anglican Church) 탄생의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두 번째 아내 앤 불린(Anne Boleyn, 1501~1536)은 딸 엘리자베스 1세(Elizabeth I, 1533~1603)를 출산했다. 그러나 앤 불린 역시 아이를 낳지 못했고, 결국 간통과 반역죄로 처형당하며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세 번째 아내인 제인 시모어(Jane Seymour, 1508~1537)는 그토록 바라던 아이 에드워드 6세(Edward VI, 1537~1553)를 낳았다. 하지만 제인 시모어는 출산 후유증으로 사망하여 헨리 8세가 가장 사랑한 아내로 회자된다.

그 후 헨리는 세 명의 아내를 더 맞이했다. 앤 오브 클리브스(Anne of Cleves, 1515~1557)는 정치적 동맹을 위한 독일 출신의 왕비였으나, 헨리의 마음에 들지 않아 결혼 6개월 만에 무효 처리되었다.

다섯 번째 아내 캐서린 하워드(Catherine Howard, 1523~1542)는 앤 볼린의 사촌으로, 젊고 아름다웠지만 간통 혐의로 처형당했다.

마지막 아내 캐서린 파(Catherine Parr, 1512~1548)는 헨리의 노년을 함께하며 세 자녀와 좋은 관계를 유지했고, 헨리 8세 사후에도 생존한 유일한 왕비였다.

헨리 8세의 복잡한 결혼 생활은 단지 사적인 영역을 넘어서, 잉글랜드의 종교 개혁을 촉진하고 튜더 왕조의 왕위 계승 문제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그의 세 자녀인 에드워드 6세, 메리 1세, 엘리자베스 1세가 차례로 왕위에 올랐고, 각자의 종교적 신념과 통치 방식은 잉글랜드 역사에 중대한 변화를 남기게 된다. 헨리 8세의 삶을 통해 개인의 선택이 한 나라의 역사에 얼마나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지 배울 수 있었다.

3) 헨리 8세 발자취를 찾아가다

햄튼 코트 궁전(Hampton Court Palace)을 방문했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공간은 헨리 8세(Henry VIII)와 그의 여섯 아내들의 초상화와 이야기가 전시된 전시실이었다. 거대한 부엌과 화려한 연회장, 중세 궁정의 일상을 재현한 전시들을 통해 당시 왕실의 삶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었다. 이 궁전은 원래 추기경 토머스 울지(Cardinal Thomas Wolsey, 1473~1530)가 거주하던 저택이었으나, 그가 실각한 후 헨리 8세가 이를 인수해 왕실 궁전으로 확장한 것이다.

윈저 성(Windsor Castle)의 성 조지 예배당(St. George's Chapel)에서는 헨리 8세와 세 번째 아내 제인 시모어(Jane Seymour)가 함께 묻힌 묘비석을 볼 수 있었다. 여섯 아내 중 유일하게 함께 안장된 인물이라는 점에서 그가 제인 시모어에게 품었던 각별한 애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런던의 내셔널 포트레이트 갤러리(National Portrait Gallery)에서는 헨리 8세의 유명한 정면 초상화를 비롯해 그의 가족 관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왕가의 계보가 전시되어 있었다. 헨리 8세의 딸이 '피의 메리(Bloody Mary)'로 불린 메리 1세(Mary I)이며, 또 다른 딸이 엘리자베스 1세(Elizabeth I)라는 사실을 눈으로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켄트(Kent)에 위치한 리즈 성(Leeds Castle)에서도 헨리 8세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1520년 프랑수아 1세(Francis I)와의 정상 회담인 '금직물의 들판(Field of the Cloth of Gold)' 참석을 위해 도버(Dover)로 향하던 길에 이 성에 머물렀다고 전해진다. 넓은 해자와 고요한 호수로 둘러싸인 리즈 성은 정치적 격무에서 벗어난 왕의 사적인 휴식처로 상상하기에 충분한 아름다움과 평화로움을 간직한 곳이었다.

런던 마담 투소 박물관의 검정 택시를 타고 영국 역사를 압축해 보여주는 전시 역시 헨리 8세로 시작되었다. 이는 그가 살아서도, 죽어서도 영국 역사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핵심 인물임을 다시금 확인하게 해 주었다. 헨리 8세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영국 역사의 중요한 전환점을 떠올려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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